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28) 막내딸과 외손자
신아문예대학 구연식
아기가 젖을 달라고 보챌 때 외손자의 경우는 '어미젖 좀 그만 뜯어먹으라' 하고, 친손자의 경우는 '어미야, 젖 좀 주라'고 한다. 딸과 며느리의 편견에서 오는 우리네 가족문화의 잘못된 폐습이 있다. 그러나 굳이 할미꽃의 전설을 말하지 않아도 막내딸에 대한 친정엄마의 애틋한 사랑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서울에 사는 막냇사위가 대전에서 직무교육이 있다기에 막내딸은 이제 10개 월 되는 외손자를 데리고 우리 집에서 5일쯤 쉬었다가 가려고 내려왔다. 이제 막 기어다니면서 제 눈에 보이는 것은 모조리 잡아당기고 입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천방지축의 외손자라 우리 부부는 외손자의 키 높이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미리 치워놓고 외손자의 식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내려왔는데, 날씨가 더워서 어린애 어른 할 것 없이 파김치가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막내딸의 얼굴이 먼저 들어왔다. 모유로 육아를 하면서 극성스러운 새끼의 뜻을 받으며 기르느라 많이 야위었다. 외손자와 사위를 보니 딸보다는 건강해 보여 미운 감정도 들었다. 집에 들어와 앉기도 전에 외손자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자기 집에서 보지 못해서 신기한 물건에 호기심을 보이며 미처 치우지 못한 물건을 잽싸게 거머쥐어 내동댕이치면서 입에 넣고 빨았다. 눈앞에서 치우거나 빼앗으면 데그루 구르거나 생떼를 부렸다. 그렇게 외가에서 첫날밤이 돌아왔다. 어린애도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좀처럼 잠을 자지 않고 계속 두어 시간 동안 울면서 엄마를 괴롭혔다.
온 식구가 비상이 걸렸다. 막내딸에게는 결혼 전에 제가 쓰던 방에서 안정을 취하면서 푹 쉬고 잠을 자라고 침구도 제가 덮던 것으로 준비를 해줬는데 사위는 직무연수 때문에 연수원 기숙사로 떠난 뒤여서 외손자의 소동 때문에 잠 못 드는 막내딸을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결혼 전에는 새끼 중에서 유난히 잠도 많았던 막내딸이었는데 어둠 속에서 제 새끼를 안고 달래는 모습을 보니 외손자가 미운 생각도 들었다.
새벽에 빼꼼히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모자간에 얼마나 지쳐서 잠들었는지 손자는 엎어져서 제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잠이 들었고, 막내딸은 손자를 쳐다보며 몸도 얼굴도 손자 쪽으로 향해서 잠이 들었다. 늦은 아침에 손자가 문을 밀고 배시시 웃으며 거실로 기어 나왔다. 어젯밤 미움은 어디로 가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핏줄일 뿐이다. 식탁에서 아침식사를 하려는데 외손자가 젖을 달라고 또 떼를 썼다. 막내딸은 할 수 없이 식사를 포기하고 내려가니 아내는 작은 쟁반에 막내딸의 식사를 챙겨갔다. 친정엄마는 막내딸에게 밥을 먹이고, 막내딸은 손자에게 젖을 먹이는 모성애의 모습이 목울대를 울컥하게 했다.
산후 후유증으로는 요통, 관절염, 신경통, 우울증 등이 나타나는데 막내딸은 제 부모 걱정 끼칠까 봐서인지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소파에 앉아 있는 막내딸의 머리숱을 보니 앞에서 부는 선풍기의 바람을 거스르고 삐쭉삐쭉 서 있는 머리카락이 많이 보인다. 막내딸 이야기로는 언제 머리카락이 빠졌는지도 몰랐는데 생머리카락이 돋아 올라와서 출산 이후에 머리카락이 빠진 것을 알았다고 한다. 이렇게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는 모성애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본능이며 삼신할머니가 내린 어머니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되었다.
불교에서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파묘하는 어느 산소 앞을 스님이 지나가는데 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유골을 놓고 남자니, 여자니 하면서 왈가왈부하자 스님은 거리낌 없이 여자의 유골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여자는 평생 피를 서 말 서 되를 쏟고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살았기에 유골의 색깔이 거무튀튀하고 뼈에는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면서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과학적 근거로 이야기하기 전에 어머니는 평생 여자로서 생리와 어머니로서 출산 때 출혈을 뒷받침하는 말로 어머니의 거무튀튀한 뼈, 숭숭 뚫린 작은 구멍 같은 헌신과 희생이 없었다면 인류의 존재도 인간다운 삶의 즐거움도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막내딸이 잠자고 먹는 것이 시원찮은 것을 알고 아내는 안절부절못하며 목이 멨다. 막내딸을 생각하면 외손자가 야속하나 검은 눈을 껌벅거리며 쌩긋 웃는 외손자를 덥석 안으면서 그래도 내 혈육이며 막내딸 노후의 보험이라 생각했는지 예뻐서 어쩔 줄 모르면서 ‘잠 잘 자고 엄마 편하게 하고 명 길고 훌륭한 사람 되세요.’ 하면서 손자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나도 손자처럼 어머니를 통해서 태어나고 컸을 테지만 그것은 아랑곳없이 불효했던 자신을 반성해 본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딸들과 며느리를 위해 손자들에게 참된 삶을 살도록 보살펴 주고 며느리와 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내일이면 막내딸이 서울로 다시 올라간다. 아내는 밤새도록 밑반찬 거리와 막내딸이 끼니를 거를 때 손자를 안고 먹을 수 있는 간식 만들기에 밤잠을 설친다. 묵은지는 물론 그간 먹을 만한 것을 아껴두었다가 다 내놓는다. 냉장고지기 음식물 재료도 모두 꺼내어 막내딸 집으로 보낼 작정인가 보다. 엘리베이터에 한 번에 다 실을 수 없어 두 번 나누어 실으니 같은 라인 아주머니가 어디로 이사 가시냐고 물었다. 짐만 크지 알 속은 없는데 아내는 아직도 성에 안찬 표정이다. 차량은 주차장을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차창을 열어 놓으니 외손자는 외가 식구들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힐끗 웃어준다. 아내는 벌써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외손자든 친손자든 선입견을 갖고 그만 뜯어먹으라니, 젖 좀 주어라는 식의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의 전통가문 승계에는 외손봉사(外孫奉祀)도 있지 않던가! 금방 떠난 외손자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2019.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