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5장 성장의 종말?
성장은 1973년 10월 16일(혹은 그즈음)에 종말을 고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 로버트 고든의 책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경제 혁명 100년의 회고와 인공지능 시대의 전망)]
------------------------- 그날은 OPEC이 전격적으로 석유 수출 제한을 발효했던 날이다.
영광의 30년
2차 대전 직후부터 1차 석유 파동까지의 약 30년 동안, 서유럽, 미국, 캐나다는 전례 없는 성장을 구가했다.
1870~1929년 미국의 1인당 GDP는 당시 유례없던 연간 1.76퍼센트 성장세.
1950~1973년 유럽의 1인당 GDP는 매년 3.8퍼센트씩 증가.
노동생산성의 급격한 증가가 경제 성장을 견인한 요인으로 보인다. 그럼 무엇이 노동생산성을 그렇게 높였는가?
1) 교육(14%)
2) 기계와 장비가 양적, 질적으로 크게 개선-전기, 내연기관 도입(17%)
3)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 경제학자들은 노동생산성 증가분 중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요인들을 다 동원하고 나서도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총요소생산성의 증가’라고 설명한다. 가령, 지난해와 동일한 교육 수준의 노동자가 동일한 기계 및 투입 요소(자본)를 가지고 일하는데 올해의 시간당 산출량이 지난해보다 많아졌다는 사실을 ‘총요소생산성의 증가’로 설명할 수 있다. 더 효율적인 자원 사용방법, 테크놀로지의 발달 등과 관련이 있다. 1920~1970년에 총요소생산성은 1890~1920년에 비해 네 배나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덜 영광스러운 40년
하지만 1973년쯤 이 모든 것이 멈추었다. 그 후 25년간 총요소생산성의 성장속도가 1920~1970년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경기 침체는 이제는 ‘뉴 노멀’이 되었다.
이 새로운 둔화세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논쟁의 쟁점은 첫째, 언젠가는 생산성의 고속 성장이 다시 돌아오고 지속될 것인가? 둘째, 새로운 경제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행복과 효용을 GDP라는 지표가 다 포착하지 못해서 지표상으로 놓친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닌가?
성장은 끝났는가?
- 로버트 고든은 미래의 성장에 부정적이다. 그는 향후 25년간 경제 성장률이 연 0.8퍼센트 밖에 안될 것이라 예상하며,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일으키기에는 오늘날의 발명이 전기와 내연기관만큼 급진적이지 않다고 본다. 인류 역사를 길게 보면 1970년 이후에 닥친 저성장이 예외가 아니라 1820~1970년 사이의 고성장이 예외라는 것이다. 향후에 성장률이 0.8퍼센트 수준에서 정체되는 것은 장기 추세(1700~2012년)의 평균치로 가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새로운 정상 상태가 아니라 그냥 정상 상태다.
- 조엘 모키어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다. 레이저 기술, 의료 과학, 유전 공학, 3D 프린팅 등에 진보의 잠재력이 있고, 다양한 혁신이 나타나 세상을 바꾸기에 최적인 환경을 창출했다는 견해다.
- 현재의 GDP 계산법은 소셜 미디어로 인해 생산성이 성장했는데도 이 부분을 통째로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소셜 미디어의 ‘진짜 가치’를 계산에 넣을 경우 성장률은 훨씬 높게 나타날까?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증거들로 보건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솔로우의 예측-성장 둔화론자
전후의 높은 성장세가 한창이던 1956년에도 장기적으로 성장이 둔화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 경제학자였다. 1인당 GDP가 성장하면 사람들이 저축하는 돈이 늘어날 것이고 투자에 쓰일 수 있는 자금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노동자 1인당 사용 가능한 자본량이 증가한다. 그런데 이는 자본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이유인 즉,
첫째, 대대적인 변혁 뒤이어 고성장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단계를 지나 경제가 다시 균형 성장 경로에 도달하면, 성장은 둔화된다. 이 예측은 1973년 이후의 유럽 상황과 잘 부합한다.
