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7일에 배포될 정세와 노동 세월호 참사 특집호
정부는, 세월호가 4월 16일 오전 8시 49분에서 50분 사이에 급격히 우회전하며 사고를 당했으며, 위치는 진도관제센터에서 남서쪽으로 23km, 병풍도 동쪽방향 3.3km 지점이라고 발표했다.
사고가 발생하고 거의 1달이 되었다. 그러나 사건이 실체는 모호하다. 무엇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온갖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배가 침몰한 원인을 정부가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 사고 시각을 은폐하고 있다
사고 발생 시각이라는 8시 50분 이전의 항적과 교신 내용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8시 50분 이전의 세월호의 행적에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사고 전날인 “15일 오후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 전북 군산 인근 바다를 지나던 배가” “쾅”소리가 나며 “왼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었다”는 생존자의 증언과, “아침에 이상해서 나가 보니까 군산서부터 좀 배가 삐딱한 것 같더라. 상당한 시간 동안 그렇게 이 배가 기울어 있지 않았나 하는”1) 증언을 하는 다른 생존자도 있다. “고 박수현 군의 아버지 박종대 씨가 공개한 박수현 군이 찍은 사고 당일 사진” 대해, “박 씨는 박수현 군이 오전 6시 26분에 바다 쪽 난간을 촬영한 사진을 볼 때 배가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는 의문을 제기했”다.2)
사고 당일 7시 20분경에 사고 인근 지역인 관매도에 세월호가 서 있었다는 주민의 발언3)이 보도되고, 비슷한 7시 20분경에 세월호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방송 보도를 보았다는 증언4)도 있다. <SBS 특집모닝와이드>와 <YTN 뉴스특보> 방송도, 안전행정부, 소방방재청 상황실이 작성한 “진도해상여객선 침몰사고 상황보고”라는 제목의 문건을 보도했는데, 사고 개요와 관련해 일시를 “2014. 4.16 (수) 08:00 경”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사고 내용은 “인천발 제주행 여객선(세월호, 6,325톤) 침몰 중”이라고 나와 있다.5) “오전 8시 10분 제주 해경이 ‘배와 연락이 안 된다’고 단원고에 전화를 걸어왔다”고도 한다.6) 해수부 해상교통관제센터 항행경보 게시판 내용에는 “사고예상시간을 [애초에: 인용자] 8:30분경으로 발령하였으나 정부공식 사고발생 시간인 8:55경으로 정정”되기도 한다.7) “진도군청 상황실이 작성해 전라남도 상황실에 보낸 세월호 여객선 침몰 상황 보고서를 보면 사건 발생 일시가 지난 16일 오전 8시25분이라고 기록돼 있다.”8) “8시 30분쯤에 배에 이상을 느꼈다”는 생존자의 증언도 있다.9) 또한 한미군사훈련 때문에 항로가 바뀌었다는 등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세월호는 자동항법장치에 의해 운전되며, 해양수산부에 이 항적이 기록된다.10) 운행 중 인근 관제소(목포, 군산, 대산 등)와의 교신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며 그 기록 또한 정부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 교신 기록을 공개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록을 계속 숨기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에서 위와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들은 대부분 즉시즉시 삭제되고 있다.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입건되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8시 50분 전후의 기록들과 55분 이후의 기록들을 애초에는 없다고 하다가 하나둘씩 공개하면서 관심을 이곳으로 집중시키고 있다. 7시 20분 혹은 8시 30분 혹은 그 이전에 사고가 났음을 강력하게 의심해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2. 사고 발생 시각이라는
8시 50분 이후의 교신 내용도 은폐하고 있다
정부 발표대로 사고가 발생한 시각이 8시 50분경이라면, 세월호는 즉시 가까운 해양경찰청 관할 진도관제센터11)에 누가 언제 어디서 왜 어떤 상황이 발생했는지를 다급하게 보고했을 것이다. 설사 세월호가 보고를 안 했다 해도, 진도관제센터는 불과 23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자신의 감시 구역에 들어온,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500명 가까운 승객을 태운 대형 여객선을 파악하고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급격히 우회전하고 기우는 등의 이상 증세를 보며 교신을 시도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진도관제소에서 세월호를 모니터에서 “그저 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만약 정말 교신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 자체를 해명해야 한다. 또 진도에서 교신을 받지 않았다 해도, 생명에 위협을 느낀 세월호가 교신을 시도한 내용은 있을 것이며, 이를 공개해야 한다.
