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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늘 새땅 너는 나의 황금나비
2023년 03월19일 일요일.
제899회. 사드배치 결사반대 김천시민 촛불집회.
** 두부 협찬 감사합니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봄기운에 사람들 표정에도 웃음꽃이 가득하다.
달빛아래 촛불이 하나둘 꽃 피어나고 있다.
** 사회자는 장재호 사무국장.
" 사드는 침략이다 / 불법사드 철거하라 "
**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산화하신 분들을 기리는 묵념.
** 민중애국가.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 콧수염이 멋진 남자. 공동부위원장 김태진님
" 요즘 TV를 보고 있으면, 울화통 터지는 일들이 많아서 내가 우울증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일본이 실질적으로 우리나라한테 지난번 강제징용 문제 때문에 대법원 판례에 판결에 항의하는 뜻으로.. 그들이 반도체 중요 소재인 불화수소를 포함한 세 가지를 수출 금지 품목으로 정하고 ..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키는 처분을 내렸는데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했다는 그 말 자체를 저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일본의 주적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고 하는 사람은.. 일본이 우리에 가장 가까운 이웃이고 협력의 동반자라고 얘기합니다.
나는 대통령과 전혀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그게 옳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가 일본에 침략을 당하고 그렇게 한일 합병의 굴욕을 당했다는 그것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그렇게 세계화에 뒤떨어지고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당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얘기는 요즘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폭 사건 때문에 문제가 많은데.. 학폭 당한 그 학생은 걔가 모자랐기 때문에 그렇게 학폭을 당했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와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이 배운 사람들이 너희들을 마음대로 관리하는 것은 어찌 보면 그게 공정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까 그게 나오더라고요 갑자기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 논의안이 나오더라고요..
제 나름대로 생각은 그렇더라고요 굴욕 외교니 외교 참사니 이런 말들이 국민적인 저항들이 많이 생기고 있으니까 언론에서 정치인들한테는 실질적으로 선거구제 개편이 가장 민감한 사안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국민들의 저항이 있는 외교 참사에 대해서 그것을 덮을 수 있고.. 외교 정치권에서 더 이상 이슈화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은..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서 그것을 언론을 통해서 돌리고 그것으로 외교 참사를 묻어버리려고 하는 그런 의도가 아닌가 .. 그런 생각이 들면서 우리가 선거구제 개편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시급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 외교 참사에 대해서 우리가 한 치라도 한눈을 파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말도 안 되는 그런 저 집에 애완동물 취급을 받는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항상 눈을 똑바로 뜨면서.. 똑바로 보고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동복 감사님의 발언
" 법과 원칙이라는 말이 요즘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만, 이 나라의 법과 원칙이란 것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퇴직금 50억 받아도, 50억 클럽에는 법과 원칙에 위배되지 않고, 주가조작을 해도 법과 원칙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화물연대, 민주노총 노동자들에게는 그 법과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됩니다. 저도 말 실수했다가는 바로 그 법과 원칙에 적용될 것 같으니까.. 정치이야기는 그만하고 경제용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여러분 콩코드 효과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콩코드라는 비행기는 아시죠?? 유럽에서 미국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12시간인데.. 이걸 4시간으로 단축시켰다고 합니다. 당연히 비싸도 사람들 인기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국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초기에 개발을 시작했을 때, 많은 문제가 있었죠.. 아예 처음부터 포기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동체 문제를 고치고 났더니 날개쪽에도 문제가 생기고, 그거 해결하고 나니까 엔진쪽에도 문제가 생겼더랍니다.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만거죠..
지금 이 정부가 하는 모양새가 딱 그 꼬라지입니다. 용산에 계약기간이 5년짜리이지만, 굳이 5년 다 채울 필요는 없는거 아닙니까?? 3개월만에 이렇게 나라를 망쳐놓았으면, 아예 중간에라도 포기할 줄 아는 결단력도 필요한거 아니겠습니까?? 굳이 5년 다 채울 필요가 뭐있겠어요?? 안 그래요???
저는 진심으로 윤석열 정부가 잘 되길 바랍니다.. 경제정책을 보면 대통령 되자마자 부자 감세부터 합니다. 서민들 죽을 지경인데.. 법인세 깎아주고 부자 감세합니다.
