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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의 죽음과 예수님의 깊은 뜻
요한복음 11:1-16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요한복음에는 두 베다니가 나옵니다. 그 두 베다니는 요단강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는 요단강 동편에, 다른 하나는 요단강 서편에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요단강 동편의 베다니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0장의 마지막 내용을 보면, 우리 주 예수께서 주를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을 피하여 요단 강 저편, 즉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요단 강 동편으로 가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40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2 …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요 10:40, 42)
그런데 요한복음 1장 28절을 보면, 세례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은 베다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요 1:28).
그런데 오늘 나사로가 사는 마을의 이름 역시 베다니입니다. 이곳 베다니는 요한복음 11장 18절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감람산 남동쪽으로 5리, 즉 약 2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산 기슭의 마을로서 요단강 서편에 놓여 있습니다. 현재 그곳은 알에이자리아라는 마을입니다. 이곳에서 요단강 동편 베다니까지는 약 28 킬로미터 정도됩니다. 이 거리는 사실 걸어서 오전 일찍이 떠나면 오후에 도착할 수 있는 하룻길 거리였습니다.
나사로는 두 누이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 두 누이는 언니 마르다와 동생 마리아였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부모를 일찍이 여의어서 나사로가 그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병이 든 것입니다.
이들 중 마리아는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으며 주의 장례를 준비한 매우 경건한 자매였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마르다보다는 어리고 마리아보다는 나이가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마리아의 오빠이며 마르다의 남동생입니다.
그 가정의 부양자인 나사로가 병들자, 그 누이들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알렸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요 11:3).
이 전갈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예수께서 이 세 사람을 매우 친밀하게 알고 계시며 심지어 많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전갈을 받으시고 제자들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요 11:4).
이때 삽입구로 사도 요한은 한 가지 진실을 알려줍니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5절)
그리고 예수께서 이렇게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특이한 행동을 하셨다고 사도 요한은 알려줍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요 11:6).
그리고 이렇게 행하신 이유는 이미 4절에서의 예수님의 선포에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 주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든 사실을 아시고” 당장 요단 강 서편의 베다니로 가지 않으시고 이틀을 가만히 계셨는데, 그 이유는 그 세 사람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신도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나사로는 실제로 죽었습니다. 죽은 지 나흘, 즉 4일이나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의 뜻은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시겠다는 뜻입니다. 비록 그는 죽을 것이지만 예수께서 그를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죽음은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나사로에서 최종적인 주권을 갖지 못합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삶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손에 있습니다.
이는 우리 모든 믿는 자에게도 해당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입니다. 주께서 변함없는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대상들입니다. 우리가 이미 확실히 아는 바처럼 구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그 어떤 병도 궁극적인 영원한 죽음으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죽음은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에게는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시며 생명이시기에 주를 믿는 자들은 영생을 소유하게 됨으로 나사로처럼 죽더라도 다시 살아납니다.
또한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영광’은 피조물들이 창조주에게 기꺼이 찬양과 감사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나사로의 병으로 인해 그 병은 죽음으로 이어지지만 그가 다시 살아남으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돌리고 또한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찬양과 감사를 돌리며 그를 믿고 따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메시야 예수께서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나사로 사건은 12장에서 마리아의 향유 사건과 더불어 우리 주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십자가 속량 및 부활의 구속사를 예비하는 사건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 목적을 드러내기 위해 나사로가 병들어 죽은 사건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이 세 사람을 사랑하셨다는 해설을 들었습니다. 11절을 보면 예수님이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사로와 두 자매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가 있던 곳에 이틀 더 머물렀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면 달려가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나사로가 죽음에 이르도록 이틀을 더 요단강 동편에 머무십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1장 전체를 볼 때,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고 예수께서 메시야로 인정을 받고 영광을 받은 것을 압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 및 그리스도의 영광은 곧바로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한없는 유익이 된 것을 압니다. 나아가 유대인들 중에 허다한 사람들이 이 사건을 통해 영원한 멸망 길에서 구원을 얻어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사건 때문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는 악독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악행을 저지를 때 도리어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주의 택한 백성의 율법의 죗값인 저주를 제거하여 주시고 그리스도를 일으켜 세우심으로, 주의 백성에게 영생과 성령을 줄 수 있는 영광의 주와 영원히 살아계시는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틀을 지체하신 것은, 그 당시 제자들과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결국은 십자가와 부활로 이어지는 가장 위대한 최고 선을 이루시는 하늘의 지혜였습니다.
