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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고린도 전도의 시작
사도행전 18:1~8
사도 바울이 당대 최고의 지성 곧 철학과 문학과 예술과 건축과 역사의 도시 아테네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던 것을 우리가 지난 주일에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 곧 아덴에서 머물지 않고 그곳을 떠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기도하는 중에 그의 2차 전도 여행의 최종적인 사역지로 아테네 남쪽 80km 떨어진 고린도 시가 마음에 떠올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아테네가 작은 도시로서 학문적인 도시였다면, 서남쪽에 있는 고린도 시는 그 당시 아가야 주에서 수도 역할을 하는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에 고린도 시는 75만 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는 큰 도시였습니다. 오늘날 75만 명은 아주 큰 도시가 아니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 로마 제국의 심장인 로마 시의 최대 인구가 백만 명 정도였으니, 고린도 시의 인구가 얼마나 많은 큰 도시인가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고린도의 인구 수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바울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 시의 인구수와 비교하면서 3대 도시로 알려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고린도 시가 그렇게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도시가 위치한 곳이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서쪽 아드리아 바다로 이어지는 레퀴움 항구가 있고 동쪽으로는 에게해를 마주하는 겐그리아 항구가 있어서 문물의 유통이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에는 각처에서 온 문물들이 몰려들었는데, 고린도 시장에서는 흔히 아라비아의 향유, 이집트의 파피루스 종이, 페니키아 대추, 리비아의 상아, 바벨로니아 양탄자, 길리기아의 염소털, 루가오니아 양털, 부르기아의 노예들이 상품으로 팔렸다고 합니다. 다양한 곳에서 수많은 물품들이 이곳 고린도 시로 몰려들어서 또 다시 사방 각처로 팔려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곳 고린도 시의 많은 인구에 주목하고 다양한 곳으로 복음이 전파될 가능성에 주목하여 이곳을 선교지로 정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당시 고린도 시는 매우 역동적인 도시였고 그 도시에는 로마 사람, 그리스 사람들, 또한 유대인들이 함께 섞여 사는 인종의 용광로와 같은 곳이었고, 도시의 상류층으로는 로마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가난한 노예들도 이곳에 몰려들어 이 도시 속에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이 도시는 많은 부로 매우 윤택하고 흥청거렸고, 적지 않은 권력자들, 신흥 부자들이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 문화적인 상황을 보면, 이 도시 역시 수많은 헬라의 신전들을 세워놓고 섬기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의 북쪽에 아크로고린도라고 하는 큰 돌산이 있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대형 신전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고린도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주신으로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포세이돈 신전도 컸고, 제우스 신의 아내 헤라 신을 섬기는 신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크로고린도 산에 가장 유명한 신전은 미의 여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신전이었습니다. 이 신전에는 무려 신전 창기가 1000명이나 있어서 그곳에 참석하는 신도들을 맞이하였고 밤마다 그 신전 창기들이 옷을 차려 입고 도심지로 내려와서 창녀의 일을 하여 도시 전체의 타락을 유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고린도 사람들은 디오니소스 곧 주신, 술을 마시는 술 신을 섬기곤 했습니다. 그래서 디노니소스 축제, 곧 로마의 신화는 바커스 신 축제인데 이 디노니소스 축제 때에는 며칠 동안을 온 도시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서 온갖 방탕한 일을 범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고린도시는 4년마다 헬라의 도시에서 열리는 고대 올림피아 경기와는 별도로 이년마다 고린도에서 이스미아 경기 제전이 열려서 많은 뜨거운 경기 시합들이 펼쳐져서 사람들이 그 시합을 보려고 경기장에 많이 몰려들곤 했습니다. 이렇게 역동적인 상업 도시이며 많은 부가 쌓여 있으며 그 시의 거주민들도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살면서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으며 각곳에 타락한 술집들이 즐비한 고린도 시의 모습은 마치 오늘날의 대도시의 모습과 매우 흡사할 것입니다.
