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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약을 마시는 여인
전 영 택
1
오늘 밤은 다섯째 밤이다.
견우성과 직녀성이 하늘 한가운데서 서로 바라보고 히들히들 웃었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엉엉 울었다가 다시 히들히들 웃었다가 한다. 또 쿨쩍쿨쩍 운다.
사랑 속에 빠진 사람들을 제일 좋아한다지만 그에게는 원수같이 싫은 밤이 점점 깊어갈 따름이다. 밤은 코웃음만 하면서 열한 살 먹은 장난꾼 새서방의 새가 깃들일 만한 상투 같은 그의 머리를 웅크리고 앉아서 노려본다. 입을 삐쭉하기도 하고 눈을 부릅뜨기도 하고 주먹을 가지고 쥐어박을 듯이 연해 주먹질을 한다.
그는 모른 체하고 앉아서 들여다보고 있다.˙
옆방에는 송장이 하나 가득 찼는데 온통 열어놓은 방문으로 썩어진 냄새가 흔들흔들하면서 바깥으로 기어 나온다. 지옥같이 캄캄한 방에서는 어느 모퉁이에선지 이따금 잉잉 앓는 소리 같은 소리가 난다.
미친개 짖는 소리가 한 십 리 밖에서 들리는 것 같다. 바삭 소리 하나 없는 밤은 흘러가다가 딱 멎고 발을 버티고 섰다.
세상 모든 것이 잠들었다. 낮에 생각하고 하던 일을 되풀이해서 복습해보느라고 사람들은 제가끔 더럽고 음탕한 꿈을 꾸고 있다. 구멍이 숭굴숭굴 뚫어진 모기장 가운데 그의 옆에는 머리가 사자대가리 같고 코가 우뚝 높은 사나이가 가로누웠는데 헤쩍 벌린 입을 히물히물한다. 벌신 웃는다.
큰방에서는 송장이 두어 개 일어나면서 두어 마디 중얼중얼 말을 한다. 다시 아무 소리 없다.
그것이 모두 거짓말이다.
그것들이 모두 악마들이다.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태양은 잠자코 제 갈 길만 간다.
절벽같이 캄캄한 하늘이 이런 소리를 속삭인다.
2
어두운 밤은 점점 깊어간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왔다 갔다 한다. 엉거주춤하고 엎드린다. 일어났다. 온 목숨 온 영혼을 모아 들여다본다. 깜박깜박하던 것이 흐릿하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가만있다. 땅에서 갑자기 무서운 소리가 난다. 공중에 맑은 물이 괸다. 땅에서 나는 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공중에 괴는 물은 차차 많아져서 흘러내린다. 땅에서 자주자주 나던 장송곡(葬送曲) 같은 엷은 소리가 아주 끊어졌다. 그는 앞으로 한자리에서 달려갔다. 공중에서 자주자주 소리 난다. 시커먼 것이 보인다. 얼음장 같은 것이 보인다. 다섯 치쯤 그는 옆으로 뛰어갔다. 그의 옆에 가로누웠던 사나이가 눈을 뜨고 일어나고 한자리 뛰어가기를 한순간에 하였다. 눈 세 쌍은 움직이지 아니한다. 눈 한 쌍은 움직였다. 모난 것과 등근 것이 가까워졌다. 불이 필필 붙는다. 불길이 사방으로 가을 국화꽃같이 퍼져서 흩어진다. 아름다운 불꽃이 가늘고 붉은 줄을 수없이 발한다. 기차가 떠나려고 한다. 코가 바룩바룩한다. 흰 바람이 가늘게 분다. 기차는 어느새 떠나가버렸다. 둥그런 악마는 꽃 같은 불길을 한꺼번에 들이마셨다.
시집갔던 그의 딸이 도로 왔다. 그가, 그의 어머니가 도로 찾아왔다. 가는 것을 그의 영혼이 따라가서 중간에서 도로 잡아왔다.
“너는 내가 낳은 것이니 암만해도 늘 내 품에 있어야 되겠다. 나와 같이 살아야 된다.”
“저는 낳기는 어머니가 낳으셨어도 나기는 다른 분 위하여 났으니 언제든지 그분의 품으로 가야겠습니다. 갈 때는 가야겠습니다. 어머니 절 놓아주십시오.”
어쨌든 어머니는 딸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였다. 이런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아니하였다. 놓아달라는 딸을 붙들고 있다.
닭이 세 번 울었다.
