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화운동본부장
충남 홍성 출신 2남. 여의도 순복음교회 장로. 합덕중학교 졸업, 서울법대 졸.
가난한 적이 많은 가정에서 자람.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공부,. 메주 대가리라는 별명때문에 열심히 공부.
고
시에 7번 떨어짐. 그래서 하나님께 합격시켜주면 하나님께 충성하고자 기도?다. 그러자 기도하고 2개의 시험에 합격하고 기도를
까먹었다. 2년후 서소문에 근무할때 아내될 사람과 친구 중매로 만나 아내가 교회나가느냐고 묻기에 급할때는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답하였다. 교회간다고 약속하고 6개월후 결혼하고 군대를 갔다. 1970년데 김장환 목사 교회에 나갔다.
제대후 73년 검사가 되어 천안 근무. 우리 집사람을 CCC출신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왔다.
저는 검찰청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고 결혼생활도 덤덤한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서는 죽겠다는 말을 많이하였다. .
아
내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를 들어 <어서돌아만 오라> 라는 찬송이었다. 집에 들어왔는데도 집에 돌아로라고 노래하라고
하는가 행각했다. 당시는 교회 뜰만 밟는 생활이었다. 1978년 집사람이 갑자기 남소암 선고를 받았다. 그때 저는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입이마르고 고3의 아들을 돌봐야하고 집사람 병간호해야 했다. 이때 마취에서 깨어난 집사람이 시편 108편을 읽어달라고
하였다. 1절에서 <하나님이여...> 이말씀을 읽으면서 아내게 잘 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돠었다.
아내는 <내마을 정하였으니> 말씀대로 주일 성수를 철저히 지키고 전도하고 또 이분들을 집에 초대하자고 하여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그래서 집사람을 기쁘게 해주면 암세포가 없어질 것을 생각하고 아내에게 잘해주고자 하였다.
그런데 성경을 잘 몰랐다. 그래서 첫째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는가 도 왜 내가 죄인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래서 책방에 가서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책방에서 책을 사서 3일 간 책을 열심히 읽었다.
이를 통해 질문에 답을 얻었다. 술도 아내가 아품과 함께 끊었고 골프도 주일성수와 함께 끊어졌다. 그리고 결심하고 교회앞자리에
앉아 말씀이 들어왔다.
둘째로 전도하는 문제는 전도할 사람이 1500명은 되었다. 사무실에서도 시간이 있을 때 차를 대접하고 전도하였다. 그리고 술을 끊고 차를 마시니 건강이 좋아졌다고 하자 나도 나가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불교에 심취하신 장모님을 전도하였다. 그리고 간절히 전하자 교회에 나가셨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전도할때 정말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 이 장모님이 주님을 영접하고 많은 사람을 전도하시고 돌아가셨다. 장인 어른도 불교믿었었지만 믿으시고 하늘나라 가셨다.
그리고 이혼하려는 조카 부부 화합을 위해 노력하자 다시 화합하였다.
대학을 못갔던 여동생을 위해 기도하였다. 그리고 남편과 이혼하지 않고 지금 잘 살고 있다.
한번은 스님이 찾아 오셨다. 이 스님을 위해 힘써 도와드리자 이 스님도 교회에 나가겠다고 하셨다.
자신이 밤 1시에 들어와도 아내는 정말 감사하다고 하였다.
직장에서 죄인들을 (피으자들) 돕는데 죄는 미워도 죄인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순종하니 사랑은 이웃을 사랑하며 율법을 완성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서울서 3년간 부장검사하도 춘천으로 발령났다.
가기 싫었지만 아내는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가라고 해서 갔더니 억지로라도 감사하자 하나님이 축복해 주었다.
검사장이 퇴근하면 교회에 가는 분이 그를 따라 교회 성경공부에 오셨다. 지도자급에 있는 분들이 성시화운동으로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와 당시 신우회 회원들이 780명이 되었다.
그
후 수원으로 발령받았다, 그러나 그 발령이 싫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성경암송을 많이 하였다. 그러자 1년후 검사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때 하나님이 축복해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후 대검찰청에서도 성경암송을 하였다. 성경암송, 묵상 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축복해주신다. 대검찰청에 1300명의 검사중 300명이 예수님을 믿는다.
가나안 농군학교 교장. 세계가나안농군운동 본부 총재
필립핀으로 막사이사이상을 타러가는 아버지 김용기님을 따라가는 아들. 고무신을 신고 가는 아버지를 챙피하게 생각하게 생각하며 따라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당당하게 행동해 만장의 박수를 받았다.
아버지는 일본의 착취당하는 시대에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조국이 잘 살수 있다고 한손에 성경 그리고 한손에 삽을 들고 일하였다.
