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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 희생제물인 동물의 피로 드린 제사제도의 폐지와 실체적 제사제도 필요
희생 제사제도가 주어진 목적들은 무엇인가?(CIHS 33) “성막이 완성된 후 그분[하나님]은 속죄소 위에 나타난 영광의 구름 속에서 ‘모세’와 교통하시고, 제사제도와 성소에서 유지되어야 할 예배형식에 관한 완전한 지시를 그에게 주셨다.”(CIHS 46) 예수는 유대인의 모든 제사제도의 기초였으며, 엄숙한 성전 봉사는 하나님이 친히 명하신 것이었다. 이 모든 의식과 예전은 때가 되면 그 모든 예식이 가리키고 있는 분이, 나타나실 것을 백성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CIHS 63.3)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떠나자, 제사제도에 대한 교훈을 많이 잊어버렸다. 이 제도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셨는데 이 제도의 각 부분에는, 그분을 가리키는 표상이 있었다. 이 제도에는 생명력과 영적, 아름다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의 의식에서 영적생명을 상실하였으며, 죽은 형식에 집착하였다. 그들은 제물이 가리키는 그분을 의지하는 대신에, 희생제물과 의문(儀文) 그 자체를 신뢰했다. 제사장과 랍비들은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여러 규정을 많이 만들어 냈다. 이 규정들이 엄격해 질수록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더욱 적게 나타났다.(CIHS 64.1)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의 기초요 생명이셨다. 성전의 봉사는, 하나님의 아들이 당하실 희생을 표상했다. 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중보적 성격과, 사역을 나타내기 위해 제정되었다. 희생제도의 전체적인 계획은 세상을 구속하기 위해, 구주께서 죽으실 것을 예표 하였다. 여러 세대 동안 희생제도가 가리켰던 이 위대한 사건이 완성될 때에, 제사의 효험은 없어지게 된다.(CIHS 64.2) 모든 예식제도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분을 떠나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죽음에 넘겨줌으로써 최종적으로 주님을 거절한 것이, 확정되었을 때 그들은 성전과 성전봉사에 의미를 부여했던 모든 것을 거절한 것이었다.
성전의 신성성은 떠나갔다. 성전은 파괴당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날부터 희생제물과 또한 그와 관련된 의식은, 무의미하게 되었다. ‘가인’이 드린 제물처럼 거기에는, 구주를 믿는 믿음이 표현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죽임으로써, 그들의 성전을 실제적으로 파괴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 성소안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갈래로 찢어진 것은, 최후의 큰 희생이 치러졌음과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사제도가 영원히 종말을 고하였음을 의미하였다.(CIHS 64.3)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단9:27). 침례를 받으신 지 3년 반이 지난, 서기 31년에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갈보리’의 그 위대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과거 4천 년간 하나님의 어린양을 표상했던 희생제도는 끝났다. 모형은 실체와 만났고, 모든 희생제도와 제물에 관한 의례와 의식은 끝나게 되었다.(CIHS 85.2)
그들은 ‘바벨론’에 종속되어, 이방나라들 가운데 흩어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새롭게 하였다. 그들이 버드나무 위에 그들의 수금을 걸어 놓고 황폐된 성전을 생각하며, 슬퍼할 때에 진리의 빛이 그들을 통하여 비쳐나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열방에 퍼지게 되었다. 이방사람의 희생제도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도를 왜곡한 것이었다. 이방나라의 의식을 신실히 지키는 많은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들에게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사제도의 참뜻을 배웠으며, 믿음으로 구주에 대한 허락을 굳게 잡았다.(DA 28.3)
유대인들은 하나님에게서 떠나자, 제사제도에 대한 교훈을 많이 잊어버리게 되었다. 이 제사제도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이었다. 이 제도의 각 부분에 그분을 가리키는 표상이 있었다. 이 제도에는 생명력과, 영적 미(美)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의 의식에서 영적생명을 상실하였으며, 죽은 형식에 집착하였다. 그들은 제물이 가리키는 그분을 의지하는 대신에, 희생제물과 의문(儀文-사람이 만든 두루마리 조문) 그 자체를 신뢰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결함을 의식의 다과(多寡:의식의 종류의 많음과 적고)로 측정하였으나, 마음은 자만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 (DA 29.2)
하나님께서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도록 부르신 백성이, 사단의 대리자가 되었다. 그들은 사단이 그들에게 원하는 그런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품성을 그릇 나타내는 행동을 취함으로,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폭군(暴君)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 자신이, 그들이 행하는 제사의 의의(意義)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표상을 넘어, 그 표상의 실체를 보는 일을 그쳤다. 그들은 제물을 드리는 일을, 연기하는 배우같이 하였다. 하나님께서 친히 정하신 의식들이 마음을 어둡게 하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방편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서는 인류를 위하여, 그 이상 아무것도 하실 수 없으셨다. 이 모든 제도는 일소(一掃:완전폐기)되어야 했다.(DA 36.2)
‘애굽’에 이 재앙을 내리신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 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처음 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거룩히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출13:2;민3:13). 성막 제사제도가 확립된 후에 여호와께서는, ‘레위’지파를 온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여, 성전봉사를 하도록 선택하셨다. 그러나 장자는 여전히 주의 것으로 여겨져서, 속전(贖錢:죄를 면하고자 내는 돈))으로 다시 사도록 되어 있었다.(DA 51.4)
