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日(춘일)
한인위(韓仁偉: ?~?)
생몰미상.
지저귀는 제비는 바삐 봄을 부르고
喃喃玄鳥喚春忙 남남현조환춘망
꽃 핀 주렴 앞에는 해가 다시 길어지네
花發簾前日復長 화발렴전일부장
잔병치레 많은 늙은이에게 별다른 일 없기를
多病老身無別事 다병로신무별사
가랑비 내리는 약초밭에 회향을 심네
藥欄微雨種茴香 약란미우종회향
*
喃(남): 재잘거리다, 지저귀다, 글 읽는 소리.
喚(환): 부르다, 외치다, 소리치다, 불러일으키다.
忙(망): 바쁘다, 겨를이 없다, 조급하다, 두려워하다.
簾(렴): 발, 주렴.
欄(란): 난간, 우리, 울, 칸막이, 경계.
微(미): 작다, 자질구레하다, 적다, 숨다.
種(종): 씨(식물, 동물), 근본, 원인, 혈통, 종류, 부족.
茴(회):회향풀, 방풍.
玄鳥(현조): 제비.
微雨(미우): 보슬보슬 내리는 비, 가랑비.
茴香(회향):미나리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약용식물.
*
봄이 다가오면 겁이 난다.
계절이 바뀌면
사람도 바뀌는 것인지
문자나 전화받기가 두렵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무겁고
문상을 다녀올 때마다
몸도 마음도 가라앉은 기분이
며칠씩 가곤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가까운 벗은 약이 되었다.
여기저기 몸 구석구석
아프다고 이구동성 말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내 몸에 말하는 입이
백 개가 넘는 것 같다.
약국에 갔는데
어르신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장 보러 온 것처럼
장바구니 가득, 여러 가지 약들을 담고 있었다.
마치, 약이 주식(主食)처럼......
이 시의 화자도
병을 달고 살았나 보다.
잔병치레하면서 별일 없기를 바라는
그 심정을 십분 이해할 것 같다.
아픈 몸을 이끌고
비가 내린다고 약초밭에 약초(藥草)를 심는
화자의 마음이 찡하다.
아프면 세상도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