대도시는 많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동성, 비인격성, 익명성, 전통 종교의 약화, 타락성, 빈부 격차, 가족관계의 파괴, 새로운 인간 관계의 모색 등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대도시의 삶은 일종의 위기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라는 도시에서 복음의 역동적 전파의 기회를 만들고자 그곳에 가기로 결단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아덴에서 떠나 고린도 시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 저런 배경을 갖고 있는 고린도 시, 그 75만 명이나 몰려든 거대 도시 고린도 시에 동양의 한 유대인 사도 바울이 과연 그가 바라는 대로 위대한 복된 소식인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그곳에서 많은 영혼을 건지고 가장 위대한 상품인 복음이 세계 각처로 흘러나가는 영적 비전을 이루어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아덴에서 홀로 분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로 그렇게 지나가는 전도지로 끝나고 말았을까요?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읽어 보았고 또한 사도 바울의 서신 고린도전후서를 통하여 그곳 고린도에서 큰 교회가 세워져서 아가야 지역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오늘은 우리가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사도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렀을 때에 여전히 그의 동역자 실라와 디모데는 곁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의사 누가만 동행했을 것입니다. 그 크고 역동적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도시에 들어온 사도 바울은 자신의 왜소함과 연약함을 크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가 맡은 사명은 막중한데 자기 자신의 역량을 생각할 때, 그리고 자기와 누가 단 둘만 도착하여 맞닥뜨린 대도시의 거대함 앞에 주눅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 2:3 말씀에 보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바울 사도가 처음 그 도시에 들어왔을 때에 그의 내면을 짓누르는 큰 정신적 긴장감, 사명의 무게, 자신의 무능함이 그토록 컸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의 마음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큰 협력자를 붙여주셨습니다. 2절을 함께 읽읍시다.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여기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는 유대인 부부가 나타납니다. 본래 아굴라는 튀르키예 북부의 본도 지방에서 태어난 유대인인데 그들이 로마 시에 가서 생활하던 중에 당시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는 조서를 발표합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수에토니우스가 쓴 ‘열두 명의 로마 황제 카이사르’라는 책에서 보니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의 유대인들이 크레스투스의 선동으로 끊임없는 소요를 일으켰기 때문에 그는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다”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의 이 짧은 역사적 기록은 오늘 본문 말씀의 저자 누가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을 사도행전에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의 로마에서의 추방령이 내려진 이유를 보면, ‘크레스투스’ 때문에 유대인들간에 일어난 끊임없는 소요 사태 때문이라고 했으니, ‘크레스투스’는 바로 티베리우스 황제 때에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를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주후 50년 경에 발표된 이 유대인 추방령은 주님 승천 후에 20년 후에 로마 시에 있는 유대인들 간에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믿지 않는 유대인들 간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폭력사태까지 불어지는 일들이 벌어졌음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로마에 있을 때에 이미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사도 바울을 만나기 전에 이미 로마에서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님을 믿었다가 유대인 추방령에 따라 이곳 고린도로 들어왔다가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도 바울을 돕는 협력자로 세우기 위하여 섭리적으로 이곳으로 그들을 내려오게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이 만남 후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사도 바울을 위하여 평생에 돕는 가장 헌신적인 협력자들이 되었으니, 사도 바울이 로마서 16:4 말씀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고 고백할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그 큰 도시 고린도에서 아굴라 부부를 만나도록 바울의 발걸음을 인도하였으니 바울은 곧장 그들과 함께 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사도 바울은 본래 유대교의 교사 랍비로 훈련받았으니 유대인 랍비는 스스로 손으로 일하여 생계를 책임지는 훈련을 받아서 사도 바울도 일찍이 천막 만들어 파는 일을 훈련했던 것입니다. 천막 만드는 일에는 가죽을 다루는 일이므로, 가죽을 가지고 신발도 만들어 팔고, 물을 담는 가죽 병도 만들어 팔고, 가죽을 이어서 텐트를 만들어 팔기도 하는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마침 같은 생계 수단을 갖고 있었던 아굴라 가정과 함께 천막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하면서 그들과 함께 천막을 만들어 곁에서 기거하면서 일도 하며 지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 입장에서는 큰 지원군을 만난 마음이었을 것인데 한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역시 이미 로마에서 예수님을 믿게 된 처지에서 이곳 낯선 고린도 시에 와서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면서 지낼 수 있을까 염려하던 차인데 이곳에서 뜻밖에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되니까 너무 기쁘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하여 함께 일도 일하면서 숙소도 곁에 천막 하나 더 치면 되니까 자연스럽게 함께 생활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고린도 시에서 사도 바울의 장기적인 복음 전도의 기반이 다져지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자, 그리하여 사도는 복음을 전할 때가 되었습니다.