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제일 하기 어려운일 두 가지를 들라면
죄를 짓지 않는 것과
용서하는 일 이라고 합니다. 그 만큼 용서하기가 어렵다는 일이겠지요.
옛말에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원한은 냇물에 새기라’ 는 말이 있지만 거꾸로 되기 십상입니다.
¶ 무조건 용서
언젠가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었습니다. 살인죄를 저지르고도 10년 넘게 잡히지 않고 살아온 자가 자수하였다. 경찰은 그를 의심하지도 않았었는데 스스로 자기 죄를 고백한 것이다. 그가 자수한 것은, 자기가 죽인 할머니의 마지막 기도 때문이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돈을 빼앗고 자기를 죽이려는 강도에게는 뭐라도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께만 "주님, 제가 지금 당신께 갑니다."라고 여러 번 외쳤다고 했다. 할머니의 그 마지막 말이 그 살인자의 마음을 지난 20년간 괴롭히다가 끝내 자수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영화< 빠삐용 > 에서 앙리샤르에르라는 20살 청년은 파리 어느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중 검사에게 살인죄로 무고하게 체포된다. 그 검사는 부패한 검사로 앙리가 범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거짓 증인을 얻어 살인자라는 판결을 내린다. 알리는 14년간 감옥에 복역하며 탈옥을 시도하다가 9번 째 탈옥에 성공한다. 성공한 후 남미 브라질로 도망하여 30년을 기다린다. 프랑스에서는 어떤 죄든 30년이 지나면 말소되기 때문이다. 30년 후 파리 공항에 도착한다. 검사와 거짓 증인들을 죽이기 위해서…파리에 있는 집, 친구들과 거닐던 거리, 초등학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이 된 그 술집…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하느님 아버지, 만약 제가 복수를 포기한다면 다시는 나 같은 비극적인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약속할 수 있습니까?’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 밑바닥에서 ‘앙리 샤르에르, 너는 이겼다. 너는 자유롭고 사랑받는 미래의 주인공으로서 이 자리에 있다. 너의 원수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필요가 없다. 그들은 과거의 한 부분일 것이다. 네가 이 자리에 기적처럼 있다. 너의 그 비극적인 사건과 관련되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너다.’ 앙리는 복수하려 했던 그 자리에서 복수심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다. 무심코 튀어나왔던 용서의 결심이 용서하도록 만든 것이다.
용서를 결심할 때 주어지는 선물은 마음의 자유를 되찾는 것이다. 미움과 원한 속에 죄수가 되어있던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가볍게 하는 것이다. 용서는 60키로그램이나 되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 정상에 올라서 그 짐을 내려놓고 내려오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 사람도 있습니다. 용서는 상처 준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에게 원수를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상처에 대한 아픔을 잊을 수 있게 해달라고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응어리진 우리 가슴이 주님 자비로 대치되고, 주님 관대함으로 대치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해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를 천천히 반복하면서 기도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주님의 기도만큼 간결하면서도 의미 깊게 용서를 가르쳐 주는 기도문은 없습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평화봉사단이 폴란드를 방문하고, 독일을 방문했을 때 독일 신자들이 폴란드 신자들에게 용서를 청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평화봉사단이 폴란드 신자들에게 말하자 폴란드 신자들은 불쾌한 표정을 보이며 침묵을 했습니다. 평화봉사단들이 폴란드를 떠나기 전 함께 손을 잡고 주님의 기도를 드리던 중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부분에서 모든 폴란드 신자가 기도를 멈추었습니다. 잠시 후 한 사람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나는 용서하지않고, 더 이상 주님의 기도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신자라고 한다면 독일인들을 용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인간적으로는 독일인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용서합니다.’
그자리에 있는 독일사람들도, 폴란드사람들도 다 울었습니다.. 참으로 용서는 아름답습니다.
▶ 용서에 대해 잘못 알려진 몇 가지
값싼 용서는 상처 준 상대방의 나쁜 행동을 애써 좋게 보려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폭력으로 학대 받으며 자란 아들이 나중에 아버지가 다 나를 위해서 그런 것이니 용서한다고 하는 경우가 해당됩니다. 값싼 용서가 안 되기 위해서는 폭력 자체를 인정하기 보다는 아버지의 성장배경을 이해 하려고 노력한다 던지 하면서도 벌어진 악에 대해서는 직시해야 합니다.
섣부른 용서는 너무 성급하게 용서하고 벌어진 악을 성급하게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니며 내 안의 분노와 아픔이 억압되어 나중에 파괴적인 힘이 될 위험이 있으며 가해자에게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뉘우칠 시간을 못 가지게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가해자에게 다음에도 같은 행위를 해도 좋다는 잘못된 신호로 읽힐 수 있습니다. 제가 있는 수도원에서 식구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1주일간은 결코 화해하지 말라는 규칙이 있습니다.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성찰할 시간이 필요합니다.하지만 1주일후에는 반드시 용서해야합니다^^)
¶ 용서는 화해가 아닙니다.
용서는 상대방과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화해는 쌍방적이다. 상대가 나를 찾아와 잘못을 빌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용서하라고 했지만 화해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화해하라고 하신 경우는 내가 잘못했을 때 나에게 원한 품은 형제 생각나면 먼저 화해하고 제물 바치라는 대목뿐입니다. 화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변화가 필요하지만 용서는 상대방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화해는 서로 뉘우쳤을때 하는것이지만
용서는 상대가 뉘우치지 않아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해야합니다.
깐느 영화제에서 <밀양> 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영화 내용은 한 어머니 아들이 유괴 되어 살해됩니다. 어머니는 몹시 괴로운 삶을 살다가 주위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고 하여 신앙을 받아 들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던 중 주위에서 살인자를 용서하면 더 큰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고 하여 고해성사를 통하여 용서 하라는 보속을 받습니다. 어머니는 교도소로 가면서 생각 합니다. 살인자가 지은 죄로 무척이나 수척하고 괴로워하고 있을 거라고… 교도소에 도착하여 살인자를 면담을 하는데, 살인자는 싱글벙글 웃으며 혈색이 좋아 보이며 나타납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말한다. "나는 주님께서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는 구토를 느끼며 밖으로 뛰쳐 나오며 하늘을 보고 외칩니다. 누가 나보다도 먼저 저 살인자를 용서했는가.. 내가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가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울부짖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머니는 그 후로 신앙을 버립니다. 여기서 신부님은 용서하라고 했지 화해하라고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여자주인공은 용서하지 못했고 자신의 인생을 비참하게 끝내고맙니다.
용서하지 못한 인생의 끝은 참으로 참혹합니다.
한 자매가 있었다. 같은 봉사단체에서 활동을 했는데 다른 자매로부터 상처를 입었습니다. 피정에 가서 고해성사를 보았는데 그 자매를 용서하라는 보속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매를 찾아가 잘못했으니 화해하자고 말하자, 이제야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아는 모양이군! 하며 말했다고 합니다. 신부님의 보속은 용서하라고 한 것이지 화해를 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화해는 만나서 해야하지만 용서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혼자 하는것입니다.
송봉모 신부님(예수회, 서강대학교)
생명의 물 ( 김정식 글, 곡)
사마리아 길을 지나가던 예수님
먼길에 지치셨을 때 물 긷는 여인에게
물을 청하며 조용히 말씀 하셨네
이 우물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아
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당신을 사랑하오니
그 물을 제게 좀 주십시오 다시 목마르지 않게...
이 우물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은 샘물처럼 솟아 영원히 살게 할것이니
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당신을 사랑하오니
그 물을 제게 좀 주십시오 다시 목마르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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