8시 50분경, 탑승 학생 등 승객들이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 등 위기 상황을 감지하고 핸드폰으로 119로 신고하였고, 119에서 다시 해경에 연락하여서 ‘8시 52분에 해경에 처음으로 조난 신고가 접수되었다.’ 이때 이미 여러 승객들이 위기를 느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진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는 8시 55분에야 제주관제센터(해양항만청이 관리)에 처음으로 교신에 성공했다고 하고, 제주에서 다시 진도로 연락하여 ‘8시 58분에 목포해양경찰청 상황실에 정식으로 사고가 접수된다.’ 그리고 해경은 오전 9시 6분부터 오전 9시 37분까지 31분간 세월호와 이루어진 ‘교신 내용’을 20일에야 여론에 밀려 공개했다.
교신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있다.
▶ 8시 50분-55분: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데 빠져 있다. 세월호는 분명히 진도관제센터와 교신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제주로 교신을 시도했을 것이다. “목포나 진도 등 해역에서 (세월호를 포함해) 우리 쪽으로 교신해 온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12)는 강상보 제주 관제센터장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진도관제소에서 고의로 세월호의 교신을 받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 8시 55분-9시 05분: 세월호와 제주와의 교신. 제주관제센터와의 55분부터의 교신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만약 발표한 대로 제주와의 교신이 처음 사고를 접수하는 교신이었다면,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사고 경위가 보고될 것이다. 그런데 그냥 “해경에 연락해 주십시오, 배 넘어가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그 처음 발언이었다.
이 내용은 듣기에 따라서는, “해경에 이미 보고해서 다시 자세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라고 들릴 수도 있다. 또 “해경에 연락해 주십시오”라는 말은 지금 자신들은 진도 해경에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둘을 종합하면 이전의 상황은 이미 충분히 해경에 보고되었는데 “배가 넘어가는” 상황은 새롭게 발생했고, 이 부분이 연락이 안 되니 연락해 달라는 의미가 된다.
또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상황을 설명하는 세월호의 교신 담당자의 목소리는 “배가 넘어가는” 다급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침착하다는 것이다.13) 뿐만 아니다. 구출되는 사진들을 보면 모든 선원들의 행동이나 표정이 이상하리만큼 차분하다. 죽음의 문턱을 건넌 사람들의 표정ㆍ행동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 오직 선장만이 속옷 차림으로 황망히 탈출하는데, 이는 그에게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너무 많아서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분을 위장하기 위하여, 제복을 벗고 일반복으로 갈아입으려다 연출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구조된’ 선원들은 오후 진도읍 실내체육관으로 옮겨진 뒤 한 외식업체가 마련한 곰탕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뒤 커피까지 마시고 자리를 떴다.
▶ 9시 06분-9시 07분: 제주관제소-진도관제소 교신. 이 부분은 발표되지 않았는데, 여기에서도 제주에서 진도로 사고를 보고하면서 사고 원인에 대한 주요 내용이 담겨 있을 수 있다.
▶ 9시 07분-9시 38분: 진도관제소와 세월호 교신 내용. “진도관제소-지금 침몰 중인가. 세월호-그렇다. 해경. 빨리 좀 부탁드린다”14)로 9시 7분에 해경이 교신을 시작한다. 해경이 전후 상황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거나, 혹은 거기에 대한 내용을 빠뜨리고 발표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자가 더욱 의심된다.
