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오늘 아침 매경 기사를 한번 보자.
[러시아가 에스토니아 지도자들을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렸다. 에스토니아에 있는 구소련(러시아 전신) 기념물을 철거하는 등 자국을 모독했다는 이유다. 에스토니아가 자신들과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13일(현지시간) 러시아 내무부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는 러시아 형법에 따라 수배 중인 상태다. 러시아는 타이마르 페테르코프 에스토니아 국무장관도 수배 명단에 포함시켰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칼라스 총리 등은 역사적 기억을 모욕하는 결정을 하고 러시아에 적대적 행동을 한 혐의로 수배됐다”고 밝혔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텔레그램에 “칼라스 총리와 페테르코프 장관을 소련 군인 기념비 파괴 혐의로 수배자 명단에 올렸다”고 적었다. 최근 칼라스 총리는 과거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성과를 기리기 위해 에스토니아에 건립한 군인 위령비, 탱크 모형 기념물 등을 철거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에스토니아 국민 사이에 커진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지배를 받다가 1990년 초반 독립한 나라다. 칼라스 총리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와 러시아 제재의 필요성을 수 차례 표명한 점도 러시아가 그를 수배자로 지정한 배경으로 보인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은 “칼라스 총리는 러시아가 서방에 위협을 준다는 등 러시아 혐오 발언을 반복적으로 해왔다”고 보도했다. 독일 세계경제연구소(IfW)에 따르면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에스토니아는 국내총생산(GDP)의 1.309%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GDP 대비 지원 규모에서 전 세계 3위다.]
여기서 에스토니아는 발트3국중의 하나로 발트해연안에 붙어있는 제일 북쪽에 위치한 나라다. 면적이 45,226km2 이고 수도는 탈린이다. 가운데 있는 나라가 라트비아인데 면적은 64.589km2, 수도는 리가, 제일 아래에 위치한 나라가 리투아니아로 면적은65,200km2이고 수도는 빌뉘우스이다. 세 나라 면적을 다 합해도 우리나라보다 작은17015km2에 불과하다. 인구도 710만명으로 서울인구보다도 적다.지형은 대부분의 지역이 매우 평탄하며, 가장 높은 곳도 300m 가량에 불과하다. 기후는 냉대에 속하여 춥고 긴 겨울을 가지고 있으나, 대서양과 발트해의 영향도 강하므로 위도에 비해서는 비교적 온화하여, 같은 위도의 러시아 내륙에 비해서는 훨씬 따뜻하다. 나는 십여년전에 제3차 유럽자동차여행중 폴란드에서 리투아니아 빌뉘우스,라트비아 리가, 에스토니아 탈린을 거쳐 러시아 생트 페테르부르크로 여행하면서 발트3국을 거쳤다.
발트3국의 역사를 보면 한자동맹때(13세기~17세기)인 1370년경 전성기를 맞았으나 15세기 이후 신항로 개척으로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여 17세기에 소멸되면서 주변 강대국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발트 3국의 공동 역사는 13세기경 독일계 검의 형제 기사단(Sword Brethren)이 기독교와 봉건주의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덴마크·스웨덴·폴란드·러시아·독일이 발트 3국 지역을 두고 각축을 벌였다.
1582년에는 에스토니아 북부를 제외한 발트 3국 지역 거의 전체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19세기에는 이 지역이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독일인 제후들과 스웨덴인 지배층들이 있었으나 이들이 러시아 황제에게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자치권을 받아 독일 문화가 많이 퍼졌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발트 3국은 독립국이 되었다. 그러나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나치 독일은 소비에트 연방이 발트 3국 거의 모두를 합병하는 것에 동의했다. 단기간의 소련 통치 후 독일이 침공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는 다시 소련이 침공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발트 3국은 다시 소련에 합병되었다. 2차대전 종전 후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발트 3국은 소련의 점령하에 있었다. 이들은 1990년에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소련은 1991년 9월 6일 발트 3국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발트 3국은 신생국이 아니라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 존재했던 독립국이 복원된 것이라고 자처했다. 이로써 그들은 냉전 시대 소련의 지배가 불법 점령이었다는 그들의 주장을 재차 강조하였다. 오늘날 발트 3국은 자유 민주주의 의회 공화국으로 시장 경제는 고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2002년 발트 3국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와 유럽 연합(EU)에 가입을 신청함으로써 오랜 정치적 숙원이자 소련 탈퇴 후 주된 목표이던 서유럽과의 통합 달성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리하여 2004년 3월 29일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2004년 5월 1일에는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리투아니아의 남쪽 해안측에는 러시아의 역외 땅인 칼린그라드가 남아있다.
1989년 8월 23일 이 세 나라 국민 200만 명이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Vilnius)에서 에스토니아(Estonia) 탈란(Tallinn)까지
627km(370 ml)의 길에 손을 잡고 인간띠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길을 발트의 길(Baltic road/Baltic chain)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