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잠시 침묵을 지키는가 싶더니 결심한 듯한 목소리가 수화기에거 흘러 나
왔다. 연수는 이유없이 긴장했던 마음을 풀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전 여덞 시 반, 재작년 친정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이 시간에 전화가 오는
건 드문 경우라 지나치게 놀랐던 것이다.
중견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수연 선배였다. 제주도를 고향으로 둔 동향
사람이라는 이유도 있엇지만 함께 그림공부를 하며 속내까지 훤히 드러낸
인연 때문에 신랑도 한번 바꿔 보자고 할 만큼 친한 사이였다.
“어쩐일이우?”
연수는 짧은 한숨을 토하느라 수화기를 가리고 있던 손을 떼고 말했다.
“얘는,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전화를 하니.”
“그래두…….”
“그냥 했어.”
“그냥요?”
“그렇대도.”
하지만 왜일까. 연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수화기를 드는 순간 짧지만
분명하게 이어지던 침묵과 망설임. 더구나 정선배는 바쁜 사람이었다.
얼마 전 청년 화가 10인 초대전 준비 때문에 눈코 뜰 새가 없다고 말했고,
전화통을 붙잡고 수다를 떨 그런 타입의 여자는 아니었다. 연수는 뭔가 망설
이고 있는 듯한 정선배의 어감에 흘려 보냈던 긴장을 다시 끌어 모은다.
“너 요즘 어떠니?”
“나요?”
“그으래.”
“그게 궁금했수.”
정선배가 대답을 멈추고 다시 망설였다.
“선배, 참 오늘 이상하네.”
“이상하긴, 뭐가?”
“평범한 주부에게 무슨 일이 있을 거라구 그래. 혹시 애인이라도 생겼나 묻고 싶은 거야?”
“뭐, 애인?”
“그래요. 마치 바람 난 딸 때문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친정 엄마 처럼 그러고 있으니 하는 말이에요.”
“얘는, 내가 너를 안 지가 한두 해 됐니?”
“그럼, 뭐야……. 혹시, 애인이라도 생긴 거유?”
연수는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서 넘겨짚어 보았다. 하지만 이내 장난스러운
웃음부터 흘러 나온다. 남자 못지않게 커다란 덩치며 괄괄한 목소리.
한두 명의 애인으로 성이 차지 않을 것 같아 아예 애인 같은 건 두지 않기로
했다는 정선배였다.
“그럴 팔자라도 되면 좋겠다.”
“그럼요?”
“너, 아직 모르고 있는 모양이구나?”
“뭘요?”
전혀 엉뚱한 정선배의 질문에 연수는 비로소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입가에 묻어 있던 웃음을 지웠다.
“아니야, 모르면 됐어.”
“정선배도 참,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연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그치듯 말꼬리를 올렸다. 그러자 정선배가
더는 망설일 수 없다는 듯 잔기침을 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너 혹시 성추행 얘기 들어 봤어?”
“성추행 이야기요?”
“그래.”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밑도 끝도 없이…….”
연수는 잔뜩 긴장하고 있던 터라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정만 뚱딴지 같은 이야기였다. 이 상쾌한 초여름날 아침에 전화로, 그것도
망설이고 망설인 끄에 하는 말이 성추행이라니, 정선배가 어떤게 된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성추행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라 있고,
이런 저런 이유로 여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제이기는 했다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런 일은 남의 이야기나 다름없는 이야기였다. 집 안에
자그마한 화실을 꾸며 놓고 동네 노인들의 초상화를 그려 주는 일 이외에는
지극히 평범한 주부라고 할 수 있는 그녀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정선배 역시
그런 문제로 시달릴 처지는 아니었다. 남자 누드모델의 포즈를 직접 잘아줄
정도로 그런 일에는 초연해 있었다.
“그렇게 웃어 넘길 일이 아니야.”
“뭐라구요?”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니라니까.”
“언니! 왜 그래요, 정말?”
그러고 보니 어떤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났다. 이름과 소속 대학은 밝히지
않고 모 대학 교수라고 지칭해서 쓴 기사였는데 대학원에 재학중인 여제자를
상습적으로 추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세상에 다 알려진 서울대학교의
‘우조교 사건’에 이은 문제여서 별로 주목을 끌지 못했던 기사였지만
영문 이니셜이 그녀가 다녔던 학교와 같았기 때문에 비교적 기억에 선명히
날아 있었다.
“못 들어 봤니?”
“신문에서 언뜻 본 것 같은데……. 그런데 왜?”
“그 사람, 바로 양인승 교수야.”
“양인승 교수요?”
“그렇다니까.”
“그게 정말이우?”
순긴 연수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처음부터 불길한 예감을 감지했지만,
그 불길한 예감을 애써 피하고 싶어 거짓 표정을 짓고 있던 여자가 어쩔 수
없이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짓는 그런 표정이었다. 여제자를 상습적으로 추행
한 교수가 바로 인승이었다는 사실도 그랬지만, 그보다 정선배가
그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는 것이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서로 약속한 것도 아니었고,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니엇지만 연수 앞에서 정선배는 인승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건 십 년 넘게 두 사람이 지켜 온 불문율인 동시에
연수에 대한 정선배의 따뜻한 배려였다. 선후배 관계를 떠나 조금 인생을
더 산 선배로서, 그리고 인승에게 함께 그림을 사사받으며 젊은 시간을 힘
들게 넘긴 추억의 동반자로서.
“한참 망설였다. 이런 얘기를 너에게 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하고…….”
“…….”
갑자기 정선배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연수는 인승의 이름이 올려질
때부터 이상하게 몸이 이탈되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듣고 있니?”
“듣고 있어요.”
“별로 반가운 소식은 아니지.”
“그렇네요.”
“하지만 너에게 말해 두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햇어. 꼭 그 일 때문인
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즈음 양교수를 보고 있으면 겁이 날 정도야. 꼭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아서.”
정선배가 새겨들으라는 듯 천천히 말했다. 그러나 연수는 정리가 되기는
커녕 더욱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양인승, 비록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사람임엔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인승을 옛날 사람
이라고 생각한 지 오래였다. 그랬다. 그는 이미 옛날 사람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몰라도 정선배만큼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터 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저렇듯 새겨들으라니, 저렇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다니,
연수는 목이 바싹 마르는 듯해 침을 꿀꺽 삼켰다.
“게다가 언제 알아봤는지 너에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잇었어.
물론 옜날의 네가 아니라 지금의 너에 대해…….”
안녕하세요. 준식이입니다 ^^! 오랜만으로 컴퓨터를 켰네요.
이 소설 보신분 계실꺼에요. 다시 복귀 시킬까 해서요. 하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고요. 이상해도, 잘 봐주시길 바랍니다.^^~
인승교수가. 과연, 연수를 어떻게 생각할지 저도 궁금하군요;
다음편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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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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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운시익뉨;ㅁ;. 정말 색다른(?)소설가타요♡♡^^ 담편기대할께요~ㅋㅋ
아♡ 재미있어요>ㅁ< 열심히 써쥬세요~ 줄기차게♡ 앞으로도 쮸욱~ ㅋ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