≪조선닷컴≫이 보도한 ‘9시 13분-14분’ 사이의 교신 내용을 보면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선박 “두라 에이스”가 “옆에 보트가 탈출하네요”15)라고 말한다. 이 사람(들)이 누구일까?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은 9시 37분경에 도착한 해경의 보트에 구조되었다. 승객들은 물론 아닐 것이다. 선장보다도 먼저 탈출했으니, 그보다 더 힘이 센 사람일 것이고, 그러나 청해진해운의 간부가 배에 타고 있었을 가능성은 없다. 여기서 미국의 엔비씨 뉴스가 보도한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목요일[4월 24일: 인용자], 한국 여객선 선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녀와 동료들은, 배 안에 승객들이 갇혀 있는 동안, 배를 버리라는 ‘명령’을 받았다”16)는 기사가 있다. 기사에는 어디에 있는 누구에게 언제 명령을 받았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관제센터들과의 교신 내용 어디에도 이러한 “명령”은 없다. 그렇다면 선원들에게 이렇게 중대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어떤 사람이 배에 타고 있었고, 그 사람이 가장 먼저 탈출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시간대에 “세월호: 지금 배가 많이 기울어서 탈출이 불가능합니다”라고 하고, ‘9시23분-24분’에는 “세월호: 현재 방송도 불가능한 상태입니다”17)라고 한다. 명백한 거짓말이다. 38분경에 선원들은 유유히 걸어 나왔고, 30분경 사망자의 카카오톡에는 “아직 움직이면 안 된대”라고 방송 내용을 기록한다. 탈출이 불가능하고 탈출 방송도 안 된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탈출을 고의로 막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러한 악마 같은 짓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밖에는 없다. 배를 버리라는 “명령”을 한 사람이 탈출시키지 말라는 명령을 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추측이 가능하다.
어떤 명령하는 사람들이 배의 안과 밖에 존재하여 모든 사태를 지휘했다. 선원들은 각본에 따라, 무기력하게 그래서 차분하게 움직였다. 세월호와 해경(진도관제소 포함)은 서로 간에, 보도된 교신 내용 이외의 교신이 이미 있었고, 최초 교신이라는 제주관제소와의 8시 55분 교신 전에 상황을 충분히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명령하는 사람은 사고 시각이라는 8시 50분 이후에 세월호에 승선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는 훨씬 이전에 보트를 타고 들어와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사고가 훨씬 이전에 발생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3. 세월호와 선사인 청해진해운 간의 교신 내용을
은폐하고 있다
이렇게 커다란 사고가 나면, 직원이 사장에게 상세하게 전말을 보고했을 것임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전화를 주고받은 직원과 선원들이 모두 배 침몰 상황에 대해서만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청해진해운 측도 선장과 선원들에게 “배가 왜 넘어갔느냐”, “어쩌다 사고가 났느냐”, “배에 무슨 일이 있느냐”며 배의 상태를 물어봤다고 한다.18) 그런데 정작 중요한 “이렇게 저렇게 사고가 났다”는 선원의 답변은 없다.
4. 선장과 선원들의 입을 철저하게 막고 있다
선원들은 누구보다도 사건의 전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의 입을 철저하게 막고 있다. 정부는 사고가 8시 50분경 선원이 배를 오른쪽으로 너무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어서 일어났다고 한다. 선원은 키를 조금 돌렸는데 많이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물어야 한다. 왜 비정상적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물어보지 않는다. 선원도 아무 말이 없다.
해경은 선원들을 제일 먼저 구조하여 격리시켰다. 선장은 해경의 아파트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사복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이 선원을 철저하게 에워싸며, 감시하다가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지했다. 사건 발생 초기에 암초설 등 충돌설이 부각되었고, 그래서 관심이 집중되었던 “쾅”하는 충돌음에 대한 선원들의 의견도 전혀 보도되지 않는다.
