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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A few of my experiences during coma might be good to bring up here. Previously I thought I was a good Buddhist, but experiencing those stages made me realize I was not a good Buddhist at all, because I did not have very strong mindfulness.
(질문) 혼수상태에서 제가 체험했던 것을 이 자리에서 조금 내어놓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이전에 저는 제 자신이 독실한 불교신자라고 여겼었는데,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난 전혀 독실한 신도가 아니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저는 그 상황에서 마음챙김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I could not focus on what I heard when the people around me were chanting or speaking to me. It took me a long, long time before I could understand what they were saying. I heard noise and sound, but what I heard had no meaning at all.
저는 사람들이 제 주위에 모여서 염불을 하거나 제게 말을 할 때, 들은 것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은 그저 소음이나 단순한 소리로 들릴 뿐, 제가 들은 것에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Several years after that event, I took to practising very sincerely and diligently, with the hope of preparing for any future experiences of the same sort. Unfortunately, I went through the same experience again a few years later. Because of my previous diligence in practice, my mindfulness was stronger this time. I could hear every single thing anyone said to me.
그런 일이 있은 후 몇 년이 지나서, 저는 아주 진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수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또 같은 일을 겪게 될 것을 미리 대비하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불행하게도, 저는 몇 년 후에 또 다시 같은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평소에 부지런히 수행을 한 덕분에 제 마음챙김은 더 강해졌습니다. 어느 누구든 간에 제게 말하는 걸 단 한마디도 빠트리지 않고 다 들을 수 있었죠.
One thing I would like to highlight is that when the people around me became panicky or upset, I could experience what they felt through their voice as I was lying there. I could not see but I could hear. If they were panicky, their voices would not be stable. If they were sad, their tone would be muted. I could sense and understand all these things but could not react. This happened only when I had a certain degree of mindfulness.
제가 강조하고 싶은 한 가지는 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당황하거나 혼란스러워할 때의 얘기입니다. 저는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이 어떤 감정인지를 느껴볼 수가 있었죠. 저는 볼 수는 없었지만 들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들이 당황한 경우에는 목소리가 안정적이지 못했고요, 슬픈 경우에는 어조가 약해졌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들을 느끼고 알 수가 있었지만 이에 반응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오직 제가 마음챙김이 어느 단계에 도달했을 때만이 일어났었지요.
One more thing: Chanting and reciting Dhamma or playing recordings of Dhamma talks and the like is good, but if the person is not very familiar with what he or she hears, it will take him or her some time to understand it.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염불과 경의 독송, 아니면 녹음된 법문을 틀어주는 것 등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주 친숙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닐 경우에는, 그 말을 알아듣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립니다.
By contrast, the voices of our family and friends are familiar to us, they leave a strong imprint on our hearts. When we hear these familiar voices, even a single word draws our attention very fast. They are different from other people’s voices.
반면에, 가족과 친구들의 목소리는 익숙해서, 우리 마음에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런 친숙한 목소리를 들으면 단 한 마디의 말이라도 금방 주의를 끌게 되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I had this experience when I was surrounded by many people. Some were very familiar to me; others were just normal friends. When many people spoke at the same time, my attention was drawn to the voices that were familiar to me, such as those of my family and my close friends.
많은 사람들이 제 주위를 둘러싸고 있을 때 이런 경험을 했지요. 그들 중에 일부는 제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고, 다른 이는 그냥 평범한 친구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얘기를 하면, 저의 주의력은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처럼 제게 친숙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끌렸습니다.
A: It is as the Buddha said: ‘For the heedless, the four woeful states are like their real and permanent home’. Whatever support we try to provide, it is external support. If we are unmindful and have not trained our minds beforehand, we will sometimes be unable to help ourselves. We should work at helping ourselves. External help is not a sure thing.
