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2004년)에 모 신문에서 독일군 포로 수용소에 갇혀있던 조선인 병사들의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는데, 오마이뉴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 문제의 사진에 대하여 역사학자를 자칭하는 강만길과 한홍구 등의 좌파는 침묵하였다. 과거사 진상 조사위원들로서 막대한 국고 지원을 받고 있는 이들이 함구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러시아군에 소속되어 빨치산이나 마적단 역할을 하청받았던 조선인 병사들도 독립군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실제로 조선에서 보내진 독립군 군자금 대부분은 러시아군 소속 조선인부대로 흘러들어갔다는 의미에서 그들도 독립군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조선 독립군이 독일 전선까지 파병되었는가? 도대체 거기서 독립운동할 일이 있었다는 말인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시기에 조선인 독립군이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서도 발견된다. 그들 중에 영문도 모른체로 유럽 전선으로 파병되어 연합군 포로가 되었다가 러시아군이 그 지역을 점령한 후에는 러시아어를 모르는 이들은 전쟁포로로 간주되어 다시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로 보내진 이들이 있었다. 2차 대전이 한창 진행되던 때의 일이다. 이렇게 나라 잃은 조선인 청년들이 러시아 전선으로 끌려가는 수모와 서러움을 겪었다.
지금 열우당에서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이 많든 적든 피해자 수에 따라 보상을 우리나라에 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조선인 희생자들을 수습하여 자기네 국립묘지에 안치하였다. 그런데, 러시아군에 징발되어 독일 전선에 보내졌던 혹은 러시아 점령군에 포함되어 동구 여러나라로 보내졌던 조선인 병사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들은 조선인 독립군 군자금 지원을 받았던 병사들이요, 러시아는 막대한 독립군 군자금 상납을 조선인들로부터 받고 있었다. 당시 조선인 국적이 일본 국적이었으며, 일본도 적어도 형식상 자원 입대의 형식을 갖추었던 반면 러시아는 봉급이나 피해자 보상 등이 없이 조선인들을 부려먹었다.
만일 참전으로 따지자면 조선인 병사들도 2차대전에 러시아군으로 참전하였으니 조선도 승전국의 대열에 있다. 그러나, 승전의 몫은 누구에게로 돌아갔는가? 러시아가 전혀 자기네 식민지가 아니었던 조선인들도 자기네 마음대로 유럽전선에 파병시키고, 시베리아 포로수용소로 보내었다면 수백 개의 피지배 민족에 대한 처사는 어떠하였는가? 러시아군 중 다수는 비러시아계 피지배 민족이었으며, 이들은 2차 대전을 틈타 러시아가 러시아 제국의 판도를 또 다시 확장하는데 사용되었다.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에 조선인(고려인) 등 피지배 민족 청년들이 러시아군복을 입힌 채 파병되었다.
이상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강만길, 한홍구, 강정구 등 좌파 학자들이 냉전의 본질에 대하여 무식하다. 그들은 너무 무식하다. 자, 무엇이 냉전의 본질이었는가? 2차 대전 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식민지를 독립시켰는데, 러시아는 단 한 민족도 독립시켜 준 일이 없었다. 미국은 약소국의 자주 독립 선본에 서있었으며, 러시아 제국주의는 정반대였다. 러시아는 자기네 식민지를 독립시키기는커녕 오히려 2차대전 후에 동구 여러 국가들과 북한을 강점하였다. 여기까지는 미국이 이해하여 주었으나, 불화의 씨는 남아있었던 것이다. 만약 체첸이 독립운동을 50년만 일찍 하였더라도 연합국의 시선을 끌었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에 병탄된 피지배 민족의 독립운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였다. 바로 이 점을 한승조 교수는 지적하였던 것이다.