5. 정부는 배의 상처를 은폐하고 있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쾅’하는 충돌음이 들린 것은 여러 번이었다. 8시 50분 이후 급격하게 배 뒷부분 아래에서부터 “물이 차올라 왔”고, 좌측으로 배가 기울었고 좌측 뒷부분부터 가라앉았다. 그래서 배의 바닥 좌측 뒷부분에 구멍이 생겼을 가능성이 강력하게 의심되고 있다. 보도 영상에서도 좌측 아래 부분에는 앞에서 뒤로 긁힌 흔적으로 보이는 굵은 하얀 선이 뚜렷하게 보인다.19)
배가 충격을 받았음을 암시하는 증언들을 찾아보면 크게 네 번이 있다. 첫째, “15일 오후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 전북 군산 인근 바다를 지나던 배가 왼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었다”는 증언20)이 처음이다. 두 번째로는 세월호 승무원 전 아무개 씨가 16일 “당직 교대를 위해 기관 일지를 쓰던 오전 7시 45분께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한다.21) 세 번째는 “8시 30분쯤에 배에 이상을 느꼈다”는 생존자의 증언이다. 네 번째는 구조된 승객들이 “배가 침몰하기 전 ‘쾅’하는 굉음이 들렸다”고 증언했다는 것이 있다.22)
그래서 만약 정부가 규명 의지가 있다면 배가 가라앉기 전23)에 바닥 좌측 뒷부분을 검사하고 공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는커녕 배가 뒤집히는 동안 헬기에서 촬영된 영상은 좌측 아래 후미가 보이려는 순간 끝난다. 보도된 사진 어느 것도 좌측 뒷부분 하단을 보여 주는 것은 없다. 통제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음과 같은 사실들도 배의 상처를 감추려는 의도로 의심해 볼 수 있다. 사고 직후 구조를 위해 달려온 민간 선박의 선장이 “어선을 여객선 가까이 대려 했더니 해경은 ‘방해된다’고 방송하면서 접근하지 못하게 했”던 것24), “사고 초기 구조 활동에 투입된 장비와 인력이 형편없이 부족했”던 것, 민간 잠수부들의 투입을 통제했던 것, 해경과 유착 의혹을 받고 있는 민간 구조업체 언딘25)을 수색 작업에 참여시킨 것, 그리고 배의 완전 침몰을 막기 위한 공기주머니 설치와 크레인 작업을 사실상 방기한 것, 현대삼호중공업이 지원하기로 한 플로팅도크를 투입하지 않은 것, 군함들을 세월호에 밀착시키거나, 군함을 이용해 끌거나 밀고 가지 않은 것 등이 그것이다.
* * *
이상의 과정을 살펴보며 다음과 같이 의심한다면, 순전한 억측에 불과할까?
4월 15일, 세월호는 9시에 인천항을 출발한다. 안개가 짙어 항로를 이탈한다. 그런데 그날 밤은 한미독수리 훈련이 서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 훈련에는 미국과 더불어 비밀리에 일본의 잠수함도 참여하고 있다. 밤 10시 반경 일본의 잠수함과 배가 충돌한다. 좌측 뒷부분 아래에 구멍이 난다.26) 사태를 직감한 세월호는 해경에 상황을 알린다. 해경→사회안전비서관→정무수석→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군→국가정보원→위기관리센터→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 보고된다.
선박 전문가를 포함한 기관원들이 급히 배에 파견된다. 배의 상태를 파악한다. 다행히 상처는 가벼웠고, 위험하지만 제주도까지도 갈 수 있다고 평가하고, 그렇게 보고한다. 기관의 수뇌들은 반일 감정과 코앞의 지방선거를 고려하여, 사고의 실체를 은폐하기로 한다. 후폭풍을 우려하여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후일 “청와대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며 청와대를 보호한다.
이들은 약점이 많은 세월호 선장 등 간부 선원을 협박해 굴복시키고 배를 장악한다. —— 배를 계속 끌고 제주도까지 가라.
