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등산팀의 일원인 조빠가 개인사정으로 금정산 등산에 불참했다.
그는 해운대 마린시티에 살면서 매일 동백섬을 세 바퀴 돌 정도로
걷기에는 아주 충실한 사람이다. 산대장이 궁금해서 다시 전화를 해봤더니
부친 제삿날이라고 하더란다. 마누라를 끔찍이 사랑하여 제사음식 준비하는데
도와주어야 한다며 동기들 모임에 빠진 것이다.
제사 풍습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몰라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대사가 관혼상제이다. 관혼상제에는 일정한 룰 즉 예와 법이 있다.
예는 상당히 까다로와 공자도 잘 몰라 전문가에게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근래에 와서는 정부에서도 간소화 조치를 내릴 정도로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없는 집에 제사 다가온다'는 말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데 조상제사까지 더욱 힘들게 한다는 말이다.
제사는 지방마다 지내는 풍습이 다르고 또 집안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이조때 사색당파가 심해 제사까지도 달리 지내게 됐다고도 한다.
'남의 제삿상에 감놔라 배놔라' 간섭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간섭은 하지말라는 의미다.
그렇지만 제사의 큰 틀은 벗어날 수 없다. 지방 써서 붙이거나 요즘은 영정(사진) 놓고도 지낸다.
상차림도 밥과 국, 술, 탕, 채소, 과일 5줄이고 더 따지자면 홍동백서나 조율이시,좌포우혜,어동육서,두동미서 등이다.
같은 일행인 구리선생은 이번 설부터 고향인 안의에 올라가지 않고 대연동 집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형님이 시골에 계시므로 명절때나 제사때 시골로 올라갔는데 올해부턴 형제가 각자
집에서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제사를 나눈 것이 아니라 부모 제사를 형제마다 각자 따로 차려서
지낸다는 것이다. 제사를 나눠 지낸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형제마다 따로 지낸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궁금해서 "지방은 어떻게 썼나?" 믈어보니 부친이 반공청년단 대표를 했다던가 하면서 무슨 벼슬을 하셨다면서
'현고좌승지부군신위'라고 썼다고 한다. 벼슬이 없는 민초들은 학생이나 처사로 쓴다. 나는 학생처장을 했으니
아들이 제사를 지낸다면 '현고학생처장부군신위'로 쓸게 틀림없다며 한바탕 웃었다.
구리선생은 또 자기 본가에 보물로 간직해 내려오고 있는 게 하나 있다면서 고종이 내린 벼슬의 발령장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이조판서쯤에 해당하는 벼슬인데 요즘 같으면 무슨 장관쯤 안 되겠느냐고 했다.
그런데 의문이 하나 생기더라면서 당시에 그런 높은 벼슬을 했으면 한양에 올라갔어야 하는 데 본가는
왜 촌구석인 안의에 머물러 있었느냐는 것이다. 형님과 머리를 맞대고 유추한 결과 아마도 천석꾼쯤 되니까
하인들에게 엽잔 몇짐을 지워서 벼슬을 샀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지금보다도 훨씬 심했다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