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의 세상이라서, 잠자다 적에게 목을 잘리는 자도 있어,
죽음에 대한 공포도 관계되어 15~16 세 때는,
카필라에서는 1~2위를 다투는 실력자가 되었다.
또한 무술의 극의(極意)는,
모든 문제에 응용할 수 있는 정도(正道)와도 상통하여,
출가 6년의 고행을 지탱하는 큰 원동력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무술의 달인이 당시에도 많이 있었지만 굿샨디브디는, 뛰어나게 강했다.
고타마는 그에게서 기(氣). 검(劍). 몸(體)의 호흡을 익혔던 것이다.
13. 출가와 반성,
고타마의 불안한 마음을 자극하는 일이 마침내 일어났다.
계모가 난다를 낳고,
난다에게 부왕의 뒤를 잇게 하려고 한다는 말을 여관의 입을 통하여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성에 있는 한,
부왕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며, 계모에게 쓸데없는 신경을 쓰게 한다.
출가(出家)를 하면, 모든 일이 원만하게 해결된다.』
라는 생각이 들어, 고타마의 출가의 동기가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출가의 동기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이미 밝힌 것처럼, 이웃나라의 침략, 빈부의 차이, 카스트 제도의 모순,
고타마를 에워싼 여성끼리의 상극 등이 서로 얽혀,
인생에 대한 무상(無常)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출가하겠다는 최초의 발심(發心)은 역시 왕위계승 문제에 있었으며,
얼굴도 모르는 생모, 마야에 대한 애집(愛執)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날이 갈수록 출가에 대한 생각이 점점 마음속에서 넓어져 갔다.
바라문교의 베다도 열심히 공부하였다.
외래(外來)의 수행자가 카필라에 들리면, 그의 말에 열심히 귀 기울였다.
성안에서 계모와 얼굴이 마주칠 때가 있어도,
의례적으로 인사를 할 뿐이었고, 되도록 그것을 피했다.
고타마의 마음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초조하였으며,
베다에도 열중해 보았지만 조금도 안심을 얻을 수 없었다.
어릴 때의 천진난만하던 성격은 차츰 내향적이 되어,
쉬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부왕의 눈이 이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고타마가 열아홉 살이 되자,
계모의 오빠이며 데바다바 성의 성주(城主)인 스크라부다의 장녀 아쇼다라를 정처(正妻)로 맞아들이게 했다.
이렇게 하면 고타마는 출가를 단념하고,
성에 머물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미 기술한 대로이다.
그러나 고타마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부담으로 되었다.
부왕의 기분이나, 성(城)의 정치적 관계 등을 고려하면
점점 그 자유가 얽매여졌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그 배출구를 다른 데서 구하게 되었다.
일시적 도피를 위해서, 육체적 향락에 젖기도 했다.
몇 사람의 여인들이 고타마의 총애를 받았다.
걸어서는 안 될 길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었다.
아내를 맞이하고 오히려 육체적 번뇌가 더 쌓여, 자포자기가 된 자신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잠자리에서 여인들의 불화 갈등을 들으면,
자신의 행위에 화가 남을 느꼈으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잊고, 열락에 잠겼다.
여인들은 자유로웠다. 즐겁게 봉사해주었다.
생각한 대로 되는 방자한 마음은,
출가하고 싶다고 하는 가장 엄한 자기의 내면에 조명을 비치는 행위의 태동과는
반대로 슬슬 넓어져 간 것이었다.
고타마는,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자신이 걸어온 그 상념과 행위는 자기보존의 에고밖에 보이지 않는 것을 안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의 편력에 대해서
중도(中道)라고 하는 불법(正法)의 조명으로 비추어 가면
닿는 곳마다, 검은 구름이 소용돌이 칠 뿐,
정법에 맞는 행위가 전무했음에 아연하는 것이었다.
아버님과 계모에 대한 태도, 부하와의 경쟁의식,
동물 애호에 있어서도 거의가 독선적이었거나, 자기주장의 표현이었다.
이제까지 6년 간의 산중 수행에서도
하루라도 빨리 깨닫고 싶다고 하는 자신의 욕망이 앞서서
외견(外見)에 사로잡힌 겉치레의 수행이었다.
깨달음에의 중요한 과정은 마음의 내면에 대한 반성이며,
정법이라고 하는 대자연의 섭리에 비추어 보고
사물을 보는 법, 사고방식. 이해하는 방법, 그리고 그것에 기준을 둔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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