만약 동네를 다 태워버릴 만한 산불이 났을 때 장마가 나서 수재가 생겼다면 어느 쪽 피해가 더 클까? 옛말에도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인생에 있어서 길흉화복은 항상 바뀌어 미리 헤아릴 수가 없다' 는 뜻이요, 요컨대 작은 화가 큰 화를 면하게 하여 준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새옹지마를 새옹지마라고 말하면 친일파인가? 정말로 자기 동네를 사랑하는 이들은 현명하다. 그들은 화마가 동네를 삼키는 것보다 소나기가 산불을 꺼 주는 것이 훨씬 더 나음을 안다. 그래서 한승조 교수의 진정한 애국심은 전화위복을 전화위복이라고 사실대로 말한 것이다. 그런데, 한홍구와 진중권과 원희룡 의원들 같은 이들은 화마가 동네를 삼켜버린 것이 더 나았다고 바락바락 우긴다.
명색이 역사학 교수라는 한홍구가 그처럼 무식하니, 구한말 위정자들이 범했던 실수를 이해할 만하다. 19세기의 러시아가 어떤 나라였던가? 제국주의 시대의 나라였다. 한홍구와 진중권 두 무식한 교수가 알아야 할 것은 유럽 제국주의와 러시아 제국주의는 달랐다는 사실이다. 유럽 제국주의는 현대 문명의 빛을 후진국에게 나누어 주자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무료로 개발 이권을 가지고 간 일이 없었다. 선진 문명을 공유하였으며, 경제 개발의 이익도 공유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주의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들은 단지 군사적 힘의 논리로 약소국들을 정복해 나갔다.
사실, 아직까지 일본이 어느 민족을 정복하여 일본 문화에 동화시킨 일은 없다. 그러나 러시아는 수백 혹은 그 이상의 민족들을 정복하여 그 문화적 정체성이 없어지게 하였다. 일제 시대에 조선의 전통 문화가 사라진 일이 있는가? 그들은 우리의 고궁을 잘 관리하고 보존하여 주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정복은 그러하지 않았다. 러시아인은 백인들도 실은 무수히 많은 종족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체첸 반군은 러시아의 강점 하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홍구와 진중권 두 교수에게 만약 우리나라가 러시아에게 정복당하였다면 체첸 반군의 테러와 같은 방법으로 독립운동하는 것이 가능하였겠는지를 물어야 한다.
한승조 교수는 만약 1904년에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병탄하려고 하였을 때 일본이 막지 않았거나 러일전쟁의 승자가 러시아였다면 우리 민족이 해방과 독립을 맞이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새옹지마를 새옹지마라고 말한 것이 친일이라는 이들은, 그리고 한승조 교수가 한국에서 살지 못하게 하자던 열우당 쪽 사람들이나, 친일옹호 처벌법을 만들겠다던 원희룡 의원은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병탄하였다면 우리 민족이 해방과 독립을 맞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19세기에 러시아에 정복당한 무수한 민족이 독립을 못했는데, 1945년에 러시아가 우리나라만 독립시켜 주는 것이 가능했을까?
사실 원희룡 의원의 친일옹호 방지법(처벌법)은 그 개념부터가 잘못된 것이지만, 1904년에 러시아군이 우리나라로 쳐들어오고 있었던 상황 하에서는 여론은 친러파와 친일파로 갈라지게 되어있었다. 따라서 원희룡 의원이 친일 옹호 처법법에 대해서 말할 때 그는 스스로 친러파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역사 논리에서 바라볼 때 바로 이런 우를 진중권, 한홍구 두 교수와 원희룡 의원이 범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그러면 친러파는 애국자들이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만약 러시아에 정복당하면 그것은 민족이 소멸되는 것을 의미함을 삼척 동자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친러파가 되기를 고집하는 것이 애국일까?
