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 개념의 전개와 음양오행
중국 사상사에서 보면 기(氣)는 역사가 오랜 만큼 그 개념도 폭 넓게 쓰여 왔다. 중국 고대 문헌들에 나오는 기(氣)에 대한 내용을 보면 그 당시의 언어와 지식수준에 맞게끔 기술되어 있어 오늘날의 지식으로 보면 알쏭달쏭하거나 심지어는 황당한 것들도 있다. 따라서 고대 문헌의 기록이라고 하여 무게를 두고 무슨 뜻인가 이해하려 애 쓰거나 무언가 신비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묘사하기 보다는 곧이곧대로 해석하면서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이 체계를 세워가며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접근법일 것이다.
중국의 경우, 약 5,000년 전부터 문헌에서 기(氣)에 대한 내용이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체적으로 기(氣)라는 글자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는 춘추전국시대로 본다. 중국철학에서 기(氣)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를 철학적 용어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 문헌들을 보면 초기에는 철학적 의미로서보다 자연현상과 생명력을 설명하기 위한 실질적인 의미로서 주로 쓰였다. 이것은 언어의 개념적 발달 단계를 고려한다면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서기 100년 경에 후한(後漢)의 허신(許愼)이 만든 중국 최초의 자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보면 두 가지 글자가 보이는데 하나는 기(气)이고 다른 하나는 기(氣)이다. 전자는 ‘구름이 피어나는 모습’[雲氣]이라 하여 기운의 흐르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쓰였고 후자는 ‘손님에게 드리는 음식물’[芻米]이며 추미는 손님에게 드리는 희(餙)를 말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이 예서(隸書)에서 ‘기’(氣)자가‘기’(气)자를 대신하면서‘기’(气)자는 쓰이지 않게 되었고 ‘기’(氣)는 ‘희’(餙)자가 대신하게 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기’(气)자의 갑골문과 금문(金文)의 형상이 ‘삼’(三)자와 매우 비슷한 형상이라는 점이다. 본디는 구름이 겹쳐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하나 앞서 살펴본 일과 삼의 관계를 생각하면 우연치고는 묘하다는 느낌이 든다.
기는 생명력을 나타내기도 했는데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는 천기(天氣)와 땅의 기운인 지기(地氣)가 결합하여 곡물이 생장한다고 보았다. 동물은 식물의 생명력을 소화 흡수하여 활동력으로 삼는다. 기는 이렇게 생태계 전반을 두루 관통하고 있는 우주적 생명력으로 이해되었다. 인간의 생명도 기의 흐름으로 유지되며 피의 순환과 연계된다고 보아 혈기(血氣)라 하였고 호흡이 그 관건이라 보아 이를 기식(氣息)이라 하기도 하였다. 도한 은, 주 시대 이전부터 기는바람이나 구름을 포함한 기상(氣象)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였다. 《장자》제물론(齊物論)편에서는 “땅덩이가 뿜어내는 기를 바람이라 한다”고 하여 기(氣)를 바람과 같은 실제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오늘날의 말로 표현한다면 보이지 않는 공기와 같은 기체(氣體)를 묘사하는데 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용례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기(氣)라는 글자를 오늘날처럼 고도의 철학적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을 가리키는데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氣)가 고대에는 물질적인 의미로서 쓰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후대에 와서 기에 대한 개념이 점차 철학적인 영역으로 확장되어 쓰이기 시작하면서 ‘유형(有形)의 기’와 ‘무형(無形)의 기’라는 구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유형의 기란 미세하게 분산되었던 기가 응집하여 시각적 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형태를 이룬 것을 말하며 무형의 기는 흩어져 있으면서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는 기를 말한다.이를 두고 장자는 “기가 모이면 형(形)이 존재하고 기가 흩어지면 형(形)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황제내경》의 소문(素問) 천원기대론(天元紀大論)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하늘에 있으면 기(氣)가 되고 땅에 있으면 모양[形]을 이루니 형과 기가 서로 느끼어 만물이 생겨난다 하였다. 여기에서도 형상이 유지되는 것을 기에 의한 작용으로 이해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氣)의 개념이 유형의 기와 무형의 기로 나누어지면서 기의 개념이 점차 복잡해지는 과정을 간략하게 훓어보면 다음과 같다. 대체로 보아 선진(先秦) 시대에는 생명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가장 널리 쓰였고 그 다음으로 음양의 기(氣), 천지의 기(氣)처럼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의미로 쓰였다. 진한시대에는 음양과 오행의 이론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원기(元氣)의 개념이 등장한다. 원기는 천지만물 생성의 기원이자 생명의 근원이 되는 기(氣)를 말한다. 전국시대에서 한 대에 걸쳐서는 기(氣)가 만물의 생성원리로 다루어졌고, 송, 명대의 이기철학자들에 의해서는 만물의 존재를 설명하는 근원개념으로 다루어졌다. 이기이원론은 《역경》에서 이(理)를 형이상, 기(氣)를 형이하로 구분하는 명제로부터 시작하여 《맹자》의 이의(理義)와 호연지기(浩然之氣), 그리고 정호(程顥)의 천리(天理)와 장재(張載)의 기(氣)를 거쳐 주자에 이르러 완성된다.
