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과 진도는 여전히 지옥같은 고통과 슬픔으로 꽉 차 있습니다. 지난 10여년 트라우마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함께 해온 저도 매일 저녁 나가떨어질 만큼 몸과 마음이 힘이 듭니다. 글 한 줄 올리기도, 문자에 답을 하는 것도 못하는 경우가 요즘 점점 많아지네요..ㅠ 그럼에도 소식을 알려야 잊혀지지 않는다, 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입니다. 그래서 몇 자 소식을 적습니다..
1. 그간 개별적으로만 유족 부모님들을 만나다 며칠 전에는 유족 부모님들 전체와 만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늦은 저녁에 만나 3시간여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날 그 공간의 공기는 분명 납덩이였습니다. 공기에 무게가 있다는 걸 그렇게 확연히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3시간만에도 그 무게에 짓눌리는데 그분들은 24시간 일분 일초를 그 납덩이 같은 무게 속에서 살아갑니다. 말로 전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저도 부모님들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우는 울음은 보통의 울음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울음이라기 보다는 흐느낌,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우는 흐느낌에 가까웠습니다.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죄스러워 마치 울 자격도 없는 사람이 울고 있다는 듯이 입을 틀어막고 웁니다. 엄마들도, 아빠들도 대부분이 그랬습니다. 우물 바닥처럼 깜깜한 눈물,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눈물을 그 날 만났습니다. 저는 종교가 없지만 그날은... 묵주가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첨으로 간절하게 들었습니다..
2. 얼마전 유족 어머니 한 분이 동네 마트에서 평범한 표정으로 장을 보다가 ‘저 엄마는 계모인가봐..’ 하는 수근거림을 들었습니다. 그후 이분은 바깥 출입도 못하고 집에서 혼자 울며 지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게 있습니다! 유족 부모라고 24시간 울며 지내지 않습니다. 몇 시간씩 통제할 수 없이 울다가도 때 되면 배도 고프고 개콘이라도 보게 되면 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이 사람입니다. 유족도 예외가 아니지요. 편안한 표정의 유족도 혼자선 몇 시간씩 우는 사람일 수 있고, 내 앞에서 지금 울고 있는 유족도 다른 상황에선 웃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란걸 우리가 알지 못하면 우린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칼이 됩니다.
3.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의외로 무덤덤하거나 지나칠 정도로 밝은 표정을 짓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우는 사람보다 긍정적인 사람일까요? 아님 독한 사람일까요? 그것도 아님 트라우마를 훌륭하게 잘 극복한 경우일까요?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댑니다. 가장 약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 받았을 때 가장 심약한 사람이 무의적으로 쓰는 심리 방어기제가 바로 ‘감정 마비’거든요. 감당이 안돼서 셔터 내리듯 감정을 싹 다 차단하는겁니다. 긍정적이어서도 아니고 독해서도 아닙니다.
친구 장례식에 가서 슬픈 표정 하나 짓지 않고 태연하게 있다가 친구의 외삼촌에게 심한 질책을 들었던 생존 학생도 있습니다. 감정 마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비난이 아니라 시급하게 치유와 보호를 받아야 하는 가장 심약한 아이이지요. 그 아이는 친구들과 있을 때는 오버한다 싶을 정도로 유쾌하지만 밤에 숙소에 들어가면 커튼도 못 열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립니다.
유족 부모님 중에도 이런 경우가 꽤 있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같지 않은 편안해보이는 표정과 감정 상태 때문에 주위 사람이 오히려 당황하곤 하지요. 이런 분들이 가장 마음이 여린 분들입니다. 가장 많은 도움이 필요한 분들입니다. 정 반대로 보이지만 말입니다..
4. 요즘 저는 많은 시간을 생존 학생들, 단원고 2학년 선생님들과 함께 지냅니다. 생존 학생들의 치유는 상담의, 상담 교사 뿐아니라 생존 학생 부모님, 단원고 교사, 경기도교육청 장학사들까지 모두가 함께 고도로 집중하고 협력하며 진행 중입니다.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아직 많지만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견딥니다. 괜한 소문들에 아이들이 안좋은 영향을 받을까 그게 더 걱정입니다.
5. 생존 학생들은 새로 4개 반으로 나눠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데 이 아이들이 새 반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는 걸 많이 힘들어 합니다. 친구를 새로 사귀면 마치 (죽은)자기 친구들을 배신하는 거 같이 느껴섭니다. 친구가 삶의 거의 전부인 청소년기에 친한 친구들은 거의 죽었고, 새 친구 사귀는 것에는 무의식적 저항감을 가지는, 이 마음 여리고 착한 아이들.. 지금 이 아이들은 자기 삶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기 위해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담배 피우러 갑판 나왔던 아이들이 살아나왔다더라. 산 아이들은 다 담배 피우는 아이다..’는 등의 근거없는 험한 얘기들에 아이들이 다시 상처를 받곤 합니다.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갖게 됩니다. 살아야겠단 의지가 꺽입니다.
사지에서 살아온 아이들을 다시 죽이는 이런 말들, 이젠 제발이지 멈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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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학생들, 유족 부모님들을 우리 사회와 우리들이 끝까지 극진히 보호하고 치유해서 나중에는 천사가 된 그 아이들에게 찬찬히 잘 설명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그럴 의무가 있다고 느낍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의 마지막 단계이겠지요..
그때까지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곧 알려드릴께요, 우리가 함께 할 일들에 대해서요..
첫댓글 글을 읽으면 마음이 아파서 자꾸 외면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적극 동참하신분들이 지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