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03월16일(토요일) 강화도 [별립산&무태돈대&망월돈대&계룡돈대&국수산&삼암돈대&망양돈대] 산행일정
탐방지 : 강화도 [별립산&무태돈대&망월돈대&계룡돈대&국수산&삼암돈대&망양돈대]
탐방코스 : [막촌 버스 정류장~(756m)~신화유스호스텔~(1.9km)~별립산~(1.9km)~신화유스호스텔~(1.1km)~무태돈대~(493m)~창후리 선착장~(3.6km)~망월돈대~(2.4km)~계룡돈대~(2.1km)~석모대교~(1.0km)~국수산~(648m)~삼암돈대~(2.1km)~망양돈대~(582m)~청솔식당~(225m)~외포리 연안여객터미널 버스 정류장] (19.2km)
탐방일 : 2024년03월16일(토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6시간56분 소요)
06:00~06:40 구산역에서 6호선 지하철을 타고 합정역으로 가서 합정역 6번 출구로 나옴 [20분 소요]
06:40~06:55 합정역 버스 정류장에서 강화터미널로 가는 3000번 버스 승차 대기
06:55~08:43 3000번 버스를 타고 합정역 버스 정류장에서 강화터미널로 이동 [1시간 48분, 37개 정류장 이동]
08:43~09:00 강화터미널 정류장에서 막촌 정류장으로 가는 32번 버스 승차 대기
09:00~09:39 32번 버스를 타고 강화터미널 정류장에서 막촌 정류장으로 이동 [39분, 39개 정류장 이동]
09:39~09:54 인천 강화군 하점면 창후리에 있는 막촌 버스 정류장에서 탐방출발하여 인천 강화군 하점면 창후로288번길 52 번지에 있는 신화유스호스텔로 이동
09:54~10:44 인천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 560-39 번지에 있는 별립산(416m, 別立山)으로 이동
[별립산(別立山)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하점면과 양사면 사이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산이다(고도:416m). 강화 6대 산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강도지』에 "강화부 서쪽 2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와 『대동여지도』, 『조선지지자료』에서 별립산(別立山)이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산 사면이 하점면 창후리 · 이강리 · 양사면 인하리에 걸쳐 있다. 강화도의 다른 산들과 산줄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고 외따로 떨어져 있다고 해서 별립산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고 전한다. 산 정상에는 군 부대가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바위가 많고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준호산이라는 별칭도 있다. 산의 북쪽으로 48번국도가 동서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10:44~11:00 사진촬영 후 간식
11:00~11:35 신화유스호스텔로 회귀
11:35~11:52 인천 강화군 하점면 창후리 산 151-4 번지에 있는 무태돈대(無殆墩臺)로 이동
[무태돈대(無殆墩臺)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창후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돈대이다.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되었다.
돈대란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 두는 초소이다. 보통 높은 평지에 쌓아 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둔다. 특히 강화도에 있는 돈대들은 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 강화도가 함락되자, 이에 놀란 조정에서 해안 경비를 튼튼히 하기 곳곳에 쌓아두도록 한 것이다.
창후리 선착장에서 북쪽으로 난 비포장길을 따라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 돈대는 해안을 따라 직사각형으로 길게 쌓았다. 강화유수를 지내던 윤이제가 해안 방어를 튼튼이 하기 위하여 쌓은 여러 돈대들 중 하나로, 대포를 올려놓는 포좌를 해안을 향해 4곳 설치해 두었다. 조선 숙종 5년(1679) 어영군 2천명과 경기·충청·전라 3도 승병 8천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11:52~12:00 사진촬영 후 휴식
12:00~12:08 창후리 선착장으로 이동
[창후리 선착장은 강화도의 서북단 교동도와 마주보고 있는 별립산 하단에 위치한 작은 선착장이다. 이곳은 칠면초 군락지로 유명한데 해변에 자란 잡초들이 칠면조와 같이 색이 변한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해변 들판에 펼쳐진 잡초들은 계절마다 색을 달리해 바다와 대비되는 화려한 풍광을 자아낸다.]
