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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라에서 안코나3 - 안코나 가다 리미니에서 로마 수도 라벤나를 떠올리다!
5월 22일 베네치아 를 떠나 에스테 가문 의 본거지인 페라라 에 들러 에스테성등 옛
건축물을 보고는 페라라역을 출발해 볼로냐 에서 안코나 가는 기차를 환승합니다.
우린 오늘밤에 안코나 에서 크로아티아 자다르 가는 페리를 탈 예정인데 도중에
리니미역 을 보니..... 몇년 전에 그리스로 가는 밤배를
타러 바리 로 가는 길에 들러서 산마리노 와 라벤나 를 본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선배님 부부등 우리 일행 4명은 훈족과 서고트족의 침략을 피해 AD 301년에 티타노 산속
깊숙한 곳에 성채 를 쌓아 1,700여년간 독립국 을 지켜온 산마리노 공화국 을 구경합니다.
험한 산봉우리 3군데 성채 며 마을을 둘러보고는 버스를 타고 리미니역 에 돌아와서는
다시 북쪽에 있는 옛 서로마 제국의 수도 인 라벤나 로 가려고 합니다.
이 도시 리미니 Rimini 는 이탈리아 동부 아드리아해에 면한 항구 로 말레키아 강의 하구
부근에 위치하는데, 4방향으로 철도가 교차 하는 교통의 요지 입니다.
리미니 는 고대에 아리미눔 이라는 도시로 건설되어 BC 268년 로마제국에 정복된후 알프스
를 넘어온 한니발 을 맞아 치른 2차 포에니전쟁 에서는 로마군의 중요 기지였다고 합니다.
6∼8세기에는 비잔틴 제국 의 지배를 받았으며, 그후 게르만민족의 대이동기 에 고트족
에게 점령되었다가 이후 랑고바르드족 이며 프랑크족 에게 또다시 침략당합니다.
13세기말 부터 16세기초 까지 말라테스타 가 에서 이곳을 다스리다가... 1509년 이래 로마
교황령 이 되었으며...... BC 27년에 세워진 개선문 과 원형 경기장 이며.....
르네상스 시대에 세워진 교회 도 볼만하다지만... 모두 뒤로 미루고는 우선 근처 북쪽에
라벤나 부터 다녀 오기로 합니다.
그래서 산마리노 버스 에서 내리자 말자 리미니역 으로 달려가 기차를 타고 라벤나 로
향하는데, 로컬 열차 라 유레일 패스 소지자에게는 공짜이니....
좌석 예약 (기차표 끊을) 할 필요 없이 그냥 타서는 빈자리에 앉는데, 기차는 시골길을
달려 한시간 가량 걸려 라벤나 Stazione Ravenna 역에 내립니다.
BC 1400년경 아퀼레이아에서 남하한 종족들이 처음 라벤나 에 터를 잡은후 에트루리아인
과 갈리아인 이 차례로 점령했었다는 데....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가 이곳에서 약 5㎞ 떨어진 곳에 클라시스 항구를 건설했고
BC 1세기 경 라벤나는 로마의 중요한 해군기지 로 부상했다고 합니다!!!
이후 게르만 족의 침입시 402년에 로마 가 서고트 족에게 약탈 당한 후 황제 호노리우스
는 침략자들을 피해 옛수도 로마 와 100여년간 새 수도였던 밀라노 를 버리고.....
멀리 동북쪽 바다에 면해 방어가 용이한 라벤나로 천도 하니.... 이곳 라벤나 Ravena 는
로마와 밀라노에 이어 서로마 제국의 세번째 수도 가 되었습니다.
라벤나 는 5~11세기 까지 정치, 신앙의 중심도시였으며 이민족의 침입도 계속되었으니....
하지만 그후 비잔틴 제국(동로마) 이 여기를 수복하면서....
동서문화의 융합 으로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치장한 건축물 이 들어서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 도시 라벤나의 상징물 로는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 Mausoleo di Galla Placidia 가
있는 데, 그녀는 동로마(비잔틴)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딸 로.... 5세기에
게르만 서고트족의 침입 시 포로가 되어 어쩔수 없이 야만족인 서고트 왕과 결혼 합니다.
서고트왕이 죽은후 콘스탄티누스 장군과 재혼 하는 데, 장군이 죽은후 라벤나 로 옮겨와
아들이 서로마 황제 가 되면서 그 후견인 으로 사실상 서로마 제국 통치권 을 행사합니다,
좀 투박해 보이는 십자형 의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 에 들어서니 양치기 모습의 그리스도
와 짙푸른 하늘이 모자이크 로 묘사된 천장 이 참 인상적이네요!!!!
무덤 을 시내 한복판에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궁전 처럼 건축한 발상 이 놀랍습니다.
