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일본을 바라보는 생각과 일본인이 한국을 판단하는 생각과 기준이 매우 다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카드놀이를 하면 한국인이 백전백패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얼굴에 그대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른바 포커페이스도 있지만요. 하지만 일본인의 표정으로 그들의 마음까지 읽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일본인은 표리부동의 국민이니까요. 표리부동 즉 表(겉 표) 裏(속 리) 不(아닐 부) 同(한가지 동) 즉 겉과 속이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한국인 가운데 일본인들의 행동에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어릴때부터 그렇게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되고 남이 싫어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철저하게 교육을 받은 일본인들이 집단 따돌림이라는 이지메의 원조인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또 이웃국들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짓을 서슴치않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웃나라를 침략해 온갖 만행을 다하는 것도 정말 이해가 되지 않지요. 또한 지금도 팩스와 도장을 주로 이용하고 현금을 선호하는 것도 상당히 쌩뚱맞습니다. 일본의 자민당이 거의 60년 이상 일당 독주식 정치를 해오는 것도 요상하고 각종 선거때도 투표율이 40%를 넘지 않는 것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사안입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두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다테마에(建前/ 앞에 세운다는 뜻/ 겉으로 드러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마음 즉 겉마음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마음인 혼네(本音/ 본래의 음/ 본래 자신의 마음속에 담긴 생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속내 즉 속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인도 겉마음과 속마음이 다를 수 있습니다.하지만 한국인들은 거의 상당수가 겉마음과 속마음이 비슷합니다.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런 한국인에 비해 일본인들 대부분은 두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인들을 대할 때 그냥 보이는 것은 겉마음이지요.하지만 일본인들은 상당히 다른 속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인들이 겉으로 상냥하게 웃으며 예의를 갖추지만 속으로는 상대를 비웃고 깔보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말입니다. 이른바 립서비스 다시말해 말로 한몫하는 그런 현실과 실제의 현실사이에서 스스로 잘 알아서 파악하고 행동해야지 그런 분위기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쿠키 오메나이 (공기를 읽지못하는 바보)라면서 놀림을 받거나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같은 표리부동하고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행해질까요. 일본인들은 타고난 배우들일까요. 겉마음과 속마음이 전혀 다른데 어떻게 함께 공존할까요. 정말 모순되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일본의 기본 성격은 바로 모순입니다. 모 矛(창 모) 순 盾(방패 순) 즉 창과 방패와 같은 존재들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세계 4위국가인 일본이자 과학적으로 매우 발전한 일본에서 아직도 도장과 팩스가 통용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전자제품의 선두를 달렸던 일본속에 카드보다는 현금을 더 선호하는 모습도 바로 이 모순스런 상황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일본인들의 모순은 타고난 성향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섬나라의 근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섬나라인 영국과는 분명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으로부터 상당히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은 서기 천년대부터 엄청난 전쟁속에 휘말리게 됩니다. 전국에서 힘깨나 쓴다는 무장들이 스스로 국가를 만들고 서로 살벌한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런 피비릿내나는 전쟁이 5백년이나 계속됩니다. 그러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들이 등장하며 일본을 통일시킵니다.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최종 통일을 이룬 승자가 되지요. 이에야스는 에도 지금의 도쿄에 막부를 열어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에도시대입니다.
이에야스는 전국을 통일했으면 당연히 왕이 되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쇼군의 자리에 머뭅니다. 머리를 쓴 것입니다.실권을 장악했지만 그래도 일본왕(일본인들은 천황이라고 칭함)을 존치시킵니다. 이른바 얼굴마담을 두는 것이지요. 실속은 다 챙기고 만일 무슨일이 생기면 왕에게 뒤집어 씌우는 전략이지요.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고 훗날 일본왕에게 실권을 넘겨주는 그러니까 1603년부터 1867년까지 264년을 에도 시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에도시대에 일본에서는 아주 요상한 시스템이 도입됩니다. 500년간 긴 전쟁을 종식시킨 뒤 탄생된 막부이기에 다시는 이 정권을 다른 세력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은 욕구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강력한 집권을 행하여 다른 세력이 감히 준동하지 못하도록 사회제도를 바꾸어버렸습니다. 이름하여 신분제도입니다. 바로 계급사회를 만든 것입니다. 네가지 신분으로 나눠 제일 위에는 사무라이 즉 무사계급이 두번째는 농민 그리고 세번째는 직인 즉 무엇을 만드는 사람들 그러니까 음식이나 물건 만드는 사람들이지요. 마지막으로 가장 천한 계급인 상인을 두게 됩니다. 무지막지한 독재 정치를 펼친 것입니다.
