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장항선 비둘기호 열차
학창시절 장항역에 간적이 있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새벽아침 비둘기호 열차 출발시간이 임박하자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역 개찰구
안으로 교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학생, 한 손으로 짐을 들고 광주리를 머리에 인 아낙네 한명, 한명 들어왔다.
많은 짐을 가지고 열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규정상 어려운 일이다. 검표원이 오래전부터 그런 일을 묵인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열차 안에서 검표원이 미처 열차표를 준비하지 못한 아낙네들에게 돈을 받는 모습은
자연스럽게만 느껴졌다.
장항선 열차 이용객인 농수산물 보따리 아낙네들은 이 열차야 말로 생활의 터전이며, 삶의 의미가 되는
촉매제다. 장항선 비둘기호 열차는‘보물 중에 보물’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사계절 같은 시각에 장항서
출발 홍성역, 온양역, 천안역등, 다시 장항역으로 되돌아 왔다.
장항, 대천, 등 시골 해안지방의 새우젓, 멸치 등 농수산물 생필품을 보따리나 광주리로 날라다 사고팔아
생활을 했었다.
IMF외환위기는 열차를 이용하는 아낙네의 숫자 줄어 들였다. 열차 안에서 그런 모습에서 침체된 지역상권의
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열차 명칭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모갈 1호, 조선해방자호, 통일호, 무궁화호, 새마을호,
비둘기호는 그 당시 시대상황을 엿볼 수 있다. 1967년부터 ‘비둘기호 열차’로 불렸던 열차명칭은 2000년
사라졌다. 33년간 장항선 비둘기 열차는 서민과 동고동락을 했다. 그 시절 보따리 장사하여 자녀, 형제의
교육, 결혼, 분가를 위해서 고통을 이겨낸 어머니들의 밝은 모습 그립다.
침체된 경제가 활성화되고 새벽녘의 밝은 미소가 있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안개가 걷힌 예산역 개찰구를 나오면서 중얼거린다.
장항선 비둘기호 열차! 그립다.
첫댓글 비둘기호 기차타고 이동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열차타고 고등학교 시험보러 가다가
동창을 만났는데 반갑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네요.
한고석 지부장님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