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안식일을 맞이하자 사도 바울은 그 거대한 도시에 많이 모여들었던 여러 인종들 중에 유대인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고린도 시의 여러 곳에 세워진 유대인 회당에 가서 구약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시의 여러 유대인 회당들을 안식일마다 두루 다니면서 전도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유대인 회당에서 그러했고 베뢰아 회당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사도 바울은 구약 성경을 펼치고 그리스도가 해를 받게 되는 예언들을 인용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예언도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한 후에 그리고 역사적 그리스도인 나사렛 예수의 행적과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증거들을 하나씩 증거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도가 유대인 회당들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중에 분명히 유대인들 중에서 서서히 찬반 양론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사도 바울의 사역에 큰 힘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기다리던 동역자들이 고린도에 도착한 것입니다.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그 동안 사도 바울이 베뢰아 지역에서부터 헤어진 실라와 디모데를 이제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에 보면 아덴에서 사도 바울이 사역하던 중에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소식이 너무 궁금해서 자기만 아덴에 머물기로 작정하고 사람을 보내어 디모데를 오게 했다가 다시 데살로니가로 급히 보내어 그곳 성도들의 신앙 형편을 알아보라고 했었던 것입니다. 이는 그곳에 혹시 시험하는 자들이 찾아와서 하도 바울과 실라를 비롯한 선교단의 영적 수고를 헛되게 할까봐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와서 학수고대하면서 데살로니가에 갔던 디모데랑 실라가 그곳 교회의 사정을 가져왔는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핍박과 궁핍 중에도 믿음으로 굳게 섰다는 소식을 들으니 사도 바울의 마음이 너무 기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심정에 대하여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편지 데살로니가전서 3:6 이하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뢰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데살로니가전서 3:6~9)
이 편지를 쓴 사도 바울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사도 바울은 몸은 멀리 그리스 남단 고린도시까지 흘러 들어왔지만 그가 그 동안 복음을 전하였던 여러 도시의 교회들마다 늘 핍박이 있었고 또 시험하는 자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핍박이나 시험하는 자들의 유혹을 받아서 사도가 힘써서 전도하여 세운 마게도냐 지역의 여러 교회 성도들이 이제 사도 일행을 그냥 일개 떠돌이 철학자나 떠돌이 종교 강연자 정도로 생각하지나 않을까 염려하였으며, 사도가 떠난 뒤에는 아예 사도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사도 바울이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구원의 영광에 대하여 무시하고 믿지 아니할까 고린도에서 사역하면서 늘 걱정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실라와 디모데가 베뢰아와 데살로니가로부터 소식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차에 그들이 돌아와서 그들이 사도 바울을 단지 떠돌이 종교 강연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 증거한 사도로서 분명히 인식하고 그가 전한 복음의 진리 위에 굳게 서 있고 깊이 그를 사랑하며 간절히 다시 보고자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뛸 듯이 기뻐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사랑하고 보고싶던 동료들이 이제 곁에 와 있고, 또 그들의 사역의 열매로 데살로니가 교회와 베뢰아 교회가 핍박 중에도 든든히 서간다는 말을 전해 듣자, 사도 바울은 완전히 영적으로 기쁨이 충만해져서 성령의 기쁨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도 충만한 기쁨으로 성령에 사로잡혀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5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다시 한번 5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여기서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라는 대목에서 ‘붙잡히다’라는 헬라어 단어는 ‘순에코’입니다. ‘순에코’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는 ‘둘이 함께 붙잡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한쪽에서만 잡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양쪽에서 함께 잡아다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단어의 의미는 ‘꽉 끼이다’, ‘사로잡히다’, ‘강권하다’, ‘가슴이 답답하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를 쓴 용례를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피의 세례를 받기까지 그 마음에 깊은 부담감 때문에 ‘답답함이 어떠하리요’라고 제자들에게 토로할 때도 이 단어를 썼습니다. ‘마음의 답답함’ 꼭 붙잡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눌린 마음을 이 단어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동료들도 곁에 오고 또 데살로니가 교회와 베뢰아 교회가 믿음에 굳게 섰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제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그를 사로잡아서 