제사장은 그의 공적인 의식을 행했다. 그는 아기를 그의 팔에 안고, 제단 앞에서 쳐들었다. 어머니에게 아기를 돌려 준 후에 그는 장자의 명부에, “예수”라는 이름을 기입하였다. 그는 그 아기가 자기 팔에 안기었을 때에 이 아기가 바로 하늘의 주재시요, 영광의 왕이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 제사장은 ‘모세’가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행3:22)고 기록한 것이 이 아기를 가리킨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는 그분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모세’가 간구했었던 분이 바로 이 아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세’보다 더욱 크신 분께서 제사장의 팔에 안기었다. 제사장이 그 아기의 이름을 명부에 올렸을 때에 그는 곧, 온 유대의 제사제도의 기초가 되시는 분의 이름을 올린 것이었다. 그 이름은 그 제도에 종말을 고할 것이었다. 그 까닭은 제사와 제물의 제도가 점점 낡아가고 있었으며 표상은, 그 원형(原型)에, 그림자는 그 실체에 거의 도달하였기 때문이었다.(DA 52.2)
[침례 후] 물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곧, 강 언덕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새롭고도 중대한 시대가 그분 앞에 열리고 있었다. 그분은 지금 좀 더 광범한 무대에 서서, 생애의 투쟁에 들어가고 계셨다. 그분은 평강의 왕이셨지만, 그분의 강림은 칼을 뽑는 것과 같아야 했다. 예수께서 건설하려고 오셨던 나라는, ‘유대인’이 원하던 나라와는 정반대였다. ‘이스라엘’ 나라의 제사제도의 기초가 되신 그분이, 그 제도의 원수와 파괴자로 여겨질 것이었다.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반포하신 그분이, 범법자로 정죄를 받게 될 것이었다. 사단의 세력을 깨뜨리기 위해 오신 그분이, ‘바알세불’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그분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공생애 동안도 그분은 홀로 행하셔야 하였다.
그분의 일생 동안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그분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분의 제자들조차도 그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분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셔서 영원한 빛 가운데에 거하셨으나, 그분의 지상생애는 고독 속에서 보내야 했다.(DA 111.3) ‘예루살렘’ 성전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구주께서 하신,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는 말씀은, 듣는 자들이 이해한 것 이상의 깊은 의미가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의, 기초요 생명이셨다. 성전의 봉사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표상했다. 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중보적 성격과 사업을, 나타내기 위해 제정되었다. 희생제도의 전체적인 계획은 세상을 구속하기 위해, 구주께서 죽으실 것을 예표 하였다. 여러 세대 동안 가리켜 왔던 큰 사건이 완성되는 때에, 이 제사들의 효험은 없어지게 될 것이었다.(DA 165.3)
그리고 그 천사는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로 더불어, 한 이레(7년)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다고 말하였다. 구주께서 공생애에 착수하신 후 7년 동안, ‘유대인’들에게 복음이 특별히 전하여질 것이었는데, 삼 년 반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전하실 것이요, 후 삼 년 반은 사도들에 의하여 또한 그렇게 될 것이었다.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단9:27)라. 서기 31년 봄에 참된 제물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갈바리’에서 드려지셨다. 그 때에 성전의 휘장이 두 갈래로 찢어짐으로 제사제도의 신성성과 의의가 떠났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지상의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때가 이르렀던 것이다. (DA 233.2)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메시야”께서 하실 일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은 부조들과 선지자들의 영감을 받은 말과, 제사제도의 상징적인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빛을 무시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흠모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방인 태생이요, 로마제국의 우상숭배 교육을 받았고,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교육과 환경으로 말미암아 겉보기에는 영적생애에서 끊긴 것처럼 보이고, 더구나 ‘유대인’의 완미함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로마인’의 멸시로 한층 더 제외된, 백부장인 이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눈이 멀어 보지 못했던 진리를 이해하였다.[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고넬료’ 백부장]
그는 유대인들 자신이 그들의 “메시야”되심을 주장한 그분을 받아들이는지를, 보고자 기다리지 않았다.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요1:9)이 그를 비추었을 때에,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식별하였다.(DA 317.3)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많은 무리의 주목을 끄는 한가운데 서서, 전에는 아무도 해본 일이 없는 그런 훌륭한 설교를 하셨다. 그분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율법과 제도에 관한 지식, 제사제도와 선지자의 교훈에 대한 그분의 지식이 제사장과 랍비들의 지식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그분은 형식주의와 유전의 장벽을 무너뜨리셨다. 미래의 생애의 전경이 그분 앞에 펼쳐진 것처럼 보였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분을 본 것처럼 절대적인 권위로 땅의 일과, 하늘의 일,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은 매우 명료하고, 수긍시키는 힘이 있었다. ‘가버나움’에서처럼 백성들은 다시 한 번 그분의 가르침에 놀랐는데,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눅4:32)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예증들을 사용하여 그분께서는 청중들에게 그분이 그들에게 가져다주기 위하여 오신 그 축복을 거절한 모든 사람들에게 임할 재난을 경고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분이 하나님에게서 보내심을 받았다는 모든 증거를 다 주셨으며,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셨다. 만일 그분께서 저들을 그와 같은 행위의 죄에서 구원할 수 있다면, 그분은 동족에게 거절되고 살해당하시지 않을 것이다. (DA 452.3)