송, 명대의 원기(元氣)에는 초월자적인 개념이 있었으나 그 이후로 이것은 내재(內在)하여 있는 힘에 의해 스스로 움직인다고 하는 자연철학적인 기(氣)로 바뀌어 갔다. 송대 이후 원기론(元氣論)이 이론적으로 심화되면서 기(氣)의 근거는 이(理)라고 주장하는 주자(1130~1200)의 이학(理學)과, 이학의 계통을 잇되 마음이 곧 이[心卽理]라고 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인간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왕양명(1472~1528)의 心學이 등장한다. 이들의 이론과 유물론적 유기론(唯氣論)의 대립은 청대중기까지 계속되었다.
명대의 나흠순은 주자가 주장한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거부하면서 이(理)는 기(氣)에 의거해 세워지고 기에 붙어서 행해진다고 말하였다. 이와 기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를 다르게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존재론적으로 보았을 때는 이(理)가 기(氣)에 의존하므로 양자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본다. 말하자면 이와 기가 하나이기는 하나 대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관점에서의 이기일원론이다.
위에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등장한 기(氣)의 개념들을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기 개념이 간단한 내용에서 시작하여 점차 복잡해졌지만 크게 보아 그 자체가 실재적인 존재로서 만물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와 달리 음양과 오행은 천지자연의 변화 현상을 기(氣)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하고자 시도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개념이다. 음양설과 오행설은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하였으나 전국시대(戰國時代) 중엽에 하나의 사상체계로 통합되었다. 원래 음약은 《시경》에 나오는 것처럼 음지와 양지를 가리키는 말이었을 뿐 만물을 형성하는 질료 내지는 에너지적 요소로서의 의미를 가진 개념이 아니었으며, 또 실재하는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개념도 아니었다.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이르러 《좌전》에서 음(陰)과 양(陽)이 풍(風), 우(雨), 회(晦), 명(明)과 함께 천(天)의 6기(六氣) 가운데 하나로 취급되면서 비로소 실재하는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BC 3세기 전반 무렵에 앞서 설명한 것처럼 기(氣)의 모임과 흩어짐으로 천지만물의 생멸과 변화를 이해하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으면서 음양을 성질이 상반되는 두 종류의 기(氣)로 설정하고 음양으로 천지자연의 운행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책이 《역경》이다.
오행이란 목, 화, 토, 금, 수를 가리키며 BC 4세기 초부터 그 개념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행이라는 글자는 《서경》에 실려 있는 홍범구주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후 음양설과 결합하면서 오행은 다섯 종류의 기, 즉 우주에 편재하고 충만한 다섯 가지의 원소로 간주되었다. 오행의 기는 《회남자》에서 처음 보이고 오행설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여씨춘추》(呂氏春秋)이다. 음양과 오행을 통합하여 체계적인 음양오행설을 구축한 대표적인 학자는 추연(BC 340~260?)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음양의 기와 오행에서 발생하는 덕(德)의 소식(消息)이론으로 사물의 변화를 설명했는데 그의 사상을 대표하는 학설이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이다.