(답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부주의한 자에게는 4악처가 그들에게 실재하는 영원한 고향과도 같나니,’ 우리가 [환자에게] 무슨 도움을 주려고 애를 써도, 그건 외부의 지원일 뿐입니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부주의하고 사전에 마음 훈련을 해놓지 않는다면, 때로는 [위급시에] 우리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도울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돕는 일에 부지런해야 하지요, 외부의 도움은 확실한 것이 아니니까요.
Nevertheless, we should try our best to help others. If unresponsive patients know that it is Dhamma they are hearing, even though they may not understand what they hear, wholesome states of mind will arise in them.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다른 이들을 돕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반응이 없는 환자들이 자신이 듣고 있는 게 부처님 법이란 걸 안다면, 비록 그들이 들은 것을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유익한 마음 상태가 그들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If their near-death mental process is wholesome, there will be a profoundly beneficial effect on the rebirth process which immediately follows. Therefore, we should try. We should also prepare beforehand. Otherwise, there is danger.
만약 그들의 죽음 직전의 인식과정이 유익하다면, 즉시 따라오게 될 재생의 과정에 크게 유익한 효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노력을 해야지요. 우리는 또한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위험해집니다.
Q: I had a similar experience with my father when he was suffering from cancer. When he would get morphine injections to ease his pain, I would try to calm him with Pațțhāna chanting, with which he was familiar. I could see with my eyes and feel with my heart that it would calm him.
(질문)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요. 제 아버지께서 암으로 고통을 받고 계실 때였습니다. 그분은 통증을 줄이려고 모르핀 주사를 맞곤 하셨는데요, 그때 저는 아버지를 진정시켜 드리려고 그분께 익숙한 빳타나(조건관계) 독송을 해드리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게 아버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린다는 걸 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A: As she shared about her father, I want to share about my father too. I thought that I would not talk about this. Now I speak about this.
(답변) 질문자께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으니, 저도 역시 제 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얘기는 안하려고 했던 것인데,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When I was three vassa in bhikkhu life, my father died. As I had chosen to live the ordained life, my father would visit me often at the Pa-Auk monastery. He was a very kind father. I encouraged him to come and meditate. He promised me he would come in December of that year.
제가 비구로서의 삶을 살며 3우안거를 지냈을 때, 제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출가자로서의 삶을 살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제 아버지는 저를 보러 파욱 수행처에 종종 찾아오곤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참으로 다정한 분이셨지요. 저는 그분께 명상하러 오시라고 권해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해 12월에 오겠다고 제게 약속하셨지요.
Instead of coming to meditate, his body was buried in Pa-Auk main centre on 19 December that very year. Did he know that he was going to die in the month he promised to come? He did not know. As the Buddha said:
‘Here will I live in the rainy season;
Here will I live in the cold season and hot season’,
So imagines the fool, not realizing the danger (of approaching death).
(quote from Dhammapada 286)
그러나 명상하러 오는 대신에, 그분의 시신이 바로 그해 12월 19일에 파욱 본원에 묻혔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오겠다고 약속한 그 달에 세상을 뜰 거라는 걸 아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나는 여기서 우기를 지내리라.
겨울과 여름은 여기서 지내리라.
어리석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여
죽음이 가까움을 알지 못한다,
(법구경 286번에서 인용함)
We plan where we will go, what we will do, how we might be happy, how we might enjoy things. However, we never think about when we will die, how we will die, where we will die, or from what disease we will die.
우리는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지, 어떻게 즐길 수 있을지를 궁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지, 어디서 죽을지, 아니면 무슨 병으로 죽을지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Because my father was afraid of hot weather, he promised me he would come in December, when it would be cold in Pa-Auk. As it turned out, he came to Pa-Auk so we could bury his body in the cemetery there. I will tell you how I helped my father before he passed away.
제 아버지는 더운 날씨를 힘들어하셨기 때문에 12월에 오겠다고 약속하신 것일 뿐입니다. 그때는 파욱의 날씨가 쌀쌀해지니까요. 결국, 그분은 파욱에 오시게 되었고, 그곳 묘지에 그분의 시신을 묻어드렸습니다. 이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가 그분을 어떻게 도와드렸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My father suffered a stroke on his left side. He was taken to hospital. My family members informed me. Then they came and took me to hospital to see my father. I have two sisters and six brothers, nine of us altogether, all adults. They have their families and work in different cities in different provinces. When they heard, they all came to see my father.