둥근 지붕의 묘지 에는 푸른색의 모자이크 가 참으로 아름다운 데 .....
중앙의 쿠폴라 에는 짙푸른 하늘에 황금별 이 반짝이고 그 한가운데는 십자가 가 눈에
뛰는데.... 450년에 갈라 플라치디아가 죽고 이 영묘 가 세워진 후에도....
서기 476년에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 가 여기 라벤나 에서 서로마 황제를 폐하고
통치자가 되어 형식적으로 동로마의 총독으로 당분간은 평화가 유지됩니다.
하지만 후일 동로마 황제 가 동고트족에게 토벌 을 청하니 동고트족의 왕 테오도리크 는
이탈리아로 진격해 여러 전투에서 이기고..... 마지막으로 493년에
라벤나를 점령 해 항복한 오도아케르를 만찬장에서 처형하고 526년 까지 통치 합니다.
그 때 세워진 것이 테오도리크 영묘 와 여기 갈라 영묘 옆에 세워져 있는 산비탈레 성당
이라고 하네요!!!!
비잔틴 예술의 걸작품인 산비탈레 성당 은 테오도리크의 딸인 아말라순타 가 통치할 때
주교 에클레시우스 가 착공하여 547년에 헌당(獻堂) 했다고 합니다.
게르만 야만족이 왠 성당 이냐고 하겠지만....... 그들도 개종하여 기독교 를 믿었던 것
이지요? 비록 그들은 아리우스파 라...... 아타나시우스파 인
동로마(비잔틴) 제국 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와는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지만!!!
하지만 540년에 비잔틴의 장군 벨리사리우스 에게 점령 당하여 비잔틴 이탈리아의 수도가
되었으며 이후 라벤나는 동서교역의 중심지이자 로마와 비잔틴 문화 가
융합 하여.... 건축물들에는 화려하고 인상적인 모자이크 가 유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716년 롬바르드족 에게 클라시스를 빼앗긴후 751년에는 라벤나 마저 점령
당하고 이어 랑고바르드(롬바르드) 족이 침략해 폐허가 되었으나.....
754년에 프랑크족에게 점령 당한후 프랑크는 라벤나를 교황에게 봉헌하여 교황령
이 되었으나 지역 영주들이 할거 하면서 이때 부터 쇠퇴 하기 시작합니다.
세월이 흘러 이탈리아 서남해안이 이슬람 해적의 침입 으로 무참히 살륙당할 때도 이곳
라벤나 는 멀리 떨어진 탓에 무사했는 데....
15세기 중반에는 베네치아의 영토 가 되었다가 16세기에는 다시 교황령 이 되었으며....
이후 나폴레옹 점령기 를 거쳐 교황령으로 돌아왔다가 지금은 이탈리아땅으로 되었습니다!
이러한 파란만장한 역사 에서 황제들의 운명도 부침 이 심했으니....... 말이 나온김에
이 무렵 로마 황제들의 죽음 을 조명해 봅니다.
※ 황제들의 사망원인 : ① 콘스탄티누스 황제 324년 로마제국 통일후 진중에서 사망 -
콘스탄티우스 진중 사망 - 율리아누스 살해됨 .....
② 요비아누스 살해됨... ③ 발렌티니아누스 급사 - 발렌스(동) 전사, 그라티아누스
( 서로마) 살해됨, 발렌티니아누스 2세(이탈리아) 살해됨 ...
④ 테오도시우스 동로마 황제 병사 395년 - 그 자식들로는 아르카디우스는 동로마 황제 가
되었고 호노리우스는 서로마 황제 로 있다가 로마가 서고트족에 점령당하자 라벤나로 천도.
딸인 갈라 플라치디아 는 고트족에 포로가 되어 고트왕과 결혼하는데 후일 콘스탄티누스
장군과 재혼해 이후 아들을 서로마 황제로 올리고 후견인으로 제국을 통치합니다.
불과 70여년 간에 핏줄이 다른 네 가문 이 들어서는데, 황제들이 거의 전사하거나 살해되니
제명대로 죽은 사람은 테오도시우스 황제 정도이고.....
콘스탄티누스와 그 아들은 페르시아 전쟁 출진중 진중에서 죽었으며, 콘스탄티우스황제는
자기 형제를 죽이는 바람에 핏줄이 끊겨 부득이 다른 사람을 황제로 임명 하기도 합니다.
이어 갈라 영묘 바로 옆에 있는 산비탈레교회 Basilica San Vitale 에 들러니 다각형을
조합한 특이한 형태 로 6세기에 건축되었다고 하는데....
