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측으로 선석항
▲ 덩이괭이밥
▲ 인동덩굴(옛 이름은 겨우살이 넌출)
▲ 붉나무
▲ 싸리나무꽃
▲ 고사리
▲ 찔레
▲ 큰까치수염
▲ 꿀풀
▲ 요사채
노만사(露滿寺)는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에서 북서쪽에 형성된 큰봉산(222.5m)에서 남쪽으로 해발 120m 지점의 산에 자리하고 있다. 1873년 창암 화상이 대흥사 분회로 설립했으며 당시는 초가 건물이었다. 그 후 1944년 암태 사람 천복 운이 사재를 들여 중수했다. 대지 150평에 칠성각, 법당, 해탈문, 종각 등 7동의 건물이 있으며, 이 절의 역사를 말해주듯이 법당 앞에 팽나무 고목이 비스듬히 서 있다. 노만사는 약수가 있는 절로도 유명하다. 절 주변에 높이 솟아있는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하여 병자들이 찾아든다. 사찰 건립 이후 여러 차례의 큰 가뭄을 겪었으나 한 번도 마른 일이 없다고 한다. 노만사라는 절 이름도 약수가 떨어지면서 이슬같이 가득하다는 데서 연유했다고 전한다. 신안군 향토유적 전통사찰 제1호로 지정되었다.
*** 요사채: 사찰 내에서 전각이나 산문 외에 승려의 생활과 관련된 건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
▲ 소원 성취 석(2019년 모습)
▲ 소원 성취 석(현재 모습)
▲ 팽 나무
노만사 강쥐ㅎ
▲ 노만사 송악
요사채에서 대웅전으로 가려면 언덕길을 50 m 정도 올라가야 했고 길 우측에 보호수 송악이(약 400여년) 바위 절벽을 타고 오르며 자라고 있었다. 천연기념물 제367호인 고창 삼인리 송악(약 200여년) 보다는 수령이 오래됐는데... 언제가 노만사 송악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며 대웅전 마당 앞에 있는 송악을 살펴보았다.
*** 송악은 덩굴나무로 뿌리가 다른 나무의 줄기나 바위에 붙어서 기생을 하며, 어린 가지는 잔털이 있고, 세월이 지나면 없어진다. 송악은 참 착한 덩굴나무이다. 다른 나무를 타고 살아가면서, 본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절대로 본 나무의 가장 높은 부분까지는 올라가지 않아,햇볕을 받는 데 방해를 하지 않아, 서로 공생을 한다. 다른 덩굴식물들은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그 나무의 영양분을 모두 빨아먹어 때론 고사를 시켜버린다. 그 대표성이 "능소화" 라고 한다. ***
▲ 거북바위
▲ 노만사 냥이. 먹을 거 달라고 식사내내 기다렸는데 딱히 줄게 없어 과일을 주니 킁킁하더니 딴청 ㅎ. 넘 귀요미~~
▲ 대웅전
퍼플 교를 설치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박지도에 사는 "김 매금"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은 살아생전 박지도 섬에서 목포까지 가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소망은 2007년도 신 활력 사업으로 목교가 조성되었으며, 반월, 박지도가 보라색 꽃과 농작물이 풍성하고 사계절 꽃이 피는 천사의 섬의 의미로 퍼플 교로 불리게 되었다. 퍼플(purple)은 '보라색' 이다.
*** (박지도란 이름을 가진 매우 척박하던 섬이었는데 섬에 들어가는 나무다리를 상징화하여 퍼플교를 탄생시켰습니다. 박지도에서 나는 농산물이 보라색이 많이 생산되어 이점을 상징화하여 섬에 들어가는 다리를 퍼플색으로 페인팅해서 퍼플교로 네이밍하여 대성공한 케이스입니다. 동네 모든 지붕을 보라색으로 바꾸고 섬에 사는 모든 분이 보라색 옷을 입는답니다. 여기에 방송에 여러 번 등장하면서 입소문과 함께 아주 예쁜 섬으로 탈바꿈하여 유명세를 얻고 있는 섬입니다.) ***
▲ 2020년 3월 이전 퍼플 교(도색 전 모습)
▲ 퍼플 교.
신안군은 2006년 12월 안좌도. 반월도. 박지도 세 섬을 연결하는 목교 가설 공사를 착공하여, 2010년 2월 24일 준공식을 하고 '천사의 다리'라 지었다가, 근래에 '퍼플 교'라 이름을 바꾸었다.
*** 주택 도색은 2019년 6월~ 12월까지 했고 퍼플교 도색은 2020년 3월~ 5월까지 완료했음.(신안군청에서 받은 자료임) ***
▲ 왼쪽: 푸른 섬. 오른쪽: 노루 섬
▲ 해송도 한 컷
▲ 기 바위 정상.
기 바위와 마주 보이는 반월도의 어깨 산.