둘째, 수렴 가설이다. 자본이 희소하고 노동이 풍부한 나라들(가장 가난한 나라들)은 아직 균형 성장 경로에 도달하지 않았으므로 자본이 풍부한 나라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이고, 점차 부유한 나라들을 따라잡을 것이다. 솔로우는 이런 전망에 조심스러운 경고를 했지만, 이 모델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제학자들이 깨닫기 시작하기까지는 30년이 걸렸다. 우선, 가난한 나라들이 부유한 나라들보다 대체로 더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셋째, 성장은 그냥 일어난다. 균형 성장에 도달하고 나면 부유한 나라들 사이에서는 1인당 GDP 성장률이 그리 차이 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솔로우의 세계에서는 1인당 GDP 성장률의 차이가 기본적으로 총요소생산성 성장률의 차이에서 나오는데, 솔로우의 견해에서 총요소생산성의 성장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다. 즉, 정책 결정자가 의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솔로우에 따르면 성장은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 내에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다.
로버트 루카스의 계산-시카고학파의 반케인즈주의적 거시경제학의 거두
루카스의 계산에 따르면 미국과 인도의 1인당 GDP 격차가 인도에 자본이 희소하다는 요인만으로 모두 설명된다고 가정할 경우 인도에서 자본 가격은 미국에서보다 무려 58배나 높아야 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의 모든 자본이 인도로 가지 않는가? 그것은 실제로 인도의 자본 가격이 그렇게 높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결론 내렸다. 즉 인도의 총요소생산성이 미국보다 훨씬 낮아야 했다.
물론 루카스는 시장의 작동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으나 경제는 매우 경직적이다. 미국에서 인도로 자본이 이동하는 것이 그렇게 빨리 이루어질 수 없다.
성장에 대한 ‘스토리’들
- 솔로우의 성장에 대한 스토리
솔로우의 모델이 경제학에서 가장 기본적이라 할 만한 두 가지 개념에 토대를 두고 있다.
첫째, 자본가는 더 높은 수익을 위해 투자하고, 수익성이 낮아지면 자본 축적도 낮아진다. 둘째, 경제 전체적으로 자본가들이 자본을 더 많이 축적할수록 추가적인 자본의 생산성은 점점 낮아진다. 추가로 들여온 기계를 작동할 노동자가 없는데, 기계를 들여오는 것이 소용 있는가?(수확체감)
개별 기업은 모두 수확체감의 법칙에 직면해 있다고 해도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을 갖춘 똑똑한 사람이 2배로 많아지면 모두가 더 생산적이 될 수 있다. 자본이 왜 미국에서 인도로 흘러가지 않는지도 설명이 된다. 로머의 세계에서는 인도가 미국보다 자본이 훨씬 희소하더라도 인도와 미국에서 자본의 투자 수익이 대체로 비슷하다. 솔로우 모델에서는 표준적인 수확 체감의 법칙이 가난한 나라인 인도에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로머의 모델에서는 이 유리한 점이 부유한 나라가 갖고있는 ‘아이디어의 빠른 생산과 유통’이라는 강점으로 상쇄된다.
- 로머의 성장에 대한 스토리
첫째, 로머가 제시한 스토리의 핵심에는 스필오버spillover라는 개념이 있다. 숙련 기술과 역량이 서로서로를 발판삼아 발달해 나가면서 고도로 숙련된 전문인력이 한데 모여 전체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직업의 지리학]의 저자 마이클 그린스톤, 릭 혼벡, 엔리코 모레티는 도시가 양질의 공장이나 기업(아마존의 ‘HQ2)을 유치할 때 도시 전체 수준에서 실제로 이득이 발생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기업 유치 경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곳을 차점자로 떨어진 곳과 비교해 보니, 승리한 카운티에서 기존 공장들의 총요소생산성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적인 스필오버 효과는 실제로 존재하나, 국가 수준에서 성장을 지속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 같지는 않다.(온두라스 차터 시티의 실패 사례)
둘째, 생산적인 테크놀로지로 전환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발달시키는 기업들이 성장을 추동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산되는 과정은 훨씬 어렵고 충돌과 알력도 많다. 기업은 자신의 아이디어에 배타적인 소유권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혁신에서 나오는 수익과 자본 이득에 대해 세율을 낮추고, 벤처 인큐베이팅과 혁신 공간 등을 지원하며 특허를 통해 혁신가의 권리를 최대한 오래 보장해주는 것 등이 로머가 생각하는 정책적 수단이다.