암탉이 울었다. 수탉이 지치¹를 요란스럽게 푸닥거린다.
한참 있다가 수탉이 까악까악 죽어가는 소리를 길게 뽑았다. 암탉이 새끼를 버리고 도망쳤다. 늙은 개가 한번 짖었다.
사나이는 꿈꾼다. 알지 못하는 딴 곳에 가서 알지 못하는 사람과 알지 못할 이야기를 밤새도록 하였다.
그는 깨어서 딸이 다시는 시집가지 아니하기를 울면서 기도하였다.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느님은 머리를 흔드셨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머리를 숙여 기도만 하였다.
외양간에서 말발굽 소리가 뚜거덕뚜거덕 요란하게 났다. 늙은 개가 바라보고 웃었다. 쥐가 웃었다. 사람들은 모른 체하였다.
그는 혼자서 곡조도 없고 말도 없는 노래를 부른다. 사나이는 꿈속에서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말이 혼자서 크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의 사랑하는 딸은 잠들었다. 개와 쥐와 말은 다 깨었다. 다 한 곳에 모여서 비밀회를 열고 연설을 한다. 강아지가 성을 내서 강연한 쥐를 막 욕한다. 개는 꼬리를 흔들면서 돌아앉았다. 슬그머니 일어나서 기지개를 한번 켜고 어청어청 나간다. 마당에 있던 조약돌들이 춤을 추면서 정거장으로 누군지 환영 나갔다. 문밖의 섬돌은 집에서 우쭐우쭐 춤을 추고 있다.
그는 잠자는 딸의 얼굴을 눈으로 지키고 있다가 몹시 보들보들 하고 조그맣고 가는 손에 일곱 번 연해서 미친 여인같이 웃으면서 키스하였다.
어두움이 휘파람을 불면서 뒷짐을 지고 비웃는 듯한 얼굴로 대문 밖으로 지나갔다. 송장 빛 같은 등불이 졸리듯이 껌벅껌벅한다.
이때에 그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잠들어 있는 딸의 코에서 조그맣고 하얀 생쥐가 한 놈 나와서 방바닥으로 바르르 기어가다가 방 한가운데 있는 물그릇을 넘어 사지 못해서 올라갔다가는 떨어지고 올라갔다가는 떨어져서 입을 짝짝 벌리고 빨간 배를 드러내놓고 가는 발을 하늘을 향하고 파듣파들 떨고 있다. 그는 그것을 우두커니 들여다보고 있다가 자막대기를 물그릇 위에다 가로놓아주었다. 흰 쥐는 자막대기를 다리 삼아 물그릇을 넘어서 바르르 기어가더니 눈 깜박하는 새에 없어졌다. 어느새 열어놓았던 방문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흰 쥐가 돌아오기를 한참이나 기다렸다. 없어진 흰 쥐는 아무리 기다려야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잠든 딸을 내버리고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문밖으로 뛰어나가다가 기둥에 이마를 부딪쳤다. 불이 번쩍 나면서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나서 섬돌을 내려섰다.
거기서 잠자던 개가 그의 빨갛게 벗은 발을 깨물었다. 그는 피를 뚝뚝 흘리면서 흰 쥐를 찾느라고 이 모퉁이 저 모퉁이 왔다 갔다 하였다. 아무리 찾아도 흰 쥐는 없다. 지붕 위에 조그마한 것이 해뜩한 것이 보인다. 그는 사다리도 없는 것을 죽을 애를 다 써서 올라가보았다. 그것은 참새 똥이었다. 겨우 내려왔다.
옆방에 송장이 그득한 방에 희뜩한 것이 보였다. 그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들어가서 이 구석 저 구석 찾아보았다. 흰 쥐는 거기 있었다. 송장 새에서 왔다 갔다 하던 어여쁘고 흰 쥐는 그를 보고 얼른 기어올랐다. 그는 반가워서 치맛자락을 벌려서 받았다. 곱게 싸서 쳐들어가지고 돌아왔다. 돌아와서 펴보았다.
아! 슬프다. 흰 쥐는 어느새 없어졌다. 그의 치맛자락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의 발에서 그냥 피가 방울방울 떨어진다. 그는 주저 앉았다.
참 귀신이 곡할 일이다. 남들 같으면 무당한테라도 물어보겠지만 어디로 갔나 참말 모를 일이라 생각하다가 문을 열고 다시 뛰어나갔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파란 별이 한 개 한참 있다가 한 번씩 반짝반짝한다.
