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뽑기로 뽑힌 사도
성 마티아 사도는 사도행전에서 딱 두 번 등장합니다. 바로 그를 사도로 선출하는 대목인데요. 당시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반하면서 열두 사도 중 한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열한 사도는 다른 제자들과 성모님과 다른 여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백스무 명가량 되는 형제들이 모여 있을 때 베드로가 일어나 유다 이스카리옷의 직책을 대신할 사도를 뽑는 문제와 관련해서 발언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 사도 1, 21-22
제자들은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고도 하는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가려서 앞에 세우고 기도한 뒤에 제비를 뽑습니다. 바로 여기서 마티아 성인이 사도로 선출됩니다. 열두 사도 중 유일하게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신 사람이 아니지만 사도들은 기도와 제비뽑기라는 형식을 통해 하느님께서 그를 뽑아 세우셨다고 믿었습니다.
묵묵히 선교한 사도
기록이 많지는 않지만 전승에 따르면 성 마티아 사도는 사도단에 합류한 후 처음에는 유다 지방에서 선교했고 나중에는 오늘날의 그루지아 일대인 콜키스에서 선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성 마티아 사도는 오늘날 흑해 동부 연안 도시 수후미로 불리는 세바스토폴리스에서 순교해 그곳에 묻혔다고 하는데요. 또 다른 전승에서는 성 마티아 사도가 유다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유다인들의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도 전해집니다. 유다인들은 마티아 사도를 돌로 쳐 죽인 후에 다시 도끼로 목을 쳤다고 합니다. 이후 로마 제국에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가 그의 유해를 로마로 옮겼고, 그후 다시 독일 남서부 국경 도시 트리어로 이장됐다고 합니다.
트리어는 성 마티아 사도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고, 그의 유해는 트리어의 베네딕토 수도원 성 마티아 성당에 안치됐다고 전해집니다. 또 어떤 전승에서는 성 마티아 사도가 예수님께서 당신에 앞서 둘씩 짝지어 파견한 72명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하느님의 선물 성 마티아 사도는 목수와 재단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교회미술에서 성 마티아 사도를 표현할 때 순교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들거나 도끼 또는 미늘창(도끼와 창을 합친 무기)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립니다.
마티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마티티아(Mattithiah) 에서 나온 단어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람’, 또는 ‘주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제비뽑기를 통해 선물처럼 사도직을 부여받고 주님의 말씀을 기쁘게 전한 성 마티아 사도의 삶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죠.
성 마티아 사도를 주보성인으로 모시는 이는 그가 받았던 하느님의 선물을 똑같이 받을 것입니다. 또 자신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람으로서 이웃에게 선물과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선물이란 이름에 합당하도록 감사와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야겠습니다.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마티아가 뽑혀, 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 사도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