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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사람과 그들의 생각과 추구하는 정신의 결말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에 그분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특별한 사업이 있음을 읽게 된다. 그분은 그분의 율법을 계시하셨고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이 진리는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진리에 관하여 슬기롭게 되어 바른 것과 그릇된 것, 의와 불의를 분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신다.(6T 127.3) 셋째천사의 기별, 곧 이 시대를 위한 시험하는 큰 진리는, 우리의 모든 교육 기관에서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관들을 통하여 이 특별한 경고가 주어지고, 밝은 빛의 줄기가 세상을 밝히기를 바라신다. 시간은 짧다. 마지막 날의 위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기도하고,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교훈에 유의해야 한다.(6T 128.1)
‘요한’이 추방을 당하여 그가 사랑하던 사람들로부터, 멀리 ‘밧모 섬’에 외로이 있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충성된 그의 증인이 어디 있는지 아셨다. ‘요한’이 말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1:9~10). 주의 날은 제 칠일, 곧 창조의 안식일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 주신 날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역사가 끝나기 전에 일어날 사건들을,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계1:1)하셨다. 우리가 그것을 잘 알게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셨다.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선포한 것은, 헛된 것이 아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이것이 인내로 베풀어야 할 교육이다. 우리의 교과가 우리가 사는 시대에 적합한 것이 되도록 하라. 우리의 종교 교육이 하나님이 보내시는 기별에 일치하도록 하자.(6T 128.2) 우리는 장관들 앞에 서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우리의 충성에 답변하고 우리의 믿음의 이유를 알려 주어야 할 것이다. 젊은이들은 이런 사실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세계의 역사가 끝나기 전에 있는 일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영원한 복리에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교사들과 학생들은 그것들에게 더욱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말과 글로써, 때를 따라 양식이 될 것들을 젊은이에게는 물론이요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어야 한다.(6T 128.3)
우리는 위험한 때의 마지막 국면에 살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오심과 관계하여 지금 기승을 부리는 불신을 미리 내다보셨다. 주님께서는 거듭해서 이 사건이 예상 밖의 사건임을 말씀하셨다. 그 큰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덫과 같이 임할 것이다.(눅21:35).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이다. 첫째 부류에게 사도는 다음과 같은, 격려의 말씀을 하였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5:4). 어떤 이들은 신랑이 올 때 준비되어, 그분과 함께 혼인[예식] 잔치로 나갈 것이다. 그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얼마나 귀중한 생각인가!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5:25-27).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은 이 은혜를 즐길 것인데, 이는 그들의 품성이 아름답기 때문이다.(6T 129.1)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소유하게 될 사람들과 주님의 날에 서게 될, 사람들을 불러내는 위대하고 중요한 사업이 성취되어야 한다. 세상의 조류를 따라 항해하는 동안은, 우리에게 돛이나 노가 필요 없다. 우리의 노력이 시작되는 것은 그 조류를, 거슬러 단호히 방향을 바꿀 때이다. 사단은 진리를 왜곡시키기 위하여, 온갖 종류의 이론을 끌어들일 것이다. 사업은 어렵게 진행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담’의 타락 이후로 죄짓는 것이 세상의 풍조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활동현장에 계신다.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신다. 거룩한 대리자들은 완전한 모본을 따라 품성을 다시 꼴 짓는 일에 있어서 인간과 협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시는 바를, 완전히 이루어야 한다. 한 백성으로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일을 할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을 위하여 적합한 학생들을 만드는 유일한 목표를, 끊임없이 견지하면서 주어진 모든 빛에 유의할 것인가? 만일 믿음으로 우리가 위대한 지도자이신 하나님을 따르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바른 길로 나아갈 것 같으면, 빛이 우리의 가는 길을 밝혀 줄 것이다. 그리고 역경을 제거할,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하나님의 인정은 소망을 줄 것이며, 수종(隨從:시중)드는 천사들은 빛과 은혜와 용기와 기쁨을 가져다주면서, 우리와 연합할 것이다.(6T 129.2)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RC 210.1)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두 종류의 처녀는, 주님을 기다린다고 자칭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들을 처녀라고 부른 것은, 저희가 순결한 신앙을 지킨다고 공언하기 때문이다.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한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기름은 성령을 표상한다. ‘스가랴서’에도 성령이 기름으로 설명되어 있다....“내가 보니 순금등대가 있는 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 데...”(슥4:2~3).(RC 210.2)
