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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불변성과 구원과 속죄의 사랑과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
만약 하나님께서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간에게 맞추기 위하여 그분의 율법을, 변경시킬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었다. 율법이 바꾸어지고 변개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독생자를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죽도록 보내셨다. 구주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율법을 계속적으로 범하게 하기 위하여, 인간의 죄과를 그분에게 부과시키고 그분의 의를, 그들에게 입혀 주셨는가? 아니다,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그 자신의 힘으로는 율법을 지킬, 가능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오셨다. 그분은 율법의 가르침을 순종할 힘을, 인간에게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리하여 죄인은 그의 범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나아와, “오 아버지여, 저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구주의 공로를 통하여 용서를 간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그분에게 나아오는, 모든 이들을 받아 주실 것이다.(3SM 179.6)
많은 사람들이 왜곡된 관점을 가짐—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나아 올 수 있기 전에 그들 스스로, 큰 일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투쟁 막판에 개입하시며, 그들의 종신 사업에 마무리 손질을 베풂으로써, 그들에게 도움을 주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구주이시며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듯 보인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14:6)시라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믿음의 완전한 신뢰를 가지고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는, 그분의 보혈의 효험만을 믿으며 그리스도께 개인적으로 의지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수 있다고 약속한 것을, 믿는 가운데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3SM 181.3)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 믿음을, 구성하는지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흑암과 낙망에 대하여 불평한다. 나는 질문했다. “그대들의 얼굴이 예수께로 향해 있는가? 그대들은 의의 태양이신 그분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대들은 교회에 믿음의 문제와 그리스도의 의를 온전히 의존하는 문제를, 명백하게 정의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들의 말과 기도에는 그리스도 그의 비할 데 없는 사랑,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그분의 위대한 희생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으므로 사단이 우리가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져야 하며,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견해를 거의 어둡게 하였다.
우리는 영적인 도움을 위하여 인간을 덜 신뢰해야만 하며, 훨씬 더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워지는 것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는 단호한 목적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 속성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할 수 있으며,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그분의 긍휼을 말하고 노래하며, 그분을 우리의 개인적인 구주로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을 사랑하며, 그리스도께서 미워하신 죄를 미워한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말하며, 곰곰이 생각해야만 한다.”(3SM 183.2)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의 감추어진 죄악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므로, 배도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미워하였다. ‘아합’이 ‘엘리야’를 원수처럼 생각한 것은 선지자가 충실하게, 왕의 은밀한 죄악을 책망하였기 때문이다. 그처럼 오늘날도 죄의 책망자인, 그리스도의 종은 경멸과 거절을 당한다. 그리스도의 종교인 성경 진리는, 도덕적 불결의 강력한 사조와 투쟁한다. 편견은 그리스도 당시보다 더욱 강력하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으셨다.
그분의 생애는 저희 죄에 대한 책망이었으므로,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였다. 그와 같이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사람들의 행습과, 저희의 타고난 경향과 조화되지 않으므로 무수한 사람들이, 진리의 빛을 거절한다. 사단의 충동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그들의 독자적 판단을 따르기로 선택한다. 그들은 광명보다, 흑암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들은 저희 영혼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 일을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트집 잡았던 자들은, 트집거리가 계속 증가하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마침내는 진리와 생명 되신 분으로부터, 돌아서 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그와 같다. 하나님께서는 육적인 마음이 당신의 진리를 대항하기 위하여 가져 올,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겠다고 제의하지 않으신다. 어둠을 환하게 비출 귀중한 광선을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의 비밀이 그런 상태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진리는 감추어져 있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걸어가며 저희 앞에 있는, 멸망을 알지 못한다. (DA 587.5)
[두 번째로 어지러운 성전을 정리하심] 삼년 전, 성전 치리자[관리자]들은 예수님의 명령 앞에서, 도주했던 일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 후 그들은 자신들이 두려워했던 일과 일개 비천한 사람에게, 무조건 복종한 일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들은 체신(體身:신분에 맞는 행동)없이 복종하는 일은 다시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전보다 더욱 무서워서, 더 급히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그분의 권위에 대하여 감히, 물어 본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제사장들과 장사꾼들은 저희 가축들을 몰고, 그분 앞에서 도망하였다.(DA 591.1)
그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중에 병자들을 데리고, 크신 의원을 찾는 군중들을 만났다. 도망하는 사람들의 말 때문에, 이들 중 어떤 이들은 되돌아갔다. 그들은 표정만으로 제사장들과 관원들을 그분의 면전에서 쫓아내신, 그토록 큰 능력을 가지신 분을 만나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큰 무리가 허둥지둥하는 군중을 헤치고 저희의 유일한 소망인, 그분에게 나아가려고 열심히 전진하였다. 군중들이 성전에서 도망했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은 뒤에 머물러 있었다. 이 사람들은 이제 새로, 오는 자들과 연합하였다. 성전 마당은 다시 병자와 죽어 가는 사람으로, 가득 찼고 한 번 더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봉사하셨다.(DA 592.1)
얼마 후에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성전으로 돌아왔다. 공포심이 사라졌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다음 행동이, 어떤 것일는지를 알고 근심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예수께서 ‘다윗’의 보좌를 취하리라고 얘기하였다. 조용히 성전으로 돌아왔을 때에 그들은, 남녀와 아이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음성을 들었다.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놀라운 장면을 바라보고, 못 박힌 듯 꼼짝 못하고 서 있었다. 그들은 병자가 낫고 소경의 눈이 밝아지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절름발이가 기뻐 뛰는 것을 보았다. 어린이들은 그 즐거워하는, 무리의 맨 앞에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질병들을 고쳐 주셨다.