안동김씨 자손이지만 일하며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땅이 나쁜 삼각산에 가서 개척하였다.
1954 경기도 광주의 오지에 가서 땅을 일궜다.
황산을 가나안이라고 이름을 짓고 시작하였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그곳 사람들은 자동차가 안나가자 가나안 간판을 부셨다 그 이유는 간판을 꺼구로 <안나가 > 로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씨 아들들은 1주만에 나팔등의 악기부는 것을 배워 불자 동네사람들이 모여들자 그들에게 일하여 잘 살자 하자 호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런 고생이 싫어 김병일은 그 곳에서 두번 도망을 쳤다.
도망간 이유는 한번을 서울에 가서 친구집에 가서 벨을 눌렀더니 아름다운 여인이 나오는데 자신은 몸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 순간에 그는
부끄러운 자신에 정신을 잃었다. 그래서 도망을 하여 고생을 많이 하였다.아버지의 간절한 편지를 받고 사흘을 울었다. 밤에 돌아가자
아버지는 내가 너를 이해한다 하셨다.
한번은 아버지께 대들었다 아버지 혼을 나서 또 도망갔다. 그러나 어머님이 기도한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갔다.
거대한 고구마와 봉숭아등의 추수을 통해 사람들이 몰려들자 배우러 온 사람들을 위해 기숙사를 짓고 농군학교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자연보호를 위해 치약과 비누쓰는 것부터 절약을 가르쳤다. 새벽엔 뛰고 아침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들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공부하였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도 배우러 왔다. 그후 농촌 진흥청이 생겼다 한다.
그후 1973년 어린 아이 둘을 데라고 강원도에 개척하러 가서 눈물로 일하자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배웠다.
아버지를 모시고 가나안 농군학교를 섬기다 아버님을 하나님께로 보내드렸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 20회 - 정영숙 권사(탤런트,영화배우)
이북 출신. 전기여고에 시험에 떨어져 야간에 다닐때 믿음이 좋으신 어머님이 숭의여고에 가 믿음으로 학교측에 말씀드리자 믿음 좋으신 학교장은 돈 안내고 주간을 다니게 되었다.
가정이 어려워 이대들어가는 것이돈일 많이 들어갈까봐 아버지가 반대해 숙대에 들어가서 하나님은 이를 통해 탤런트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께 감사하게 되었다.
숙대2학년에 영락교회 2학년때 성가대의 일원으로 환자들을 위로하는 모임에 참석하였다.
한번도 소리내어 기도한 적이 없는데 성가대대원이 돌어가며 기도하자고 하였지만 기도하지 못하고 성가대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4학년때 추천에 의해 친구들의 추천에 떠밀려 탈렌트 모집에 응하였다. ?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학교에서 화장을 시켜주고 친구 4사람과 함께 시험보러 갔다.
그리고 제가 신인탈?트로 뽑혀 대본을 받고 촬영하러 가니 떨렸다. 다급한 판에 셋트장 되에 우물우물하며 도와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연기를 하자 사람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였다. 당시 긴장이 되어서 이북사감같이 보였다.
결혼하고 십일조 생활을 하기로 하였다. 믿음은 없었지만. 그러나 이제 생각하니 하나님이 십일조를 드린 것을 축복해 주신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연애인들가운데 성경공부에 초청을 받아 참석하였더니 성경귀절을 암송하는 모임이었다. 그 후 저의 집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하였다. 그런데 섬기는 것이 너무 부당미 되어 김밥등으로 먹는 것을 대치하였고 한 3년 간 계속하였다.
그리고 기도원에 가서 오랜 기도를 하는 생활을 배웠다.여자로 외과의사이신 분을 만나 기도를 배웠다.
그리고 나라위한 기도모임. 에스더 기도모임을 하고 있다.
일 주일에 삼각산에서 기도하는 모임을 가졌다.
그
후 간증을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연기자 신우회를 만들어 교도소도 갔다. 우리는 죄를 짓고도 감추고 있는 상태고 그들을 벌을
받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장애인들위한 모임을 갖었다. 그리고 월드비존의 건물을 얻어 들어갔다. 그리고 아프리카 선교여행을
가게되었다.이북을 위한 한민족복지재단 사업을 위해 이북을 세번 다녀왔다.
제가 점차 나이가 들면서 어려움도 있다.
주인공에서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충격이 왔다. 미국유학하고 있는 자녀 비용도 보내야 하는데. 이러던 차에 이전에 잘나가던
사람들이 사업이 망한 사람들을 만나고 깨달은 바가 있엇다.그런데 이들이 생활은 어려웠지만 하나님을 제데로 믿고 있었다. 이중에
한분은 온누리교회 여전도회장이였다. 저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 참된 유산을 물려주는 것임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