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 참 좋은 구절이 많다. 그 중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고 하는 글귀가 있다. 스포츠 선수들 중에도 여유롭게 축구와 야구를 정말 즐기는 선수를 더러 볼 수 있다.
치열하게 승부를 다투고 때로는 멋진 묘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경기 결과에 지나치게 연연해하지 않으면서 미소를 머금는 선수가 텔레비전 화면에 뜰때면 차라리 저 선수가 프로 수행명상선수보다 더 선수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아주 가끔 있었는지 없었는지 생각해보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은메달을 따고도 금메달을 뛰어넘는 미소를 보여준 선수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뼛속에 저미듯이 스며들어 있는 통증을 잠시 보류하고 환하게 미소를 띄우는 그 내공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걸까.
다른 이에 대한 비방은
제 스스로 피로해질 뿐
내려놓고 내려놓아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해
비겁하게시리 중단할 수도 있다는 협박을 마치 꿈꾼 것처럼 꾸며서 애꿎은 노인장님을 등장시키는 필자 자신이 참 부끄럽다. 그런데 어젯밤에는 진짜 꿈을 꾸었다. 할머니 한 분이 조용조용한 걸음으로 다가오셨다. 햇살이 고즈넉하게 들어오는 찻집 유리창가였다.
홀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오시더니 잠시 앉았다가도 되겠느냐고 하신다.
“예 앉으시지요.” “고마워요.”
그러시면서 한 말씀 건네신다.
“호나 법명이 있으세요?” “최근에 기바산인(奇婆散人)이라고 제 스스로 지은 것도 있고, 묵하 선생이 견로(見老)라고 지은 것도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50년 어깨를 아팠는데 어깨견에 늙을노자를 바로 쓰기가 그래서 볼견자로 살짝 위장한 것입니다.” “기바산인은 무슨 뜻인가요?” “예 제가 좋아하는 ‘전 적벽부’에 ‘기부유어천지’(寄於天地)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루살이가 천지간에 임시로 몸을 맡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기바산인은 사바세계에 임시로 몸을 맡기고 있는 쓰잘데기 별로 없는 인간이란 뜻입니다.”
할머니께서는 하하하 웃으시더니 정색을 하시면서 필자에게 필명을 하나 지어주어도 되겠느냐고 하신다.
“예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하하>라고 하는게 어떨지 모르겠어요?” “예~ 무슨 뜻인지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래하자 세 개 써보세요. 그러면 하하하(下下下)가 되지요.” “농담같기도 하고 심오한 뜻이 들어있는 것 같기도 한데 뜻풀이도 함께 해주시는게 어떠실런지요.” “한문 공부 쬐끔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쉬운 글자 세 개 붙여놓은 것도 해석이 잘 안되시나보다.” “하하하하하. 예 군자가 갈지자에 걸린다고 제가 지금 아래하자 세 개에 걸렸습니다.”
할머니가 따뜻하게 미소를 지으시더니 나직하게 말씀하신다.
“모든 직위 내려놓고(下) 학벌이나 재산도 내려놓고(下) 다 내려놓으라는(下) 뜻이지요.” “예 참 좋은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직위도 없고 다른 것도 거의 제로상태입니다.” “앞으로 틀림없이 잘 되실 거예요. 좋은 일이 많이 생길테니 이 말을 꼭 명심하세요. 하하하.” “할머니 감사합니다. 저어 존함이나 법명이나 아호나 그런건 없으신지요.” “칠만팔천년 전에 우리 스승님께서 어질인자에 은혜혜자를 쓰라고 하셨어요.” 눈을 떠보니 연구실의 책상이다. 인혜 할머니는 이내 사라지고 안계시다. 필자가 알고 있는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이 있는데 독설가에 근접해있다. 그런데 꿈인혜 할머니는 참으로 자상하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증도가’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從他謗任他非 (종타방임타비)
把火燒天徒自疲 (파화소천도자피)
我聞恰似飮甘露 (아문흡사음감로)
銷融頓入不思議 (소융돈입부사의)
다른 사람의 비방은 그대로 맡겨두라 /
횃불로 하늘을 태우려는것과 같으니 /
제 스스로 피로해질 뿐 /
내가 듣기엔 감로수를 마시는 것과 같으니 /
다 녹여서 부사의에 들어간다네.
[1238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