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 전문가 위원회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지난 20일 소득대체율(가입기간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을 45%·50% 올리는 경우까지 고려한 시나리오를 담은 국민연금 개혁 최종 보고서를 정부에 보고했다고 합니다.
재정계산위가 도출한 기금 전망 시나리오는 무려 24가지에 달해 개혁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헷갈린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재정계산위의 시나리오는 앞서 2018년 4차 재정계산 당시 국민연금 재정계산위가 개혁안을 두 가지로 압축한 것과 비교하면 12배나 많은 선택지를 정부에 제시한 것으로 '맹탕 보고서'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정부는 오는 27일 국민연금 개혁안을 담은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을 내놓을 예정이지만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에게 '고통을 분담하자'는 말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이번 개혁 논의도 결론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재정계산위는 지난달 공청회에서 연금 개혁 초안을 발표하면서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15%·18%로 △수급 개시 연령을 올해 63세에서 66세·67세·68세로 △기금 투자수익률을 0.5%포인트·1%포인트 올리는 안 등을 종합해 18가지 대안을 담았습니다.
이에 앞서 재정계산위가 복지부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보험료율이 9%·12%·15%인 경우와 △소득대체율이 45%·50%인 경우를 조합해 6가지의 연금 재정 전망 시나리오가 담겼는데, 소득대체율 인상 관련 전망을 어떻게 포함할지를 두고 논쟁이 불거지면서, 재정계산위는 소득대체율 상승 시나리오를 감안한 재정 추계를 발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재정계산위 내부에서 소득대체율에 따른 장기 재정 전망을 담는 쪽으로 논의를 결론지으면서 이번 최종 보고서에는 '연금을 더 받는 안'까지 포함됐습니다.
이에 따라 재정계산위가 도출한 기금 전망 시나리오는 총 24가지로 늘어났는데, 재정계산위 추산에 따르면 보험료율을 올리는 동시에 소득대체율도 인상하는 '더 내고 더 받는 안'을 추진할 경우 재정 추계 기간 연한인 2093년 내 연금 고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입니다.
이러니 수능의 킬러 문항처럼 답을 내기가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래 고민하고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면 문제의 정답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반대다.
마치 수학능력시험의 ‘킬러 문항’처럼 답을 내기 어려운 함정이 계속 나타난다. 국민연금개혁 얘기다. 올해 초만 해도 새 정부 출범 직후라 연금개혁에 대한 의지가 보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 흐지부지된 것이라 이번엔 꼭 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있었다.
보건복지부가 구성한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지난달 초 공청회를 열고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공개했다. 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현재 9%인 연금보험료율을 인상(12·15·18%)하고 연금을 받는 연령을 65세에서 66~68세로 높이는 방안이 제시됐다.
조합에 따라 18가지가 나오지만 큰 틀은 더 내고 늦게 받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재정계산위는 연금을 더 받도록 하는 소득대체율 상향 방안까지 추가해서 정부에 최종안을 낸다고 한다. 가능한 시나리오가 수십 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재정계산위의 보고를 받고 이달 말까지 국회에 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가 과연 수십 개의 시나리오 중 단일안을 마련해 국회에 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사실 국민연금개혁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할 첫 번째 수험생은 정부다. 그런데 수험생이 킬러 문항 내 달라고 요구하고 어려워서 못 풀었다는 명분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자칫 문재인 정부의 연금개혁 실패를 그대로 따라갈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12월 보건복지부는 4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했다. 1안이 소득대체율 40%, 보험료율 9%인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2안은 기초연금 강화, 3안 소득대체율 45% 보험료율 12%, 4안 소득대체율 50% 보험료율 13%였다. 하지만 "보험료 인상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말과 함께 연금개혁은 동력을 잃고 말았다.
국민연금개혁에는 재정 안정과 보장성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가 있다. 대체로 보수 쪽이 전자를, 진보 쪽이 후자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보장성 강화 안에 힘이 실렸지만 보험료율을 함께 올려야 한다는 벽에 막혔다. 돌이켜 보면 2019년 경사노위에서 다수 안으로 제시했던 소득대체율 45%와 보험료율 12%를 밀고 나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에 초점을 두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더 받는 것 없이 부담만 늘리는 방안이 그리 환영받지 못할 것은 뻔하다. 그래서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도 저울질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더 많은 돈을 줘야 한다. 당연히 연금 재정에 부담이 되고 보험료율 인상 폭은 더 높여야 한다.
일부에선 보험료율 인상 대신 국민연금에 국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한다. 최근 정부가 내년도 예산 편성을 하면서 재정 건전화를 위해 긴축 기조를 유지하자 사방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국민연금에 국가 재정을 투입하자는 주장은 재정 건전성 문제와 세금 신설 등 다른 논란을 부르는 것이며 문제를 더 꼬이게 할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는 실업과 출산, 군 복무 시 보험료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거나 납입 기간을 인정해 주는 크레딧 제도를 지금보다 확대함으로써 특정 계층이 실제 받아가는 연금을 늘리는 방식을 채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소득대체율 자체를 높여서 사적연금 등으로 노후 준비를 할 수 있는 중상류층에게까지 국민연금을 더 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수급 연령을 늦추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정년 연장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 다만 청년층 취업엔 악영향을 주는 것이라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 물가 상승 등 경제 상황도 어렵고 내년 총선까지 앞둔 상황이라 이런 개혁 추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5년 전 현행 제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당당하게 ‘대안 1번’에 올라갔는데, 고민에 지친 수험생이 선택할 수 있는 전형적인 답안이다.
어려울수록 원칙과 시급성을 따져야 한다. 복잡한 문제는 처음에 생각한 것이 맞는 경우가 많다. 많은 시나리오 중 정부가 단일안을 마련해 국민과 야당에 제시해야만 뭐라도 진전을 이룰 수 있다. 지난해 0.78명이던 합계출산율은 올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장성 강화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국민연금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내가 낸 돈을 나중에 못 받을 수 있다"고 불안해하는 젊은 세대에게 국민연금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중앙일보. 김원배 논설위원
출처 : 중앙일보. 오피니언, 김원배의 시선. '킬러 문항'이 돼가는 국민연금개혁
보험료율을 15%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릴 경우에는 기금이 2068년 고갈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소득대체율을 50%까지 끌어올린다면 기금 소진 시점은 2065년으로 당겨질 것인데, 앞서 재정계산위는 재정 추계 기간인 2023~2093년 중 적립 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국회 차원에서도 진행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회는 작년 10월 연금개혁특위를 출범시켰지만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고, 최근에는 이달 말까지인 활동 기한을 총선 후인 내년 5월 말까지로 늦추기로 했다고 합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종합계획에서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등에 대해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대략적인 구조적 개혁의 방향성 정도만 담길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도 지난 11일 국정감사에서 단일안 제시 여부에 대해 "장담할 수 없다. (그간) 4번의 계획안에서 한두 번은 방향만 제시했다"고 말했습니다.
‘쾌도난마(快刀亂麻)’의 결단이 없는 한 연금 개혁은 또다시 탁상공론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2회 영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