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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글을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 올립니다.
질책은 아니고 그저 한 의견이니 참고하셔도 좋구요.
저도 님처럼 나이는 좀 있지만, 나름 세계역사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할 수 있기에 감히 펜을 들어봅니다.
한류를 British invasion과의 비교는 어불성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님의 우려대로 영국의 불황 내지 몰락으로 비틀즈나 롤링스톤즈가 미국으로 진출한것도 아니구요.
당시 영국 상황은 님의 말씀대로 청년실업사태인건 맞지만 몰락 정도로의 불황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영국 산업혁명 당시 18C에서 19C로 넘어가던 100여년에 비하면 그나마 50~60년대는 오히려 상당히 유복한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산업혁명당시 어린애들(5~12살)까지 공장으로 내몰리던 시절에 비하면 60년대는 차라리 청년실업자들은 스스로 자초한 자의적 실업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반전(anti-war) 분위기와 히피적 성향에 소위 지금 한국에도 주위에 보시면 3D라 힘든일 못하고, 돈 적다고 일 그만두고, 부모가 입에라도 풀칠할 수 있게 돈 대주니까 일 안하고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또한 리버풀 등지의 청년 실업자들은 모두 영국인이 아니었습니다. 가까운 아일랜드가 오히려 나라 전체 몰락 위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왜냐면 아일랜드와 가까운 항구인 영국의 리버풀에는 당시 수많은 아일랜드 출신의 노동자와 청년들이 배를 타고 넘어와서 거리에는 이들로 넘쳐났습니다. 또한 이들 아일랜드인들은 영국뿐 아니라 미국도 많이 이민을 갔구요. ( 잘아시는 케네디 역시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 부부의 아들입니다. )
부두에는 그들이 영국으로 건너와 대충 천막을 치고 사는 형태의 막사와 텐트와 같은 주거지가 넘쳐났고 온 거리에는 할일없이 돌아다니는 청년실업자들이 대개는 아일랜드 인이었습니다. 또한 영국의 멀쩡한 중산층 젊은이들조차 영국사회를 탓하고 아일랜드인들에 가세해서 데모나 하고 덩달아 일을 안 했구요. 당시 데모는 사회비판, 전쟁반대, 아일랜드 내 영국 점령에 대한 시위 등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영국내 청년실업이 다 그렇다는 게 아니지만, 상당수의 젊은 생산층이 일 안하고 사회나 가정을 탓하며 빈둥거리며 소일거리에 정신나가 있을때 보수적인 대다수 영국 부모들은 일안하는 젊은이를 비롯한 온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등골이 빠지도록 일해서 그 잘난 입만 살은 실업자들과 가족을 부양하기에 바빴습니다. 아일랜드 이민자들과는 달리 영국내에서 태어나 건실하게 평생을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대다수 중산층 내지는 부유층 정도는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일랜드 이민자들조차 처음에는 하층 3D노동에 종사하다가 후에 중산층이나 부유층이 된 사람도 많구요.
이러한 청년실업자들이 소일거리로 가장 인기있었던게 뭔지 아십니까? 그게 동네 유랑단 쫓아다니거나, 아님 요즘 말하는 콘서트 비슷한 악기연주 쫓아다니는게 낙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40년대 초반부터 시작한 TV방송과 더불어 50년과 60년대에 보급되기 시작한 TV로 인해 각 가정마다 TV앞에 붙어 죽치고 않아있기만 하고 일도 안하는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소위 연예인이란 사람들이 TV에 출연하기 시작한 것도 50년대입니다. 이러한 TV또한 영국연예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을 하였구요. 또한 60년대가 되면 미국도 TV산업과 TV보급률이 엄청나게 됩니다. 비틀즈 미국 공연진출 당시 비틀즈가 영국공항에서 미국 공항까지 이동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모두 생중계한것도 이들 TV방송국이었습니다. 멀리 갈것도 없이 영국 왕자 결혼식도 전세계 생중계하는 것 보셨죠?
제가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브리티쉬 인베이션은 단순히 영국경제불황의 타계책으로 비틀즈를 비롯한 영국가수들이 미국에 진출한게 아닙니다. 절묘하게 모든 사회적 시대적 조건들이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더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회가 불황이면 문화산업은 오히려 발전하지 않습니다. 또한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세계 진출은 비틀즈 매니저인 브라이언 앱스타인(Brian Epstein)의 기획이지 사회적인 현상으로 비틀즈가 미국으로 진출한건 더더욱 아닙니다.