감사한 것은, 주께서 이렇게 지체하시는 중에 그 누구도 예수님을 원망하거나 수군거리거나 대들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주의 깊으신 뜻이 있으려니 하고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인내하며 기다린 결과는 참으로 말로 다 표현 못할 한없는 영광과 축복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역시 우리 주님의 사랑을 똑같이 받는 주의 친구들로서 우리가 당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말없이 조용히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의 자세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침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님의 신성을 확증하는 증거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메시야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음부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그 안에 있던 나사로를 끄집어 내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친히 택한 백성을 대신하여 음부로 내려가셨다가 그곳에서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리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자신에게 속한 자들에게 부활 생명 및 소망을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이 어마어마한 혜택을 이미 누리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은 참 사람이시기에 나사로의 병과 죽음, 그리고 가족들의 슬픔을 다 이해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신자들의 연약함을 그대로 느끼시며 아파하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나사로 사건과 관련하여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자 나사로가 병에 든 것입니다. 물론 우리 예수님은 모든 질병을 다스리며 주관하는 분이시기에 나사로가 병드는 것을 막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비록 주께서 사랑하시는 나사로라도 병에 드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또한 죄 많고 저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병에 걸리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시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병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증거도 아니고 버렸다는 뜻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병이 걸리더라도 그 병은 나사로처럼 우리의 영혼 및 주변 사람들의 믿음에 유익을 주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 개인에게 병은 우리의 마음을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저 하늘의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병은 우리로 말씀과 기도로 인도합니다. 특히, 신자가 믿음으로 병을 대하기만 한다면 그는 겸손하여질 것이며 삶 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사람은 영원하지 않으며 이 세상의 좋은 것들도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참으로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내게 진실한 친구들이 누구인지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영원한 참 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참된 신자들에게 더욱 감사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 가운데 행여 병에서 낫게 되어 정상이 되면 병마 가운데서 함께 하셨던 그리스도의 사랑에 한없이 감사하게 되면서 더욱 하나님 나라와 복음에 요긴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에 걸린 상태에서 드렸던 기도를 우리 주 예수께서 다 들으신 것을 확인하며 깊은 찬송과 영광을 주께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사로와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께 사정을 아뢴 후에 인내하며 주의 역사를 기다린 사실입니다. 기다렸다는 것은 쉬지 않고 기도하며 주를 바라며 의지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깨어 근신하는 모습이 생겨나고 철저한 순종이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내려 놓음’, 즉 주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리까지 가게 됩니다. 이들의 성격은 셋이 서로 너무 달랐지만, 한 가지는 같았습니다. 그 한 가지 때문에 이 셋은 정말 서로 너무 사랑했습니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사랑한 것입니다. 이는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먼저 자기의 생명을 다해 그들을 영원히 사랑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사랑의 대상인 우리를 향해 완전한 섭리와 주권을 행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섭리하실 때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최고의 유익이 되도록 주권적으로 섭리하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게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믿음으로 대처하며 주께 순종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주의 뜻이 우리의 죽음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할 때도 우리가 믿음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리스도께 큰 영광이 될 것이고 우리 주님은 영원한 영광으로 우리에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모든 사건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룬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이 한없는 어둠으로 치달릴지라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주권과 보호하심을 믿어야 하고, 이에 심지어 고난 및 병, 죽음마저도 우리에게는 영원한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으로 우리는 언제나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죄가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의 미천한 생각이라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께 간구함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면서 간구의 끝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면, 우리는 항상 깨어서 믿음 안에 거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내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이 우리를 통해 오직 선한 역사와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가지면 우리의 삶에 불평과 원망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낙망도 설 자리가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고, 병이 들어도 마음에 정하여진 믿음 때문에 평안과 감사와 겸손과 다정함이 말과 행동에서 묻어 나올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향기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겸손하며 자상하며 진실하며 사랑이 넘치는 모습! 바로 그것이 신자들의 능력이요 영광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영광 및 신자들의 유익을 위해 십자가 속량을 치르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모든 주권이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있음을 알 뿐입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제는 나를 사랑하시는 전능자께 내 사정을 아뢰고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 됩니다. 그러면 그러한 믿는 자들에게 복음의 기적과 은혜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하여 우리 주 예수님은 요단 강 동편 베다니에서 이틀을 더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이제 주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유대로 다시 가자”(7절).
제자들은 당황했습니다. 예루살렘 근처의 유대 땅은 최근에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던 바로 그 장소였습니다. 따라서 그곳으로 다시 가는 것은 생명을 잃을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답합니다.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8절).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여러 차례 확인하였고 심지어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을 행하시는 참 메시야가 그들 곁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상황을 보며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요 11:9-10).