이런거 말고.. 코로나로 서민들 어떻게 사는지, 기름값 올랐는데 서민들 어떻게 사는지.. 금리가 올랐는데 서민들 어떻게 사는지 쳐다보면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정책은.. 노동자들이 고생한 만큼 정당한 댓가를 받을 수 있고,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도록 법과 원칙을 적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외교정책은.. 사드추가 배치같은 개소리 하지말고.. 주권국으로서 당당하게.. 주한미군 필요없으니.. 우리땅은 우리가 지킬테니까.. 사드갖고 한반도에서 나가라는 소릴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저의 진심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제대로 성공한 정부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박석민 위원장님 발언
" 1990년 한소수교, 91년 유엔 동시가입, 남북합의서 채택, 한반도비핵화 선언 등 1990년 초반 한반도 정세는 숨가쁘게 진행되었는데,
지난번에는 한반도비핵화 선언이 진행된 과정을 말씀드렸고요. 오늘은 비핵화선언 내용과 선언 채택 불과 1년여 만에 북이 NPT 탈퇴와 이어진 한반도 전쟁위기까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이번에 강제징용 문제 셀프 해결안을 들고 일본에 다녀오신 윤석열은 게이다렌 간담회 등 모든 자리에서 “미래”만 말하고 과거 단어는 꺼내지도 않았다는데, 굳이 과거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은 하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습니다..
1994년 전쟁으로 치닫던 시기 바로 오늘 8차 남북 대표단 회의에서 그 유명했던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온 날이고, 영상을 보면서 그때 기억을 되살려 보겠습니다.
https://youtu.be/cfKolDi1PnI
[오늘 다시보기] 북한 NPT 탈퇴 선언(2003) (2019.01.10/뉴스투데이/MBC)
1993년 국제적인 핵사찰 압력을 받던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 NPT 체제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www.youtube.com
남과 북이 채택한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내용은 국제비확산체제가 요구하는 수준을 뛰어넘었습니다.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1항)에 더해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3항)고 선언한 것인데,
핵재처리·우라늄농축시설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목적 이용”(2항)에도 필요한 것이라, ‘핵무기의 비확산에 관한 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조처협정’도 금지하지 않은 시설임에도 당시 남북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중대 난관을 초래할 재처리·농축 시설 포기를 공개 선언한 게 ‘비핵 평화’라는 숭고한 가치 때문이라기보다 ‘미국의 압력’이 가장 큰 요인으로 이를 거부하지 못한 노태우 정부나 북미관계 정상화를 어떻게든 만들려는 북의 양보가 만들어낸 결과이고 전략적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태우는 회고록 하권에 “우리가 재처리시설을 갖겠다고 하면 한-미 동맹 관계가 깨지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고 밝혀 재처리·농축 시설 포기가 미국의 압력 때문임을 고백했습니다. 1991년 7월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한테 밝힌 ‘한국 단독 비핵화 선언 구상’엔 재처리·농축 시설 포기가 없었습니다.
이미 1991년 5월 방한한 울포위츠 국방차관이 ‘남북이 핵재처리시설을 포기하는 방안을 남북대화에서 협의해달라’고 하는 등 미국의 압박은 집요했고, 이는 미국의 한반도 비확산 정책의 표적은 ‘북핵’을 넘어 ‘남북한 모두의 핵능력 제거’였음을 의미합니다.
이에 한겨레 이제훈 기자는 ‘북핵 문제’란 비대칭 탈냉전기 북한의 위험천만한 생존전략 탓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소련이 사라진 동북아에서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며 ‘잠재적 지역 패권국’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필요한 ‘북한 악마화’와 더불어 남북관계를 제어할 목적으로 동북아 국제정치에 깊이 심어놓은 ‘트로이 목마’라고 썼습니다.
이렇게 미국은 ‘핵’을 빌미로 남북관계에 깊이 개입했는데, “상호 상대방이 선정하는 자기측 지역의 군사 및 민간 시설에 대한 동시사찰 실시”를 5차 고위급회담 남쪽 수석대표 기조연설문에 담게 하더니,
부시는 1992년 1월6일 청와대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 포기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보일 때까지 한국은 북한과 협상을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노 대통령한테 “조용히 경고”했다고 당시 외무장관 이상옥은 <전환기의 한국외교>에서 증언했습니다.
1992년 2월23일 더글러스 팔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서울에서 김종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압박해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돼야만 본격적인 남북 간의 경제협력을 추진한다’는 약속을 받아내 노태우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핵문제 해결 병행 추진 기조’를 꺾고 ‘핵 포기 먼저 전략’을 관철한 것입니다.
이러한 미국 전략은 부시 행정부가 1990년 4월 발표한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 Ⅰ)으로도 확인할수 있는데,
“동북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이익 8개항”엔 “역내 헤게모니 국가의 출현을 막을 힘의 균형 유지” “미국의 정치경제적 접근성 유지” “핵확산 억지” 등이 목표로 적시돼 있는데,
이후 순서대로 △중국 견제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 거부·차단 △‘1차 북핵위기’로 현실화되었습니다.
