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쎈 마누라와 기가 약한 남편!-이은집소설가
낭독-이의선
해설 : 어느 시인은 7월을 가리켜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고 낭만적으로 읊었지만, 지구온난화 탓일까? 요즘 7월은 때이른 무더위로 짜증나는 달일 뿐이다.
마누라 : "여봇! 좀 비켜요! 더워 죽겠구먼, 무슨 신혼부부라고 이리 덤벼든디야?"
해설 : 애들은 방학을 맞아 피서여행을 떠났고, 모처럼 조용한 집안에서 텔레비전이나 시청하려고 거실 소파에 앉으니까. 몇년 사이에 하마처럼 살이 찐 마누리가 민소매 셔츠에 핫팬티 차림으로 있다가 퉁명스럽게 쏘아왔다.
남편 : "아따! 덤벼들긴 누가 덤벼든다구 그래? 티브이 좀 보려구 그러지!"
마누라 : "아이고! 우리집두 이제 금주네 쪽 났네! 금주 아버지가 퇴직하구선 애국가 나올때부너 애국가 끝날때까지 테렐비전 앞에서 산다는디...! 흐유!"
해설 : 그러자 마누라는 하얗게 눈까지 흘겨뜨며 이기죽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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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남편 나홀로씨는 마누라가 언제부터 이처럼 기가 쎄졌는지,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다. 맨처음 만나 맞선 볼때는 분명히 수줍음까지 타던 얌전한 아가씨였다. 중국집에서 만나 짜장면을 먹었는데, 얼마나 조심스레 먹던지, 짜장면발을 한올씩 끌어올려 입안으로 가져갔던 것이다. 그리고는 이런 질문을 해서 나홀로씨를 어처구니없게 했으니...!
마누라 : "저 지금 먹은 수제비에 팥죽같은 것 넣은, 이 음식 이름은 뭐죠?"
남편 : "아! 예! 짜장면이라고 합니다."
마누라 : "어머! 그래요? 별로 짜지 않은데 짜장면이네요?"
해설 : 이처럼 순박하던 마누라가 결혼 3년만에 첫아이를 낳자, 조금씩 달라져갔다. 아기를 커다란 함지박에 담가 목욕시킬 때였다.
마누라 : "아빠! 타올좀 가져와요!"
남편 : "알았어! ...여기!"
마누라 : "어머! 애기가 쉬아했네! 아빠! 기저귀좀 갈아줘요!"
남편 : "으응? 그래? 기저귀 어디에 있는데?"
마누라 : "경아야! 엄마 지금 바빠! 아빠랑 놀아!"
남편 : "아빠도 지금 바쁜데...! 참! 경아야! 이리와!"
마누라 : "여봇! 두 애가 생겼으면, 하나는 거둬 줘야지! 나 혼자 어쩌란 말야?!"
해설 : 이렇게 점점 언성이 높아가더니, 결혼 7년만에 처음으로 내집 마련을 할때였다. 중도금까지는 그럭저럭 마련했는데, 잔금날짜가 다가오자 마누라가 남편 나홀로씨에게 물어왔다.
마누라 : "여보! 어디서 한 삼천만원만 빌려올 데 없우?"
남편 : "글쎄! 갑자기 어디서 그런 큰돈을...?"
해설 : 남편 나홀로씨가 눈만 꿈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짓자, 마누라가 신경질적으로 쏘아왔다.
마누라 : "흥! 내 이럴 줄 알았다구! 사글세에서 처음 전세 갈때처럼, 또 우리 친정집 신세를 지게 됐구먼! 흐이유! 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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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그리고 결혼생활 20여년을 넘어 50대 초반이 되자, 이제 마누라의 말빤치는 더욱 위험수위를 향해 치달았으니...! 어느 날엔가 남편 나홀로씨가 일찍 퇴근해 돌아오자, 마누라가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생긴듯 신이 나서 떠벌였다.
마누라 : "호호호! 여보! 내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글쎄 부부싸움을 할때, 아내의 말을 들어보면, 평소 그 부부의 관계를 알 수 있대지 뭐야! 호호호!"
남편 : "무슨 얘긴데 그래? 허참!"
마누라 : "에, 첫번째 남편의 벌이가 좋고, 정력도 좋은 경우엔, 마누라가 이렇게 대꾸한대요! <그래! 잘났다! 너 정말 잘 났어!> 두번째는, 남편이 돈은 잘 벌지만 정력이 별로인 경우! <야! 돈이면 다냐? 돈이면 다야?> 셋째 정력은 좋지만 벌이가 시원찮은 경우! <네가 짐승이지 사람이냐?> 마지막 네번째는, 돈도 못벌고 정력도 별볼일 없는 경우에는 <네가 나에게 해준게 뭐가 있니? 엉? 있으면 말해 보라구!> 호호호! 글쎄 소영엄마가 이런 우수갯소리를 하지 뭐야!"
해설 : 순간 남편 나홀로씨는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마누라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다음 순간 마누라가 아주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물어왔던 것이다.
마누라 : "여보! 근데 당신은 몇번째에 해당하지? 호호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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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남편 나홀로씨로 말하면, 초중고 시절엔 반장에, 학생회장, 운동권에서까지 활동할만큼 기가 센 학생이었고, 사회에 나와서도 직장에서는 펄펄 잘 나가는 엘리트였는데, 언젠가부터 차츰 기가 빠져나가서, 명예퇴직을 앞둔 이제는 꺼져버린 잿불처럼 폭삭 사그라든 것이다. 그리고 기어이 돌발사고가 발생했는데,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군대시절의 전우와 술자리를 하고서, 귀가길에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만에야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니, 그는 병상에 누워 있고, 곁에는 마누라가 씩씩하게 버티고 있다가, 이런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마누라 : "아유! 남편 늙으면 똥싸고 누워 있는다더니, 워쩜 당신은 벌써부터 그런디야? 대체 누구랑 을매나 술을 퍼마셨길래, 택시를 막아섰다가 이 지경을 당했냐구? 엉?"
해설 : 순간 남편 나홀로씨는 마누라의 기세에 눌려, 자초지종 사고 전말을 형사앞의 피의자처럼 죄다 술술 불기 시작했다.
마누라 : "아이유! 죽잖았으니 다행이지! 뭘! 치료비야 보험으로 되구! 직장이야 어차피 짤릴 것! 편한 마음으로 누워 있어! 내 말 알았지?"
해설 : 그러자 남편 나홀로씨는 마치 그의 아들이 포경수술로 입원했을 때처럼, 마누라에게 엉석부리듯 대답했다.
남편 : "알았쪄! 이참에 휴양하러 온셈치구, 푹 쉴께잉!"
해설 : 그러면서 하마같은 마누라의 몸뚱이를 향해 두 팔을 내뻗었다.
마누라 : "아이구! 그래! 이 얼뚱 큰애기야! 이제야 마누라 소중한 것 알겄는감? 호호흐흐흐!"
해설 : 아아! 이 세상의 남편들이여! 세월이 갈수록 마누라의 기는 쎄지고, 남편의 기는 약해진다고, 노여워하거나 한탄하지 말라! 마누라가 늙고 병들어 똥싸고 누워 있을 때, 남편들은 간호하기가 힘들지만, 마누라들은 이런 병든 남편을 기꺼이 수발하면서, 더욱 기가 쎄어지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