두 감람나무에서 금 같은 기름이 흘러나와 금관을 통해서, 등대 기름통으로 들어가고 거기서부터 성전에 빛을 비춰 주는, 금 등잔으로 들어간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거룩한 분들에게서 나온 성령은, 그분의 사업에 헌신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진다. 기름부음을 받은 두 사람의 사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늘로부터 온 은혜를 나누어 주는 것인데, 이 천혜(天惠:하나님의 은혜)만이 주의 말씀이 우리 발에 등이 되고, 우리 길에 빛이 되게 할 수 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RC 210.3)
비유 가운데 열 처녀가 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나아갔다. 모두가 다 등과 기름 담을 그릇을 갖고 있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들 사이에, 별다른 차이를 볼 수 없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재림 바로 전에, 사는 교회도 그러하다. 모든 사람이 다 성경의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기별을 들었으며, 그분이 오실 것을 확신하며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비유 가운데 나타나는 일들을, 오늘날에도 볼 수 있다. 기다리는 시간에, 우리의 마음은 시험을 받는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25:6)고 부르짖을 때에, 준비되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들은 등은 가졌으나 기름 그릇에, 기름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성령이 결핍되어 있다....(RC 210.4)
성령의 감화가 없는 진리의 이론만으로는, 사람의 심령을 깨우치고 마음을 심화시킬 수 없다. 우리가 비록 성경의 말씀과 약속들에 정통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진리를 깊이 깨닫게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의 품성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성령이 우리 마음을 밝혀 주지 않을 것 같으면, 사람들은 진리와 오류를 분간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저희는 사단의 교묘한 시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RC 210.5)
품성은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믿을 수 없고, 아무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성령을 받을 수 없다. 아무도 성령의 역사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품성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RC 210.6)
우리를 위하여 그분의 생명을 주신 분께, 아무것도 아끼지 말자...우리에게 맡기신, 그분의 재물을 모두 드리자.(OHC 7.6) 연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중에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요20:19)라고 말씀하실 것을, 결코 잊지 아니 하도록 하자.(OHC 7.7) 우리는 허송세월과 일하며 살아가며 숨만 쉴 것이 아니라 생각해야 하며, 숫자만 생각하지 말고 느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심장의 고동을 따라, 시간을 계산해야 한다. 가장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최고의 생애를 살며, 가장 고상한 것을 깨달으며 가장 좋은 행동을 한다.(OHC 7)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이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14.)(OHC 8.1) 그대의 앞에는 자아방종의 넓은 길과, 자아희생의 좁은 길 즉 두 길이 있다. 넓은 길에서는 그대는 이기심과 교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좁은 길에서는 모든 무거운 짐과, 범하기 쉬운 죄악들은 벗어버려야 한다. 영원한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과 영광과 불멸로 인도하는 길, 이것들 중에 어느 길을 그대는 택하였는가?(OHC 8.2)
세상 역사 가운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때보다, 더욱 엄숙한 시기는 없었다. 우리의 영원한 관심은 위기에 처하여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어나서 우리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선택은 확실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관심을, 다만 있을 법한 곳에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들은 반드시 정착하여야 한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한 순간이라도, 계획 없이 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영원이란 것은 나에게 어떤 것인가? 각자는 스스로 물어 볼 것이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길인가? 혹은 멸망으로 이끄는 길인가?” ...(OHC 8.3)
우리들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곧고 좁은 길임을 안다. 우리는 다 같이 이 길로 행하자. 그리스도인 생애를 성공적으로 살아갈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탁월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만이 무엇이, 진실 된 생애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참된 종교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그들은 그들의 감화와 재물과 재능의 달란트를 헌신의 제단에 가져오며,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분의 뜻을 행하며 알기를 구한다.
