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변증법
가끔 ‘변증법이 뭐에요?’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헤겔을 함께 언급하는데, 이참에 헤겔의 변증법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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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고, 논란과 비판도 많다. 영미 철학자들은 변증법의 논리를 ‘오류’라고 비판했고, 쇼펜하우어는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개소리’라고 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변증법으로 미래를 예측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에도 적용했다. 그러나 헤겔은 변증법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한 적도 없고, 이런 생각 자체를 거부했다. 헤겔의 변증법은 무슨 방정식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엘레아의 제논(약 2400년 전)을 변증법의 발명자라고 했는데,
이 때 변증법은 일종의 논쟁술(Eristik)이었다. 이런 논쟁술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정 - 반 - 합 이라는 3박자 방정식은 헤겔이 아니라 피히테의 발명품이다.
사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이런 방정식에 조롱을 퍼부었다.
헤겔의 변증법을 얘기할 때는 주인과 노예의 갈등을 많이 거론한다.
노예는 자신이 직접 노동하기 때문에 자립적인 존재가 되고, 주인은 노예의 노동에 의존하는 결과가 초래되어 노예와 주인의 극적인 역할 전도가 발생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헤겔의 변증법과 가깝다.
헤겔의 변증법은 이렇게 갈등을 통한 발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 인간의 노력,
그리고 갑작스러운 역전을 의미한다고 보면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 핵심 단어 ‘aufheben’(지양)을 살펴보면, 변증법을 머리에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단어는 ‘갖다버리다’, ‘보존하다’라는 반대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다 ‘들어 올리다’는 뜻을 추가해야한다. 즉, 버리고, 보존하고, 올라가는 것이다. 결국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필요한 부분만 보존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의 생각은 이렇게 발전한다는 것이다.
‘라면에 계란을 넣자. 안 된다. 그러면 느끼해진다. 그렇다면 고춧가루를 함께 넣자’ 이런 사고방식이다.
겪어보고 ‘아 이거네?’ ‘어 아닌 것도 있네’ ‘알고 보니 이거네’이다.
말하자면, 전체를 보는 사고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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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계들이 모조리 발견되고, 모든 것들이 밝혀졌을 때에야 비로소, ‘전체적인’ 진리가 인식된다. 참된 것은 전체다. 그리고 변증법의 세 단계는 전체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 세 단계의 법칙은 ‘미리 중지하지 않는 것’이다. /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헤겔은 ‘종합선물세트’를 추구한다. 그런데 이 선물세트는 박스만 번지르르해서는 안 된다.
그 속이 꽉 차야 된다. 이런 사고방식을 요즘 유행하는 페이스북에 적용해 보자.
페이스북을 보고 ‘이건 말장난이야, 아무 의미도 없어. 시마이!’하고 끝내면 안 된다. 그 대신 사람들이 쏟아내는 메시지와 사진을 낱낱이 살펴보고, 그 내용과 장점과 단점을 쫘악 뽑아낸다. 페이스북에 몸을 푹 담갔다가 빠져 나와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다시 몸을 담가보고 앞에서 정리한 생각에 뭔가 문제가 있다면 고친다. 이런 경험 - 관찰 - 비판 시리즈를 끝도 없이 계속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내가 페이스북에 대해 ‘뭘 좀 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고방식이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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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는 양쪽 가운데 어느 한 쪽 만을 참이라고 우기면서 서로 어긋나는 쌍방간의 자유로운 소통을 이루지 못하고, 대립과 갈등을 초래하는 양쪽 모두가 필연적인 구성요소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내용이나 실질 면에서 어떤 평가를 내리는 것이 가장 쉽고, 그 내용이나 실질성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일은 그것보다 어렵고, 이 2가지를 통일해 내용과 실질성을 모두 드러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 / 헤겔 ‘정신현상학’ p.36~37
오랫동안 헤겔을 강의했던 월터 카우프만은 헤겔의 변증법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오류를 무서워해서는 발전이 없고.
가장 해로운 것은 오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며.
그리고 우리가 생각을 해가는 과정에서 오류는 반드시 발생하고,
오류 없이는 발전도 아예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 참조
헤겔 ‘정신현상학’
월터 카우프만 ‘헤겔’
한자경 ‘헤겔 정신현상학의 이해’
강유원 ‘사회철학강의’, ‘정신현상학 서문 강의’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스털링 램프레이트 ‘서양철학사’
첫댓글 지금 칼 마르크스(이사야 벌린)를 읽고 있는데 헤겔에 대한 내용때문에 독서가 지체되고 있었다는....이글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땡큐우~ ^^
벌린 책은 어렵습니다. 워낙 고리타분한 양반이라....프랜시스 윈이나 캘리니코스가 더 재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