이 예언들을 주신 분 자신이, 이제 마지막 시대를 위하여 경고를 되풀이하셨다. 예언의 성취로 백성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언하였다. 예수께서 저희의 존경을 받으시고, 왕의 직분을 받으셨다. 이 신분으로 그분은 행동하셔야 했다. 그분은 부패된 제사장 제도를 개혁하려는 노력이 헛될 것을 아셨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은 이루어져야 했으며 믿지 않는 백성들에게, 그분의 거룩한 사명의 증거를 보여 주셔야만 하였다.(DA 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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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히 7:25~27) 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26“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히 9:23-26) 23“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 13: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계 8:3-4) 3“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끊임없이 필요한 그리스도의 중보(엡5:2;히7:25-27;9:23-26;13:15;계8: 3,4)— 그리스도는 모든 유대 성막 제도의 기초이다. 제사장들이 봉사할 때에 우리들이 끊임없이 되새기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중보 사역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께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그분의 공로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그의 긍휼과 자비를 입은, 사람들의 기도에 섞이는 향연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중재는 우리에게 계속 필요하다. 날마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으로, 겸비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릴 필요가 있다. 그런 기도는 은혜와 평화 그리고, 기쁨의 응답을 받을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5~16)(6BC 1078.6)
[동물의 희생 제물로 드리는 제사의식은 분명히 폐지되었으나, 하루의 일과에서 아침저녁의 제사와 하루 세 번의 기도는, 성육신으로 속죄의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힘입어, 구주의 이름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계속되어야 하며, 마지막시대의 진리를 깨달은 남은 무리는, 하나님의 예언 성취를 위해서 ‘다니엘’과 같은 충절로 계속 주의 제단과 마음에, 성령의 임재하심을 구해야합니다.
특히 주님의 재림의 성취와, 자신과 가족의 구원을 위한 가정에서의 조석예배와, ‘다니엘’의 모본을 따라 시간에 맞추어 반드시 기억하여 예배와 기도생활은, 필수적인 우리의 의무가 되어야만 합니다. 단, 부득이한 경우는 묵상하는 정성으로, 같은 시간에 기도에 참여함으로 함께하면, 하늘에 상달되리라 믿습니다.]
‘다니엘’의 경우가 내 앞에 제시되었다. 비록 그는 우리와 동일한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영감의 붓은 그를, 흠 없는 품성을 가진 사람으로 나타낸다. 그의 생애는 비록 이생에서도 사람이 하나님을 그의 힘으로 삼고 그에게 주어진 기회와 특권들을 현명하게 이용하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모본으로 우리에게 제시된다. ‘다니엘’은 지적거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더 큰 지식, 더 높은 학식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다른 젊은이들도 똑같이 유리한 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온 정력을 지혜-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업적에 나타난 그대로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를 구하는 일에 기울이지 않았다. 비록 ‘다니엘’은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 중 하나였지만‘ 그는 교만하지도 자만하지도 않았다. 그는 기도로써 그의 심령을 새롭게 할 필요를 느꼈으므로, 매일 하나님 앞에서 열렬하게 탄원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만일 그가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면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 사자굴이 열려 있는 때일지라도’ 그는 이 특권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었다.(4T 569.1)
왕 이외의 어떤 신에게도 기도하지 못하도록, 조서가 내렸을 때도 그러했다. ‘다니엘’이 그의 습관대로 하루 세 번씩 하늘의 하나님께 간구하였을 때, 방백들과 통치자들의 주의가 그의 사건에 집중되었다. 그는 자기 자신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참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려 주고, 그분만이 경배를 받으셔야 할 이유와 그분께 찬양과 존경을 표해야 할 의무를 알려 줄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사자 굴에서의 ‘다니엘’의 구원은 그가 경배한 분이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셨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되었다.(5T 453.3) ‘다니엘’의 역사는 두드러진 것이다.
올바른 육체적 습관은, 정신적 우수성을 육성한다. 지력과 정력 그리고 수명은 불변의 법칙에 달려 있다. 자연의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칙들을 범한 데서 오는 결과들을 무시하면서까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간섭하지 않으실 것이다.
승리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자는, 모든 일에 절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니엘’의 명민한 정신과 확고부동한 목적 그리고 지식을 얻고 유혹을 거절하는 능력은, 기도의 생활과 아울러 평범한 식사[건강개혁-완전한 과일, 견과류, 곡 채식]의 공이 컸다.(2MCP 5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