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오만과 편견 ③세계여행


엄마의 오만과 편견 ③세계여행
6.25 전쟁 난리통에 부산으로 피난을 가면서
리어커에 피아노를 싣고 갔다는 일화.
당시 1950. 6. 25 난리때
5살과 1살짜리 두 아들을 병으로 잃고,
부산 피난지에서 다시 아이를 임신,
그때 이미 4명의 아이가 있었고,
임신했던 그 아이 명철 낳고,
다시 100일만에 임신한 아이가
바로 오늘날 세계적인 지휘자가 된 정명훈이라고 한다.
7남매, 모두 9남매를 낳았고,
경화, 명화, 명훈 3남매 뿐아니라 그 많은 아이를 낳고, 키우며
그의 어머니는 엄청난 자식의 뒷바라지로 참 힘든인생을 사셨을텐데
과연 나는 두명의 자식을 키우는 것에 힘겨워 하는 걸 보면
나는 아직 멀었다.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하루 1달러씩 모은 돈으로
아들 명훈에게 피아노를 사줬다는 일화.
남편 봉급만으로 생활이 어려워 교사까지 지낸 그는
국밥장사를 하며 자식들 뒷바라지에 전부를 건다.
그 이원숙 여사가 자녀를 키우며 맹세한 4가지,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
둘째,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들에게 거짓말하지 않을 것,
셋째, 아이들의 실수를 야단치지 않을 것,
넷째, 칭찬거리가 아닌 것을 함부로 칭찬하지 않을 것,
분명 여사는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피아노의 소질이 보여 흔치 않던 자전거까지 사드리며,
이름난 선생님을 모셔 레슨을 시켰다고 했다.
아이 셋을 정트리오라 불리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로 자라나게 하고,
나머지 4명의 자녀도 교수, 사업가, 의사로...
어릴때부터 이 많은 아이들의 적성을 모두 찾아내고,
믿음으로, 성공으로 이끈 어머니.
정말 특별한 어머니이지 않은가.
그냥 느끼기만 해도 그 고생이 눈에 보여 눈물이 나고,
마냥 생각만 해도 힘들것 같아 부담스러운 많은 자녀의 수,
정말 그녀는 수퍼우먼이다.
요즈음 시대가 아니라 먹고 살기도 빠뜻했던 시절임이 분명한데
그렇게 치고 보면 나는 어떤 엄마일까?
나는 무슨 철학으로 아이들을 키워낼까?
나는 어떤 생각으로 내 두아이들을 인재로 만들수 있을까?
국밥집을 하며, 그 많은 아이도 키워냈는데
내가 하는 일은 국밥집보다 힘들지 않으며, 아이의 수도 반에 반밖에 안된다.
그러면 나는 절대 엄마의 자리가 힘들다고 투정부려선 안되고,
내 아이들이 커서 성공의 영광을 나에게 돌려받길 원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 영광을 돌리고 싶어 성공하는 아이로 길러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뭐든 제대로 하자.
레슨비를 벌기 위해 식당을 운영한 엄마가 있듯
배우는 것에 아끼지 말자.
내가 정녕 식당에서 설겆이를 해서라도
나는 아이들의 교육에 투자를 할 것이며,
내 딸 승현이가, 내 아들 수현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재능과 적성을 찾는데 그 돈을 아끼지 말자.
나는 그렇게 살자.
내 아이들은 나처럼
내가 우리 부모님을 원망했듯 같은 아픔은 대물림하지 말자.
하고 싶은 공부를 중단하게 하지 말 것이며,
배우고 싶어하는 것에 돈을 아끼지 말자.
피나는 노력으로 자식을 잘 키워내자.
재능이 있는 일을 찾아주고,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하며, 어떤 직업을 가지던지 본인의 선택에 맡기자.
그의 어머니를 본받자.
나도 밤새 영어 단어를 외우며,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나라에 갈때
함께 갈수 있는 엄마가 되자.
이원숙 여사는 44살에 이민을 가서 영어를 시작했듯
내가 언제 어느 나라를 가듯 두려워 하지 말자.
그렇듯 내 아이들의 재능을 찾자.
이 여사가 음악은 시기에 맞는 적기 교육이 중요하다 했듯
나는 내 아이들이 무엇을 배워야 할때
그 시기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자 맹세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이 여사를 생각하며,
버틸수 있었고 별난 엄마가 아니라 억척엄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엄마를 아는지 승현이와 수현이는
나의 노력과 헌신만큼 보다 더 잘자라 주었는지 모른다.
엄마의 자리에서 현명한 엄마가 되는 일,
늘 나의 화두였고, 삶의 목표였고, 목적이였다.
그렇게 나는 내 두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 떠날 수 있는 강한 아이로 만들었다.
큰 딸 승현이는 초1학년때 미국을 혼자 보냈다.
