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하 천연선사의 일화
어릴 때 유교와 묵자를 공부하여 구경에 통달하였다고 하는데 젊어서 방거사와 함께 과거시험에 응하려고 낙양으로 가는 도중에 행각하는 스님을 만났다. 그와 차 한 잔을 마시게 되었을 때 스님이 물었다.
[수재는 어디로 가시오.]
[과거를 보러 갑니다.]
[공부가 아깝구나! 어째서 부처를 뽑는 곳으로 가지 않는가.]
[부처를 어디서 뽑나요?]
[강서에 마조 선사께서 지금 생존하시어 많은 설법을 하시는데 도를 깨친 이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소. 그곳이 부처를 고르는 곳이오.]
두 사람은 전생부터 착한 인연을 심은 것이 있는지라 즉시 길을 떠나 마조 선사를 뵙고 절을 하니 마조 선사가 말했다.
[여기에서 남악으로 7백리를 가면 선두 희천 장로가 돌 끝에 앉아 계신다. 그리로 가서 출가하라.]
수재는 그 날로 길을 떠나 석두 선사를 찾아가니 선사가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강서에서 왔습니다.]
[무엇하려 왔는가?]
수재가 마조 선사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니 석두 선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엌에서 반찬이나 만들어라.]
부엌에서 일을 한 지 2년이 지났다. 하루는 석두 선사가
[내일 아침에 수재의 머리를 깎아 중을 만들어야겠다]
고 생각하고, 그날 저녁 동자들이 문안을 드리러 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
[들어라. 내일 아침 공양을 마친 뒤 법당 앞의 한 무더기 풀을 깎아야겠다.]
이튿날 동자들은 제각기 낫과 괭이를 들고 나왔으나 수재만은 머리 깎는 칼과 물을 가지고 와서 석두 선사 앞에 꿇어앉았다. 선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그의 머리를 깎아 주었다.
머리를 깎고 나니 수재의 정수리가 봉우리처럼 볼록 솟았는데 석두 선사가 이를 어루만지며 “천연스럽구나.” 하였다.
수재는 머리를 다 깎고 나서 선사에게 절을 하면서 말했다.
[이름을 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사가 물었다.
[내가 언제 이름을 지어 주었느냐?]
[조금 전에 ‘천연’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에 선사는 더욱 그를 사랑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었고, 마침내 천연은 석두 선사의 법을 잇게 되었다. 이로부터 단하 선사는 생각을 활짝 풀어놓고 행각 길에 올라 자유자재한 생활을 했다.
***
단하 선사가 낙양에 이르러 혜충국사를 뵈러 찾아갔더니 국사의 시자가 말했다.
[계시기는 하지만 손님을 대하지 않습니다.]
[퍽 깊고 먼 곳에 숨어 계시는구나.]
[불안으로 봐도 볼 수 없습니다.]
[용은 용의 새끼를 낳고, 봉은 봉의 새끼를 낳는구나.]
단하 선사가 돌아간 뒤 시자가 이 일을 국사에게 아뢰자 국사는 시자를 후려쳤다.
***
단하 선사가 낙양의 혜림사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겨울 날씨가 하도 차서 법당의 목불을 꺼내다 불을 지폈다.
절의 주지스님은 함 밤중에 나무 타는 냄새가 나서 밖으로 나와 보니 단하 선사가 목불상을 쪼개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게 아닌가. 놀란 주지스님은
[아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제 정신입니까? 불상을 태우게 말입니다.]
그런데도 산사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불상이 다 타 버리고 남은 잿더미를 지팡이로 뒤척거리면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주지가 다시 물었다.
[지금 뭘 찾고 있습니까?]
그러자 단하 선사는 대답했다.
[나는 지금 사리를 찾고 있는 중이라네.]
그러자 주지스님은 그 절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상을 태워서 화도 나고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스님은 미쳤습니까? 목불에서 무슨 사리가 나온단 말입니까?]
그러자 단하 선사는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리가 안 나오면 이것은 진짜 부처가 아니다. 그저 나무로 조각된 나무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것에 속지 마라. 나는 긴 여행에 매우 지쳤는데 밤은 길고 너무 추워서 불을 지폈다. 기왕 나를 도와주려거든 불상 두 개만 더 갖다 달라. 아직도 충분하다. 나머지 두 개는 내게 줄 수 있지 않은가? 예불을 하는 데는 하나면 충분하다. 나머지 두 개는 내게 줄 수 있지 않은가?]
그 절의 주지스님은 그냥 나 두면 나머지 불상들도 다 태워 버릴 것 같아서 사람들을 깨워서 단하선사를 쫓아내 버렸다.
단하 선사는 쫓겨나면서도 말하기를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대는 정말로 후회하게 될 것이다. 지금 그대는 나무로 된 부처를 구하려고 살아 있는 부처를 추운 겨울밤에 쫓아내고 있는 것이다.]
주지스님은 말했다.
[나는 지금 스님하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스님은 미쳤습니다. 그러니 나가 주십시오.]
아침에 주지스님은 단하스님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려고 대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단하 스님은 길 한쪽에 앉아서 시든 들꽃 몇 송이를 들고 있다가 바위 위에 그 꽃을 올려놓고는 예불을 드리기 시작했다.
주지스님은 단하선사에게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진짜로 미친 사람이구나. 어젯밤에는 그 비싼 불상을 태우더니 이제는 바위를 부처로 잘못 알고 예불까지 올리는구나.]
주지스님에 단하선사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아침 예불을 올리고 있는 중이라네.]
주지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스님은 참으로 이상하군요. 어젯밤에는 내 불상을 태우더니 오늘은 길을 가르치는 표석에 대고 절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 부처는 내 눈에만 보인다. 만약 그대가 이것이 부처로 보이면 그것은 부처이다. 그대가 나무 조각을 부처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마음의 장난이다. 사실 나는 예불 같은 것은 드리지도 않는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도 그대가 잘못된 생각을 고치도록 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절을 받는 목불이 부처가 아니라. 절을 하는 그대가 바로 부처다. 그러니 내가 오늘 밤 다시 절에서 잘 수 있겠는가?]
주지가 말했다.
[안됩니다. 나는 스님의 높은 차원을 따를 수 없습니다. 다른 절을 찾아보십시오. 우리 절은 가난합니다. 스님은 벌써 우리 절에서 제일 좋은 불상 하나를 태워버렸습니다. 그러니 스님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단하스님은 그 절을 떠나버렸습니다.
2년 뒤에 그 주지스님은 단하선사에게 사과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절에 있던 나머지 세 개의 불상도 갖고 와서는 선사에게 말했다.
[필요하시다면 이것마저 태우셔도 좋습니다. 나는 어젯밤 드디어 깨달았습니다.]
***
어느 날 단하선사가 마곡 선사와 함께 산에 갔다.
물이 급히 흐르는 골짜기에서 마곡이 불쑥 물었다.
[열반이란 무엇일까?]
단하 선사는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바쁘다 바빠!]
[무엇이 바빠.]
단하 선사가 천연스럽게 말했다.
[저 물 말이야!]
- 출처 미상
[출처] 단하 천연선사의 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