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부대에서 군기교육대를 갈 각오를 하고 카츄샤들의 잇권을 지키기 위해 한 투쟁을 제외하고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속 일촉즉발까지 갔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미군부대에서의 객기도 경찰에 의한 현행범 구속의 위기를 느낀 사건도 알고 보면 나의 남다른 정의로움이 화근이 되었다.
군대갔다 와서 예비역으로 생활할 때 나의 모든 용돈은 친구들 술과 밥을 사주는데 사용되었다. 일주일에 고작 2만원의 용돈을 받아 삼시세끼 밥 사먹고 나면 남는 돈도 별로 없는 형편이었지만 조교 방에서 밥을 해먹고 살며 식대를 아껴 친구들을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따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취업 시즌을 앞두고는 공부에 너무 바빠 한동안 뜸하다 여유가 생긴 틈을 타서 친구들 술을 또 사게 되었는데 그때 사고가 터졌다.
한 친구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친구들끼리 싸움이 붙은 것이다. 사건의 단초는 승용차 백미러에 대한 이단 옆차기였다. 창피해서 같이 못다니겠다는 친구들이 술에 취해 정신을 못차리는 친구를 공격하고 나는 그 싸움을 말리고 뒷감당을 자처하였다. 모두가 돌아가고 공격받던 친구를 자취방으로 데리고 가는데 그가 나에게도 시비를 붙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 새끼 저 새끼 쌍욕을 해대었다. 다행히 힘으로는 내가 완벽한 우위를 점하고 있기에 겨우 겨우 추슬러가며 길을 가는데 어떤 건물 공사 현장에 와서 사건이 터졌다. 그곳에서 각목을 하나 가지고 나와 나를 때려 죽인다고 설쳐댄 것이다.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각목을 빼앗아 집어 던지고 정신차리라고 뺨을 한대 올려 붙였다. 그리고는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지만 전혀 다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다치지 않도록 최대한의 힘 조절을 하고 있었다.
버리고 갈 수도 데리고 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시간들이 계속 되고 친구는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지고 난리가 났다. 그때 내 눈에 파출소가 들어오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다짜고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나에게 날아오는 소리는 청천벽력이었다.
"당신! 크게 싸웠구만... 몸이 온통 피범벅이야!"
경찰은 나와 친구를 자신들이 아는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친구는 턱이 부러지고 이빨이 날아가고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경찰은 사건을 확실히 파악한 후 나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고 기다렸다. 양가 부모가 달려오고 소식을 들은 다른 친구들이 오고 난리가 났다. 그쪽 삼촌이란 사람은 자초지종을 알아보지도 않고 나에게 욕부터 하고 달려 들었다. 나는 꾹 참고 친구가 정신을 차리면 모든걸 설명드리겠다고 했다.
드디어 친구가 정신을 차리고 양가 부모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지켜보는 속에서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경찰이 폭행 사건이 아님을 알고 돌아갔다. 그런데 상대 부모는 우리에게 치료비를 요구하였다. 나는 다친 친구가 말려주기를 기대했지만 그는 필름이 끊겨서(블랙 아웃 : 나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장시간 온전히 필름이 끊긴 적은 없다.)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입을 닫았다. 평소 같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지만 곧 취업을 위해 이 회사 저 회사에 이력서를 내야 하는 나의 입장에선 이런 사건에 오래 휘말려 있어서는 전체 인생이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할 수 없이 치료비는 우리가 내주기로 동의하였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의사가 끝내 폭행 사건이라며 의료보험처리를 거부한 것이다. 인간 쓰레기는 도처에 널려서 우리들을 뜯어먹으려 버티고 있었다. 세상에 대한 식견에 눈을 뜬 지금의 내가 장담하건대 그 의사 놈은 의료보험도 청구해서 치료비를 이중으로 타먹었을 것이다. 경찰마저 이 의사 놈이랑 똑같았으면 교직자로서의 나는 존재할 수 없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병원을 옮기고 나머지 치료를 진행하였다. 그때 들어간 돈이 무려 120만원! 30년전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특히나 길거리에 떡다라를 놓고 4형제를 키우던 우리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천문학적인 금액 그 자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분한 생각에 치가 떨려왔다. 왜 남들보다 정의롭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이런 말도 안되는 피해를 감수해야 했는지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너무 오랜 기억이 되어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친구는 이제라도 나에게 사과하면서 돈을 돌려주고 우정도 회복하면 좋겠지만 내 인생 속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도인을 자처하는 인간인지라 굳이 찾아가서 받아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우리 집의 이익은 아내가 아니면 전혀 챙겨지지가 않는다.
나는 두고 두고 자부심 느끼기를 현실적인 이익보다 훨씬 더 소중히 하는 이상한 족속이다. 내가 이익이나 챙기고 사는 인간이었으면 인터넷에서의 이런 도인 행세는 전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한강 사망 의대생 사건에 관심을 가진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참고로 나의 부모 형제 중에도 내가 정말로 안때린게 맞는지 아직도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이 있다. 도사의 마음을 제외한 공간에서 진실은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다.
Nothing is what it seems to be because of the money and power except in the shrine of the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