영남 노론 집안끼리 혼인-안동 일대에서 남인이 아닌 노론이나 소론에 속한 다른 집안은 없는가.“봉화에 ‘버저이(法田)’ 강씨 집안이 유명하다. 족보상 본관은 진주 강씨지만, 봉화의 법전이라는 지역에 오래 뿌리내리고 살았기 때문에 법전 강씨라 부른다. 법전을 경상도 사투리로 ‘버저이’라 한다. 그래서 버저이 강씨라 하는데, 이 집안에서 ‘일당백’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출중한 인물이 많이 나왔다. 옛날에는 봉화도 안동에 속했는데, 안동 일대의 유명한 노론과 소론을 모두 배출한 집안이 바로 버저이 강씨다.근래에도 판검사가 10여 명이나 배출됐다. 대법관 강신욱(姜信旭)씨, 국회의원을 지낸 강신조(姜信祚)씨가 바로 버저이 강씨다.역암(?庵) 강진규(姜晉奎·1817~?)의 후손이다. 강진규는 고종 때 예조참판을 지냈다. 강진규는 노론이 아닌 소론 사람이다.버저이에는 북향인 음지마을과 남향인 양지마을이 있는데, 양쪽 모두 인물을 배출했다.음지마을에서는 강태중(무장현감)을 비롯해 참판이 3명 배출됐다. 강태중은 노론이다. 음지와 양지마을을 포함해 대과 급제자가 25장이나 나왔다. 노론 13장, 소론 12장이라 한다. 반면 인근 지역이라도 남인이 살던 ‘닭실’(안동권씨)이나 ‘바래미’(봉화읍 해저리)(의성김씨)에서는 대과 급제자가 매우 귀했다. 국회의원을 지낸 김중위씨의 고향이 바로 '바래미'이다. 그래서 ‘버저이 급제 3장보다 '닭실'과 '바래미' 1장이 더 귀하다’는 말이 나왔다.그 외에도 전두환 정권 때 청와대 특보와 감사원장을 지낸 신현수(申鉉守) 씨 집안이 노론 집안이다. 경북 의성군 신평면의 신씨 집안이다. 전두환 정권 때에 신현수씨의 둘째딸이 김대중 대통령의 둘째아들인 홍업씨와 결혼했다. 결혼식은 외부에 알리지 않고 미국에서 올리려던 참이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신현수씨는 고민하다 하는 수 없이 사표를 제출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왜 사표를 내느냐’고 묻자, ‘딸이 김대중의 아들과 미국에서 결혼할 것 같다’고 보고했다. 이 말을 들은 ‘전통’은 신현수씨에게 여비를 주면서 ‘미국에 갔다오라’고 허락했고, 물론 사표도 반려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을 지낸 강신조씨가 신현수씨의 외사촌이다. 근래에 이르기까지 영남의 같은 노론 집안끼리 줄을 찾아서 혼인한 사실을 알 수 있다.그 외에 상주 봉대의 강씨들이 노론 집안이다. 일명 ‘봉대 강씨’라 한다. 국포(菊圃) 강박(姜樸·1690∼1742)의 후손이다. 국포 선생은 정미환국(丁未換局)이 발생해 소론이 다시 집권하자 기용되어 벼슬을 했다.벼슬보다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영남의 남인들이 정권에서 소외된 시기는 몇 단계로 볼 수 있다. 거시적으로는 인조반정이다. 광해군이 축출되면서 광해군의 정치적 사부이던 정인홍도 죽임을 당한다.정인홍은 경상우도인 경남 출신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이 일이 영남 사림이 중앙정계에서 소외되기 시작한 분기점이 된다. 그 다음이 숙종 때인 1680년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이다. 이때 남인의 영의정이던 허적(許積·1610∼80)이 사약을 받으면서 남인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다음이 1694년 장희빈과 관련되어 발생한 갑술환국(甲戌換局)이다. 이때부터 서애 유성룡의 후손인 매산(梅山) 유후조(柳厚祚·1798∼1876)가 대원군의 남인 중용책에 따라 좌의정에 오를 때까지 경상도 남인은 완전히 배척당했다.물론 정조 때 번암 채제공과 같은 남인계 영의정이 배출됐기는 했지만 채제공은 근기(近畿) 남인으로, 경상도 남인은 아니었다. 근기 남인은 간혹 채용됐지만 경상도 남인은 철저히 배제됐다. 영조 4년인 1728년 발생한 무신란은 바로 이런 경상도 남인의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다.하지만 무신란으로 인해 영남은 더욱 철저한 감시 대상이 됐다. 무신란을 진압한 후 대구에 세운 ‘평영남비(平嶺南碑)’가 이를 대변한다.경상좌우도를 놓고 보면 무신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우도(경남)가 좌도보다 훨씬 더 천대받았다. 아무튼 유성룡 이래로 영남 출신이 재상에 오른 사례는 유후조가 유일하다.경신대출척부터 유후조가 좌의정에 오른 시기까지를 계산하면 대략 200년이다. 200년 동안 지역차별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200년 동안 뭉친 영남의 한을 풀어준 사람이 박정희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박통이 집권하면서 전라도 차별이 시작됐다. 한을 푸는 것은 좋았는데 그 불똥이 전라도로 튄 것이다. 서울과 근기 노론에 향해야 할 불똥이 전라도로 튄 게 아닌가 싶다. 전라도에는 노론 집안도 물론 있었지만 남인 집안도 많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해남(海南) 윤씨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 집안이 남인이었고, 전라도에서 가장 물산이 풍부한 도시라 역대로 부자가 많이 살았던 나주가 전라도 남인의 근거지였다.어쨌든 영남 남인이 탄압을 받을 때 영남권의 정서를 대변한 인물을 누구로 봐야 하나.
출처: 眞城李氏 溫溪先生 後孫 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剩馥(宗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