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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7코스...외돌개에서 월평포구까지
***외돌개 입구에 들어서다.
가을에는 모든 것 다 용서하자
기다리는 마음 외면한 채
가고는 오지 않을 사람을
생각하지 말고 그만 잊어버리자.
가을의 불붙는 몸에 이끌려
훨훨 벗고 산 속으로 가는 사람을
못 본 척 그대로 떠나보내자.
가을과 겨울이 몸을 바꾸는
텅빈 들판의 바람소리 밟으며
가을에는
빈손으로 길을 나서자.
따뜻한 사람보다 냉정한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미운 사람들을
한꺼번에 모두 잊어버리자.
한 알의 포도 알이 술로 익듯
살아갈수록 맛을 내는 친구들을 떠올리며
강처럼 깊어지자.
살아가며 우리가 만나야했던 미소와 눈물
혼자 있던 외로움 하나하나 배낭에 챙겨넣고
가을에는 함께 가는 이 없어도 좋은 여행을 떠나자....김재진의 '혼자가는 여행'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이생진의 '아내와 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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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인생에서 머지않아 내게 다가 올 가능성이 큰 불안한 미래, 기억력 상실....
늙는다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건 우리 인생에서 무언가를 하나씩 잃어가는 과정의 연속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소중한 것들이 하나씩 우리의 손에서 새어나가고 우리의 곁에서
떠나가는 것이다. 육체적 능력, 지능, 희망, 꿈, 이상, 용기, 확신, 의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한사람 한사람 우리에게서 떠나간다. 그렇게 한번 떠나버리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인생? 철학? 종교?
(2) 점수의 노예, 일의 노예, 정욕의 노예, 돈의 노예, 권력의 노예, 인기의 노예, 계급의 노예...
지금까지 난 노예의 삶을 살아온 건 아닌지? 과연 내 인생에서 진정으로 ‘자유인’인 때가
있었는가? 자유혼을 가진 적은 있었는가? 나에게 묻는다. “너 왜 사니? 이렇게?”
(3)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완전한 신제품 보다 상태가 좋은 中古가 오히려 더 믿을만 하다.
(4) 비바람 속에서도 꽃은 핀다. 그리고 모진 비와 바람이 아니었더라면 그 꽃이 그만큼이나
따뜻하고 고마웠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삶이, 사람이 꽃보다도 더 아름답다.
(5) 방송이나 영화에 비유하면 연애는 사실상 잘 편집된 화면만 보여주는 격이다. 예쁜 모습,
착하고 매력적인 모습만 걸러서 보여준다. 이에 비해 결혼은 먼지가 날리는 촬영현장의 생방송
이나 다름 없다.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보여준다. 결혼은 일종의 테마게임이다. 테마는 사랑이
지만 그에 이르는 과정은 게임에 가깝다. 게임은 즐거운 오락이기도 하지만 진지한 승부이기도
하다. 승부는 이기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승부 자체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 즐거움에도
당사자 간에 지켜야 할 도리, 룰이라는 것이 있다. 배우자끼리도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 <주철환의 글 중에서>
누구나 다 사람은 처음엔 하나의 수정란이었다.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물고기처럼 아가미로 호흡하고 놀았을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어 몸을 받고 생을 받았을 것이다.
늙는다는 것이 두려운 것은 더 이상 나의 주체적인 선택과 의지에 의해서 나와 관련된 나의 삶을 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늙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피동성 위에 놓여지게 된다. 삶을 새롭게 만들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삶속에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남들한테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이란 느낌이 들 때가 많아졌다고 할까? (장석주의 '고독의 권유' 중에서) ‘늙는다는 것—세상의 규칙을 더 이상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장그르니에)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 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바둥거렸으리라 바둥거리다가
어찌 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번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
***엄마의 처절한 마음, 자식을 둔.......너를 안고 내가 스며들다
간장이 쏟아지는 옹기그릇 속에서 엄마꽃게는 알들을 가슴에 품고 어쩔 줄 모릅니다.
등판에 울컥울컥 쏟아지는 검은 간장에 묻히면서 더 이상 가슴에 품은 알들을 지킬 수
없게 된 꽃게 엄마, 마지막까지 알을 지키려고 부등켜 안고 있던 어미 꽃게는 결국
알들에게 말합니다.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이제 간장 게장 먹을 때마다 이 시가 생각나서 못 먹겠지요?
*****
맛있는 꽃게 철이다. 시 첫머리만 보고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려니 했는데, 마지막 부분을
읽다가 울컥하였다. 내 우울한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힘들었던 청소년기가 떠올랐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죄스런 마음이 사무쳤다. 어머니의 희생이 없었다면
나의 인생이 어땠을까?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내가 어미꽃게 같이 내 아이들과 제자들을
감싸 안는 용기와 힘을 낼 수 있을까?
***뱀장어에 관한 감동적 이야기 (자오스린, 사람답게 산다는 것, 28쪽)
뱀장어를 산 채로 솥에 넣고 은근한 불로 삶았다. 그런데 물이 끓고 뱀장어가 다 익었을
무렵 솥뚜껑을 열어보니 뱀장어가 기이한 자세를 한 채 익어 있는 것이었다.
뱀장어의 몸이 활처럼 위로 둥글게 구부러져 꼬리와 머리는 물속에 잠겨있고 배 부분만
물 위로 나와 있었다. 주인이 호기심에 뱀장어의 배를 갈라보니 뱃속에 알이 가득 들어
있었다. 뱀장어가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머리와 꼬리로 몸을 지탱하면서 몸을 구부린 채로
죽은 것이었다.
먼 산이 한 결 가까이 다가선다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더욱 또렷해진다.
