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들의 엑소더스
이 기 식
어릴 적, 빠진 이빨을 지붕 위로 던지던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새가 그것을 물어가고 새것으로 갖다준다고 했다. 그런데 왠지 앞니 두 개만은 너무 큰 것으로 가져다주었다. 남들이 토끼 이빨이라고 놀렸다. 더욱 속상한 것은 예쁘다고 소문난 동갑내기 사촌 누나까지 생글거리며 거들기 때문이였다. 그녀 앞에선 함부로 웃지도 못했다. 일찌감치 이빨 콤플렉스가 생긴 이유다.
이빨은 음식을 꼭꼭 씹어서 소화가 잘되게 도와준다. 그뿐만 아니라 얼굴 모양을 균형 있게 만들어주고 정확하게 말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사자나 호랑이, 곰 같은 야생동물의 이빨은 무기의 역할이 먹는 것보다 우선이다. 인간도 동물이기 때문에여차하면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남학생 수가 여학생보다 많아 몇 명을 추려 인원이 모자란 여자반으로 보냈다.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남학생 녀석들은 여학생반에 있는 남학생만 보면, "야! 치마 입고 다녀"라고 낄낄대며 놀려댔다.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부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난히 교장 아들인 박영천이가 나를 많이 놀렸다. 그날도 복도에서 또 놀리기에 달려들었으나 역부족. 분한 김에 앉은 채로 그의 허벅지를 물어뜯었다. 나중에 보니 선명한 이빨 자국과 함께 주위가 온통 퍼렇게 멍들었다.
선생님은 나를 남학생반으로 끌고 가서 항상 들고 다니시던 막대기를 개처럼 입에 물게 하 고, 수업 시간 내내 교탁 위에 서 있게 했다. 수업 시간이 끝나자마자 교감 선생님을 불쑥 찾아가, 남학생반으로 옮겨 달라고 울먹이며 사정하였다. 항상 미소를 띠고 계신 분이었다. 다음 날, 남학생반으로 옮겨졌다. 이빨을 무기의 용도로 쓴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궁지에 몰리면 남을 물 수 있다는 비장의 무기를 은연중에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스무 살 때로 기억하고 있다. 광화문 학사주점에서 친구 몇 명과 막걸리를 꽤 마시고 길을 건너기 위해 광화문 지하도로 내려갔다. 한 친구가 장난으로 나를 밀치는 바람에 술에 취해있던 나는 시멘트 기둥에 심하게 부딪혔다. 덕분에 앞니가 깨져 시간이 지나면서 시커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치과의사와 상의하니, 외관상은 신경 쓰이겠지만 그냥 계속 사용해도 지장은 없다고 했다. 내가 뽑아버리고 고 싶어 하는 것을 눈치챈 듯한 어조였다. 그러나 나는 차제에 이빨에 대한 콤플렉스를 뽑아버리기로 작정했다.
이빨 모양 때문에 열등감을 가진 내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커가면서 알았지만 나 같이 큰 떡니를 가진 친구들도 꽤 있었는데 말이다.
일본 출장 중에 전철을 타고 동경대학 앞을 지날 때였다. 학생 몇 명이 우르르 올라타더니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한 학생의 커다란 앞니가 앞으로 직각으로 뻗치고 있어서 입술이 닫히지 않는데도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주위에서 같이 웃고 있는 다른 학생들의 이들을 보니 대부분이 뻐드렁니다. 가방을 보니 동경대학생들이었다. 천재들일수록 이 모양은 그다지 신통치 않은 걸까.
생니를 뽑은 뒤부터 이빨들의 엑소더스가 시작되었다. 연구소 생활에 오랫동안 젖어있다가 일반기업으로 옮기고 나니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의외로 신경 써야 할 일, 타협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이 생겼다. 긴장을 오래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라 술 찾는 기회가 점점 많아지자 수시로 잇몸이 붓고 이가 흔들리게 되었다. 물론 잇몸이나 치아가 태생적으로 부실하기도 했다. 이를 빼거나 큰 치료를 하면 대개 3일 이내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의사가 권고한다. 그런데 하루만 지나면 못 참고서 또 마셨다. 퇴근 시간이 되면 술 마실 친구를 찾거나 없으면 혼자서라도 술집을 찾았다.
치아로 가장 고생한 사람을 들라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일 것이다.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가 57세였는데, 독립전쟁 같은 큰일을 치루느라 얼마나 고심했는지 치아가 1개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 의치에 따라 지폐에 그려진 얼굴 모양조차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의치를 나무나 하마의 이빨로 만들어 스프링으로 연결했던 시절의 일이다.
컴퓨터와도 관련된 블루투스는 노트북·스마트폰과 오디오기기 사이를 무선으로 연결해주는 기술이다. 덴마크 왕인 하랄 블로탄Halald Blatand, AD 935~986)이 스칸디나비아를 통일시켰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빌려 썼다고 한다. 블로탄은 영어로 푸른 이빨Bluetooth 이라는 뜻이다. 충치투성이인 그의 이빨 색깔이 퍼렇고 검었다고 한다. 더구나 그때는 지금처럼 금이나 은, 아말감으로 의치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던 것도 원인이다. 한 150여 년 전부터 합금을 사용한 치료용 기술이 생겼다고 한다.
생니를 뽑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탑골공원 앞에서 우연히 박영천과 만났다. 서로 무슨 감정이 교차했는지 오랫동안 손을 잡고 있었다. 이상하게 서먹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미국 영화배우 매튜 맥코너히를 닮아 남자답고 늠름했다. 싸울 만한 놈하고 싸웠다는 자부심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친척이 운영하는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여유도 있는 것 같았다. 술집에도 같이 자주 다니는 동안, 서로 싸웠던 사실을 생각해본 적도, 말한 적도 없었다. 아직도 물릴까 봐 무서워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아르헨티나에서 탱고를 즐기면서 살고 있다.
이(齒)는 나이(年齡)를 의미하는 한자에도 들어가 있다. 나이와 치아의 관계를 알려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치아도 부실해진다는 의미다. 치아가 강해야 인생도 강하게 산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겠다. 강인한 사람을 '이빨도 안 들어가는 사람'이라 부르고, 무엇이든 간에 끝까지 물고 늘어져 결말을 보는 사람을 '상어 이빨'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내 이빨이 약해서 그랬는지 물어야 할 때도 제대로 물지는 못하고, 항상 그보다 덜한 차선책만 선택하며 살아왔다는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영구치 30여 개 중에서 남아있는 본래의 치아는 몇 개 안 된다. 그런데 아직도 엑소더스는 진행 중이다. 단골 치과의사는 내 입 속으로 외국산 자가용 한 대가 들어갔다고 농담한다. 아무리 비싼 임플란트나 의치도 내 것이란 느낌이 별로 안 든다. 잇몸과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런데, 아서라, 이런 생각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분수를 알아야 한다. 이빨들이 알아차리고 또 엑소더스를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그나마 이스라엘인들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 땅으로라도 갔지만 탈출한 내 이 빨들은 어디로 갈른지. 나하고 평생을 같이 한 사이라 걱정이 된다.
<한국산문, 2023.8 vol.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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