이 대답은 제자들의 불신앙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따른 행동은 낮에 속한 행동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낮에 다니면 빛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므로 주 하나님의 완전하신 보호와 섭리가 함께 할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이 주의 뜻을 따르면 위험이 전혀 없고 고난과 박해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평강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영원한 보람과 만족과 영원한 결실이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명한 뜻을 알 때 그 뜻이 행여 위험을 감수하는 것일지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완전하신 보호와 섭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예수님은 세상이 어리석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한" 행동임을 제자들에게 상기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상황을 바라보면서 주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주의 빛을 잃게 되면서 허망하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물론 불순종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대한 역사를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 즉 빛을 보며 낮에 다녀야 합니다. 결코 신앙 양심을 어기면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불신앙에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은 항상 낮에 다니시며 빛을 보며 다니셨기에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며 신실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우리 죄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진노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저와 여러분 모두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감사하게 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낮에 다니심으로 주의 백성들로부터 영원한 영광을 얻으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면 그것이 낮에 다니는 것이며 빛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의 삶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영광이 반드시 나타나 우리는 주의 영광을 보며 감사로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자, 이 말씀을 하신 후 우리 주님은 지금 하나님의 뜻은 당장 예루살렘의 베다니로 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11절).
이때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것을 영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즉, 나사로의 영혼은 평안한 낙원에 있고, 그 몸은 땅에 묻혀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그릇되게 이해하고 대답합니다.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12절).
이때 사도 요한은 이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하여 줍니다.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13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곧바로 밝히 말씀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14절).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잠들었다고 표현합니다.
[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3-17)
[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1:30-32)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8, 20).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 곧 그리스도를 믿는 상태에서 이 세상을 떠난 신자들은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있습니다.
[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 1:21-24)
이처럼 성경 자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는 육체적으로 죽은 자들을 뜻하면서 그들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가 있는 신자들인 것을 분명하게 합니다. 하지만 인간적 관점에서 이런 성경 본문을 문자적으로 이해한 자들 중에 이단들이 생겨났습니다.
그 이단 교리는 영혼 수면론입니다. 즉, 신자는 죽으면 그 영혼이 무의식 속에서 잠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엉터리 교리를 가르치는 이단은 여호와의 증인과 제칠일안식예수재림교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잠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그의 곁에 있던 회개한 도둑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2-43).
물론,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이 성경의 문자적인 내용을 영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개혁주의 자들 중에도 재림에 대한 부분에 대해 아무런 이유없이 영적으로 해석하는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알레고리적 해석이 교회 시대에 늘 문제가 되며 또한 위험합니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문맥 및 성경 전체가 말하는 영적 진리를 무시하고 무조건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 역시 신자들을 큰 오류에 빠지게 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세대주의를 따르는 수많은 교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께서 믿는 자들의 죽음에 대해 매우 부드럽게 말씀하신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라고 하시며 나사로의 죽음을 온화한 언어로 묘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에게는 전능하신 능력과 무한한 사랑을 가지신 영원하신 참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언제나 우리를 생각하고, 돌보고, 공급하고,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그는 결코 잠들지 않으시고 눈동자같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그는 우리가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살 때도 우리의 친구이시며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을 가서도 우리의 친구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우리 주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이 밤낮으로 바뀌어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변함없는 사랑과 우정을 보이시기 때문이며 심지어 그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죽음을 넘어 저 세상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오, 사랑하는 여러분!
참된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소멸도 아니고 지옥도 아니라 천국에서의 안식입니다. 참된 신자인 우리에게는 율법의 저주가 쏘는 고통이 없기에 죽음을 지날 때도 평안합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정확하게 저녁을 먹은 후 쉬다가 침대에 누워서 자는 잠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잠에서 깨어날 것인데 깨어나 보면 천국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죄가 우리의 친구이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겨졌고 또한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전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 죄로 인해 양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죽음 앞에서 양심의 가책과 더불어 한없는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 앞에 지옥이 놓여 있다는 것을 저 깊은 본능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체포 되어 수갑이 채여서 감옥에 들어가는 것도 두려운데, 어둠에 사로잡혀 지옥을 향하는 죽음을 앞둔 불쌍한 인생들은 얼마나 죽음이 두렵겠습니까! 사실 그들이 죽음 이후의 지옥을 더욱 분명하게 의식한다면 너무나 두려워서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죽음 이후에 더 좋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기에, 또한 그의 죽음과 함께 천사가 와서 안내하는 것을 알기에, 심지어 죽음을 지나면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전능하신 우리 주 예수님을 만나 더욱 새롭고 상쾌하게 다시 깨어날 것을 알기에, 평강 가운데 죽음을 지나게 됩니다. 한 마디로, 신자들에게는 사망은 이미 정복된 원수입니다. 우리는 이미 사망에 승리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은 한 동안 썩어서 먼지로 있을 것이지만 주의 재림 때에 의롭게 된 영과 합쳐지면서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하여 새하늘과 새땅을 유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헤어짐의 슬픔은 있지만 영원한 이별이 아닌 것을 알고 위로 받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에도 더욱 우리 주 예수님의 손을 꼭 붙들고 영원한 친구인 주의 품에 안길 준비를 하기 바랍니다. 우리 주께서도 우리를 위해 친히 죽으실 때 그분의 몸 역시 잠시 무덤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차가운 돌침대에서 다시 승리로 부활하셨듯이 그분의 모든 백성도 마침내 영광의 부활에 이를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소망인 것을 단 한 순간도 있지 말고 호흡이 있을 때 우리의 선하신 목자이신 예수님께 더욱 충성하며 순종하며 받들기 바랍니다.