소위 50년대 미국에는 모타운(많이 들어보셨죠?)과 콜럼비아 레코드사를 중심으로 흑인 대중음악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스티비 원더 역시 60년대 초반 모타운 출신입니다. 소위 모타운이란 레코드사가 우리나라의 SM과 같은 스타 양성소였죠. 하지만, 백인들은 이러한 흑인음악, 즉 대중음악을 저질스럽게 보고 기피하며 백인 특유의 우월감에 젖어 이러한 흑인적인 대중음악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나 50년대 중후반에 나타난 엘비스프레슬리란 백인이 흑인들의 소울(Soul), 재즈(Jazz), 백인들의 컨트리(Country), 포크(Folk)가 적절히 배합된 새로운(정확히 말하면 새로운건 아니고 짬뽕시킨거죠) 음악인 Rock and Roll이란 형태의 음악을 특유의 궁둥이 흔드는 댄스와 함께 들고 나타납니다. 제가 생각건데, 당시에 고만고만한 백인 가수들만 간간히 대중음악이라고 하던 시절에 엘비스프레슬리의 등장은 대중의 시선을 한방에 확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저그러한 백인가수 부재의 시기에 그는 그 잘난 백인인데다가 카리스마 있고 약간은 잘생기고, 약간은 섹스어필하면서 흥겨운 춤과 적절한 꺾기식 카리스마있는 창법으로 보수적인 미국인들을 단번에 사로잡기에는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엘비스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순수 백인들이 보기엔 뭔가 흑인 내지 유색스럽고 보수적인 사회에는 저질스럽고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영국의 비틀즈의 등장은 상당히 신선하고 고급스러운 귀족 이미지였던 것이죠. 님의 말씀대로 리버풀 청년 실업자로 전락할 뻔한 이들은 대단한 부유층의 영국엘리트 사립학교 학생과 같은 깔끔한 이미지로 미국시장을 강타하게 됩니다. 미국이 비틀즈를 받아들인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였던 것입니다.
비틀즈는 고급 영국식 영어 악센트를 쓰며 백인들로만 구성된 멤버에 약간은 영국식 사립학교 학생과 같은 풋풋한 이미지와 때로는 아티스트적 기괴함과 더불어 흑인적인 소울, 재즈가 아닌 영국 전래 구전 모티브(정확히 북쪽의 스코틀랜드)를 바탕으로 한 확연히 백인적인 멜로디로 미국을 사로잡게 됩니다. 또한 비틀즈 특유의 서정적이고 사랑 위주의 가사도 주력하구요. 현대 우리나라의 가요의 천편일률적 사랑 위주의 가사와도 흡사하구요. 당시 미국은 또한 39년 대공항 이후로 베트남전 후 60년대 상당히 물질적으로 풍요하여 어떠한 문화적, 물질적 수요도 감당해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었구요. 비틀즈 특유의 적절히 말랑말랑한 이미지와 말랑말랑한 대중적인 가사와 멜로디로 시기적절하게 미국을 강타한 것입니다. 당시 미국에 진출한 진짜 부유한 중산층 계층 출신의 롤링스톤즈는 오히려 과격한 이미지로 비틀즈처럼 미국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비틀즈 이전에도 많은 영국밴드와 가수들이 미국문을 두드렸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못내고 있을 즈음 영국식 매니지먼트 기술역시 미국진출에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 보면 그 메니지먼트 기술이라는것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지만, 나름 당시에는 체계적으로 멤버들과 재정, 일정등을 관리해주고 미국진출이라는 것도 사실 이러한 매니저 Brian Epstein 의 욕심이 한몫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욕심만 앞선다고 모든 일이 성사될 수 없었듯이 비틀즈는 이러한 매니저의 미국 진출 야심과 더불어 여러가지 시대적 상황과 비틀즈 특유의 사운드, 이미지가 모두 잘 맞아 떨어지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비틀즈 이전의 미국 진출 영국가수들이 다 성공하지 못하였듯이 이러한 여러가지 비틀즈적 합작이 잘 맞아 떨어지면서 영국식 사운드가 미국을 강타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님이 말씀하신것처럼 영국식 음악이 미국을 강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영국의 불황으로 미국시장 진출이 아니었고, 또한 우리나라의 한류는 세계적 열풍이라 불리기에는 아직 많이 역부족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코 한류를 비하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해외를 진출한다고 모두 비틀즈가 되는건 더더욱 아닙니다. 해외 진출은 매니지먼트 기획사 사장의 의지이지 결코 사회가 불황이어서라든가, 그 불황 타계책을 찾기 위해서라거나 그런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이 빗나갑니다만, 한류가 세계 문화의 주류가 되기에는 아직 역사가 많이 짧고 무엇보다 가장 부족한 것은 가수본인의 의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나라 아이돌 가수들의 양산과정은 하나의 상품처럼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의상부터 음악까지 다 골라주고 연습시키는 과정이라 아이돌 지네 스스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스스로 음악에 미쳐서 진정 여러 음악을 섭렵하고 작곡도 시도하고 연주도 직접해보고 이렇게 음악을 발전시켜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음악에 주어진 컨셉에 해외 진출하라면 하고 말라면 마는 식의 가수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니지먼트가 움직이는 것이란 말입니다. 비틀즈는 음악은 비틀즈가, 재정과 스케줄은 매니저가 맡아서 한다는 분업개념이지 K-pop처럼 모든 것이 매니저 소관이 아닌 것입니다.