가을이다.
아 내 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
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
해가 많이 짧아졌다. ..............김종길의 '가을'
***
작가는 '잘 겪은 시련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말한다. 혹독한 시간을 거친 파쇄공이
그랬듯이 흐르는 세월은 인생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머리카락은 성글어지고 그림자는 엷어지고.......김종길 시인의 '가을'은 마치 담백한
수채화 드로잉 같다. 가을과 저무는 인생을 대비한 원로 시인의 수수한 시어들이 쇠락
하는 것들의 애틋함, 살아있음 그 자체에 대한 경의를 일깨워준다. 저무는 해가 더 곱
다고 하지 않던가.
청명한 가을인가 했더니 어느 새 아침저녁으로 한기가 스며든다. 어느 새 해는 짧아졌다.
해마다 이맘때 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의 노랫말을
떠올리며 눈부신 햇살도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도 아껴가며 즐기고 싶다. 10월의 마지막
하루 또 한번의 가을이 훌쩍 떠나기 전에..................................
***강정마을은 아직도 '투쟁 중'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손으로 잡을 수 없게 만드셨다.
사방에 피어나는
저 나무들과 꽃들 사이
푸르게 솟아나는 웃음 같은 것
가장 소중한 것은
혼자 가질 수 없게 만드셨다.
새로 건 달력 속에 숨 쉬는 처녀들
당신의 호명을 기다리는 좋은 언어들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저절로 솟게 만드셨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 속으로
그윽히 떠오르는 별 같은 것................. 문정희의 혼자 가질 수 없는 것들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숟가락 하나
놋젓가락 둘
그 불빛 속 딸그락거리는 소리
그릇 씻어 엎다보니
무덤과 밥그릇이 닮아 있다.
우리 생에서 몇 번이나 이 빈 그릇
엎었다
뒤집을 수 있을까
창문으로 얼비쳐 드는 저 그뭄달
방금 깨진
접시 하나 ..................... _송수권의 혼자 먹는 밥
***길을 가다가 마주친 식당에서 맛있는 '몸국'을 맛있게 잘 먹었다. 식당 아주머니가 매우 밝고 친절하였다.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혼자라는 건
실비집 식탁에 둘러앉은 굶주린 사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끝내는 것만큼 힘든 노동이라는 걸
고개 숙이고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들키지 않게 고독을 넘기는 법을
소리를 내면 안 돼
수저를 떨어뜨려도 안 돼
서둘러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허기질 수록 달래가며 삼켜야 한다는 걸
체하지 않으려면
안전한 저녁을 보내려면................ / 최영미 '혼자라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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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은 2016 09 07 '2015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구주택 총조사는
통계청이 5년 주기로 하는 조사이다. 대한민국의 인구와 주택의 현황 전반을 보여준다.
5년 전의 인구주택 총조사 때와 현저히 다른 변화 중의 하나는.................
한국의 주된 가구 형태로 '1인 가구'가 부상했다는 점이다. 1인 가구가 520만 채로
전체 가구의 27.2%, 일반가구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이다. 다음이 2인 가구 (26.1%)
3인 가구 (21.5%), 4인가구(18.8%) 순이다. 1990년대 가장 흔했던 5인이상의 가구는
지난 해 기준으로 6.4%로 줄어들어 보기 힘든 가구형태가 되었다.
90년에서 2005년까지는 4인가구가 주된 가구였는데 2010년엔 2인가구가 주된 가구가
되고 2015년엔 1인가구가 주된 가구가 된 것이다. 1인가구가 5년 전에 비해 100만 가구
나 증가했다. 1인 가구는 2010년에 23.9%, 2015년에 27.2%에 이어 2035년엔 34%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 이제 대한민국에서도 '혼자 사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온 거다.
***올레 7코스의 종점 '월평' 아왜낭목'
가차 없이 아름답다 - 김주대(1965~ )
빗방울 하나가
차 앞 유리에 와서 몸을 내려놓고
속도를 마감한다.
심장을 유리에 대고 납작하게 떨다가
충격에서 벗어난 뱀처럼 꿈틀거리더니
목탁 같은 눈망울로
차 안을 한번 들여다보고는
어떠한 사족(蛇足)도 없이 미끄러져, 문득
사라진다.
***
가차 없이 사라지는 것은 가차 없이 아름답다.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 모란이 지던 초여름 밤,
짧게 지나가는 비, 백거이의 어떤 시구, 초가을의 아침 이슬, 거룻배, 중국 여행의 끝, 무지개,
첫사랑… 따위가 그렇다. 차 앞유리에서 제 속도를 마감하는 빗방울도 가차 없이 사라지는 것의
목록에 든다. 빗방울은 꿈틀거리다가 “목탁 같은 눈망울”로 차 안을 들여다보고, 이윽고 미끄러져
사라진다.
이 미미한 것의 사라짐을 놓치지 않은 시인이라니! 덧없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빗방울 한 점은 젊음,
세월, 생명, 사랑이나 다를 바 없다. 찰나의 광휘를 남기고 사라짐으로써 애틋해지는 것들!
<장석주·시인>
**중문고등학교 버스 정류장에서....
첫댓글 너무나 곱고 감상적인 詩句. 그리고 곁들인 고운님의 감상. 감동적입니다.
어느덧 유랑시인이 되셨네요.
비 맞아 더욱 정겨운 산천, 귀에 쏙쏙 실리는 고운 언어들, 오래 기억하고 싶으네요.
부지런 하시외다. 젭싸게 제주를 다녀오셨구만...
이날 오전엔 快晴, 오후 2시 넘어 비.....
5시간 30분 정도의 걷기에는 아주 좋았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