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 황윤 감독, 다큐멘터리, 한국, 108분, 2022년
드디어 영화관에서 개봉한 황윤 감독의 다큐영화 수라를 봤다.
새만금! 영화 속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씨의 새들 묘사는 너무나 생생했다. 소리와 몸짓들. 이니가 얼마나 새에 몰입하였고 새와 하나가 되었었는지 그려졌다. 안개 낀 갯벌가에서 수십만 마리 도요새들이 내는 소리와, 불쑥불쑥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비로운 도요들. 그 만남의 감동이 그의 영혼의 나침판을 바꿨다. 그는 목격자의 책임감을 느꼈다. 묵묵히 헤아리고 기록하고 증언했다. 20년 동안 사라진 갯벌 위에서 고통을 견디며 희망을 가꾸어갔다. 그래서 그는 아름다움을 만난 것도 죄가 되냐고 반문한다.
그가 이윽고 수문이 닫히고 갯벌에 살았던 생합이 사라진 바닷물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어느 날 비가 내리자 올라와 입을 열고 죽는 장면을 묘사할 땐 눈물이 났다. 대지를 뒤덮은 조개들의 허연 주검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황량한 벌판에 자라는 풀들은 오동필씨의 말처럼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
민들의 노력으로 수문이 열러 다시 바닷물이 들어왔을 때 하나둘 돌아오고 있는 갯벌 생명들
은 얼마나 의연하고 또 아름다운가?
그리하여 수라마을의 이름을 따 새롭게 이름 붙여진 수라갯벌은 이제 우리가 지키고 가꿔가야
할 자연의 새 보금자리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다시 군산공항을 짓는다니. 끊임없이 재앙을 만들어내는 권력의 탐욕에 다시 경악하게 된다.
지난 5월에 학생들과 찾은 흑산도에서도 정부는 국립공원 부지를 해제하며 흑산도공항 건설을 강행하고 있었다. 결국 토건 세력이 이명박 정부 때처럼 전국을 들쑤시며 4대강 대신 신공항건설로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인간의 부가 자연을 학살하며 이렇게 탕진해버리는 것은 시민을 무시하고 깨어 있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널리 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살아 있는 시민과학자 오동필씨처럼 좀 더 섬세한 시선으로 지역을 살펴봐야겠다.
한편 수라의 살아있는 야생동물들을 보며 온통 반려동물에 빠져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반사적
으로 떠올랐다. 자연과의 만남과 감동이 참으로 소중하지만 그것을 소유의 일부로 만들어버린
자본의 반려동물산업을 보면 때론 선택적 동물권 논의가 인간중심 인간 편의의 이중 잣대로 보이고, 자연을 오히려 더 타자화 하는 것 같아 편치 않을 때가 있다. 자연은 멀고 불편하고, 집은 가깝고 편하다.
하지만 자연과 만나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바르게 살 수 있을까?
2000년 전후 나는 전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였다. 처음 전북에 살면서 변산을 몇 차례 찾았다. 하섬, 채석강, 해창갯벌, 새만금 물막이 공사장. 그리고 20년이 훌쩍 지났다. 영화를 보며 다시 만난 해창갯벌 장승들이 여전히 또 다시 세워지고 있는 모습을 보며 가슴 찡한 감동을 받았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났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행기가 아니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이다.
부디 수라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아픔을 기억하며, 비단에 수놓은 듯 아름다운 갯벌의 새와 조개와 풀의 노래를 듣고 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