‘이 일을 어찌하오리까.
오, 이년을 살려주소서.
이 목숨과 바꾸어주소서.’
그는 땅에 꿇어앉아서 두 손을 합하여 싹싹 빌면서 재배 삼배하였다.
‘너는 너 갈 길을 가거라.
꽃이 한번 떨어진 다음에는 마를 뿐이니라.
태양은 저 갈 길을 가나니라.’
3
원수의 어두움도 가고 차차 훤해졌다. 사나이는 웅크리고 앉아서 세모난 눈으로 딸을 들여다본다. 손을 한번 쥐어본다. 몸을 한 번 만져본다. 그는 사나이의 얼굴을 말없이 한번 쳐다보고 딸의 옆에 바싹 가까이 갔다. 딸의 눈만 바라본다. 딸은 입으로 코로 자줏빛 불을 토한다. 바늘 같은 소리는 그의 가슴을 찔렀다. 그는 뛰어 일어났다. 이번은 빛도 없는 불덩이를 소리도 없이 수없이 토한다. 그는 달려들어서 딸을 껴안고 딸의 입에서 나오는 빛 없는 불덩이를 숨도 안 쉬고 들들 마셔 받아먹었다.
딸의 입에서 나오는 불덩어리는 붉은 피였다. 그것은 독약이었다. 그는 더 이어 마셨다. 그의 몸은 얼음 덩어리가 되었다.
환한 빛이 난다.
사나이 얼굴이 노래졌다.
하늘과 땅이 노래졌다.
공중의 소리 있어 가로되,
“너는 너 갈 길을 가거라.
태양은 저 갈 길을 갈 따름이니라.”
4
사나이는 일어나서 여섯 모 난 솥뚜껑 같은 두 손으로 얼음덩이 같은, 돌부처 같은, 대리석 조각 같은, 악마 같은, 여신 같은 그의 등허리를 듬썩 쳐들어서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내놓으려고 하였다.
그는 몸을 흔들면서 주저앉았다. 딸에게로 달려들었다. 사나이는 다시 그의 손목을 이끌어내었다. 바깥으로 나가라고 억지로 몸을 내밀었다. 그는 다만 딸의 있음을 알고 그 밖의 그 사회나 온 세상의 만 가지 일, 만 가지 물건의 있음을 인정치 아니하는 듯이 사나이를 돌아보지 아니 하고 팔을 뿌리치고 또 딸에게로 달아났다.
사나이는 뛰어나왔다.
그는 자기 가슴에서 피를 뽑아내어서 숟가락에 받아서 딸의 입에 떠 넣었다. 그는 마지막 의무를 다하였다. 그의 영혼은 그에게서 나와서 그의 딸의 붉은 몸을, 간다는 잊사로 굽히는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의 몸은 밖으로 나왔다. 하늘 한가운데 가로질러서
한숨짓는 차디찬 새벽달을 바라보는 허수아비가 하나 서 있었다.
5
그의 방에서 갑자기 듣지 못하던 슬픈 소리가 들렸다. 그는 넘실넘실 넘치는 독약을 쭉ㅡ 들이켰다. 그는 송장 있는 방으로 뛰어들어가서, 송장 가운데 섞 여서 뉘어졌다.
그는 송장이 되어서 송장 가운데서 중얼거렸다. 송장 가운데 하나가 대답하였다.
“그것이 네 딸이면야 설마 그렇게 가려고 할까. 너는 마침내 독약을 마셨다. 그것은 네 것이 아니니라, 아무리 네가 독약을 먹기로 그는 제 집으로 갈 따름이니라.”
그의 방은 비었다. 길쭉한 나무 곽이 천천히 나왔다. 마루에 앉았다. 오래간만에 졸린 찬송 소리가 들렸다. 막대기가 우뚝 일어섰다. 옆방에서 키 큰 넓적한 송장이 하나 나와서 곽을 업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먹을 것밖에는 모르는 누런 목에 털이 구실구실한 늙은 개가 종이돈을 물고 따라간다.
넓적한 막대기가 따라갔다. 나갔던 송장은 밤에 다시 돌아왔다. 늙은 개도 혀를 빼면서 헐떡거리면서 돌아왔다. 그러나 송장에게 업혀갔던 나무 곽과 따라갔던 막대기는 다시 아니 왔다.
어두운 밤이 되었다.