강권하여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제 사도 바울은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성령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강하고 담대하게 술술술 그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특별히 구약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시라고 밝히 증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5절 마지막에 ‘밝히 증언하다’는 헬라어 단어는 ‘디아마르투로마이’라는 단어는 ‘엄숙하게 확언하다, 엄숙하고 진지하게 선언하다, 확증하다’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사도 바울은 애매한 표현을 다 없애고 너무나 큰 확신을 가지고 확고하게 이십 년 전에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저 나사렛 목사의 아들 예수께서 바로 구약 성경에서 그토록 오신다고 예언하신 그리스도 그분이시라고 엄숙하고 진지하게 확실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이제는 두려움도 없고 애매함도 없이 완전히 하나님의 성령에 잡혀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말씀을 확실하게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니 성격이 확고하고 분명한 사도 바울이 그의 광대한 지식을 따라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언할 때에 얼마나 열정적으로 말씀을 증거했을까 눈으로 그려집니다. 그는 손을 크게 흔들면서 한 손에 성경을 펴서 혹은 강대상의 성경 두루마리를 펴서 지적하여 읽으면서 그가 받은 성령의 감동으로 주어진 말씀을 힘차게 증거하였을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동안에도 몇 주간에 걸쳐서 사도 바울의 이 복음 전도의 안식일 사역을 접하면서 유대인들 중에 매우 거북스럽게 여기던 이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들을수록 확고해지는 나사렛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에 대한 증언을 들으면서 그 말이 일리는 있지만 동시에 그 동안 바리새인들 중심의 랍비들에게 들었던 가르침 곧 율법의 규례들 중심의 가르침, 그리고 유대인의 혈통적 선민 사상 등에 꽉 들어차 있었던 고정 관념이 강력해져서 사도 바울의 말에 반발심이 커진 것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전혀 들었던 바 나사렛 예수는 사생아로 태어났고 모세를 거부하고 성전을 모독했고 그래서 가장 최악의 판결인 신성 모독죄를 범하고 가장 최악의 사형틀인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이니, 그는 분명히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자를 그리스도라고 믿고 따른다는 것은 경건한 유대교 신앙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생각하고 사도 바울을 향하여 대적하여 일어나 큰 소리로 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입을 다물고 회당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할 때에 악령도 그만큼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택한 백성들의 마음을 녹여서 진리를 순전하게 받게 하는 만큼 거역하는 자들의 마음은 마귀가 더 강력하게 강퍅하게 돌처럼 굳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결단을 내립니다.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유대인들의 강력한 항의와 비방을 받자 사도 바울은 그들 앞에서 옷을 털었습니다. 이런 예언적인 행위 표현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14 말씀에서 전도자들에게 명령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옷이나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는 것은 곧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의 은혜 자리에서 잘려져나간다는 것을 행동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선지자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을 상기시켜 줍니다. 에스겔서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그 시대의 영적인 파수꾼으로 세우시면서 이르기를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에스겔서 3:17~19)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명령이 에스겔서 33장에서도 또 다시 반복적으로 선지자 에스겔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자로서 사도 바울도 동일한 부담을 가지고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간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서 그들이 듣고 돌이키면 그들이 구원을 얻으려니와 그들이 듣지 않고 거부할지라도 자기는 그들에게 전하지 아니함으로 그들이 죽게 되는 피 값을 자기가 당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각오로 복음을 계속 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시의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다 감추지 않고 전하였기에 그들이 듣지 않고 거부함으로 인하여 망할지라도 사도 바울은 그들의 피 값에 대하여 자기는 깨끗하다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가지고 있던 이 복음 전도의 무거운 책임감을 오늘날 우리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였을 때에 듣지 아니하고 거부함으로 그들이 망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선택한 결과이지만 우리가 죽을 자에게 복음을 전하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그들이 망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그 사람의 피 값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엄중한 영적 책임 의식을 갖고 이 시대에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아파트 이웃 집에 살고 있는 이웃이나 혹은 우리의 가까운 친구에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세상에 보내신 구원자라고, 그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확실히 죽으셨고 그리고 확실하게 영원히 부활하시어 지금 살아 계신 영원하신 구원자시라고 힘을 다하여 지혜를 다하여서 끈기있게 전해야 하겠습니다. 