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사랑하고 아끼는 모임인 한국어 정보학회장 경희대 교수이신 진용옥교수님은 과연 우리말 지킴이일까? 훼방꾼일까?
진용옥교수께서 변명차 자랑스럽게 보내주신 논문의 일부 입니다.
저희 역시도 세종대왕께서 존경스럽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그 누구도 세종대왕의 업적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사람이 한글을 모르면서, 한글의 창제과정도 제대로 모르면서 한글을 사랑합네? 하고 역사적인물을 폄훼하는 학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린, 논문을 위하여 역사의 인물을 폄훼하고 논문에는 한자를 떳떳하게 사용하는 몰지각한 행동이야 말로 자신이 편하면 사용하고, 다른사람이 사용하면 [훼방꾼]으로 몰아가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저는, 상명대 국어과 교수이신 최기호교수의 부제학공 최만리선생과 세종대왕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감명깊게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해주최씨선산에는 묏버들의시인 홍랑과 고죽 최경창 의 "시비"는 국문학회에서 세워주었으며, 그 곳에는 상명대 국어과 교수이신 최기호교수의 이름도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길을 걷고계신 진용옥교수와 최기호교수님의 상반된 내용은 과연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어느 한분의 업적의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다른분을 폄훼하여 몰고가는 구 시대적발상이야 말로 고꾸라진페이에게 배운 일제시대의 잔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 아래의 글은 진용옥교수의 논문 입니다.
확인해 보시고 진정한 우리말 지킴이인지? 훼방꾼인지 토론해 보시기 바랍니다.
본 카페의 주인장께서도 "우리말 지킴이와 훼방꾼찾기" 에 [훼방꾼]으로 등재를 하심이 옳은줄로 사료 됩니다.
훈민정음은 음성과학자 이도(李祹) 세종대왕의 본명
큰 스승에 의하여 창제되었으며, 그 동기는 “훈민정음”과 “위차민연(爲此憫然)”이다. ‘~내 이를 위하여 여여삐 녀겨 새로 28자를 만든다‘ 고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서도 명백하다. 여기에서 민연이란 어여삐 녀겨 아낌없이 주거나 조건 없이 베푼다는 인보주의(때로는 가엽게 여긴다는 뜻도 있지만)를 지칭하며 북방 이동민(몽골, 여진, 한민족 등)의 기본정서에서 기원하고 있으며 홍익사상과 연계되어 있다. 또한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다스려짐의 소리[治世之音]와 혼란스런 소리[亂世之音]는 분명히 다르고 나라가 망할 때는 더욱 슬픈 소리[亡國之音]가득하다 하였다. 통치 기준을 소리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음관 심 소희의 논문 및 예기의 악기(樂記)편 참조
에 기반을 둔 왕도정치 사상에서 유래한다. 즉 군주는 훈민을 통하여 교화 정책을 펴고 자기의 권력까지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인보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왕도정치의 으뜸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하여 어린백성이 제 뜻을 시려 펴게 된다면 자연스레 민권신장으로 이어지고 신장된 민권이 신권을 견제한다면 왕권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결과적으로 왕권-신권-민권의 3권 정립(鼎立)구도가 형성되며 이로서 항구적으로 왕권의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함의를 지닌다. 태종은 무력으로 신권을 억압하는 패권정치를 통하여 왕권을 공고히 하였지만 일시적 효과에 그쳤다면, 세종은 왕도정치로 구현하여 항구적인 안정을 괴했던 것이다. 따라서 한글 창제의 동기를 ‘피지배 계층의 권익옹호’니 ‘자주적 실용주의 2006년 한글날 대통령 경축사
‘ 또는 ‘민본주의적 애민사상’ 등으로 수식하지만 모두 일정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다시 말하면 정음창제 동기는 3권 정립에 의한 왕도 정치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고도의 통치술의 일환인 셈이다.