그들은 그들이 반드시 가야 할 길을 아는데 그 길은, 좁고도 궁핍한 길이며 그들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에 매혹적인 유혹들을, 대항해야 할 많은 시험과 장애들을 만나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분별하며 그들의 주요 구속자이신, 예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향상과 전진의 길로 간다. 그들은 하늘로 인도하는 왕의 길을 택할 것이다.(OHC 8.4)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많은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시32:10).(OHC 9.1) 우리는 자주 하나님을 봉사하는 이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련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저들을 위하여 지정된 길은, 울퉁불퉁한 길이다....
그러면 죄인들은 이 세상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으로서, 그칠 것인가? 아! 저들에게는 참으로 무서운 날이 이를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만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OHC 9.2) 악인들은 실망과 고통과 빈곤과 재난에서, 자유를 누리는가? 저들 중 많은 사람은 불치의 병으로 고통을 당하나 저들이 의뢰할, 강하신 분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저들의 연약한 것을, 붙들어주실 분으로부터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저들은 저들 자신의 힘에만 의존한다. 저들은 장대를 바라다 볼 때, 아무 위안도 못 받는다. 저들은 오히려 불안과 두려움에 싸인다. 저들의 앞에는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뿐, 부활의 아침의 기쁨을 기대할 수 없다. 그 까닭은 저들에게는 첫째 부활에 참석할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OHC 9.3)
그리스도인들도 병마와 시련과, 낙심과 빈곤을 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 중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들은 그분의 뜻 행하기를 선택하며 그분이 시인하시는 것처럼 그렇게도, 높고도 고상하게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시련의 투쟁 속에서도 이 생의 변화되는 장면에 모든 것을 아시는 한 분이, 계시다는 것을 그는 아는데 그분은 슬픔과 낙망 중에 부르짖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모든 슬픔을 위로하시고 동정하시는 한분, 모든 이의 심령이 터질 듯한 고통도 위로하시는 분이다.... (OHC 9.4)
이 모든 고통 중에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강하신 위로자가 계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그가 죽음의 눈을 감기 전에, 괴로운 질병으로 오래 고통을 당할지라도 그는 이것을 기쁨으로 감당한다.... 그는 하늘의 만족함으로 장래를 바라본다. 무덤에서 잠깐 쉴 것이며 생명을 주시는 분에 의하며, 무덤의 속박을 깨뜨리시고 포로에서 해방시키고 흙무덤에서 불멸을 주시고, 결코 슬픔과 죽음의 고통이 더 이상 없게 됨을 안다. 아! 이 어떠한 그리스도인의 소망인가! 이 소망을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품자. 이것이 그대의 것이 되게 하라.(OHC 9.5)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시31:19.)(OHC 10.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여행을 명랑하게 하고 그를 사랑하고, 그를 찬양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앞길에 많은 축복들을 허락하여 주셨다. 그리고 그는 우리들이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들은 시온의 노래를 노래할 수 있으며,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다. 즉 희망을 굳게 잡을 수 있으며, 어두움을 빛으로 변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흑암의 세계 가운데 남겨 두지 않으셨다. 우리의 앞길에는 아름다운 꽃밭들로, 장식되어 있을 것이 약속되어 있다. 이 꽃들은 어디든지 있으며 풍부한 향기를 발할 것이다.(OHC 10.2)