그래서 배는 상처를 안고, 기울어진 채로 운항을 계속하게 된다. 정부는 이를 계속 감시하고 있다. 선장은 전속력으로 배를 몬다. 4월 16일 아침, 마침내 선박은 7시 20분경 크게 흔들리고, 관매도까지 접근해 배를 멈춘다.27) 이때 섬 주변에 널려 있는 통발, 그물 기타 어업 구조물에 걸려 앞부분에 긁힌 상처가 난다.28) 이번에는 침몰하고 있다고 조난 신고를 보낸다. 신고는 언론에 여러 경로를 통해 새어 나가 보도된다. 기관원들은 더 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선장을 다그쳐 다시 배를 띄운다. 아침 8시 20분경 다시 배가 흔들린다. 다시 조난 신고를 보낸다. <SBS 특집모닝와이드>와 <YTN 뉴스특보>에는 8시경으로, 진도군청과 항행경보 게시판에는 8시 20분경 조난 신고가 기록된다. 기관원들은 생각한다. 사고가 나고 지금까지 9시간을 넘게 운행할 수 있었다. 이제 3-4시간만 가면 된다.29) 강행하자.
그러나 그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세월호는 일반적인 배와 달리 정상 상태가 아니었다. 개조를 해서 무게중심이 높았고, 2-3배로 과적을 했고, 짐을 고정하지도 않았다. 드디어 8시 50분, 결정적으로 배가 침몰하기 시작한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진도관제소는 선박으로부터의 교신을 차단한 상태에서, 상부와 교신하며 지시를 기다린다. 선박은 진도와 교신이 안 되자, 제주와 교신을 시도하고 성공한다.
최악의 상황이 터지자 상부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 구조에 최선을 다한다 해도 많지는 않겠지만 사상자는 나올 것이다. 음모는 폭로될 수밖에 없고, 후과는 상상조차하기 어렵다. 돌아갈 길이 없다. 은폐할 수밖에는 없다.
현장의 기관원들은 생각한다; 이미 민간 선박들이 주위에 집결하고 있는데, 만약 500여 명이 탈출한다면 구조 활동이 방대해지고 길어진다. 통제는 불가능해지며, 배의 상처는 목격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승객의 탈출을 막기 위해, 선원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을 하게 한다. 임무를 마친 기관원들은 보트로 먼저 탈출한다.
구조 명령도 없는 상태에서 최소한의 구조대가 도착한다. 해경은 먼저 선원들의 신병을 확보한다. 배에 “가만히 있다” 죽으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탈출한 사람들이 생기며 구조는 시작되지만, 배의 상처는 아직 드러나 있다. 언론과 실종 가족 등의 현장 접근을 최대한 막기 위해 전원 구조되었다고 허위 보도를 한다.30)
배의 상처를 감추려는 측과 사람을 구조하려는 측의 충돌은 끝없이 이어진다. 마침내 실종자 가족은 절규한다. “이게 진정 대한민국의 현실입니까?”31)
* * *
우리는 정부에 엄중하게 묻는다.
당신들이 아이들을 바다에 빠뜨린 것 아닌가? 공포에 질린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어야 살려 준다고 거짓말을 하고 구경한 것 아닌가? 살리려고 뛰어드는 사람들을 막아선 것 아닌가?
몰살시키지 못하고 “80명이나 구조해서” 실망했는가? 절규하며 쓰러지는 엄마 아빠들이 “미개”해 보였는가? 네 이웃의 비명에 파묻혀 있어도 내 뱃속의 욕망에 충실하라고 교육하고 싶었는가? 학살극의 대성공을 “기념 촬영”하고 싶었는가? 사망자 300명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교통사고 사망자 수”만큼의 학살을 준비하고 있는가?
도대체 당신들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우리는 정부에 요구한다.
하나, 세월호의 인천에서부터 진도까지의 모든 항적과 교신기록을, 그리고 배를 공개하라!
하나, 세월호 선원과 청해진해운을 국민 앞에 세워서 진실을 말하게 하라!