3권 정립구도는 3권 분립과는 동기나 구현방법에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서구에서는 시민혁명에 의왕권과 신권을 제압하여 민권 신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끊임없는 충돌이 야기되었다. 하지만 3권 정립 왕도정치는 신권세력이나 민중보다는 왕권 쪽에서 주도하기 때문에 소리 없는 혁신이 가능하지만 기득권을 침해당한 신권세력의 반발을 불러오게 된다. 정음반포 즉시 최만리를 중심한 신권세력들은 이점을 간파하고 신속하게 저항한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그들이 지적한 6개 항목 세종실록 권 103권 세종26년(1444) 2월20일(음).
은 논리적 모순으로 가득 차 있으며 혹자는 사대주의에 입각한 옹졸한 시각이라 하기도하지만, 그 보다는 자신들의 권익옹호 이외 달리 그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창제는 성공했지만 수성에는 실패하였다. 정음창제의 주역 중 한사람(수양대군)이 배신자 역할을 맡는 바람에 이도의 목표는 출발부터 삐거덕거렸다. 세조는 도덕적 결함을 덮기 위하여 다른 신권 세력들과 야합함으로서 정음세력을 탄압하면서 3권 정립형 왕도 정치구도를 스스로 허물고 말았다. 그 결과 정음은 명맥조차 유지하기 힘들었으며 신권세력이 다시 발호하면서 왕권조차도 위협을 받게 되고 왕조는 탄력을 잃어버린 체 왕조자체가 멸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창제 후 500년이 지난 후 기독교가 전래되어 왔으며 복음을 정음으로 번역하여 전달하게 되자 곧바로 민중들에게 파고들었다. 단순한 내용 전달 수준을 넘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함께 전달할 수 있는 토대기반(인프라)으로 작용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정음의 보편화가 이루어졌다. 다시 말하면 복음과 정음은 상호상승 작용을 통해서 발전해 나갔으며 민중들은 “제 뜻을 스스로 시려 펴는” 쪽으로 자각해 갔으며 신권 세력에 대해서는 ‘니르고자 할 바 있으면’ 지체 없이 고발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이로서 이도 큰 스승이 추구했던 ‘여엿삐 여기(민연)는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탄력을 얻은 민중들은 자강운동이나 갑오 농민 운동으로 번지고 광복 이후에는 박정희 근대화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현재의 민주화나 정보화의 달성에도 그 근저를 이룬 것이라 할만하다. 이 두 사상은 비록 왕조시대의 통치 철학이지만 시대를 초월한 가치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정보화를 동시에 달성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치세보다는 난세의 소리가 보다 거세며, 북녘에서는 망국의 소리가 들리는 형국이어서 절반의 성공에 불과한 형편이다. 그렇지만 정음과 민연 사상은 지역 격차나 세대 간의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며 세방화 수준에서 문맹과 컴맹을 동시 퇴치하는 방안은 정음 이외의 마땅한 방편이 없다.
용어의 정의
용어
정의
근거문헌
한자 표현
삼권 정립과
삼권 분립
왕권, 신권(귀족=상원), 민권(평민-하원)의 3권 분립이 아닌 혐동적 3각 지지(支持) 구도
3權鼎立
3權分立
민연 사상
정음 사상
어여삐 여겨 아낌없이 퍼주는 생각
예악형정(禮樂刑政)의 기본 틀로서 왕도정치의 최종 목표가 정음임
훈민정음 서문
憫然思想
正音思想
치세지음
난세지음
망국지음
어지러운 세상은 소리가 거칠고, 다스려지는 세상은 소리가 고르며 망해가는 나라는 소리가 애처럽다는 정음 사상의 구현 상태
예기의 악기(樂記)
治世之音
亂世之音
亡國之音
지식의 대중화
정보의 보편화
인쇄에 의한 문자생활이나 기구를 사용하는 정보생활이 일상화 되는 수준
知識大衆化
情報普遍化
복음과 정음
종교적 지적 내용물과
문자적 인프라의 결합 상태
福音正音
컴맹과 문맹
문자를 구사하지 못하면 컴퓨터도 쓸 수 없는 이중적 무지 상태를 지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