소련의 경수로 건설 약속과 권고에 따라 북한은 1985년 12월, NPT에 가입했는데,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북한에 특별 사찰을 받을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사찰은 1992년부터 6차례 이루어졌으나, 보고서에 적힌 플루토늄의 양과 실제 플루토늄의 양이 다른 것이 드러나고, 두 곳의 미신고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이 시설들이 군사시설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거부하면서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했는데,
한미당국의 북한을 겨냥한 한미연합 공격훈련이라고 맹렬히 비난하던 팀스피리트 훈련을 1992년에는 북한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이를 중단했다가 북한이 특별사찰을 완강히 거부하자 1993년 팀 훈련을 재개하자 북한이 이에 반발하는 과정에서 NPT 탈퇴를 선언한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의 와중에 미국과 북한은 뉴욕에서 고위급 회담을 갖기로 합의,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lucci)와 강석주가 대표로 참여한 93년 6월초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양국은 논란 끝에 공동선언문(Joint Statement)을 발표하며 핵문제 협력에 대한 일정한 합의로 북한은 NPT 탈퇴선언을 번복했고,
이후 북한은 1994년 10월의〈제네바 합의(Agreed Framework)〉를 통해 핵 프로그램을 동결시키기로 미국과 합의했지만 제네바 합의에 따른 경수로 건설 등이 진척되지 않는 등 이행이 되지 않는 등 갈등이 지속되다가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의심이 증폭되면서 제네바 합의는 깨졌고,
북한은 2003년 1월 또 다시 NPT 탈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이러한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 국제사회 갈등은 한반도 전쟁위기 상황으로 연결됩니다.
1995년에 개같은 날의 오후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는데, 혹시 보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을 동네 아주머니들이 집단으로 응징하다가 덜커덕 때려죽이게 되는 설정인데, 또 하나의 배경은 뜨거운 94년 여름이기도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94년 여름은 정말 더웠는데, 대구가 40.2도까지 올라 기록을 경신하는 등 전국이 36도 이상의 높은 온도로 펄펄 끓었던 해입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 되기전인 6월 17일 서울이 34.7도였으니..
1994년은 이미 봄부터 심상치 않은 열기(?)가 한반도를 감쌌는데,
북한은 1993년 3월 엔피티(NPT), 즉 핵확산 금지 조약을 탈퇴하면서 핵 개발을 공식화했고 미국은 당연히 이를 막으려고 기를 쓰고 있던 중 1994년 3월19일 남북 특사 교환을 위한 실무 대표들이 만난 자리에서 대형 악재가 터집니다.
영상에서 본 것처럼 북측 박영수 단장의 ‘불바다 발언’이 그것인데,
“여기서 서울은 멀지 않습니다.” 순간 한동안 침묵이 흐른뒤 “전쟁이 일어나면….”
이후 결정적인 한마디... “불바다가 되고 말 거요. 송 선생 당신도 살아남기 어려울 게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지금 전쟁 선언하는 거예요? 우리는 가만히 있을 것 같아요?”
이 불바다 발언은 엄청난 파문을 불러왔지요. 서울이 불바다라면 평양은 피바다가 될 거라는 섬뜩한 경고도 날아갔고, 라면 등 비상식량 사재기 현상도 극심하게 진행됐는데요.
이후 고 리영희 교수가 “전쟁을 부추기는 자들이 있다!”는 제목의 한겨레 1면 칼럼에서 우리의 소위 ‘언론’들은 북한 대표의 발언을 회담의 전체의 맥락에서 도려내어 거두절미한 채 그것만을 연일 대서특필하면서 국민에게 전쟁 위기감을 부채질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언론(인)의 최저한의 초보적 직업 윤리조차 거부하는 작태라 아니할 수 없다.”고 썼습니다.
즉, 실제 남북대표의 실제 대화는 회담 도중 북측이 “미국이 경제제재를 한다고 하는데 미국이 경제제재를 한다면 귀측(남한)도 거기에 가담할 것인가?”라고 묻자 남한 대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북측은 “한국이 유엔의 대북한 제재에 동참하겠다는 것은 전쟁 선언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치고 나왔고 남측은 요지부동으로 달리 표현하면 “당신들 전쟁하자는 거야?”라고 따지는 상대 앞에서 “그렇다면 어쩔 건데?” 하며 팔짱을 낀 형국에서 불바다 발언이 나온것입니다.
북측 대표는 “그쪽에서 전쟁 선언했다고 지금 말하고 있는 거요. 왜 말을 듣지 않구….” 그리고 터져 나온 멘트는 “지금 졸고 있소?”
