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갔다 3 주 만에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가 농담으로 14일 동안 격리해서 별채에서 살라고 했다. 요즈음 ‘격리’가 유행이다.
격리 때문에 조르죠 아감벤이 설명한 '호모 사케르’가 생각 났다. 호모 사케르란 고대 세계에서 공동체 안에서 죄를 지어 공동체에서 배제되었고 신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질 수도 없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그를 죽인다고 해서 살인죄로 처벌받지는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처럼 호모 사케르는 인간과 신들의 공동체로부터 모두 버림받은 존재이지만 또한 배제의 형식으로만 공동체에 속한다. 경계 안에 머무르고는 있지만 그 경계 안에서 통용되는 질서에서는 소외된, 즉 살아 있을 수는 있지만 죽여도 되는 이들이다. 현대적으로는 홀로코스트 수용소에 있었던 존재들이었고 한국 사회에서는 군사 정권 하에서의 ‘빨갱이’로 낙인 찍혔던 사람들이 있다. 한국 사회는 이번에 코로라 바이러스도 무섭지만 유사종교(신천지)바이러스도 얼마나 무서운지 뼈 아프게 경험을 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그들의 행동을 보고 종교가 삐딱선을 타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온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10년 전에 한국에 갔을 때 신천지에 빠진 후배를 만났다. 그녀는 진리를 찾기 위해서 오래 동안 방황하다가 신천지를 만나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며 교리가 얼마나 달고 오묘한지에 대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을 했다.
그러나 우숩게도 그녀는 이만희가 어디서 배우고 어떻게 짜깁기를 해서 교리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고 그저 마냥 행복해 하기만 했다.
그 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이만희는 여러 번 말 바꾸기를 했다. 이회창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계시를 9번이나 확실하게 받았다고 전국에 계시 자랑하다 충격 먹은 일부 성도들이 떨어져 나가자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1985년판 책을 신천지 간판교리책인 ‘신탄’에 1987년 9월 14일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다가 예언이 불발되자 자신이 그 책을 쓴 게 아니라고 또 한 번 오리발을 내밀었다.
나는 헤어지면서 꼭 해줄 만한 말이 없을까 하는 생각하다가 “그저 헌금만 좀 아껴서 해. 나중에 본전 생각날 줄 모르니까.”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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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케르는 배제 되어도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존재들이다. 요즘 신천지가 집단적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착실하게 매를 벌어놓은 탓이다. 교주 이만희는, 여러 부패한 대형교회 목사들처럼, 많은 권력형 비리와 폭력의 혐의를 받아왔다. 권력이 1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면 권력형 범죄의 가능성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내부비판을 통한 자정의 기회가 거의 없는 세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도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들을 악마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비록 그들은 집단적으로 코로나19 사태에 중대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들 전체를 악의 범주로 낙인 찍는 일은 부적절하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책임은 합법적으로 부과되어야 할 것이다. 낙인찍기, 사회적 배제, 비존재화는 그들을 호모 사케르로 만드는 일이다. 무의식적으로라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을 희생제물로 삼았던 일본인들 같은 심리이어서는 안 된다. 이단이라서가 아니라 냉정하게 법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회적 존재로서 인식되어야 할 사안이다.
이번 신천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그 동안 신천지라면 경끼를 일으켰던 기성교회에게는 신천지를 공격할 절호의 기회가 온 샘이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본심은 숨길 일이다.
문재인, 탄핵이니 뭐니 떠들어대던 마구니들이 유독 신천지 관련해서는 발언을 아끼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동안 암행과 잠행으로 끈끈한 정치권과의 연계를 통해 세력 확장에 재미를 보아왔지만 이제는 하나 둘씩 커밍아웃이 시작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거판에 신천지가 전개될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 기회에 한국 기독교가 신천지 백신을 맞아서 유사종교에 대한 면역력이 길러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