제 아버지는 왼쪽에 뇌졸중을 일으켰습니다. 병원에 모셔갔고요. 가족들이 제게 그 사실을 알려줬고, 아버지를 뵙도록 병원으로 절 데려다주었습니다. 저는 두 명의 여자 형제와 여섯 명의 남자 형제가 있습니다. 전부 9남매이죠. 모두 성인이고요. 각자 일가를 이루고 서로 다른 지방에 다른 도시에서 일하고 있지요. 그러나 모두가 그 소식을 접하고는 아버지를 뵈러 왔습니다.
Whenever my brothers and sisters came and entered the room, they found my elder brother caring for my father. He took very good care of my father. Whoever came in, my elder brother would inform my father, ‘Father, now your daughter So-and-so has come.’ My father would open his eyes to look and then close them again. Then another brother would come, ‘Father, now your son So-and-so has come to see you.’ My father would open his eyes to look at him and then close them again.
형제자매들이 병실에 들어올 때마다, 제 형이 아버지를 돌봐드리는 걸 보았죠. 형은 아버지를 아주 잘 보살펴드렸습니다. 그리고 누가 오든지 간에 형은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리곤 했죠. ‘아버지, 딸 (아무개)가 왔어요.’ 그러면 아버지는 눈을 뜨고 바라보다가는 다시 감곤 하셨죠. 그러다가 다른 형제가 오면, ‘아버지, 아들 (아무개)가 뵈러 왔어요.’ 하였고요. 그러면 아버지는 눈을 뜨고 바라보시다가는 다시 감았습니다.
This was how he behaved. When I entered the room, my elder brother informed my father, ‘Father, Bhante is here.’ Immediately, he raised his right hand; he could not raise his left hand, though he tried very hard to do so. My elder brother helped him put his palms together in ‘añjali’ to pay respect to me. I saw the expectation in his eyes. The way ordained persons can help is different from the way lay-people can help. Then I sat beside him and chanted.
이것이 그분이 하신 행동의 전부였지요. 제가 병실에 들어서자 형이 아버지께 알려드렸습니다. ‘아버지, 스님이 오셨어요.’ 그러자 바로, 아버지는 오른손을 들어올렸습니다. 왼손은 들어올리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형이 아버지를 도와 손바닥을 함께 모아서는, 저를 공경하는 의미로 합장을 하도록 해드렸죠. 전 그분의 눈에서 뭔가 기대하는 마음을 보았습니다. 출가자가 환자를 도와드리는 방법은 재가자가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저는 그분의 곁에 앉아서 염불을 외었습니다.
His condition worsened day by day. Finally, I noticed he could not respond. He could not open his eyes or speak. I decided that we would take our father back home where we would be free to make all the necessary arrangements to help him in his final moments. We quickly prepared everything. I told my sister to arrange a quiet, empty room at home for my father.
그분의 상태는 날마다 더 악화되어 갔습니다. 결국에는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는 단계까지 온 걸 전 알아차렸지요. 눈도 뜨지 못하고 말도 할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집으로 다시 모셔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아무 제약 없이, 마지막 순간에 그분을 도와드릴 모든 필요한 사전 준비를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모든 것이 재빨리 준비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위해 집에 조용한 빈 방을 마련토록 누이에게 부탁했습니다.