물론 ‘불바다’ 같은 험하기 그지없는 언사를 입에 담은 박영수 북측 대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당시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이었던 이동복은 그의 발언은 “공격적이 아니라 방어적으로 한 얘기”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원래 판문점 회담이 이런 식으로 공개된 적은 없었는데도 김영삼정부, 안기부는 이를 깨고 문제가 되는 발언 부분만 '거두절미’, ‘전후 생략’한 채 KBS에 전달, 반북 분위기를 만들어내 오죽하면 방송사 간부가 “이걸 틀어도 되냐?”고 정부에 되묻기까지 했다니 능히 분위기를 짐작할 만하지요. 바로 1년 전 취임식에서 “같은 민족만 한 동맹은 없다”고 호언하던 김영삼 대통령은 무엇을 노렸던 것일까.
결국 전후 맥락과 좌우 사정은 다 사라진 채, 안보 정국이 시작되었고, 전쟁위기 통에 6월6일 현충일, 연휴를 맞아 행락 인파가 고속도를 메우자 ‘안보 불감증’이라는 성토가 튀어나오고 대통령이 화를 냈다고 하니...
1994년 6월16일 오전,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는 정종욱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만나 미국의 민간인들을 철수시키겠다는 뜻을 전달했는데, 그 내용은 북핵 문제에 대한 외교적 노력이 절망적 상황에 이르고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미국 민간인들을 철수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라는 것으로 레이니 대사는 한국에 와 있던 손녀들에게도 “3일 내로 한국을 떠나라.” 고 했다고 합니다.
전 미국 국방장관 페리는 이 상황에 대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재난을 불러올 수 있는 옵션’, 즉 언젠가는 미국을 겨냥하게 될 핵무기를 북한이 보유하도록 내버려두는 대안과, ‘달갑지 않은 옵션’, 즉 재래식 전쟁의 위험성이 있더라도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적극 저지하는 대안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게 했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달갑지 않은 옵션’을 선택했는데, 원자로가 있던 영변 폭격까지 계획되고 한국군과 미군 및 민간인 사망자까지 예상된 시나리오 옵션을 정작 재난 당사자인 한국인들만 까맣게 몰랐던 거지요.
미국의 ‘혈맹’인 한국 대통령도 미국 대사가 “미국 민간인들을 소개시키겠소”라고 통보하기 전까지는 전쟁이 진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이 한국의 의사와 관계없이 전쟁을 결심했다는 사실을 깡그리 몰랐던 겁니다.
이때 히트를 친 사람 하나. 서울시 부시장. 북한 핵 관련 비상대기 관계관 회의에서 “북한의 도발 징후가 있으니 시민들에게 비상물품 확보를 권장”한다는 발언을 해서 전국민이 사재기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강남구 신사동 영동백화점에서 하루 30박스씩 팔리던 라면이 14~15일 이틀 동안 2백 박스가 팔렸다. 6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 동안 전국적으로 팔린 라면은 5천4백만 개. 강남 아파트 단지에는 한꺼번에 30개들이 라면을 20~30박스씩 사가는 사람도 있었는데, 유통기간 6개월 동안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양 아닌가?
동원참치의 매출도 이 기간에 40퍼센트가 증가했고, 백화점들은 재빠르게 '비상 용품 판매 코너'를 만들고, 방독면까지 팔았습니다. 방독면 생산 업체에 따르면 하루 10개내외 팔리던 것이 14일 하루 동안 160개가 팔려나갔고, 아파트 관리비 납부를 미루기도 했습니다.
이런 난리통을 겪으면서 미국 대통령의 최종 결심만 남은 때 미국 전 대통령 카터가 북한에서 극적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전쟁위기는 갑자기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수락하여 7월25일 전쟁 후 최초의 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되었습니다.
그러나 1994년은 더워도 정말 개같이 더웠는데, 어떤 연구에 따르면 3천명이 넘는 노약자들이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하는데, 역시나 무더웠을 한반도 북쪽에서 한 명의 노인이 쓰러졌습니다.
정상회담을 앞둔 김일성 주석. 그의 죽음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으로 무르익던 한반도 평화 국면은 조문 논쟁과 북을 악마화하는 남측 정부의 대응으로 반북 반공 탄압이라는 최악의 상태로 치닫게 되고
김영삼의 취임사에 민족의 이익이 최우선이라는 것은 취임사로만 남게 되고 1994년 여름의 끔찍한 더위는 또 다른 장을 맞게 됩니다.
다음에 지금도 진행중인 ‘북핵문제’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한반도비핵화와 평화협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소성리 평화가수 정진석님 무대.
★★ 공지사항 ★★
다가오는 4월1일 토요일..
봄꽃이 아름다운 소성리에서 .. 봄맞이 축제를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