가수가 자체적으로 음악은 안좋아하고 열정이 없다는 그런 말이 아니라, 단순히 조련 잘 받은 곰이 노래하고 춤추듯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또다시 새로운 그룹이나 가수가 발굴되어 매니지먼트는 영원히 살아있을지언정 정작 가수 본인은 자기 색도 없고 하다못해 아이돌 가수 이후 중년가수라도 하고 있음 다행인데 배우다 탈렌트다 이리저리 떠돌다가 명맥을 달리한다는 말입니다.
정작 노래가 좋아 가수를 한다기보다는 그냥 단순히 인기받고 싶고 돈벌고 싶어 하는 식입니다. 이래 갖고서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만 배불리지 진정한 세계적인 예술가는 탄생하기 힘듭니다. 아무리 한류 어쩌고 해도 결국 마지막에 살아남는 건 회사뿐이란 말입니다. 마치 영혼도 없는 로봇이 몇 년 움직이다 버려지는 형태란 것입니다.
아뭏든 말이 이리저리 삼천포로 샜습니다만, 저도 나름 이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님이 올린 글을 보고 여러가지 잡소리를 적어봤습니다만..............
님의 우려대로 우리나라가 망조가 들어 연예 산업이 해외진출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기획사 사장의 뜻이자 사장의 의지이고 현재 아이돌이 프랑스에서 일부나마 왜 먹히고 열광을 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도 제가 팝음악시장의 여러가지 배경에 대해 찬찬히 설명하면서 그나마 좀 먹히는 이유를 설명해드리고 싶지만, 너무 장황해지는 것 같아 오늘은 이만 생략하구요.
지금으로서는 우리나라의 한류는 비틀즈나 롤링스톤즈가 그러했듯이 전세계를 강타할 만한 파워를 절대 지니지는 못합니다. 일단 영어로 노래하지 않으면 전세계 정복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또한 영어로만 부른다고 해서 멜로디가 구슬른 산파조이거나 동양적이기만 하면 또 먹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지만, 감성자극부문에 있어서 조금은 틀립니다. 지금은 유럽 10대들의 치기어린 호기심으로 로봇처럼 딱딱 맞춘 안무, 하나같이 군살없이 깎아놓은 듯 다듬어진 몸매 등등 좀 색다른 비쥬얼적인 면으로나마 약간 먹히는듯 보일지 몰라도 절대 그들은 다른 문화유입에 서두르지 않습니다. 이게 진정 먹히는것인지는 향후 약 10년 아니 20년도 더 후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상황은 존레넌과 폴매카트니의 어린시절과 비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불황의 근본 원인은 방향을 잘못잡은 조타실에 말만 많은 키잡이들만 여럿이 있어 이런 꼴이 난 것이지 하나하나 국민들을 뜯어놓고 보면 우리나라 만큼 열심인 민족도 아마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배 맨 아랫쪽은 선박 위의 조타실 사정은 제대로 알수도 없는 채 눈 가리고 노만 열나게 열심히 젖고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옛날 로마시대의 노예들이 이렇게 열심히 눈가리고 노만 열나게 젖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죠)
긴 글이었지만, 여기까지 제대로 읽어주셨다면 매우 감사합니다. 담에 기회가 된다면 또 글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니...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
와오....입이 벌어지는군요...간만에 뵙게되는 효리삼촌님의 글...감사합니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진짜 이효리 삼촌이세요?