한편 아기온은 슘페터의 개념을 빌려와서 혁신이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각각의 혁신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만 동시에 옛 것을 파괴한다. 따라서 혁신에 대한 보상과 수익이 더 커지게 하는 정책은 역습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그린필드 혁신(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혁신)과 기존 아이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 한계
솔로우와 로머의 이론 모두 경제 전체에 장기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일정의 스토리다. 솔로우는 경제 전체적인 수확 체감 개념, 로머는 기업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이디어들의 흐름이라는 개념에 핵심 역할을 했다.
솔로우와 로머 모두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추측에서는 옳았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추상적인 모델을 현실 세계에 대입해 그림을 그려보기는 매우 어렵다. 각 경제권(국가나 도시)들은 매우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또한, 성장 이론이 ‘장기’ 변화를 이야기한다는 점도 현실에서의 검증을 어렵게 만든다. 솔로우의 세계에서는 장기적으로 성장이 둔화하고 로머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얼마나 길어야 장기인가?
이미 언급했듯이 성장은 측정하기 어렵고, 무엇이 성장을 추동하는지를 알아내기는 더 어렵고,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도 어렵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경제학자들이 이제 ‘성장’을 논하는 것에 집착을 버려야 할 때라고 주장하려 한다.
부유한 나라들의 경우 우리 경제학자들이 유용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이 나라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여야 한다.
조세 감면
로머의 조언은 정부가 새로운 테크놀로지 개발에 투자하려는 성실한 기업에 세금을 감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 – 하지만 세율을 낮추면 혁신이 촉진되어 장기적인 성장을 가져온다는 개념은 공화당이 좋아하는 개념. 레이건, 트럼프
어쨌든 1960년대 이래 성장률을 살펴보면, 레이건이 촉발한 낮은 세율의 시대에 빠른 성장이 발생하지 않았다. 성장률은 클린턴 시기에 더 높았고, 이후에 떨어졌다. 1974년 이래 경제 성장률은 내내 3~4퍼센트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레이건의 조세 감면이나, 클린턴의 최고세율 인상이나, 부시의 세금 감면이나, 장기적이 성장률에 유의미한 차이를 가져온 것 같지는 않다.
시카고 대학 부스 경영대학원의 조사에 따르면 조세 감면이 상위 10퍼센트에게 이득을 주었을 때는 고용과 소득의 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이 없었던 반면에 하위 90퍼센트에게 혜택을 주었을 때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제는 고소득자의 세금을 낮추는 것이 그 자체로 경제 성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데 많은 경제학자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진 듯하다.
글로벌로 가자!
솔로우 모델과 로머 모델 모두 장기 성장을 추동하는 요인은 기술 혁신이다. 새로운 제품과 더 나은 생산 방법을 찾는 데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지면 총요소생산성이 증가할 수 있고, 그와 함께 경제가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집중화가 심해지면 거대 독점 기업이 경쟁에 직면하지 않는 만큼 혁신이 감소하게 된다.
기업의 집중화가 미국에서 성장의 둔화를 가져온 한 요인이었다 해도 무조건 독점을 분쇄하면 빠른 성장이 회복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영속적인 고도성장을 다시 불러올 방법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성장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다. 아니면 그냥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성장의 둔화를 막는 한 가지 방법은 생산성이 더 높은 나라에서 우리의 자본을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노동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본 소유자가 해외 투자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면 적어도 국민소득은 계속 성장할 수 있다. .
저개발 국가에서의 성장 저해 요인
- 자원 배분상의 문제
1990년에 나온 한 연구에 따르면, 업종 내에서만 투입 요소의 배분이 개선되어도 인도의 경우에는 총요소생산성을 40~60퍼센트 높일 수 있고, 중국의 경우에는 30~50퍼센트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원의 배분상의 문제는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못해서 발생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단순히 기업 간에 자본을 더 잘 배분하는 것만으로도 인도와 중국에서 자원 배분상의 문제로 발생한 총요소생산성 손실의 대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인도의 지구 중 절반가량에서 생산성이 더 높은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토지와 건물을 더 적게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심리적인 이유
인도, 나이지리아, 멕시코 등지에서 왜 가장 뛰어난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심리적인 측면에서의 이유도 있다. 회사를 성장시키는 게 모든 관심을 집중할 만큼의 최우선 순위가 아닐지도 모른다. 경영자들은 누군가가 지적했을 때는 변화를 보이지만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 이는 이들 기업 소유자들이 수익을 최대한 올리기 위해 매진하겠다는 생각이 그리 강하지 않았으리라는 점을 말해준다.