이제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15절).
사실 예수님의 말씀은 당혹스러운 말씀입니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라."
이 말씀의 의미는 제자들이 그 전에 믿음이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자들이 모두 불신자라는 뜻도 아닙니다. 단지 이번에 죽은 나사로가 나흘 후에 살아가는 표적을 본다면 그들의 믿음이 더욱 깊어지고 강해질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 신앙은 신자들의 믿음을 강하게 만듭니다. 참으로 부활 신앙에 확신을 갖게 될 때는 기꺼이 주를 위해 목숨도 내어 놓을 것입니다. 아무튼 주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을 보고 더욱 예수님을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모든 활동은 언제나 주의 양떼들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특히 주의 양떼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믿음이기에 믿음을 북돋아 주시고 믿음을 강건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의 삶을 친히 이끄십니다. 이때 우리는 종종 주의 뜻을 알 수 없어서 당황하는 때가 있지만, 결국 자신을 부인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주를 믿고 의지하면 변함없이 주의 영광을 보며 참된 복을 누리게 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합니다. 물론 우리 주님을 한없기 기쁘시게 합니다.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히 11:6)고 하였고, 우리 주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 11:40)고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의 모든 문제는 믿음에 의해 해결됩니다. 믿음이 깊은 자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이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멋지고 위대한 사람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계속적으로 자기 제자들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 모든 상황을 섭리하십니다. 즉,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과 상황들은 언제나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일 뿐입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요단 강을 건너 유대로 가자고 말하니 당장 도마가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16절).
여기서 우리는 도마의 진심이 담긴 충성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에 있어서는 전혀 주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도 없고 그 말씀을 마음 속에 새긴 흔적도 없습니다. 오, 사람의 진심에서 나오는 말이라도 그 말이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닌 말은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지요! 마음은 원이로되 사람은 본래 연약하기에 자신이 뱉은 말을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한 도마와 다른 제자들은 결국 모두 예수님을 저버리고 도망합니다. 그럼에도 그의 말은 불신앙이 담긴 진심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진심에서 나오는 말로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은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결코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했던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직 마리아가 보여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믿음 외에는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만이 그리스도께서 보내시는 성령의 능력과 보호하심과 하나님 나라의 권세가 무엇인지 맛보며 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그 사건이 죽음으로 이어지고 그 후 죽은 그를 살려내심으로 제자들의 믿음이 성장할 것을 아시고 기뻐하신 것입니다. 비록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비극이 일어났지만, 이를 계기로 주의 제자들과 신자들은 더 큰 믿음을 갖게 되었고, 결국 우리 주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간구하여 나사로의 생명을 되찾아 가족에게 그를 돌려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면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을 지납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임하는 것 그 자체가 인간이 죄인이라는 증거라고 외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그러나 또 다른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믿는 자들에게 생명이 이르렀습니다.
[
15 …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요
17 …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그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로운 한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21 이는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마다)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롬 5:15-18, 21)
이처럼 믿음은 영생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영생은 모든 죽음과 저주와 고난과 슬픔을 다 이겨내고 영원히 우뚝 서는 생명으로서 우리 주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당하는 시련에는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도 동일하게 말합니다.
[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즉, 믿음의 시련은 더 굳건한 믿음, 더 강한 믿음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연단된 믿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보배 중의 보배인 것입니다.
[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6-9)
이제 우리의 남은 삶을 바라보며, 어떠한 병이나 아픔이나 고난이나 비참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도록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참고 이기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의 남은 삶의 과정에서도 믿음의 시련이 계속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이라는 문도 누구나 예외 없이 지나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마저 우리 주 예수님의 손을 꼭 붙들고 믿음으로 지나간다면 우리는 죽음을 지나면서도 복음의 메시지가 되면서 천국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병이든 죽음이든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기 바랍니다. 확실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확실한 것은 오직 십자가 대속입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영원히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만물을 창조하신 성삼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대들지 마시고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믿고 인내할 수 있는 더 큰 믿음을 달라고 늘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시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나의 영원한 친구 예수 그리스도를 온 마음을 다하는 ‘믿음으로’ 꼭 붙들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우리의 남은 평생에 모든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는 하나님 나라의 평강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