그분은 그들을 당신의 팔로 껴안으시고, 감사에 넘치는 입맞춤을 받으셨으며 그 중 어떤 아이들은, 그분이 백성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 그분의 품에서 잠들고 있었다. 이제 즐거운 음성으로 아이들이 그분을 찬송하였다. 그들은 전날에 외치던 ‘호산나’를 반복하였으며, 구주 앞에서 종려나무가지들을 의기양양하게 흔들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시118:26;슥9:9),“‘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마21:15)라는 그들의 외침소리로 성전은 울리고 또 울렸다.(DA 592.2)
이 기쁘고 거리낌 없는 음성은 성전을 다스리는 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였다. 그들은 이런 시위를 중지시키려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이 어린아이들의 발과 기쁨의 부르짖음으로, 모독당하였다고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그들의 말이 백성들에게 감명을 끼치지 못하는 것을 알자, 관원들은 그리스도께 호소하였다.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21:16) 하셨다.
예언에는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선포되어야 할 것을 말했는데, 그 말씀은 성취될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그분의 영광을 선포하기를 거절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증인이 되는 일을 아이들에게로 옮기셨다. 만일 아이들의 음성이 잠잠 하였더라면, 성전의 모든 기둥들이 구주를 찬양하는 소리를 발하였을 것이다.(DA 592.3) ‘바리새’인들은 몹시 어리둥절하고 당황하였다.
그들이 위협할 수 없는 분이 명령하고 계셨다. 예수께서 성전의 보호자로서‘ 그분의 지위를 차지하셨다. 그분은 전에 이런 왕의 권위를’ 주장하신 일이 전혀 없었다. 그분의 말씀과 행하심이 그처럼‘ 큰 권세를 가졌던 일은 전혀 없었다. 그분은 ’예루살렘‘에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었으나, 이와 같이 엄숙하고 감명적인 방법으로 행하신 적은 전혀 없었다. 그분의 놀라운 일을 목격한 백성들 앞에서,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감히 공공연한 적개심을 그분에게 나타낼 수 없었다. 비록 예수님의 대답으로 분노하고 당황했을지라도, 그들은 그 날에 어떤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DA 593.1)
그 다음날 아침 ‘산헤드린’ 회의는 예수님에 대하여,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에 관하여 다시 의논하였다. 삼 년 전에 그들은 그분이, “메시야”라는 표적을 요구하였었다. 그 때 이후로 예수께서는 도처에서, 능력 있는 일을 이루셨다. 그분은 병자를 고치시고 이적으로 수천 명을 먹이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거친 바다를 말씀으로 잔잔하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열린 책을 읽듯이 사람들의 마음을 여러 번 읽으셨으며, 사귀를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 관원들은 그분이 “메시야”이신 증거를 보았다. 그들은 이제 그분에게 권위의 표적을 요구하지 않고, 다만 그분을 정죄할 수 있는 어떤 고백이나, 선언을 끌어내기로 결정하였다.(DA 593.2)
예수께서 가르치시던 성전으로 모여들면서 그들은,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막11:28)라고 질문하였다. 그들은 그분께서 그분의 권능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주장하기를 기대하였다. 그런 주장을 그들은 부정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일견 다른 문제에 속하는 듯한 질문으로 그들에게 대응하셨고, 이 질문에 그들이 대답하는 조건 하에 저희에게 대답하기로 하셨다. 그분은 “‘요한’의 침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 서냐? 사람에게로 서냐?”(마21:25)고 물으셨다.(DA 593.3)
제사장들은 어떤 궤변을 가지고도, 벗어날 수 없는 곤경에 그들이 빠진 사실을 알았다. 만일 그들이 ‘요한’의 침례가 하늘에서 왔다고 말한다면, 그들의 모순이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면 왜 ‘요한’을 믿지 않았느냐?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1:29)고 하여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하였다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실 것이었다. 만일 제사장들이 ‘요한’의 증언을 믿었다면 어떻게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메시야” 되심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만일 ‘요한’의 봉사가 사람에게서 왔다는 그들의 진정한 소신을 선언한다면, 그들은 스스로 폭풍과 같은 분노를 자초할 것이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믿는 까닭이었다.(DA 593.4)
