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초등학교 동기생을 서면에서 만나 술을 한잔 했다.
촌수는 아재벌이지만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뛰놀고 학교에도 같이 다닌
동기생이라 말을 놓고 지내는 사이다. 그의 부친이 우리 할머니의 남동생이인데
본처에서 아들을 못낳고 내리 딸만 생산한다고 소가를 얻어 마누라 둘에서 14형제를 낳아
나라에서 자녀 많이 낳았다고 상을 받기도 하였다.
고향을 떠나 같은 부산에 살지만 서로 먹고 사는 길이 다르니 자주 만날 수가 없어
제법 오래 됐는데 같은 동네 출신인 한 친구가 함양에 살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
치료차 출가한 딸집인 김포로 잠시 올라가 있다가 얼마전에 다시 함양으로 내려왔다며
전화로 알려와서 둘이서 같이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의논차 만났던 것이다.
안주는 봄도다리 한 접시를 시켜 놓고 그는 소주 한 병, 나는 맥주를 한 병 시켰다.
술잔을 기울이면서 어릴 적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던 이야기며 집안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시계를 보니 금세 두어시간이 흘러갔다. 날이 풀리면 둘이서 친구 보러 함양으로 가기로 합의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구 하야리야부대 후문(시민공원)쪽에 집이 있으므로 버스를 타야 하고
나는 해운대에 사니까 지하철 2호선을 타야 하므로 영광도서 앞에서 헤어졌다. 서면역 프랫폼으로
내려가면서 오줌이 약간 마려워서 화장실을 찾았으나 눈에 쉽게 띄지 않아 조금 참을 수도 있겠다 싶어
일단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열차가 서면역을 출발하여 두어 역을 지나 문현역에 이르자 오줌이 마렵기 시작하였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개출구를 나가 화장실로 올라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조금 더 참아 보기로 하였다.
우리가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는 학교가 동네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책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치도를 걸어다녔는데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엔 사내 아이들은 여닐곱명이 일열횡대로
줄을 서서 허리춤을 내려 고추를 내어놓고 누가 오줌을 멀리까지 가는지 시합을 하곤 했다.
"요이 똥!" 하면 일제히 오줌을 쏴면서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었다. 시합을 위해서 일부러 오줌을 억지로
참기도 했는데 제일 멀리 간 사람은 항상 나였다. 내 기억으론 쉬발 정도까지 걸어갔던 것 같다.
열차가 한 역 한 역을 지날 때마다 소변의 욕구는 가중되어 머릿속은 하얘지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소변을 보고싶은 욕구가 생기자 즉시 화장실로 가야하는 상황을 급박뇨라고 하며
대개 방광 기능의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증상중의 하나로 주로 소변을 보고 싶은 강한 욕구와 그에
따른 방광의 급박한 수축이 특징이라고 한다. 급박뇨보다 더 심한 형태가 절박뇨인데 이는 소변 볼 욕구가
발생하자마자 오줌이 나오는 증상으로 화장실로 가기 전에 뇌에서 통제가 되지 않고 이미 소변을 누는 경우이다.
아무리 급박뇨증상이 있더라도 달리는 지하철을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횟집에서 나오기 전에 화장실에
미리 갔다가 나왔어야 하는 건데... 후회막급이었으나 이미 엎지러진 물이 아닌가. 어쨌든 수영역까지는
가야 한다. 수영역에 가면 개찰구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2호선과 3호선 프랫폼 끝에 가면 화장실이 있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소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젊을 때는 친구들과 술을 한잔 하고 마산으로 갈 때
버스를 탔는데 충무동에서 타고 구포쯤 오면 오줌이 마려워 기사에게 부탁하여 잠시 버스를 세우기도 하였다.
비몽사몽간에 열차가 수영역에 도착하자 마자 선착순하듯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오호! 배설의 통쾌함이여!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자유로움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