2014. 5. 17.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운영위원회
1) 이재진 기자, “세월호 사고 당일 오전 8시경 침몰했다는 문건 ‘또’ 실수?”, ≪미디어 오늘≫, 2014. 5. 8.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448)
2) 같은 기사.
3) 박기용 기자, “어민 ‘7시-7시30분 배 정지 목격’, 최초 신고 시간보다 1시간여 일러”, ≪한겨레≫, 2014. 4. 20.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3760.html)
4)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5200517
5) 이재진 기자, 앞의 기사.
6) “사고 당일(16일)부터 이튿날인 17일 정오까지의 상황을 담은 5페이지 분량의 도교육청 일지에는 지난 16일 오전 8시10분 제주해경이 “배와 연락이 안 된다”고 단원고에 전화를 걸어왔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 경기도교육청 정상영 부대변인은 안산올림픽 기념관에 설치된 세월호 침몰 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사고당일 오전 8시 10분 단원고 관계자가 제주해경이라는 사람과 통화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유명식, “[세월호 참사] [단독] ‘연락두절’ 해경에 인솔교사 연락처 알려줘”, ≪뉴시스≫, 2014. 4. 21.) (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21134410796)
7) 항행경보(제14-155호) 진도군 관매도부근 여객선 침몰 조난 협조항행경보(제14-155호).
“16일 오전 8시 55분경 전남 진도 부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 중이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중이며, 세월호에는 수학여행 학생 등 승객 476여명이 탑승 중이니, 인근해역을 항해중인 선박과 어선은 조난 구조에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남해안 ∼ 진도 연안 ∼ 여객선 침몰 중
○ 예상 시간: 4월 16일 오전 8:55 경
○ 지점: 전남 진도군 관매도부근 해상
○ 선명: 세월호(6825톤). 끝.
※ 긴급사항 전파를 위해 당시 사고 예상시간을 8:30분경으로 발령하였으나 정부공식 사고발생 시간인 8:55경으로 정정합니다.”
(http://www.khoa.go.kr/hpt/hptPopup.do?p_id=2955)
8) “뉴스타파가 세월호 침몰 사고가 신고 시간보다 20분 앞서 발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뉴스타파는 18일 트위터를 통해 ‘세월호 사고 발생이 목포해경에 신고된 것보다 20분 이상 앞섰다고 기록된 상황 보고서를 뉴스타파가 입수했다’고 전하며 5분짜리 영상을 공개했다. 진도군청 상황실이 작성해 전라남도 상황실에 보낸 세월호 여객선 침몰 상황 보고서를 보면 사건 발생 일시가 지난 16일 오전 8시 25분이라고 기록돼 있다. 목포해경에 구조신호가 접수된 오전 8시 58분보다 33분 빠른 시각이다.” (김수정 기자, “뉴스타파 “세월호 침몰, 신고시간보다 20분 앞섰다””, ≪OBS플러스≫, 2014. 4. 20.) (http://www.ob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7702)
9) “8시 30분쯤에 배에 이상을 느꼈습니다. 119에 신고를 했고, 3, 4층으로 뛰어다니며 학생들에게 빨리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자리에 앉아 있으라’는 방송이 나오더군요. 선장이 너무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김수지ㆍ김미겸ㆍ김효은 기자, “불신은 어떻게 시작됐나?”, ≪디스패치≫, 2014. 4. 20.)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420170407467)
10) “세월호는 급선회 때 3분 36초 동안 신호가 수신되지 않아 전기가 끊기는 등의 이상 징후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승무원과 탑승자들은 이보다 1시간여 전부터 큰 소리가 들리는 등 이상 징후가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양수산부 항해지원과 관계자는 ‘8시 48분까지 신호가 들어왔고 3분 동안 신호가 끊겼다. 전기 등의 공급이 끊겼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급선회는 보다 근본적인 사고 원인이 만든 결과일 수도 있어 보인다.” (진명선 기자, 도쿄/길윤형 특파원, “‘침몰 위기’ 신고 6분전, 뱃머리 급하게 110도 틀어”, ≪한겨례≫, 2014. 4. 17.)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3384.html)
11) 비행기 공항에는 관제탑(소)이 있어 항공기의 이착륙 등을 관리한다. 항구에도 해상교통관제센터가 있어 항구의 안과 주변 지역에 들어오는 선박들을 감시한다. 전국 17곳에 설치돼 있다. 15곳은 해양항만청이 관리하고 있고, 진도와 여수만 해양경찰청이 관리하고 있다. 이곳은 사고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해경이 직접 관리한다고 한다.
