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고향 옆집에 사시던 임 진천형님께서 보내주신 좋은 글을 공유합니다 💕애지중지 키운 손주💕 며느리가 손자를 연년생으로 출산을 하여 육아가 힘드니까 할매 할배가 큰 손자를 데려다가 초등핵교까지 키워서 돌려 보냈다. 자식 키울때는 몰랐던 짜릿한 사랑으로 옥이야 금이야 애지중지키웠다. 명절에 만나면 너무 이뻐서 끌어안고 뽀뽀를 하고 주머니 털어서 용돈 챙겨주시고 헤어질 땐 늘상 아쉬워했던 할배와 할매! 세월이 흘러갈수록 점점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었다! 손자녀석 얼굴이 아련히 떠오를때 마다 전화라도 하면 며느리가 받아서 "아버님 영식이 학원갔다 와서 지금 자고있어요" "아버님 저 지금 바빠요. 다음에 전화 드릴께요" 하면서 전화는 끊겼다! 더 많은 세월이 흘렀다! 손자 놈이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할배는 너무 기뻐서 친구들 한테도 자랑을 하면서 막걸리 파티도 벌리고 신이 났다! 고령의 나이에 시력 청력도 정상이 아닌데 갱상도 서부 갱남 끝자락에서 서울까지 혼자 나들이 하기가 부담이 된 할배는 서울사는 동생에게 전화를 한다! "야 야! 요새 니가 보고싶다" 동생이 형님의 목소리가 아련하여 차를 끌고 내려가서 삼일 동안 형님 내외를 모시고 함께 즐기다가 상경할려는데?? 형님 할배 왈! "야야 나도 서울가고 싶다! 손자 놈도 보고싶고" 하시면서 울먹거린다! 그래가! 함께 상경하여 다음날 형님 할배 아들집에 갔더니 손자 녀석은 친구들하고 어울려 놀다가 늦은 시간에 들어오면서 쇼파에 앉은 할배를 보는둥 마는둥 지 방으로 들어간다! 며느리가 민망한듯 "야 영식아! 할아버지, 작은 할아버지 오셨는데 인사드려야지" 손자는 다시 나오더니 안녕하세요! 고개만 꺼떡하고는 다시 들어갔다! 그래서 내가 옆에서 보니 너무 속상하기도 하고 할배형님이 불쌍해보여서, "야! 영식아! 할아버지가 너 보고 싶어서 멀리서 오셨는데 할아버지 옆에 와서 껴안고 뽀뽀 한번 해드려야지" 큰소리로 외쳤더니 마지못해 나와서 할아버지 옆에 멋적게 앉아서 TV만 보고 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저녁을 먹고 내가 나오는데 형님께서 "나도 같이 갈란다" 하시면서 따라 나오신다! 며느리는 안절부절 머뭇거리고 할배 아들이 "아부지! 오랫만에 먼길 오셨는데 주무시고 숴었다 가세요" 하니까? 형님 왈 "댓다 마!~ 드러가이라! 나는 니 삼촌 집에 가서 자고 낼 갈끼다" 돌아오는 길에 조수석에 앉아서 창 밖만 바라보시는 노형님의 눈시울이 붉게 변했다 "동생아! 엄마 아부지가 보고싶다" 하시면서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이게 현실입니다. 자식, 손자, 다부질 없는 것입니다. -퍼온 글- |
| 지인 李 相龍님께서 보내주신 좋은 글을 공유합니다. ♥️타이타닉호 비밀♥️ ♧ 좋은 글 - 생존자가 밝힌 타이타닉호의 비밀 ♧ - 이 이야기는 '찰스·래히틀러'가 공개한 것이다 - 영화 <타이타닉호>를 통해 잭과 로즈의 러브스토리는 널리 알려졌지만, 그 외 타이타닉호에 대해 더 알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과연 그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1912년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닥쳐 침몰하는 과정은 영화로 재연됐습니다. 하지만 영화만으로 실제 상황을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생존자인 부선장은 오랜 세월 침묵 끝에 드디어 사고 당시의 이야기를 공개했습니다. 1912년 4월 14일은 공포의 날이었습니다. 사고로 1,514명이 사망했고 710명이 구조되었습니다. 사고 당시 38세였던 타이타닉호의 이등 항해사 '찰스·래히틀러'씨는 구조된 승객을 책임지기 위해 선원 중 유일하게 구조된 승무원이었습니다. 아래는 '찰스·래히틀러'씨의 타이타닉호 참사의 자세한 사정을 담은 17페이지 분량의 회고록입니다. 선장은 침몰을 앞두고 여성과 아이를 먼저 구조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많은 여성승객들이 가족과의 이별 대신 남아있기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높은 소리로 ‘여성과 아이들은 이리 오세요!’라고 불렀지만, 가족을 버리고 혼자 구명보트에 오르려는 여성과 아이는 몇 명 없었습니다. 래히틀러'씨는 "살아 있는 동안 그 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첫 구명보트가 바다로 내려가고, 저는 갑판 위에 있던 한 여성에게 말했습니다. “부인, 어서 구명보트에 오르세요!” 그녀는 뜻밖에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니요, 저는 배에 남겠어요.” 이 말을 들은 여성의 남편이 “그러지말고 어서 타세요! 여보!”라고 말하자, 여성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혼자 가지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이 배에 남을 거에요.” 그것이 제가 본 그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애스터 IV(당시 세계 최고 부자)씨는 임신 5개월 된 아내를 구명보트에 태워 보내며 갑판 위에 앉아, 한 손에는 강아지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시가 한 대를 피우면서 멀리 가는 보트를 향해 외쳤습니다. "사랑해요 여보!" 승객들을 대피시키던 선원 한 명이 '애스터'씨에게 보트에 타라고 하자, '애스터'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사람이 최소한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자리를 곁에 있던 한 아일랜드 여성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배의 파편들에 의해 찢겨진 '애스터'씨의 시신을 생존자 수색 중이던 승무원이 발견했습니다. 그는 타아타닉호 10대도 만들 수 있는 자산을 가진 부호였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으로 양심을 지킨 위대한 사나이의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성공한 은행가였던 '구겐하임'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도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로 갈아 입으며 이처럼 말했습니다. “죽더라도 체통을 지키고 신사처럼 죽겠습니다.” '구겐하임'씨가 아내에게 남긴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배에는 나의 이기심으로 구조받지 못하고 죽어간 여성은 없을 것이오. 나는 금수만도 못한 삶을 살 바에야 신사답게 죽을 것이오.” 미국 메이시(Macy’s) 백화점 창업자 '슈트라우스'씨는 세계 2번째 부자였습니다. 그가 어떤 말로 설득해도 아내 '로잘리'씨를 구명보트에 태우지 못했습니다. 