큰 관심을 가지고 군중들은 결정을 기다렸다. 군중들은 제사장들이 ‘요한’의 봉사를 받아들인다고 공언했던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요한’이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그들이 의심 없이 승인하리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비밀리에 다 같이 협의한 후에 제사장들은, 언질을 주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짐짓 알지 못함을 공언하면서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고 말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21:27).(DA 594.1)
서기관들과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모두 다 잠잠하였다. 당황하고 실망하여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서서, 감히 그리스도께 더 질문하려고 하지 않았다. 비겁함과 우유부단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들 곁에 서서 이 교만하고 독선적인 사람들이 패배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백성들의 존경심을 크게 상실하였다.(DA 594.2) 그리스도의 이 모든 말씀과 행동은 중요한 것으로, 그 감화는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승천하신 후에 계속하여, 더욱 증가된 분량으로 느껴질 것이었다.
예수께서 하신 질문의 결과를 근심스럽게 기다렸던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다사(多事:여러 일들이 생기게)했던 날에 처음으로 그분의 말씀에 이끌려서, 마침내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 성전마당에서 일어난 장면은, 그들의 마음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말을 주고받을 때 예수님과 대제사장 사이의, 대조는 너무도 현저했다. 거만한 성전의 성직자는 화려하고, 값진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머리에 빛나는 관을 쓰고 있었고 그의 자태는 위엄이 있었으며, 머리카락과 긴 수염은 연로하여 백발이 되어 있었다.
그의 외모는 보는, 자들을 두렵게 하였다. 이 존귀한 사람 앞에 하늘의 폐하(陛下:황제)께서, 장식이나 치장 없이 서 계셨다. 그분의 옷은 여행으로 더럽혀졌으며, 그분의 얼굴은 창백하고 침착한 비애가 표현되었다. 대제사장의 거만하고 자신 있고 분노한 모습과는 이상하게, 대조되는 존귀와 자비심이 보였다. 성전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그 때부터, 저희 마음에 그분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민중의 감정이 그분 쪽으로 선회하자, 예수께 대한 제사장들의 증오심은 더욱 증가하였다.
예수께서 그분의 발 앞에 설치된 덫을 벗어나신 지혜는, 그분의 신성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되었으며, 그들의 분노를 부채질하였다.(DA 594.3) ‘랍비’들과의 논쟁에서 그분의 적들에게, 창피를 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목적은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곤경에 빠진 것을 보고, 즐거워하지 않으셨다. 그분에게는 가르칠 중대한 교훈이 있었다. 그들이 그분을 위하여 펴놓은 그물에 스스로 걸리도록 허락하심으로, 그분은 원수들을 실망시키셨다.
‘요한’이 베푼 침례의 성격에 관하여 그들이 알지 못한다는 자백이, 그분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그분은 그 기회를 잘 이용하여 이미 주어진 많은 경고에, 다른 경고를 첨가하여 그들의 참 위치를 그들 앞에 제시하였다.(DA 594.4) 예수께서는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뇨?”(마21:28~31)라고 말씀하셨다.(DA 595.1)
이 돌연한 질문에 청중들은 마음을 놓았다. 그들은 비유를 면밀히 살핀 다음, 곧 둘째라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눈을 그들에게 똑바로 향하고서, 날카롭고도 엄숙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義:거룩함)의 도(道;진리)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않았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않았도다.”(마21:31,32).(DA 595.2)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그리스도의 질문에 바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둘째 아들이 좋다는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셨다. 이 아들은 ‘바리새인’들이 멸시하고 미워하는 세리들로 대표되었다. 세리들은 대체로 부도덕하였다. 그들은 과연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자들이었고‘ 자신들의 생애로 그분의 요구를 완전히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그들은 감사하지 않았으며’ 거룩하지도 않았다. 주의 포도원에 가서 일하도록 요청을 받았을 때에‘ 그들은 멸시하는 태도로 거절하였다. 그러나 ’요한‘이 와서 회개와 침례를 선포할 때에 세리들은’ 그의 기별을 받아들이고 침례를 받았다.(DA 5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