텅 빈 방에서는 파리, 박쥐, 설레발이, 빈대, 벼룩, 지네, 진드기, 이런 것들만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면서 방바닥의 향수와 독약 쏟아진 이상한 냄새를 맡고 있다. 나중에는 이 냄새를 맡고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쥐와 고양이 독사 들이 들어와서 냄새를 맡는다. 빈방은 그것들의 자유 천지가 되었다.
뒷담에 걸렸던 시계가 뗑― 하고 한 번을 쳤다. 늙은 개가 문 밖에서 짖는다. 그것은 이 말이다.
“때가 되 었다.
거룩한 곳을 지킬 주인이 올 때가 되었다.”
검은 개가 벌레들을 앞세우고 수탉과 비둘기가 어깨를 나란히 천천히 들어왔다. 파리, 설레발이, 박쥐, 빈대, 벼룩, 지네, 진드기들은 어느새 돗자리 틈 도배 찢어진 종이 밑에서 더러는 꾸물꾸물하고 있고 대개는 잠들어서 꼼짝 아니하고 있고, 쥐, 고양이, 뱀은 서로 잡아먹으려고 이를 갈고 싸움만 하다가 어느새 잠들었다. 더러는 반만큼 깨어서 서로 눈을 흘기고 있다. 더러는 대가리를 휘저으면서 향수와 독약 냄새를 맡으면서 왔다 갔다 한다.
검은 개가 컹 컹 컹 컹 짖었다.
수탉은 꼬꼬― 하면서 지치를 치면서 요란스럽게 울어댔다.
흰 비둘기는 아무 말 없이 마당에서 빙빙 돌아다닌다.
늙은 개가 문밖에서 또 크게 짖었다. 갖가지 벌레들과 쥐와 고양이, 뱀 들은 임시 대회를 열었다. 사람과 호랑이 새에서 나온 짐승의 후손이라는 고양이가 회장이 되었다. 새로 온 개와 수탉과 비둘기를 맞이하여 환영 좌담회를 열기로 하였다. 좌담회의 주제는 ‘저 여인이 어찌해서 독약을 마셨을까’ 하는 것이었다. 불쌍한 여인이 독약을 마시게 된 이유를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고양이가 일어나서 말하기를,
“우리 집 주인아씨가 독약을 마시고 쓰러지는 것을 보니 참 비참하기 짝이 없는데, 우리는 어찌 된 셈을 알 수가 없구려. 당신네는 혹 아는지 이야기해보소.”
늙은 개가 일어났다.
“내가 말해 볼까요.”
“이 야기 해보소.”
고양이의 말을 따라 개가 말하기를,
“저 여인은 독약을 마실 까닭이 없지만 제 집을 지키다가 갑자기 먹게 된 독약이니 어쩌겠소. 마시는 것이 자기 운명이겠지.”
“그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소.”
회원들은 떠들었다.
“수탉이 말할 차례요.”
누가 소리 쳤다.
“그럼 제가 말하지요.”
하고 수탉이 지치를 한번 치고 나서,
“그 여인은 때가 되었다고 소리칠 때가 되어서 여러 동무들하고 목소리를 합해서 꼬끼오 꼬끼오 소리치고 야단하다가 고양이가 듣기 싫다고 야단하는 통에 종내 고양이한테 물려서 꼼짝 못하고 있다가 겨우 살아나서 제 집에 돌아왔지요. 독약이 든 이상한 선물을 받아가지고 나와서 그 선물을 품고 있다가 저밖에 마실 사람이 없으니 마셔버린 거지 뭐요?”
“그다음엔 비둘기 차례요.”
“그럼 제가 이야기 할까요.”
비둘기가 가만가만 나서서 말하기를,
“그런 것이 아니라오. 저 여인은 본시 우리 비둘기처럼 양순한 양반인데 수탉의 말대로 동무들 따라 때가 됐다고 요란스럽게 소리치다가 인간 고양이가 저의 말로 종알종알하면서 물어다가 굴속에 가두어두는 바람에 본시 하나님에게 선물로 받은 새끼 비둘기같이 예쁜 것을 품고 있었는데, 땅굴 속에서 아무것도 먹이질 못해서 다 죽어가던 것이 간신히 세상에 나오니 갑자기 제 피를 먹여보아도 살릴 수가 없고 그 선물이 변해서 독약이 되었다오. 그 독약은 자기가 마실 것인 줄 알고 마신 것이라 그 사나이도 여인이 마시는 걸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오.”