우리들의 매일 받는 축복을 그대로 넘겨 버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가지고자 함으로써, 우리는 얼마나 많은 축복들을 잃어버리는가! 일반적으로 받는 축복은, 축복으로 생각지 않고 지나친다. 우리는 자연 가운데서 보잘 것 없는 하나님의 사물들로부터,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그늘지고 보잘 것 없는 장소에 핀 꽃도, 빛의 광선을 모두 받을 수 있음을 응답하며 잎을 낸다. 태양 없는 집 속의 감옥 같은 새장 안에 새도, 양지에서 사는 것처럼 당당하게 노래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축복들을 사용할 때, 지혜 있고 알뜰하게 쓸 것인지 아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남용하도록, 주시지는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부터 평화와 희망과 위로를 수집하기 위하여, 그분의 약속의 말씀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자들, 감사하는 심령을 사랑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직 그분의 사랑의 더욱 깊음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것이다.(OHC 10.3)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우리 마음과 입술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이것이 무익한 대화나 게으름에 대한, 방종의 유혹을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OHC 10.4)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늘이 있음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하고 바라보도록 하신다.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들을 산 믿음으로 붙잡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감사하도록 하자.(OHC 10.5)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나이다.”(레10:23).(OHC 11.1) 경험이 없는 여행자들에게 항상 위험한 ‘나이즈 캐년’을 통하는 길은 장마철에는 통과할 수 없는 길이다. 우리는 이 곳을 통과할 때, 한 안내자에 대하여 대단히 감사하였다. 나는 좌우 쪽을 볼 수 없었으나 그는 줄을 꼭 붙들고, 나의 탄 말은 그를 따라서 그 좁은 길을 지나갔다. 나는 우리 인도자를 따랐다. 이곳에서 부주의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만일 우리의 탄 말이 오른 쪽으로 한발 헛디딘다면, 우리는 골짜기로 떨어졌을 것이다.(OHC 11.2)
우리는 이 길을 거의 숨도 못 쉬고 따라갔다. 나는 이 위험한 길을 가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경험으로, 예증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였다. 우리는 위태한 날을 향하여, 인생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크신 인도자를 따르고 있는지 분명히 하기 위하여, 매 발걸음마다 주의 깊게 파수하는 것이 요구된다. 무신론과 방탕, 범죄가 사면팔방에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자제의 고비를 쉽게 풀어 버리게 하며, 분명하게 멸망의 절벽으로 던져 버린다....(OHC 11.3) 무한한 사랑은 주님의 대속하심을 통하여 이 땅에서, 하늘로 가는 길을 만들어 놓으셨다. 그 길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정로에서 벗어나는 발걸음을, 지시하여 주도록 보냄을 받는다. 하늘의 영광스러운 사닥다리가 모든 사람의 앞길에 놓여 있으며, 악습과 어리석음의 자신의 길을 금하도록 해준다. 그는 죄의 생애로 나가기 전에,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를 짓밟는다.... 겸손하고 신뢰하는 자들은 평화의 길로 가도록, 보호되며 인도될 것이다. 그러나 무한하신 지혜 자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강제로, 가장 귀중한 하늘의 선물을 받으라고 하지 않으시며, 어느 누구에게도 무한한 값을 치루신 길로 걷도록 강제하지 않으신다. 모든 사람들은 하늘로 인도하는 좁고도 빛나는 절벽 길을 가든지, 종말은 죽음인 넓고도 쉬운 길을 가든지 자신들이 택하도록 허락되었다.(OHC 11.4)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OHC 12.1)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아들을 보냄으로써가 아니요, 그가 세상을 사랑하심으로써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신성을 감추게 하시고, 인간과 접촉할 수 있도록 인성을 쓰게 하심으로써 표현된 것이다. 죄가 비록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깊은 장벽을 만들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이 장벽을 넘을 수 있는, 다리를 놓는 한 경륜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면 어떤 재료를 사용하셨는가? 그는 그 자신의 한 부분을, 사용하셨던 것이다.