만일 그렇게 전도하는 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가 그가 죽게 되었다면 그 피 값에 대하여 훗날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으실 수도 있다는 엄중한 부담감을 우리는 갖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붙여주신 이에게 전도하며 그의 구원을 놓고 중보 기도하기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그 일을 계속합시다.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영혼의 피 값에서 깨끗하게 하는 일이요 장차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에 주님으로부터 받게 될 가장 큰 상급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사도 바울은 고린도의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한 사역에서 방향 전환하여 공개적으로 고린도 시의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한 복음 전도 사역에 힘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7절과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 대한 그의 복음 전도자로서의 책무를 온전히 감당한 후에 그들이 거부함으로 이제 고린도의 이방인들을 향하여 사역하기로 작정하였을 때 그는 “이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구나.”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다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에게 돕는 자가 일어났습니다. 그 유대인 회당에서 충성스러운 신앙인이 사도 바울의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고 사도를 적극적으로 돕는 자로 나선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바로 디도 유스도였습니다. 디도 유스도는 로마서 16:23에 나오는 ‘가이오’라는 사람과 동일인으로 학자들은 거의 다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6:23 말씀에 보면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가이오가 사도 바울과 온 교회를 ‘돌보아준다’라고 하였는데 ‘돌보다’는 헬라어 단어는 ‘접대자’로서 사도 바울도 집에서 식사하며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교회의 예배를 그 집에서 드릴 수 있게 해주고 성도들까지도 대접해주는 일을 해주도록 적극적으로 나서 배려하였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디도 유스도의 전체 이름은 ‘가이우스 디투스 유스투스’라고 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충실하고 헌신적인 신자의 도움으로 사도 바울은 그 때부터 아무런 제지없이 디도 유스도 집안에서 머물면서 낮에는 밖에서 천막 만드는 일도 하고 들어오고 밤마다 그 집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주일에도 예배를 그 집에서 드리면서 고린도 전도 활동에 큰 동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은 회당장 그리스보가 유대인으로서 사도 바울의 복음을 듣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온 집안 식구들을 다 데리고 사도 바울에게 와서 세례를 받고 전적으로 복음을 듣고 믿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 외에도 고린도전서 1:16 말씀에 보면, 유대인 ‘스데바나’도 주님께 돌아와 온 집안이 세례를 받았고, 오늘 본문 말씀의 아래쪽에 있는 17절 말씀에 보면, ‘회당장 소스데네’도 주님께 돌아왔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의 사역하는 중에 적지 아니한 유대인들 그것도 여러 유대인 회당을 맡아 관리하는 여러 회당장들까지 예수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열매가 맺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8절 후반절에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는 말씀과 같이 고린도 지역의 수많은 이방인들이 이제 복음을 듣고 예수님께 돌아와 구원받는 자의 수가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대단한 상업 물류 중심의 대도시 고린도시에 도착하여 처음에는 의사 누가 한 사람만 대동하고 외로운 사역을 시작하면서 약하고 두려워하며 떨면서 어떻게 이 큰 도성에서 복음을 전할까 염려하던 사도 바울은 이제 폭발적인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그 거대한 물질 문명의 한복판에서, 그리고 이교 문화와 방탕한 세속 문화와 타락한 성문화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택한 영혼들을 건져내시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는 것은 언제나 경이로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복음을 먼저 받은 자로서 복음의 파수꾼으로서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영혼의 피 값을 내게서 찾지 않도록 우리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파할진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같은 동역자도 주셔서 힘을 얻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역을 감당할 때에 실라와 디도데처럼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복된 영적 소식을 전해줄 동역자들을 보내주시기도 하고, 성령의 불을 붙여주시는 계기를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강권적으로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전하지 아니하면 우리 마음이 답답하여 견딜 수 없는 불같은 열심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전하다 보면 핍박과 반대와 조롱도 받게 될 것이지만 분명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에 따르는 영혼의 열매를 거두게 해주실 것입니다. 바울의 초기 고린도 사역을 통하여 가이오 디도 유스도와 같은 유력한 협력자도 주시고 회당장 그리스도와 같이 온 가족이 주님께 돌아오는 열매도 주시고 허다한 사람들이 주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듯이, 우리에게도 분명히 영혼의 열매들을 많이 붙여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의 전망을 가지고 우리도 두렵고 떨리지만 복음 전도를 위하여 우리의 이웃을 찾고, 우리의 친구를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그 영혼들을 놓고 계속 기도합시다. 때가 되면 우리에게 큰 기쁨을 얻게 해주실 것이요 장차 지극히 영광스러운 면류관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