“그러면 그 고양이를 모두 잡아 없애지 않고 고놈들을 그냥 두었소?”
수탉이 장한 듯이 말한다.
이때에 꼬리 길고 귀가 오뚝한 쥐란 놈이 홀랑 나서서,
“옳소, 옳소!”
소리쳤다. 회장이 말이 없이 어리둥절해하자,
“그네들은 우리같이 순하기만 하고 재간이나 날랜 힘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거든.”
비둘기가 다시 말했다.
노란 눈을 굴리고 수염이 빳빳해가지고 듣고 있다가 그 어느 틈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윽고 때가 되어 수탉이 지치를 치면서 꼬끼오 꼬끼오 하고 기운차게 울어댔다. 모든 미물인 동물들은 다 저 갈 곳으로 갔다.
6
그는 어느새 일어나 앉았다.
그는 돌아앉아서 그의 가슴에서 거룩한 피를 양철통에 뽑아낸다. 눈에서 마알간 피가 뚝뚝 떨어진다. 그는 그의 가슴에서 뽑은 피를 그 사나이에게 내어주었다. 사나이는 양철통을 두 손으로 받아서 받들고 눈 감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단숨에 쭉 들이켰다.
그는 그 사나이와 같이 새벽에 길을 떠나서 북으로 하루 종일 갔다. 나무 많고 들 많고 물 밝은 높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하늘에 닿을 듯한 나무 기둥이 우뚝우뜩 서 있고, 그 틈에 밑들일 만한 넓적넓적한 바위가 첩첩이 쌓여 있다. 대륙의 ‘무리 뫼’가 발밑에 꺼지고 산 밑에 흘러가는 개울물이 실오라기 같다.
해가 저물어 어슬어슬했다.
검은 당나귀가 흰 김을 토하면서 달아난다. 벌판에 홑이불이 기어간다. 개미가 기어간다. 개미가 노래를 부른다. 장사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우쭐우쭐 희뜩희뜩 산 밑으로 간다.
그들은 눈을 들어 먼 데를 바라본다.
문득 자\줏빛이다. 금빛이 번득번득한다. 우뚝 높다. 희다. 꿈같다. 취한 것 같다.
사나이가 혼자서 슬그머니 나갔다. 곧 돌아왔다. 갑자기 넘어졌다.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 하고 눈을 감고 가만히 있다. 그는 사나이가 죽을까 겁이 났다.
어두운 밤을 또 지나갔다. 사나이는 간신히 또 일어났다.
그들은 삼 일 만에 곧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이튿날 새벽에 그들은 북문을 나섰다. 이십 리를 걸어갔다.
나지막한 산으로 올라갔다. 콩알은 누웠고 돌은 일어섰다. 얼마 찾다가 넓적한 몽둥이를 찾았다. 그들은 꼭 같이 우뚝 섰다.
‘옥성(3·1기념)의 무덤’ 이라는 먹 글자는 부는 바람 퍼붓는 비에 알 수 없이 흐려졌다.
그는 곧 머리를 돌렸다.
피려던 도라지꽃 봉오리가 떨어졌다. 불같은 태양이 고함을 치면서 슬금슬금 올라온다.
외폭이 소나무에서 금 같은 이슬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까치가 운다. 먼 데서 개가 짖는다. 늙은 사람이 느린 노래를 부른다. 중얼중얼 말한다.
사람은 모두 잠잔다. 영원히 잠잤다. 그들은 아직 깨지 못했다.
맹물이 떨어진다. 벌게졌다.
공중에 소리 있어 가로되,
“해는 저 갈 길을 가나니라.:
만물은 마침내 될 대로 되느니라.
사람은 흙이니라.
사람은 물이니라.
인생은 꿈이니라. 공이니라.
모든 참말은 다 거짓말이니라. :
인생은 잔칫날이니라.”
※ 『전영 택창작선집뀝 (어문각, 1”5)에는 다음과 같은 부기 (附記)가 붙어 있다. ˛f이야
기는 아내가 기미년 3·1운동에 참가하여 만세 부르고 잡혀서 감옥살이를 하는 동
안에 임신했던 아기가 영양 불량으로 난 지 석 달 만에 죽은 것을 기넘하기 위해서
쓴 것 이다. 아기 이름을 감옥에서 된 별이라고 해서 옥성 (玉星)이라고 했었다.¨
독약을 마시는 여인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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