12:08~12:10 사진촬영
12:10~13:05 인천 강화군 하점면 망월리 2107 번지에 있는 망월돈대(望月墩臺)로 이동
[망월돈대(望月墩臺)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에 있는 돈대이다.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11호 망월돈대 및 장성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8월 18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처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망월돈대는 방형구조로 둘레 124m, 석벽의 높이는 180~300㎝이다. 40~120cm의 돌을 직사각형으로 쌓아 올린 것으로, 성곽 위로는 흙벽돌로 낮게 쌓은 담장이 둘려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망월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진무영에서 직접 관할하는 영문 소속 돈대였다. 대개 돈대들이 해안가 높은 지대에 위치하는 것과 달리 망월돈대는 갯가 낮은 지대에 설치됐다. 그래도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이 없어 경계초소로 부족함이 없다. 남쪽으로 계룡돈대, 북쪽으로 무태돈대가 있다. 돈대와 함께 있는 장성은 고려 고종이 이곳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면서 해안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해 쌓아 올린 것으로, 누각을 설치한 출입문이 6곳, 물길이 드나드는 문이 7곳 마련되어 있었다.]
13:05~13:10 사진촬영
13:10~13:45 인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 282 번지에 있는 계룡돈대(鷄龍墩臺)로 이동
[계룡돈대(鷄龍墩臺)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구조물.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 282번지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옛날에는 규모가 큰 군사시설을 진이라 하고 작은 것은 돈대라 하였는데,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돈대를 설치해 적군의 침입을 감시하고 직접 싸우기도 했으므로 오늘날의 초소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강화도에는 53개소의 돈대가 남아 있는데, 1679년(숙종 5)에 설치된 것이다.
계룡돈대는 경상도 군위(軍威)의 어영군사(御營軍士)들이 축조한 돈대로, 강화 53돈대 중 유일하게 축조연대가 표시되어 있다. 30m×20m의 직사각형 모양이며, 한 면은 석축 높이 2m 정도에 길이가 30m이고, 3면은 석축(石築)되어 해변을 향해 정면으로 외적을 볼 수 있다. 망월(望月)돈대와 함께 직접 영문(營門)에서 관할했다. 석축 하단에 ‘강희18년 군위어영 축조(康熙十八年軍威禦營築造)’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강희 18년은 1679년이다.]
13:45~13:50 사진촬영
13:50~14:20 석모대교로 이동
14:20~14:45 인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 산 166 번지에 있는 국수산(193m)으로 이동
[국수산 정상에는 전망데크가 있다. 석모대교와 황청저수지를 조망할 수 있다.]
14:45~14:55 사진촬영 후 휴식
14:55~15:05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산 223-4 번지에 있는 삼암돈대(三岩墩臺)로 이동
[삼암돈대(三岩墩臺)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돈대.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산 223-4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축조한 강화 54돈대 중의 하나이다. 강화도의 서쪽 해안 중앙, 석모도(席毛島)를 마주한 곳에 설치하였다.
돈대는 외적의 침입이나 척후 활동을 사전에 방어하고 관찰할 목적으로 접경 지역이나 해안 지역에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의 방어 시설이다. 강화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6) 청성부원군 김석주(金錫胄:1634~1684)의 건의를 받아들여 축조하였다 한다. 실제로 축성을 지휘한 것은 당시의 강화유수(江華留守)였던 윤이제(尹以濟)이다. 강화돈대는 종래 53돈대로 알려졌으나, 1999년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 54돈대로 확인되었다.
삼암돈은 외포리 아래의 건평돈, 동으로 1.3㎞ 떨어진 망양돈, 북쪽으로 3㎞ 떨어진 석각돈과 함께 정포보(井浦堡:정포진)의 관할하에 있던 곳이다. 지형은 전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그 안쪽으로 약간 후퇴한 넓은 대지에 터를 잡고, 후면으로는 나지막한 산을 등지고 있다. 대략 40~120㎝ 정도의 모난돌로 축조된 석벽에는 4문의 포좌와 55개소의 치첩(雉堞)이 있었다. 포좌 내부에는 포탄 등을 보관할 수 있는 이방(耳房)을 설치하였다.