I told all the family, all my brothers and sisters, to go out and not stay inside. Only a nurse and two bhikkhus - another bhikkhu and myself - remained in the room. The bhikkhu who accompanied me was senior to me. At the hospital, he joined me in the chanting; but as my father was about to die, in the room with the nurse, he did not chant at all. Fortunately I could chant on my own,
저는 모든 가족,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밖에 나가 있고 안에는 머물지 않도록 당부했습니다. 그래서 오직 간호사 한 명과 두 비구승, 즉 저와 다른 비구 한 명만이 방 안에 머물렀습니다. 저와 함께한 비구 스님은 저보다 선임자였지요. 병원에서는 그분이 경전 독송을 저와 함께 하였지만, 그러나 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간호사와 함께 있던 방안에서는 전혀 독송을 하지 않았습니다. 운 좋게도, 저는 혼자서 독송을 할 수 있었습니다.
Loudly and sweetly, I chanted the Mahānamakkāra, the Mettā Sutta, the Maṅgala Sutta, and the Ratana Sutta. There was no response from my father, but I believed he could hear me. There was no other voice besides mine.
소리는 크고 부드럽게 하여, 저는 ‘마하나막까라’(대예경), ‘멧따 숫따’(자애경), ‘망갈라 숫따’(행복경), 그리고 ‘라따나 숫따’(보배경)를 독송했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지만, 저는 그분이 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요. 제 목소리 외에는 어떤 다른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As I was chanting the Ratana Sutta, he passed away. Before his death consciousness arose, he again raised his hands with palms joined in ‘añjali’, just as he had done at the hospital. Then he passed away.
제가 보배경을 독송하고 있는 동안에 그분은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죽음의 마음이 일어나기 전에, 다시 한 번 손을 들어 올렸지요. [한 손만이 아니라 스스로 양손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모아서는 합장 자세를 취했습니다. 병원에서 [형의 도움으로] 보여주었던 그 모습 그대로를 말이지요. 그리고는 돌아가셨습니다.
I informed all my brothers and sisters. My eldest sister has two sons. She was very happy on hearing about the manner of our father’s death. She said she wanted two of her sons to be bhikkhus. Why? Because she wanted them to be able to help her when she dies!
저는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저의 큰누이에게는 아들이 둘 있는데요. 큰누이는 불교 법식에 따른 아버지의 임종 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나 좋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두 명의 아들이 비구 스님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지요. 왜냐구요? 그야 당연히 자기가 죽게 되면 스님이 된 아들들이 지금과 똑같이 의식을 잘 치러주길 바라는 것이죠!
On the day my father suffered his stroke, he was taken to hospital. Seven days later, he passed away. I went to the hospital to chant for him everyday. The last moment is very important. We need to know how to help at that time.
아버지는 뇌졸중을 일으키신 바로 그날, 병원에 모셔졌습니다. 그리고는 7일 후에 돌아가셨지요. 저는 그분께 독송을 해드리기 위해서 매일 병원으로 갔었습니다. 여기서는 마지막 순간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시점에 어떻게 도와드릴지를 알아야 합니다.
Our friends, our relatives, and our beloved ones who help need to know how to help. At that time, we should make the room quiet. We should not let the dying person hear undesirable things and instead arrange to have them hear only desirable things related to wholesome kamma. This is important.
임종을 앞둔 환자를 도우려는 그의 친구들과 친척들과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를 도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때에는 먼저 환자가 있는 방을 조용한 분위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말이나 소리 등이 들리지 않도록 하고, 그 대신에 유익한 업과 관련이 된 바람직한 것만을 듣도록 주선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Anyone who means to help should not speak with a sad voice. It is difficult not to feel sad and to speak without sadness, but the dying person can sense the sadness easily and will suffer from it. One needs to arrange everything. Do not let the family members be present. Only those who are able to help should be present. This is important.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은 슬픈 목소리로 말해선 안 됩니다. 슬프지 않으려고 하거나 슬프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임종을 앞둔 사람은 쉽게 슬픈 감정을 지각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가족 구성원들은 환자와 같이 있지 않도록 하십시오. 오직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또한 중요 사항입니다.
In this very life, may you know how to help those who are about to die!
바로 이 금생에, 여러분이 임종을 앞둔 사람을 돕는 방법을 알게 되시기를!
우 레와따 사야도 'The Truth Taught by All the Buddhas'
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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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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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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