나의 오래된 친구가 있는 집에 혼자 비행기를 태워보내며,
더 불안한 건 나였지만, 당연한 것이지,
그것이 대단하다며 칭찬하지 않고 키웠다.
그렇게 방학마다 방치한 엄마 곁에서 더 방치해 놓는 것이 두려워
세상을 보여주는 시작을 했고,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 그렇게 준비했다.
중3까지 단 한번도 메이커 옷 사입히지 않았고,
남동생이 받아 입는다고 늘 유채색이 아닌 무채색 옷만 입혔다.
교복치마외엔 단 한번도 치마를 사 입히지 않았고,
긴머리는 단 한번도 색색깔의 헤어밴드나 헤어핀처럼
예쁜 것을 한번 사준적 없이, 그런 사소한 것부터 아껴서 경비에 보태였다.
과외나 학원 갈 돈으로 외국을 보여줬다.
한달에 50만원, 일년이면 600만원,
우리는 그 돈으로 하나의 나라라도 더 다니기를 준비했고,
빵구멍 난 양말을 신으면서,
8시간 이상의 비행경비에 보태는 것에 우리는 찬성했고,
큰 딸이 16살이 되도록 우리는 주말엔 집에만 있었다.
주말에 가족이 놀러 가서 쓰는 외식비와 경비, 놀이비용, 여행 경비를 줄여서
가까운 일본 한번 더 가는 것에 동의했었다.
참 고맙고, 감사한 아이들이다.
낯선 땅, 낯선 음식, 낯선 문화에 별 두려움없이 견디어 주면서
더운 날, 추운 날, 비행기 경비 싼 비수철에만 보내어도 좋아라 했다.
말이 좋아 외국이지 싸게 가서 공부하다 보면
쉬운 여행만은 아닐진데
내가 원했던 제안이었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여 주었고,
이제는 스폰지보다 더 흡수력이 높아져서 더 더욱 고마운 아이들이다.
나의 교육엔 몇가지 철학이 있다.
첫째, 모든 선택은 스스로에게 맡긴다.
둘째, 돈을 아껴 그 돈으로 더 많은 외국어를 배우게 하라.
셋째, 돈을 벌면 버는 쪽쪽 하나의 나라라도 더 보여주자.
크게는 이 세가지를 지켰다.
아니 이것은 철학이 아니라 원칙이며, 나의 자존심이다.
1.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하자.
2.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바보는 만들지 말라.
3. 되도록 못사는 나라는 절대 피하고, 잘사는 나라부터 보여주라.
그런 약속을 지켜내었다.
한국사회에 살면서 두 아이를 키웠지만,
유명한 학원이 어디인지 이름조차 모르고,
엄마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 단 한번도 모임에 가본 적이 없다.
왕따 엄마였으며 난 늘 정보가 없는 엄마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백번이고 잘 한 선택이다.
내 딸 승현이와 내 아들 수현이의 친구들 엄마 한명을 모르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닐테고,
중학생을 거쳐 고등학생이 되었건만
한국에 이름 난 학원이 무언지 어디인지 모르는 것이 바보는 아닐 것이다.
나는 내 두녀석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세상 모든 문화를 받아들일때 턱이 없기를.
어떤 나라, 어떤 인종, 어떤 종교의 사람들 만나는 것에 벽이 없기를 원한다.
이것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다.
이제는 글로벌이다.
국경이 없다.
영어를 기본으로 다국적 모국어를 익힌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부리고,
정작 이 아이들의 미래는 분명 지금과는 다르다는게 사실임이 분명하다.
지금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미래를 바라볼 줄 아는
안통을 익히는 법을 선물해 줘야 하며,
과학이, 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파생되고 진화하는지 느끼게 해야 하며,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의 이 아이들의 세상을 위해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알게 할지 분명히 짚어줘야 한다.
아이들의 눈으로 항상 미래를 들려주되,
아이들의 눈으로 항상 세상을 볼수 있게 해주어야 하며,
아이들의 눈으로 언어를 하나라도 더 왜 배워야 하는지,
깨치게 해 주어야 한다.
아직 아이들은 아이들이라서 자신의 길을 선택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므로
우리는 그 능력을 길러줘야 하되 아이들에게 강요만 해서는 안된다.
나 역시 두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고 같이 자라왔다.
나는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휼륭한 어머니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내 새끼들이 이 다음에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우리 엄마덕에 자신이 좀 더 행복했다'고
나에게 말해준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고,
내 두아이들에게 받는 평가가
죽어도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 여한이 없을 것 같다.
그것이 내가 휼륭한 어머니가 되기 보다
휼륭한 인재로 키워내야 하는 내 몫을 다해 낸 엄마이고 싶다.
세상 가장 아름다운 관계가 있다면
엄마와 딸, 엄마와 아들이 아닐까?
내 딸로 태어나 줘서 감사한 승현에게
내 아들로 태어난 준 것만으로 고마운 수현에게
이 세상 가장 뜨거운 단어
'엄마'라는 이름으로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