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8,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무릎을 꿇고 빌어!
나는 ‘대왕 세종’이라는 드라마를 아주 잘 보았습니다. 세종대왕이 북삼도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하는 대목이 나왔을 때 혼자 눈물을 흘리며 보았습니다. 왕이 백성들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잘못한 것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무릎 꿇고 빌 줄 아는 정치가나, 리더가 진정으로 필요한 시기입니다. 세종대왕은 정말 성군이시며, 충성과 용서를 실천하신 분입니다.
논어의 이인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왈; 삼호! 오도일이관지. 증자왈; 유.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자출, 문인문왈; 하위야? 증자왈 ; 부자지도, 충서이이의.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曾子曰 ;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관통되어 있다.” 증자는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공자께서 나가시자 제자가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따름이다.”
어느 날 한문 공부를 하다가 ‘유’(唯 : 오직 유)자를 공부하면서 그 글자가 바로 교회에서 말하는 아멘(Amen) 이라는 뜻으로 새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오늘 증자는 공자의 말씀에 ‘아멘’이라고 대답합니다. 공자의 모든 도는 충서(忠恕)에 있다고 말합니다. 충(忠)은 성실함이며, 모든 일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충(忠)은 하느님을 중심(中心)으로 이어져 있으며 매인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간과 매여져 있는 그 끈은 절대로 끊어질 수 없으며,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그 인연도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 약속한 그 맹세로 절대로 깨질 수 없으며, 인간이 서로 맺은 인연에도 하느님이 개입되어 있으면 절대로 끊어질 수 없고, 풀릴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공동체도 교회도 주님께서 세워주셨고, 그 안에서의 인연과 약속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강조하십니다.
1. 죄를 지은 사람을 찾아갈 때 나와 하느님과 동행하라고 하십니다.
2. 그래도 그 사람이 말을 듣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같이 공동체를 이루어 나와 그의 하느님이 함께 찾아가자고 하십니다.
3.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 공동체에서 찾아간다면, 공동체 안에 계시는 하느님도 같이 찾아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공동체까지도 나서야 한다고 하십니다. 땅에서 맺은 것을 하늘에서도 맺어 주신다는 그 소중함을 사람들이 깨달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소중한 기도임을 다시 새겨 주십니다.
용서는 같은 마음(如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과 죄를 용서하는 사람이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를 인(仁)의 최고 가치로 두고, 모든 도(道)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서한다는 것은 푼다.’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저지른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지고 풀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일을 해놓고 일이 힘들거나 일을 끝마치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그만두거나,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책임감 없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풀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은 교회 공동체를 세워주시고 그 용서하심에 당신이 직접 개입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죄 사함의 권한을 위임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권한을 당신의 제자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위임하시며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그렇게 용서하면서 살기를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당신이 항상 옆에서 보증을 서 주시겠고, 용기를 북돋워 주시겠다고 하시니 용기를 내어 용서하는 일에 나서야 하겠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용서의 삶을 살도록 촉구하시는 주님, 사실은 제가 제일 용서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랍니다. 용서의 덕을 실천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맺은 것은 제가 소중히 간직하고, 제자 풀 수 있는 것은 풀 수 있는 슬기를 베풀어 주십시오. 염치없사오나 자주 걸려 넘어지는 이 분노와 억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서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용서의 하느님!!
추석절을 맞아 행복한 명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혹 마음이 미움이 남아 있다면 명절을 맞아 풀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보름달과 같이 탁 트이고 열린 마음으로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추석절을 맞아 묵상을 쉬겠습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