진짜 이효리 삼촌 아닙니다. 다만 효리 좋아했던 삼촌 뻘 되는 나이의 중년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좋은 글을 읽으니 오늘 하루 성공했습니다. ^^ 반론은 아니고 유럽의 한류는 과장이네 뭐네 하더라도 우선은 그들의 관심에 패배주의에 사로 잡혀 있던 우리 문화에 대한 다시 돌아 봄이 아닐까 합니다. 우선은 그들의 열광에 반가운것은 사실이죠. 바라는 것은 이미 동남아나 일본에서의 k-pop이 하나의 장르내지 문화로써 정착 되고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문화 전반이 유럽에서도 그와같이 자리매김하기를 바랍니다. 님의 말씀 결론 부분의 조타실 언급은 정말 동감합니다.
이 글 역시 신선하네요..많이 배웁니다.
대단한 글입니다. 한수 배웠습니다. 저는 제가 연구를 한건 아니고 임진모 문화평론가의 과거 비틀즈의 등장과 영국의 사회분위기를 얘기하는걸 모티브로 삼아서 이야기를 썼습니다. 임진모씨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나온걸 주의깊게 듣고 쓴거지 문화에 대한 깊은 연구 끝에 나온 글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의 우울한 상황이 비틀즈의 음악에 적어도 후기 음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건 사실인듯합니다. 영국의 락음악이 미국과 달리 매우 정신적인 면을 중시하는것만 봐도 세계대전의 영향이 있음을 느껴집니다. 그리고 제가 한류를 브리티시 인베이젼과 비교한건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좀 흥미를 가지게 하려고 그랬습니다.^^
사실 한류가 비틀즈와 비교한다는건 무리죠. 이건 세살 먹은 어린애도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해외진출은 경제불황과 영향이 깊습니다. 특히 음반시장불황이 결정타입니다. 2002년인가 2003년에 음반시장 매출액이 휴대폰벨소리 매출액에 추월당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통신회사에서 음반사에게 제공하는게 거의 없다는걸 님은 아실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음악산업은 필히 해외진출을 해야만 했고 오직 음악만 하는 음악인은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됐습니다. 김건모3집이 282만장이 나간 95년, 원더걸스 음반이 5만장 나간 2007년, 소녀시대 음반이 20만장 나간 2009년이 한국의 음반상황입니다.
박진영조차도 한국의 연예산업은 해외진출 이외에는 탈출구가 없다고 라디오스타에서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음반시장 호황기에도 이수만은 에스이에스의 일본진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죠. 90년대에 달리 지금의 아이돌 열풍은 앞이 보이지 않는 사회상황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걸 부정할수는 없습니다. 미국도 이건 마찬가지입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데뷔직전 그녀의 집은 그녀의 데뷔비용을 치르느라 파산했습니다. 한국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투에이엠의 조권이 대표적이죠. 가난 속에서도 조권의 부모는 아들의 가수의 꿈을 계속 밀어줍니다. 지금의 아이돌들은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의 영향을 분명히 받고 있습니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아이들의 우상은 야구선수와 축구선수입니다. 연예인은 7위에 턱걸이를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 나라는 무조건 연예인이 1위입니다. 그 화려람에 매료되어 모든걸 다 걸고 매진하는 아이돌 지망생이 수십만명입니다. 이 정도면 사회현상이지 단순한 연예인 지망생 이야기정도로 치부할 수가 없습니다. 사회가 아무리 풍요해도 연예인은 바늘구멍이겠지만 우리 사회는 그게 너무 심한듯합니다. 저도 잡설을 풀었습니다. 항상 아이돌 열풍을 보며 안타까워하다가 글을 올렸는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한류가 과거 홍콩 느와르의 재판일뿐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제가 너무 부정적인 걸까요?
멋지군요...행복합니다. 이렇게 풍족한 글들이 올라오니 안 기쁠수가없군요...댓글들도 멋지구요.^^
조만간 한국아이돌 문화가 유럽에 일정부분 어필한 이유, 앞으로의 전망과 과제 등에 대한 효리삼촌님의 글 기다려도 될련지요?^^ 마이클님과 효리삼촌님의 글 덕분에 역사와 문화, 경제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여행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너무 즐겁습니다~
아침에 보니 답글 줄줄이 달린것 보고 조금은 놀랐습니다.
재야에 숨은 고수님들도 많은 줄로 아는데 제 글에 대한 뜨거운 반응에 감사합니다.
한편으로는 "쪼매 안다고 잘난체 한다."고 책망하실까 감히 글 올리길 망설였습니다만,
스스로 삘 꽃이면 누가 뭐라고 하든말든 잡소리를 올리기도 하지만, 요즘 세상살이가 팍팍하여 쉽게 삘 꽃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풀어내기가 쉽진 않더군요.
더구나 나이가 들고보니 이런저런 세상살이에 쓸리고 묻혀서 왠만한 동요에도 무덤덤하기도 하구요.
여러분 성원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