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연(65) : Auld Lang Syne(올드 랭 사인 : 로버트 번스 씀)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간들 잊으리오 두터운 우리 정
다시 만날 그날 위해 노래를 부르자』
1759년 겨울, 스코틀랜드 에리셔의 가난한 농부 집에서 한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어려운 집안 살림으로 힘든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시를 읽다가 17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는 27살이 되던 1786년에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자메이카로 이주하려고 했는데 배를 탈 여비조차 없었다. 그래서 뱃삯이라도 벌 셈으로 시를 지어 팔게 되는데 그것이 주로 스코틀랜드 방언에 의한 시집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첫 시집으로 인해 그는 단숨에 천재 시인이라고 불리며 유명세를 얻었고, 더 이상 자메이카로 이주할 필요가 없어져 그 후로는 시를 짓는 데만 열중하게 되었던 것이다.
스코틀랜드 농부와 시민의 소박한 모습을 담아낸 그의 많은 시들은 여러 작곡가들에 의해 훗날 음악으로 재탄생 되기에 이르렀다. 그가 바로 스코틀랜드 국민 시인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는 로버트 번스다.
한편 1940년에 개봉된 영화 ‘애수(Waterloo Bridge)’에서는 두 주인공이 아무런 대사도 없이 스코틀랜드의 어느 민요에 맞춰 함께 춤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곡이 바로 그 유명한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Auld Lang Syne)’ 이다.
‘올드 랭 사인’은 스코틀랜드어로 ‘오랜 옛날부터 (Old Long Since)’라는 뜻이다.
이 노래는 바로 이 시의 작가인 로버트 번스가 1788년에 어떤 노인이 부르던 노래를 시로 바꾸고, 그 시에 영국의 오페라 작곡가인 윌리엄 쉴드가 곡을 붙였던 것이다.
미국의 빌보드가 선정한 ‘New Year Song’에서 1위를 하기도 했던 이 노래는 영미권에서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송가 내지는 축가로부르는 노래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던 1907년 경 조국애와 충성심 그리고 자주의식을 북돋우기 위해 대한민국 애국가의 노랫말이 완성되었고, 그 직후 올드 랭 사인의 곡조를 붙여 사람들에게 널리 불려졌다.
한편 안익태가 애국가를 외국의 이별노래 곡조에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1935년 현재의 애국가 곡을 작곡하였고, 1948년 이승만의 대통령령에 따라 안익태가 작곡한 곡으로 애국가의 멜로디로 정해지기 전까지는 '올드 랭 사인'이 애국가의 멜로디로 계속 사용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졸업식장이나 제야의 종 타종식 등에서 ‘석별의 정’이란 노래로 애창되기도 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