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구룡사龜龍寺 행자 때 <초발심자경문>을 편 뒤 법진法眞 스님이 입을 열었다 "너 <초발심자경문> 알아?"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글쎄요. 잘 모르는데요" 스님 나이를 묻지는 않았으나 총무 삼현 스님 사제師弟였으니 아무래도 서른 미만이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아주 해박한 분이었다 죽비를 손에 들고 스님이 말했다 "초심初心은 첫 마음이고 발심發心은 그 마음을 냄이며 자경自警은 스스로를 경책함이다" "네 스님, 그런 뜻이 있었군요" "그래 이 세 가지 경전을 한데 묶어 보통 '초발심자경문'이라고 해" 나는 역시 머리만 긁적일 뿐이었다
법진 스님이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이를 불교에서 뭐라는지 알아?" "글쎄요! 잘 모르는데요....." 법진 스님이 손가락을 꼽았다. "첫째 초선初善이고 둘째 중선中善이며 셋째 후선後善이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마지막까지 좋을 때 이를 '유종有終의 미美'라고 하지"
그때 들은 '유종의 미'가 평생을 간다 끝을 잘 맺는 아름다움의 뜻으로 뭐든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으레 시작도 좋고 나아가 과정도 좋으며 끝도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군자의 경지라 할 것이다 삶의 모든 과정이 다 아름다우니까 가령 평소 아름다웠다 하더라도 만약 그 끝이 아름답지 않으면 초선과 중선은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
여기에는 다른 뜻도 들어 있을 수 있다 처음도 중간도 끝도 다 좋은 것과 평소 구두쇠에다 막되었는데 삶 마지막에 사회에 환원한다든가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게 되면 그를 다시 새롭게 인정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유시有始의 미가 있고 유중有中의 미가 있다 해도 유종有終의 미가 없다면 앞의 유시와 유중의 미는 덮인다 떠나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중국 전국戰國시대 진무왕秦武王이 세력이 커지자 점점 교만해지면서 처음 품었던 마음을 잊어버렸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신하가 진무왕에게 건백서建白書를 올렸다 "거룩하신 군주께서 천하통일의 대업을 착실히 추진하시되 끝까지 유종의 미를 그대로 잘 받아들이신다면 천하가 군주를 우러를 것입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곧 '유종의 미'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부록으로 도연명(365~427) 시가 있다 아름다운 시라 생각한다
젊음이란 거듭하여 오지 않으며 하루 두 번의 새벽은 어렵나니 그때그때마다 열심히 노력하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원문原文 성년부중래盛年不重來 일일난재신一日難再晨 급시당면려及時當勉勵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