찬찬이 살펴 보노라니.... 성인의 얼굴을 묘사한 원형부조 주위에 돌고래 가 보이고
그 외에 공작 과 사자 도 보입니다!
아브라함의 구약성경 을 묘사한 모자이크 가 유명한 곳으로 시간만 있으면 6곳의 공통
입장권을 8유로 에 끊는게 좋지만 우린 우선 여기 표만 끊는데.....
여기 벽화 는 좀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것이 신비한 기운 마저 듭니다. 그러니까 갈라치디아
영묘 에 가기 전에 여기 부터 들러 공통입장권 을 사는게 돈을 절약하는 길이었는데....
이어 지도를 보고 걸어서, 또 물어 물어서 포폴로 광장 을 지나서는 네오니아노 세레당
Battistero Neoniano 을 멀찌감치서 바라만 보고는.....
시간이 없어 두오모 Duomo 와 단테의 묘 Tomba di Dante 는 생략하고는, 바로 산타
폴리나레 누오보교회 Basilica di San't Apollinare Nuovo 로 달려가는 데.....
이 교회 는 서고트족의 왕 테오도리크가 가 예수에게 바친 교회 로 기둥도 그렇고 여러
성인 조각상이며 또 모자이크 가 신비롭습니다!
이어 택시 를 타고는 라벤나 도시 남쪽의 교외에 모자이크의 정수 라는 산타폴리나레 인
클라세 교회 Basilica di Sant' Apolinare Classe 를 찾아 가는데.....
참으로 그 모자이크 며 쿠폴라의 푸른 색깔은 1,500년 세월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환상에
젖어들게 합니다.
라벤나역 에서 기차를 타고 한시간만에 리미니역 에 내려서 역전에서 식사를 하는데,
치킨볼 이 보기는 그럴듯 한데 애걔? 자그마 하네요...... 그래도 맛은 있습니다.
민박으로 돌아와 영감님 을 만났더니 웬걸 창고를 여니 시트며 수건, 휴지 가 산더미 처럼
쌓였는데 어제 밤에 찾지 못한 선풍기 도 크고 작은 것이 두 개나 있습니다.
어제밤 우리 여자들은 할머니와 의사소통 을 어떻게 했길래? 오늘은 선풍기를 가져와 잘 쓰고
있는 것은 좋은데, 영감이 싱글 벙글 웃으며 찾아와 “피브틴, 피브틴” 노래 를 부릅니다?
이건 또 무슨 뜻 이람??? 한참 후에야 선풍기값 (전기료) 을 달라는 소리네요! 봉이
김선달이 이 나라에도 있었네요....
흥정하여 10유로 를 주어 올려 보내는데 그래도 오늘밤은 선풍기가 있으니 천국 입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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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청량한 후기
감사합니다
하아..... 무슨! 별 재미도 없는데....
그럼에도 좋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제가 드려야지요?
이제 긴 겨울도 끝나가는 듯 합니다!
볼로냐 도서전에 갔다가 잠간 시간이 나길래 라벤나를 간 적이 있습니다.
정말 모지이크가 인상적이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그 때가 새삼 그립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베로나보다 라벤나가 더 좋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벤나는 로마의 마지막 수도이지요?
로마가 커기다 보니 동서 로마로 나뉘고....
동서로마도 다시 2개로 나뉘어 4개가 되지요!
그 서로마제국의 수도 로마는 게르만족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수도를 로마에서 밀라노로 옮기는데....
게르만조그이 침략 위협이 현실화되니.....
겁이 나는지라 다시 밀라노에서 라벤나로 옮깁니다.
라벤나는 3면이 바다나 개펄, 산지이고....
한 방향만이 평지인지라 방어하기에 유리했다는.....
하지만 476년에 게르만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배신해
반란을 일으키니 서로마제국은 망합니다.
로마가 빈부격차로 중산층과 중간층이 몰락하니
군에 갈 사람이 모자라니 직업군인제도를 도입하고
이후 사치와 향락에 빠져 군에 가기 싫어하니
게르만족 용병을 군인으로 충당하다 보니.....
그 용병들이 배신하니 나라가 망했지요?
서로마 멸망의 시초는 "빈부격차"에서 시작합니다!
지금 대한민국도 빈부격차가 커지는게 불안한 이유이지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4.20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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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된 모자이크가 아직도 이렇게 보존되어 있다니 놀랍네요.
대단한 건축술입니다.
오래 견딜수 있을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한 건축들이 많은 로마 유산들......
이태리는 정말 구석구석 여행해보고싶은 나라입니다.
이태리 여름날씨는 너무 더워 선풍기나 에어컨 없이는 잠자기 곤란할 정도인데,,,,,,,,,,,
선풍기 빌려주는 값을 15유로나 불렀군요. 10유로도 많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