- 그 일을 하기 싫어서
예상과 달리 고등학교 교육이 소득에 미친 영향이 그리 크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마친 사람들 대부분은 25, 26세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무언가 더 나은 일자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상당수가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실업률이 매우 높은 나라에서조차 기업들은 원하는 노동자를 구할 수가 없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왜 그들은 제안이 들어온 일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었지만, 결국에는 모든 이유가 ‘그 일을 하기 싫다’는 것으로 요약되었다. 개도국에서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사이에 임금 격차가 매우 크다. 이 문제의 원인 중 하나는 ‘기대의 불일치다.’
우리는 경제 성장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모두가 맞았고 모두가 틀렸다
로버트 솔로우는 옳았다. 1인당 소득이 어느 수준 이상을 넘어가면 그 나라의 성장은 둔화된 경향을 보인다. 테크놀로지를 선도하는 부유한 나라들의 경우 이것은 총요소생산성이 대체로 ‘미스터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무엇이 총요소생산성의 성장을 일으키는지 알지 못한다.
- 로버트 루카스와 폴 로머도 옳았다. 가난한 나라들이 높은 경제 수준에 자동적으로 수렴해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된 이유는 스필오버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시장 실패 때문에 총요소생산성이 너무 낮아서일 것이다. 따라서 기업 친화적인 제도가 시장 실패를 고칠 수 있는 한 애쓰모글루, 존슨, 로빈슨도 옳았다.
하지만 이들 모두 틀리기도 했다. 이 학자들 모두 경제의 성장과 가용한 자원량을 경제 전체를 단위로 하는 ‘총계aggregate’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노동력, 자본량, GDP 등), 이러한 추상적인 개념들은 자원 배분상의 문제가 말해주는 자원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낙수효과는 없다
불행히도 우리가 성장을 어떻게 일으킬 수 있을지 알지 못하듯이 왜 어떤 국가는 정체되고 어떤 국가는 그렇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별로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또 정체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다지 아는 게 없다. 매우 현실적인 한 가지 위험은, 빠른 성장에 집착하느라 인도가 미래의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가난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다. 낙수효과는 효과가 없었다.
흥미롭게도 오랫동안 성장우선주의적 정통 경제학의 성채였던 IMF도 이제는 가난한 사람들을 희생시켜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나쁜 정책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제 IMF는 각 국가 담당팀이 정책 지침을 만들 때,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 해당 국가가 IMF의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를 정할 때, 불평등을 명시적으로 고려하도록 요구한다.
궁극적으로 핵심은 GDP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님을 잊지 않는 것이다. 물론 GDP는 유용한 수단이다. 특히 GDP를 높이는 것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임금을 올리고, 정부 재정을 풍부하게 해서 정부가 재분배 정책을 잘 펼 수 있게 해준다면 더욱 그렇다. 궁극적인 목적은 GDP 자체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 특히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삶의 질은 물질적인 소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앞 장에서 보았듯이 인간 대부분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이며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실패작이라고 여겨지면, 또 가족이 자신을 실패작으로 여긴다고 느껴지면 괴로워한다. ‘더 나은 삶’이 어느 정도까지는 ‘더 많은 소비’를 의미하긴 하지만,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 해도 부모의 건강, 자녀의 교육,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 꿈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원한다. GDP의 증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일 수는 있지만, 이는 많은 수단 중 하나일 뿐이며 늘 가장 좋은 수단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후생
누구도 부유한 나라에서 성장이 다시 시작될지 그 가능성을 높이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다만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후생에 분명하게 초점을 맞추는 정책을 펴는 것이 부유한 나라의 성장률을 2퍼센트에서 2.3퍼센트로 끌어올릴 수 있는 조리법을 찾는 것보다 수백만 명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가능성이 훨씬 크다. 한 발 더 나가서, 이후의 장들에서 우리는 그 조리법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것이 이 세계에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