이 계급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에도막부는 강력한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전국에 촘촘한 감시체계를 두는 것입니다. 이른바 스파이와 비밀경찰들이 운용됐습니다. 이 당시 일본의 사무라이 계급은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바로 사무라이에게 칼을 소유할 권리를 주었던 것이죠. 그리고 현장 즉결권을 부여했습니다. 다시말해 뭔가 범죄행위가 일어났을때 재판과정을 거치는 것 이런 제도 자체가 없었습니다. 사무라이가 판단해 그냥 처리하면 됐습니다. 사무라이가 경찰이고 검사요 판사였던 것이지요. 그런 사무라이에게 누가 감히 덤비겠습니까. 동네에 사무라이가 등장하면 동네 사람들은 벌벌 떨었던 것 아닙니까. 농민이나 직인이나 상인이 감히 자신의 마음대로 활동장소를 옮겼다 하면 사무라이의 즉결처리를 받게 됩니다. 바로 사살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사실상 주민들의 주거이동은 막히게 됩니다. 뭔가 다른 직종을 택해 직업을 바꾸는 것 자체가 금지됐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오래된 가게나 식당 그리고 대대손손 내려오는 명품점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일본이 자랑하는 장인문화는 바로 계급사회에서 사무라이들의 칼의 횡포가 만든 전통인 셈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른바 야쿠자들이 그때 사무라이 사회를 꿈꾸고 있다는 말도 나오는 이유입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사무라이들의 행동에 고분고분만 했을까요. 물론 겉으로는 하이 하이 아리가토 고자이마시다했겠지요. 하지만 속마음은 이런 무식한 인간 백정새끼들 내게 힘이 없어 그렇지 너희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요즘도 한국인들이 간혹 쓰는 말가운데 일본말 쪼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요즘은 상대방을 대단히 치켜세우는 행위를 의미하는 데 원래 뜻은 제등(提/ 끌 제...燈/ 등잔 등) 다시말해 주인을 위해 등을 들고 먼저 앞서간다는 말에서 유래됐습니다. 이것도 사무라이 계급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나온 행동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일본인들은 이 에도막부시대 264년동안 참 많이 바뀝니다. 그야말로 실로 요상한 정신이 일본인들의 DNA에 가득 담기게 됐습니다. 일본인들은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금기시합니다. 괜히 참견했다가 사무라이에게 죽임을 당하기 십상이니까요. 그러니 옆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른척합니다. 그 모른척이 아직까지 몸과 정신에 박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정치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일이다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괜히 배나와라 감나와라 해봐야 자신에 돌아오는 것은 불이익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듯합니다.
에도막부는 몰락하고 1867년 메이지유신이라는 배로 갈아탑니다. 하지만 집권세력만 일부 교체됐을뿐 그때 기득권세력들은 그대로 권력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 살벌했던 사무라이들은 관료 즉 공무원들로 신분세탁하면서 일본 정치 사회를 주름잡게 됩니다. 손에 칼만 들지 않았지 하는 행동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 세력들이 모여 군국주의화되고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고 세계적 전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일본의 에도막부에서 길들여지고 유전자속에 깊이 간직된 그 계급사회의 부작용이 아직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일본에서 행해지는 중요한 행위들이 조금 이해가 됩니까. 일본일들의 겉마음 속마음이 다르고 이지메가 활개를 치고 있으며 타인에게 폐가 되는 행위를 하지 말하고 있지만 더욱 강력하게 타인과 타국에 폐를 끼치는 행위가 왜 생겼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민주국가라로 하지만 일당 독주체제를 강력하게 간직하고 있으며 선거때 투표율이 매우 저조한 이유가 어디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2024년 1월 2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