박지도 #중 노두 전설"
노두길은 섬과 섬, 바다와 육지를 잇는 옛길로서 갯벌 위에 디딤돌을 놓아 만들어 썰물이면 갯벌이 드러나고 밀물이면 물속으로 사라지는 돌로 만든 길이라고 합니다. 박지도와 반월도에는 이런 노둣길이 아직도 희미하게나마 흔적이 남이 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박지도의 암자에는 젊은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있었고 반월도 암자에는 비구 스님이 한 분 살았는데 서로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건너편 섬의 암자에서 어른거리는 스님을 서로 사모하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밀물이면 바닷물이 가로막고 썰물이면 허벅지까지 빠지는 갯벌이 가로막아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고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도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게 안타까운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반월도의 비구 스님은 망태에 돌을 담아 박지도 쪽을 향하여 부어 나갔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던 박지도의 비구니 스님 역시 산에서 돌을 주워 갯벌 위에 디딤돌을 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몇 년을 계속하여 디딤돌을 놓던 두 스님은 어느새 중년이 되었지만 디딤돌을 놓은 일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철이나 무더운 여름철에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지도와 반월도를 이어주는 디딤돌 다리인 노둣길이 완성되었습니다. 몹시 추운 겨울 두 스님은 노두길 가운데에서 마주 서서 어느새 늘어
난 잔주름과 돌을 나르느라 거칠어진 손을 서로 만지며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며 그동안의 아쉬움을 달래었는데 그때 바닷물은 밀물을 만나 물이 자꾸만 차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불어난 바닷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불어나 갯벌을 덮치고 있었는데 이를 지켜보던 박지도와 반월도 사람들은 바닷물에 잠겨가는 두 스님을 구하기 위해 배를 띄워 스님들에게 다가갔지만 이미 바닷물은 두 스님의 그림자까지 집어삼키고 파도만이 찰랑거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에는 돌무더기 길만 남아 있을 뿐 두 스님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노두길의 흔적이 희미하게나 남아 있으며 이 길을 중노두길이라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 (중 노두는 스님이 놓은 바닷길을 일컫는다. 노두는 섬과 섬, 바다와 육지 사이 갯벌에 디딤돌을 놓아 만든 길이다. 썰물 때 드러나고, 밀물 때면 물속으로 사라진다.) ***
▲ 혹 붙은 이 당 나무(예덕나무).
몸 전체에 혹이 붙어 자라고 있다. 마치 돌연변이 나무처럼 밑둥에서부터 가지에 이르기까지 전체에 크고 작은 혹들이 붙어 자라고 있다.
▲ 박지제당(朴只祭堂).
옛날에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거행하는 당 제사를 이곳에서 지냈는데, 현재는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 우실 샘.
보기에 물은 맑아 보이지만 음료로 하기에는... 왠지.. 일 년 내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이 솟아오른다는 당 샘(우실 샘)인데 당 제사를 지낼 때는 반드시 이 샘물을 떠서 제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 반월도.
반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으로<반드리>라고도 불리는데 세종실록 지리지 기록에 의하면1450년에 말 40여 필을 관리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입도 시켰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 박지도에서 반월도로 가는 "소망의 다리(915m.)" 다.
▲ 반월도 안 마을의 반월당숲.
반월당 당 숲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박지도에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딸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할머니와 할아버지 말다툼 끝에 할아버지가 반월도로 건너왔다고 한다. 그 후 큰딸이 아버지를 수발하러 반월도로 따라 들어오게 되었고 그렇게 할머니는 박지도의 당신이 되고 할아버지는 반월도의 당신, 딸은 반월도 토촌마을 당신이 되었다고 한다. 당 숲은 생명의 숲 산림청과 유한킴벌리가 선정하는 제14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한 명소이다.
▲ 돌탑 쉼터.
반월도에 사는 장상순(71세) 씨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틈틈이 시간을 내어 어깨 산에 올라 쌓았다고 한다.
▲ 딸당.
산 아래 토촌마을의 당신이 되어 동백나무 아래 모셔져 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나무 아래 가까이 가보니 돌무더기만 널려 있다.
▲ 서양화가 수화 김환기의 생가
안좌도 읍동마을에 있는 서양화가 수화 김환기의 생가. 국가지정문화재 제251호로 지정돼 있다. (박지도와 반월도를 품은 안좌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양화가 수화 김환기(1913∼1974)의 고향이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추상미술을 한 김환기는 24살 때 귀국, 몇 년 동안 안좌도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이후 서울대와 홍익대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적 특성과 현대미를 겸비한 그림을 구상과 추상을 통해 실현했다. 그의 생가가 읍동마을에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제251호)로 지정돼 있다. 김환기의 작품 배경이 된 섬과 바다를 만날 수 있는 섬, 신안 안좌도다.)
▲ 퍼플 교가 가로지르고 있는 박지도 앞 갯벌은 가시파래(감태)의 주산지다. 다리 밑으로 드러나는 갯벌에는 농게와 짱뚱어가 지천이다. 섬의 숲길 산책로도 멋스럽다. 2㎞ 남짓 된다. 숲길에서 바다에 사는 게도 만난다.
*** 이런저런 이유로 부족한 자료는 부득불 인터넷에서 발췌하여 편집했음을 알립니다. 혹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시 연락해주시면 즉시 시정(삭제)하겠습니다. (ysww500@naver.com. ysw.500@hanmail.net)
첫댓글 감사합니다. 한번 가봐야되겠네요.
얼마전에 다녀온
신안여행 ,,
자세한 설명과함께
감사드립니다
와우. 좋은 정보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