오덕이란 오행에서 발생한 다섯 종류의 작용을 말하는 것으로 오행에는 각기 해당하는 기운이 있으며 거기에 알맞은 정체(政體)가 존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한 왕조의 제왕은 누구나 이 오행의 덕 가운데 하나를 갖추어 왕이 되며, 모든 왕조는 오덕의 순서에 따라 흥망한다고 본다. 그리고 오행 상호관계는 토-목-금-화-수와 같이 각기 전자의 왕조를 이기고 나타난다는 상극설(相剋說)의 입장을 취했다. 그 후 진한의 교체기를 거쳐 전한(前漢)의 정치적 안정기가 오면서 목-화-토-금-수로 차례차례 생성해간다는 상생설(相生說)이 추가되었다.
진한대의 음양오행설은 《여씨춘추》12기(十二紀)와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보이는 시령설(時令說)로 발전하였다. 시령설은 사계절의 변화와 다양한 인간사의 변화 현상을 오행상생의 순환원리로 설명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음양오행의 순환원리를 따르면 화평상태가 유지될 수 있으며, 거기에서 벗어나면 사회의 화평이 깨진다고 했다. 한 대에는 이러한 음양오행설이 유가와 도가를 포함한 모든 사상에 공통적인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하나의 보편적인 사상으로 성행했다. 특히 동중서(BC 179~104경)는 음양오행설과 유교정치사상을 결합하여 천인감응(天人感應)과 휴상재이(休祥災異)의 사상을 완성했는데 이 사상은 그 후의 유교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서 기(氣)는 하늘과 사람이 서로 느끼어 응하는 매체로서 이해되었다. 그는 음양오행설을 근거로 자연현상과 인사(人事), 특히 군주의 정사(政事)가 대응관계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군주의 통치는 ‘하늘’[天]에 순종하는 것이어야 하며 만약 군주의 통치가 민생을 해치는 경우에는 음양오행의 부조화를 초래하게 되어 가뭄과 장마 등의 자연 재해를 통한 ‘하늘’의 견책이 있게 되고 혜성이나 지진의 발생 등과 같은 이변(異變)을 통한 경고가 내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가 반성하지 않을 때는 천명을 바꾸어 그 국가를 멸망시킨다고 했다. 그러나 군주의 통치가 민생을 보호할 때는 보랏빛 구름이나 진기한 짐승이 출현하는 등의 상서(祥瑞)로운 조짐이 나타나게 된다고 했다. 동중서의 재이설(災異說)은 자연을 거울삼아 절대군주의 올바른 통치를 촉구하는 정치사상이다. 그러나 그 후 유교가 국교화가 되면서 재이설은 점차 참위설(讖緯說)로 변질되었다. 군주의 실정에 대한 견책 근거로 설명되던 재이(災異)가 참위설에서는 장래 발생할 사태의 예언, 특히 역성혁명에 의한 정권교체의 예언으로 바뀌었다.
한편 음양오행설은 자연과학의 영역, 특히 의학의 이론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고대의 중국 의학계에서는 인체의 조직에도 자연계의 음양오행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믿엇기 때문에 음양오행의 도식이 생리학의 도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예컨대 비장(脾臟)은 토, 폐(肺)는 금, 심장(心臟)은 화, 간(肝)은 목, 신장(腎臟)은 수에 대응시키면서 이를 근거로 그 기능과 성질, 상호 관계를 설명하는 식이다. 또 사계절의 변화가 인간의 생리적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인체 내부의 오장(五臟)은 상호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 이론들이 수립되었다.
음양오행설은 송대 성리학이 등장하면서 크게 바뀐다.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쓴 주돈이(1017~1073)는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이 오행을 낳는다는 구도로 음양오행을 이해했다. 그는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라고 설명하면서 음양 속에는 태극이, 오행 속에는 음양과 태극이 같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음양과 오행의 결합에 의하여 만물이 형성되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 내용은 태극을 이(理)로, 음양오행을 기(氣)로 해석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이기(理氣)개념으로 만물의 생성과 운동을 설명하는 기초가 되었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펴본 기 개념의 발달 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간단한 것이었다가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복잡한 내용으로 바뀌어 간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일관된 흐름을 따라 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체계적인 맥락을 잡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최근에 여러 학자들이 기에 대해 논의 하였으나 그 내용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을 정리하는 선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사상사나 철학적인 입장에서 접근하다 보니 기의 과학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부분에서는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의 입장에서 기를 다루기 전에 위에서 간략하게 설명한 기 개념의 변화 과정에 대해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