사실, 친러파의 수만큼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한반도 분단의 뿌리는 사실 구한말 시대의 친러파들에게 있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러시아가 먼저 일본에 한반도를 남북으로 양분하여 삼팔 이북을 차지하게 하여달라는 요구를 하였으며, 아마 그것도 러시아가 군대를 만주로 파병하였던 이유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40년만에 다시 만주에 파병한 러시아군이 삼팔선 이북을 점령하는데는 1주일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1904년의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항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그 시대의 위정자들은 영국, 독일, 미국 등의 국가들은 왕따시키고 러시아와 일본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사실, 진짜 친일파 송병준을 제외하고 다른 대부분의 위정자들은 친러와 친일 사이를 왔가 갔다 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미 국가들과의 외교 채널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반미주의 국가였다. 교역을 희망하여 오는 미국과 서구 국가들의 배에 불을 지르고, 오로지 러시아와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가들로만 외교 대상으로 삼았다. 1971년 대선 때 김대중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러시아군과 일본군과 중국군의 힘에 의해 한반도 평화를 보장받자는 선거 공약을 내놓은 것도 그 습성이 구한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처럼 김대중 한 사람에게 친일파, 친러파, 친중파의 모습이 골고루 있듯이 그 당시 위정자들에게도 친일파와 친러파의 모습이 골고루 있었다. 어제까지 칠러파였던 이들이 러시아군의 한반도 정복 낌새를 치자 하루아침에 친일파로 모스을 바꾸었다. 따라서 당시 친일파 위정자들 중 다수는 그들의 매국 논리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국익이라는 판단 때문에 그렇게 하였다. 그래서 그 시대에는 친러파가 곧 친일파였다. 그러면, 원희룡 의원의 친러 논리, 즉 친일 옹호 처벌 논리는 그 자신이 언제고 친일파로 둔갑할 수 있음을 반증한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 해도 그들의 친러파적 발상은 애국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한다.
자, 그러면 여기서 냉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2차 대전 후에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제국들은 자진하여 옛 식민지들을 독립시켰으며, 비록 미국의 강요에 의한 것이기는 하였지만 일본도 조선을 독립시켰다. 그런데, 식민지가 가장 많던 러시아는 오히려 영토를 확장시켰다. 그리고 미국이 더 이상 그것을 눈감아 줄 수 없었던 것이 공산주의 제국의 남한 침략이었다. 즉, 자유민주주의 진영 16개 국의 한국전 참전에는 더 이상 러시아 제국주의의 팽창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바로 이것이 냉전의 본질이었다. 만약 러시아 제국주의의 팽창주의가 없었더라면 북한의 남침을 미국은 내전으로 간주하고 참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 제국주의의 팽창주의의 역사가 없었더라면 2차 대전 후 냉전 시대로 도래할 리 만무하였다.
이 경우 식자의 견해는 둘 중 하나로 양분된다. 즉, 식자는 러시아 제국주의의 팽창주의를 지지하든가 반대하든가 둘 중 하나이다. 그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그리고 사실 우리민족의 근현대사는 러시아 제국주의의 팽창주의에 대한 찬반으로 갈라졌다. 러시아 제국주의의 팽창주의에 찬성하던 이들은 북한에서 조선인민공화국을 세웠으며, 반대하던 이들은 월남하여 반공운동을 하였다. 러시아가 북한을 병탄할 수 없었던 것은 미국의 견제 때문이요, 또 한반도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경쟁 무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00년대와 1930년대에 러시아에 병탄될 위기에 처해 있었던 우리나라는 만일 미국의 관심이 없었다면 2차대전 직후에 병탄되거나 몽고처럼 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원희룡 의원에게 그가 친일 옹호 처벌법에 대하여 말하였을 때 그의 의도는 김일성 및 공산주의자들과 더불어 러시아 제국주의의 팽창주의를 옹호하려는 것이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한승조 교수는 단지 러시아 제국주의의 팽창주의야말로 자칫 우리 민족을 역사에서 소멸시킬뻔한 위협임을 지적하였다. 한반도보다 땅덩어리도 넓고 인구도 많았던 민족들이 러시아에 병탄된 후에는 아예 그 민족 정체성을 소멸하였음을 한홍구, 진중권 두 교수와 원희룡 의원은 어찌 보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러한 냉전의 본질에 대하여 정치외교학자가 말하면 친일파인가? 북핵 위기 앞에 처한 우리 민족이 반공주의 가치관을 회복하여야 한다고 말하면 친일파인가?
박정희 연구자료 http://bookstore21.net/discussion/516.htm
http://bookstore21.net/discussion/books/President_Park.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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