기록에 보면 축성 당시의 둘레는 91보라 했으나, 지금은 가로 22.5m, 세로 23m의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북으로 출입구가 나 있으며, 외벽은 높고 내벽은 낮은 것이 특징이다. 석벽의 폭은 4m 정도이고, 내부에 방형(方形)의 화약고터가 남아 있다. 석벽은 전체적인 지형에 따라 횡줄눈의 높이를 맞추어 쌓았으며, 석재 사이에는 그랭이질을 하여 맞닿은 면을 빈틈없이 하려고 하였다. 상부로 올라가면서 안쪽으로 후퇴시킨 퇴물림 방식을 사용하였다. 출입구로부터 우측 40m 지점에 석조를 만들어 물을 배수시키고 토압(土壓)을 완화하려 하였다.
지금은 부분적으로 보수하여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15:05~15:10 사진촬영
15:10~15:40 인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680 번지에 있는 망양돈대(望洋 墩臺)로 이동
[망양 돈대(望洋 墩臺)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돈대.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680번지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강화도는 예부터 외적의 침입이 잦았기 때문에 개성, 한양 등의 중부 내륙지방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로 해안방어에 각별히 힘써 왔던 곳이다. 이런 이유로 조선시대 숙종은 이곳에 6진(鎭), 7보(堡), 9포대(砲臺), 53돈대(墩臺)를 축조하기도 하였다.
1679년(숙종 5) 병조판서 김석주(金錫胄)에게 강화도의 지형을 돌아보게 한 뒤 어영군(御營軍) 4,000명과 함경도·황해도·강원도에서 뽑은 승병(僧兵) 8,000을 동원해 49개의 돈대를 축조하도록 명하였다. 망양돈대도 이때 축조되었다.
망양돈대는 높이 3m, 폭 2.5m, 둘레 120m의 원형으로 대포를 올리기 위한 포좌(砲座) 4개소와 치첩 40개소가 있고 윗부분에는 벽돌로 만든 성가퀴(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하기 위해 성 위에 덧쌓은 낮은 담으로 여장 또는 성첩이라고 함)의 흔적이 남아 있다. 주위에는 남쪽으로 3.2km 떨어진 곳에 건평 돈대(인천광역시 기념물)가 있고 서쪽으로 1.3km 떨어진 곳에 삼암돈대(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가 있다.
그 밖에 당시 망양돈대와 함께 축조된 돈대로는 택지·분오리돈대(이상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장곶·계룡·건평·건평·굴암·미루지·북일곶돈대(이상 인천광역시기념물), 망월·선수·화도·무태등대(이상 인천광역시문화재자료) 등이 있다. 특히 해안에 위치한 화도면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15:40~15:45 사진촬영
15:45~15:55 인천 강화군 내가면 해안서로 890 1층에 있는 청솔식당으로 이동
15:55~16:30 청솔식당에서 식사
16:30~16:35 인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에 있는 외포리 연안여객터미널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탐방 완료
16:35~16:50 외포리 연안여객터미널 버스 정류장에서 강화터미널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버스 승차 대기
16:50~16:14 버스를 타고 외포리 연안여객터미널 버스 정류장에서 강화터미널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24분 소요]
16:14~16:20 강화터미널에서 합정역으로 가는 3000번 버스 승차 대기
16:20~18:13 3000번 버스를 타고 강화터미널에서 합정역으로 이동 [1시간 53분, 37개 정류장 이동]
18:13~18:17 합정역 7번 출구까지 도보로 이동 [4분, 147m 이동]
18:17~18:27 합정역에서 역촌역으로 가는 6호선 지하철 승차 대기
18:27~18:43 6호선 지하철을 타고 합정역에서 역촌역으로 이동 [16분 소요]
강화도 별립산 산행지도
강화도 돈대 위치도
강화도 국수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