아내 '로잘리'씨는 “당신이 가는 곳에 항상 함께 갔어요. 세상 어디든지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라며 남편을 두고 배에 오르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8번 구명보트의 책임 선원이 67세의 '슈트라우스'씨에게 “누구도 어르신이 보트를 타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구명정 탑승을 권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슈트라우스'씨는 단호한 말투로 “다른 남성들보다 먼저 보트에 타라는 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라며 생사의 순간에도 초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63세의 아내 '로잘리'씨의 팔을 잡고 천천히 갑판 위의 의자에 앉아 최후의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현재 뉴욕 브롱크스에 '슈트라우스'] 부부를 기리는 기념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바닷물로 침몰시킬 수 없었던 사랑’> 프랑스 상인 '와트열'씨는 두 아이를 보트에 탄 여인들에게 부탁하고 배 위에 남아 아이들과 작별했습니다. 두 아들은 이렇게 구조되었고 세계 각지의 신문사들이 어머니를 찾을 수 있도록 연달아 사진을 실어주어 어머니와는 재회할 수 있었지만, 배에 남겨진 아버지는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남편과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리더파스'씨는 남편을 꼭 껴안고 혼자 살아남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남편은 주먹으로 그녀를 기절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명보트 안이었습니다. 그녀는 평생 재가하지 않았으며 남편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리스 로잔의 생존자모임에서 '스미스' 부인은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한 여성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제 두 아이가 구명보트에 오르자, 만석이 돼서 제 자리는 없었습니다. 이때 한 여성분이 일어나서 저를 구명보트로 끌어당기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올라오세요. 아이들은 엄마가 필요합니다!” 그 대단한 여성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위해 <이름 없는 어머니>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희생자 중에는 억만장자 '아스테드', 저명 신문가 '헴스테드', 육군 소령 '바트', 저명 엔지니어 '루오부어' 등 사회의 저명인사가 많았지만, 이들 모두 곁에 있던 가난한 농촌 부녀들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주요 승무원 50여 명 중 구조를 책임졌던 이등 항해사 '래히틀러' 외 전부 자리를 양보하고 배와 함께 생을 마감했습니다. 새벽 2시, 각자 도망가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1번 연산사 '존·필립스'씨는 여전히 전산실에 앉아 마지막 순간까지 ‘SOS’를 입력하며 자신의 보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선미가 물에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삶과 죽음의 마지막 순간, 사람들이 서로에게 외쳤습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날, 우리 모두 위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줬습니다. 제가 당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습니다. 일본 철도원 차장인 '호소 노텍스트'씨는 여장을 한 채 여성과 어린이들로 채워진 10번 구명보트에 올랐습니다. 그는 귀국 후 바로 퇴직을 당했습니다. 모든 일본 신문사와 여론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으며 그는 십여 년 뒤 후회와 수치로 가득 찬 삶을 마감했습니다. 1912년 타이타닉호를 기리는 자리에서 타이타닉호를 건조한 선박회사 'White Star Line'는 희생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성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해상 규칙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의 행동은 약자들에 대한 배려이자, 그들의 개인적인 선택이었습니다.” ‘Unsinkable’의 저자 '다니엘 알란 버틀러'는 약자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삶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치고 혼자 남겨져 돈과 유산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죽음 혹은 삶의 어떤 고난과 마주친다 해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한 분들의 희생정신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무엇이 이 분들로 하여금 목숨을 던지는 고귀한 결단을 내리게 하였을까요? 사랑, 희생, 배려, 품격, 명예? 아니면, 인간적인 성품...... 매일 만사에 허덕이는 우리 삶,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갈까요, 지금 내 삶을 지탱하고 이끌어가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 당장 내인생의 타이타닉호가 침몰해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요? 내가 이 세상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에서 놓아서는 아니될 가치는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답하며, 잊었던 내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title="타이타닉 침몰의 진실과 가장 유명한 희생자들의 숨겨진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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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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