아버지의 영광의 찬란한 빛은 상하고 병든 것을 치유하는 빛으로서, 그의 거룩한 품성과 그의 거룩한 몸, 즉 이 장벽의 다리를 통하여서 세상에 들어왔다....하늘의 창문들은 열려졌고 하늘의 은혜의 소낙비는, 치유의 강물처럼 어두워진 이 세상으로 흘러 들어왔다....(OHC 12.2) 하나님께서 조금밖에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사랑하실 수 있으실 터인데 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세상에 아주 풍성하게 주셨다. 그러면 첫 번째를 주신 후에 두 번째 은혜의 기간이 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큰 선물을 사람에게 주시기 위해 모든 하늘을, 쏟아 주시기에 자비로 지쳐 버리셨다. 다만 이 재물의 가치를 깨닫는 자만이, 무한대의 가치를 깨닫는다. 아.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높이여! 어떤 유한한 존재가 그것을 깨닫겠는가? ...(OHC 12.3)
하나님께서는 온 마음과 온 정신과 온 정성과, 온 힘을 다한 사랑을 요구하신다. 그분께서는 하늘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을 조금도 남김없이, 그분의 모든 것을 한 번에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하늘의 전 보물을 쏟아 주셨기 때문에,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을 요구하신다....(OHC 12.4) 내가 이 주제를 기록하려고 시작했을 때에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가장 힘써 기술하였지만 결국 실패했다. 우리가 하늘 저택에 이르게 될 때에야 예수께서 자신이 어린양의 피로 희게 한, 흰 옷 입은 자들을 하늘 아버지께 인도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계7:15)(OHC 12.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9:15.)(OHC 13.1) 믿음으로써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들은 상인들이 무한한 값을 치룬, 귀중한 보석과 같이 하늘에서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은 저들이, 하늘 보화를 발견한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저들은 이 보화가 묻힌 땅을 사기 위하여, 저들의 가진 모든 것을 팔려 할 것이다. 저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저들의 앞에 놓여 있는 구속의 경륜과, 그리스도의 겸양의 오묘 등이 저들에게 명백하게 될 때, 저들을 위하여 행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볼 때, 그를 위하여 버리지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들이 더욱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기 위하여, 가장 큰 분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죽을 수밖에 없는 눈을 위하여 너무 영광스럽게 되었다.(OHC 13.2)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의 모든 재물을 모아서, 잃어버린 인간보화를 사기 위하여 사용하셨다. 아버지께서는 타락한 인간에게 하늘의 풍성한 축복을 부어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손에 그의 모든 거룩한 자원들을 맡기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품에 아들을 이 세상에 내어주심으로써 표현하신 것 이상으로, 더 큰 그의 사랑을 표현하실 수 없으셨다. 이 은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것은 모두 행하셨으며, 아무 것도 남겨 둔 것이 없다는 것을 확신케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하늘이, 이 큰 은사 가운데 포함되는 것이다. 현재와 영원한 사람의 행복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OHC 13.3)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속주이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모든 불법으로부터 씻어 정결케 하실 수 있는 샘이시다. 그분이 사람을 화목케 하기 위하여, 주신 바 된 값비싼 제물이시다. 타락하지 아니한 하늘 우주 세계, 타락한 세상, 악의 동맹체들까지라도 하나님이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분이 하신 것보다, 더 무엇을 하실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결코 그분의 선물을 능가할 것이 없으며, 결코 사랑의 풍성한 깊이를 나타낼 수가 없다. ‘갈바리’는 그분의 최고 절정의, 사업을 대표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표본적인 자신의 품성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한없이 기뻐하게 될 추종자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OHC 13.4)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오,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시71:5.)(OHC 14.1) 예수께서는 모든 방황하는 자들을 부르신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달라”(잠23:26) ...청년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 그분은 고집쟁이들의 고백을 듣고 저들의 참회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오래 기다리고 계신다. 그는 어머니가 사랑하는 애기의 미소 짓는 것을 지켜보듯이, 우리가 감사를 돌리는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들이 모든 시험과 유혹 가운데 있을 때,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부드러운 마음으로 우리를 돌보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하시려고 하신다....(OHC 14.2)
