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입학식 코 닦는 손수건
가슴에 매단 하얀 손수건
지금의 대다수의 학생들은 유치원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나아가 기초적인 학습도 이미 사교육에서 마치고 학교에 입학하지만 우리가 학교에 입학하던 때는 학교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했던 시절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서 입학식을 하는 것으로 학창시절이 시작된다.
입학식 날 한쪽 가슴에는 학년 반이 적힌 명찰을 달고 그 아래에 코 닦는 하얀 손수건을 달고 서 있었다.
지금 아이들은 이해조차 힘들지만 입학하는 아이들의 가슴에는 어른들의 훈장처럼 하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서 입학식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이다.
그 당시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왜 그리 당시에는 나일론 재질의 옷이 많아서 코를 닦고 나면 기름칠한 것처럼 유난히도 옷깃은 까맣게 번들거렸다.
나일론 옷은 질기고 바람을 잘 막아 주는 반면에 불에 약해서 추위에 불 가까이 가면 쪼그려 붙어서 옷을 망치기 일쑤였다.
즐거운(?) 시험시간
가슴 떨리는 통지표
난로 위 도시락
이 나의 발전의 근본) 시대였다.
문민정부(文民政府, 1993년~1998년, 김영삼대통령) 시절인 1994년, 국민교육헌장은 교과서에서 삭제되고 공식적인 기능이 사실상 소멸됐다.
추억의 시절 도시락
아... 흰 쌀밥 위에 계란
추억 속의 풍금
국민교육헌장
국민교육헌장
'국민학교'에서 누구나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해야 했던 것은 물론 국민학생들뿐이 아니었다. 중고교생들도 암기해야 했던 것은 물론(모든 교과서 앞머리에 실리기도 했다), 입학시험과 국가고시 심지어 입사시험에도 사실상 의무적으로 관련 문제가 출제되었기 때문에, 국민교육헌장을 피할 길은 없었다.
국민교육헌장의 시대는 민주보다 반공이 앞서고(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 개인보다 국가가 우선시되는(나라의 융성
학생의 공부방
등교때와 방과후에 등장했던 학교앞의 잡상인 : 번데기장수,버들붕어장수, 병아리장수,소년동아일보장수,생강엿장수,솜사탕장수,
음악시간에 그 무거웠던 무게로 인하여 당번이나 분단별로 교실로 들어날랐던 그 시절 강당의 풍금
60~70년대 혼분식 장려운동으로 흰쌀밥만 싸오던 애들은 교육감의 점심시간 시찰에 선생님의 지시에 황급히 도시락 뚜껑을 닫았던적도 있었지.
반찬통에 고무밴드가 잘 벗겨져 가방에 김치국물이 흘러내려 애들 교과서와 공책에 배여버리기도 했던 선학 알미늄의 양은 도시락.
그때 그시절 그 추억속의 국민학교 시절에 학교종이 땡땡땡 이야기 모음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지난 2006년 2월 101세의 나이로 미국에서 작고한
故김메리 여사가 1945년 광복 직후 작사·작곡한 동요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동요(노래) 제목 : 학교종, (故) 김메리 작사 작곡 - 악보
짧은 음악이 수업시간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
누구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제일 먼저 배우는 노래였다.
노래말에 나오는 학교 종은 銅(동)으로 만든 작은 종을 손으로 쳐서 울린다.
요즘은 학교 종 대신 차임벨 소리나
[시험 볼때의 장벽? ]
우리 귀에 너무나 익숙한 동요다.
몽당연필로 침을 묻혀 누런 공책에 꾹꾹 눌러
글을 쓰며 공부했던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학교 종소리.
이제 학교종은 역사가 오래된 학교에
간혹 기념물로 걸려있는 골동품일 뿐이다.
학교 종소리도 동요가사에나 남아 있을까 실제로는 듣기 어렵다.
첫댓글 금남의집, 남매 인형을 보니 동심의 세계로 빠지게 만드는군요.
구슬치기는 엄지손위로 놓고 집게손가락을 이용하면 최고지요. 저는 "으찌니쌈"으로 한바구니씩 따기도 했습니다. 잘 했어요.
주위에서 왠 구슬을 많이 사냐고 하실 정도로 대단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