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위연(魏延) 이야기
김 광한
삼국지는 정사(正史)로 쓴 서진(西晉) 사람 진수의 것이 있고 명대 사람 나관중이 쓴 삼국지 연의(演義)가 있습니다. 우리가 읽는 삼국지는 나관중이 쓴 삼국지 연의이지요.진수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고 나관중은 연의란 말 그대로 여기에 작가의 고도한 상상력을 덧붙여서 읽기 좋게 살과 이야기를 다시 만들었습니다.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삼국지 연의에서 눈여겨 볼 것은 배신과 첩략이지요.삼국지 연의를 번역한 분은 월탄 박종화 선생, 김광주 선생, 요즘의 이문렬 작가 등 수많은 사람들이 번역을 하고 다시 작가의 상상을 넣어서 각색을 했지요.
처음으로 제가 삼국지를 읽은 것은 일본 작가 길전영치(吉田英治)가 쓴 것이고 그 다음 박종화 선생, 그리고 김광주 선생 것을 읽엇는데 제일 문장이 재미있는 것은 김광주 선생 것이었습니다. 삼국지가 끝나갈 무렵 등장하는 인물이 위연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과 비슷한 분들의 요즘 세상에 많은 것같아서 잠깐 소개를 할까 합니다.위연은 촉나라의 장군이고 용맹이 대단했으나 성품이 오만하고 편협하고 반골이면서 반역의 상을 하고 있었지요. 그는 유비에게 귀순하면서 이런 말로 자신을 나타냈습니다.
| "조조가 천하를 들어 쳐들어온다면 왕을 위해 그를 막을 것이고, 부장이 인솔하는 10만 명을 이르게 한다면 왕을 위해 그들을 섬멸할 것입니다." | |
라 하였습니다. 위연은 용맹하고 사졸을 잘 양성했지요. 그러나 자부심이 강하고 오만하여 사람들의 꺼림을 받았으며, 다만 양의만이 위연을 용납하지 않아 서로 불과 물 같이 불화했습니다. 제갈량이 한중에 주둔하면서 독전부로 삼고 승상사마, 양주자사로 임명했습니다. 230년, 오의와 함께 위의 후장군 비요 옹주자사 곽희와 양계에서 싸워 대파해, 전군사·정서대장군·가절에 임명되고 남정후로 봉해졌습니다. 위연은 제갈량을 겁쟁이라고 말하며 그가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하게 한다며 늘 불만을 가졌습니다. 《삼국지》의 주석으로 인용된 어환의 《위략》에 따르면, 제갈량의 북벌 당시, 하후무가 장안을 수비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겁이 많고 지략이 없다며 자오곡(子午谷)을 통해 장안을 침공하자는 계책을 내었으나 제갈량은 이를 위험하다고 여겨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갈량이 위독해지자, 양의, 비의, 강유를 불러 자신이 죽은 뒤 철수할 것을 명하고, 위연은 뒤를 끊게 하며, 혹시 위연이 따르지 않아도 출발하도록 했다. 과연 제갈량이 죽고 군대가 철수하게 되어 비의의 방문을 받자, 양의를 따르기 싫다는 핑계를 대며 철수를 거부했습니다.그러나 군대는 철수했고, 위연은 대노하여 자기 부대를 이끌고 일찍 남쪽으로 앞질러 행군하면서 길을 불태워 지나지 못하게 하여 촉군 본대를 타지에서 전멸시킬 뻔한 만행을 저지릅니다. 거기에 위연은 양의가 모반을 일으켰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리고, 이어서 양의도 반박하는 상소를 올립니다.
촉 조정은 제갈량의 명령 대행자 중 한명인 양의를 비의와 강유 등이 양의를 보증하자 위연의 반란을 파악하고, 장완이 직접 토벌군을 이끌고 위연을 토벌하러 나섰으며 간신히 길을 만든 촉군 본대와 합류합니다.왕평은 위연과 마주치자 위연의 군사들을 향해 '공(제갈량)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얼마 안 돼 아직 그 육신에 온기가 남아있는데 너희들은 이게 무슨 짓이냐!'며 꾸짖자 위연의 군사들은 위연의 잘못을 깨닫고 뿔뿔이 흩어져버려 위연은 졸지에 혼자가 되고 자식들과 달아나다 마대에 의해 참수되며 최후를 맞습니다. 상관앞에서는 가장 충성하는 체 하지만 뒤에서는 칼을 들이대는 자, 그리고 오만스럽고 남을 업신여기는자, 그것을 흔히 반골(反骨)이라고 하지요.이런 반골 같은 자를 만나면 지도자가 위험에 빠지고 경영자가 졸지에 망합니다.세상의 이치가 그런 것입니다. 요즘의 정치 풍토가 그렇습니다.난세에는 간웅들이 많이 설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