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나도 천강문학상에 응모한다고 곽재우에 관한 소설을 쓰기 위해 몇 번이나 장암루 밑에 있은 노거수 老巨樹 옆에 앉아 있다가 온 적이 있는데 600년이 됐다는 노거수는 이 빠진 노인처럼 둥치기 갈라졌는데 시멘트로 땜질을 해 놓았더라. 정암진 전투에서 곽재우 의병은 왜군들이 도강하기 위해 진창이 없는 곳에 푯말을 꽂아 놓은 것을 밤중에 몰래 진창이 있는 곳으로 올겨 놓아 왜군들이 그것을 모르고 뻘구덩에 빠져 허둥거릴 때 화살을 쏘아 이겼다는 것이 정설로 전해지는데 그 이야기는 이덕무의 소설에만 나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왜군들이 눈뜬 당달봉사가 아닌 다음에야 물풀이 돋아 있는 진창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정암진 전투를 목격한 노거수는 그날의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난 글쟁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글이 좋아 글쩍그리고 있는데 김 작가도 노거수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구려. 그래 이제 늙어서 비스듬히 드러누워있던 노거수가 뭐라 카던가? 내가 드러누워 있는 노거수한테 가서 물어보니 지 나이는 아직 600세는 안 됐다고 하더군. 임진왜란(1592) 발발 당시 지는 약관 스무살때였다니 450세쯤 될 걸세. 무슨띠냐고 물었더니 소띠라고 하더군. 그러구보니 밑둥치에 소대가리가 보이더군.
노거수는 아무리 말해도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답답하다나요. 타임머신을 타고 그날로 날아가서 직접 볼 수도 없고. 하여튼 이덕무는 상상력도 대단하고 온갖 것에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남긴 글도 많고. 그렇지만 역사 평론가들이 정암진 전투에서 푯대를 옮겨 의병이 승리했다는 것은 이덕무 창작이라는 설이 많아요. 내가 왜군들이 진쳤다는 군북 설천리 강안을 둘러 봐도 뻘구덩이 있는 곳은 한눈에 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뻘구덩에 빠져 거미줄에 걸린 풍뎅이같이 몸부림 쳣다고 해도 정암 쪽에서 화살을 쏴도 거리가 멀어 닿기 어려웠어요.
첫댓글 나도 천강문학상에 응모한다고 곽재우에 관한 소설을 쓰기 위해 몇 번이나 장암루 밑에 있은 노거수 老巨樹 옆에 앉아 있다가 온 적이 있는데
600년이 됐다는 노거수는 이 빠진 노인처럼 둥치기 갈라졌는데 시멘트로 땜질을 해 놓았더라. 정암진 전투에서 곽재우 의병은 왜군들이 도강하기 위해
진창이 없는 곳에 푯말을 꽂아 놓은 것을 밤중에 몰래 진창이 있는 곳으로 올겨 놓아 왜군들이 그것을 모르고 뻘구덩에 빠져 허둥거릴 때 화살을 쏘아 이겼다는
것이 정설로 전해지는데 그 이야기는 이덕무의 소설에만 나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왜군들이 눈뜬 당달봉사가 아닌 다음에야 물풀이 돋아 있는 진창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정암진 전투를 목격한 노거수는 그날의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난 글쟁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글이 좋아 글쩍그리고 있는데 김 작가도 노거수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구려.
그래 이제 늙어서 비스듬히 드러누워있던 노거수가 뭐라 카던가? 내가 드러누워 있는 노거수한테 가서
물어보니 지 나이는 아직 600세는 안 됐다고 하더군. 임진왜란(1592) 발발 당시 지는 약관 스무살때였다니
450세쯤 될 걸세. 무슨띠냐고 물었더니 소띠라고 하더군. 그러구보니 밑둥치에 소대가리가 보이더군.
노거수는 아무리 말해도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답답하다나요. 타임머신을 타고 그날로 날아가서 직접 볼 수도 없고.
하여튼 이덕무는 상상력도 대단하고 온갖 것에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남긴 글도 많고.
그렇지만 역사 평론가들이 정암진 전투에서 푯대를 옮겨 의병이 승리했다는 것은 이덕무 창작이라는 설이 많아요.
내가 왜군들이 진쳤다는 군북 설천리 강안을 둘러 봐도 뻘구덩이 있는 곳은 한눈에 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뻘구덩에 빠져
거미줄에 걸린 풍뎅이같이 몸부림 쳣다고 해도 정암 쪽에서 화살을 쏴도 거리가 멀어 닿기 어려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