청년들은 진리를 아는 지식과 은혜 가운데서, 계속적으로 장성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지혜의 보화를 가지고 계신 만물의 창조주께서, 저들 청년들의 인도자가 되어 주시기를 약속하셨다. 그들을 위하여 정복자가 되신 분께서 저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시는 것은, 모든 악의 세력을 정복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을 정확하게 아는 지식보다 더 높은 지식이 없는 것은, 그분은 생명과 평화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구세주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깊은, 애정은 없고 더 순결함은 없다....(OHC 14.3) 어느 곳에든지 청년들의 발을 묶어 놓는 유혹이 있다. 불경건하고 부패한 청년은 다른 이로 하여금,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강한 감화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사단의 가장 성공적인 기구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자주 우정의 치장에 접근하게 되며, 세상의 습관과 관습을 받아들이도록 유혹될 것이다. 모든 참된 정병들은 이러한 유혹들을 대항하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OHC 14.4)
사단은 우리의 약점을 공격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복당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들과 교훈들이 거룩한 능력의 팔이 되어, 그대를 안아서 원수를 대항하도록 해줄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진리로 심령을 채웠을 때에, 사단은 패배와 좌절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자주 더 은혜의 보좌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필요하다. 정직하고 끊임없는 기도가 우리 인간의 연약함과 전능하신 분과, 연합될 때 우리에게 승리를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도와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힘을 힘입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OHC 14.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의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 15.)(OHC 15.1) 우리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구주님의 십자가의 못 박혀 돌아가심과 부활하심을 바라다보는 무리요,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 사단의 감화를 따르기로 선택한 무리들이다. 나중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순종의 길에서 돌이켜, 불순종과 죽음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저들을 타락케 하기 위하여, 저들의 앞에 방해물들을 놓는 일에 분주하고 있다....(OHC 15.2)
예수께서는 선언하시기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6:38,39)하셨다. 그의 뜻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행동에 옮기는 것이었다. 그의 인성의 뜻은 신성으로써 입혀졌다. 오늘날 주님의 종들은 저들 자신들에게, 진지하게 물어 볼 것이다. “나는 어떤 종류의 뜻을 개인적으로 계발하고 있는가? 나는 나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 왔고 완고하고 이기심으로, 나 자신을 굳게 붙들어 매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들이 만일 이와 같이 행하고 있다면, 우리들은 큰 위기에 처하여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은 사단은 하나님의 성령의 지배 아래 두지 않은 뜻을, 언제나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우리의 뜻이 하나가 될 때,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모본이었던 거룩한 순종이 우리들의 생애에서 보여 지게 될 것이다.(OHC 107.2)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사탄은 인류가 본래 소유하고 있던, 고귀한 순결과 금빛 찬란하던 품성을 죄로 인해 찾아볼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하나님께서 ‘에덴’의 통치자로 창조하신 인류는 죄의 저주 아래 신음하고 있었으며, 이 세상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담’을 감싸고 있던 하나님의 의의 두루마기 곧 영광의 후광(後光)은, 죄를 범한 후 그를 떠나갔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불순종과 죄를 가려 줄 수 없었고, ‘아담’의 자손들은 건강과 풍성한 축복 대신에 가난, 질병, 모든 종류의 고통을 짊어지게 되었다.(Con 35.1)
사탄은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접근했던 것과 같이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나아갔다. 그는 사람들을 쉽게 정복하고 자신의 멸망으로부터 승리를 얻기 위하여, 사람들을 신체적으로 도덕적으로 허약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는 사람들로 결과를 생각지 않고, 식욕에 방종하도록 유혹하는 일에 성공적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재능들을 손상할 때에,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를, 이행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두뇌는 신체를 지배하는 곳이다. 만일 사람의 지각 능력이 어떤 종류의 부절제로 인해 마비된다면, 사람은 영적인 사물들을 분간할 수 없게 된다.(Con 5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