12) “강상보 제주 관제센터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목포나 진도 등 해역에서 (세월호를 포함해) 우리 쪽으로 교신해 온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멀리 교신이 되는 것도 이례적이다. 가끔 봄철에 전파가 멀리 넘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서 연결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평상시에는 연락이 되지 않는데 날씨 같은 ‘하늘의 도움’으로 제주 관제센터와 연락이 됐다는 것이다.” (이경미ㆍ박수지 기자, 제주/허호준 기자, 김경무 선임기자, “[단독] 세월호, 진도 관제구역 진입 때 항행 신고 의무 무시”, ≪한겨레≫, 2014. 4. 22.)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3967.html)
13) http://idolbox.tistory.com/16737에서 들어 보라.
14) 특별취재팀, “‘탈출 명령 없었다’…골든타임 31분 우왕좌왕(종합4보)”,≪연합뉴스≫, 2014. 4. 20.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4/20/0200000000AKR20140420038453055.HTML?input=1179r)
15) “진도VTS와 세월호 교신 전문”, ≪조선닷컴≫, 2014. 4. 20.
“[9시 13분-14분]
세월호: 네, 빨리 좀 와 주십시오.
진도 VTS: 주변에 어선들까지 다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두라 에이스: 옆에 보트가 탈출하네요. 좌현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접근이 위험합니다. 아무튼 최대한 안전거리 확보해서 접근해 보겠습니다. …
진도 VTS: 세월호, 현재 승객들이 탈출이 가능합니까?
세월호: 지금 배가 많이 기울어서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9시23분-24분]
진도 VTS: 경비정, 도착 15분전입니다. 방송하셔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착용토록 하세요.
세월호: 현재 방송도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20/2014042001115.html?newsplus)
16) “한국 여객선 선원: 우리는 침몰하는 배를 버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목요일, 한국 여객선 선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녀와 동료들은, 배 안에 승객들이 갇혀 있는 동안, 배를 버리라는“명령”을 받았다.”
<[원문] South Korea Ferry Crew: We Were Ordered to Abandon Sinking Ship
A crew member on the sunken South Korean ferry said on Thursday she and her colleagues were “under command” to abandon ship while passengers were trapped on board.> (Reuters, “South Korea Ferry Crew: We Were Ordered to Abandon Sinking Ship”, NBC NEWS, April 24 2014.) (http://www.nbcnews.com/storyline/south-korea-ferry-disaster/south-korea-ferry-crew-we-were-ordered-abandon-sinking-ship-n88396)
17) “진도VTS와 세월호 교신 전문”.
18) 최민영ㆍ송윤경ㆍ김향미 기자, “[특별기획] 세월호 침몰에서 참사 키운 부실 대응까지…‘비극의 재구성’”, ≪경향신문≫, 2014. 5. 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071928201&code=940202)
19) 뉴요코리안, “‘세월호’ 침몰 당시 선미 손상 가능성 사진 급속 확산”, ≪서프라이즈≫, 2014. 4. 23.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5008)
20) “16일 오전 진도 앞바다에서 승객 475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한 가운데 전날 밤 암초에 부딪친 뒤 운항을 계속하다 침몰 사고가 난 것 같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날 구조된 한 구조자는 전남 진도군 진도읍 실내체육관에서 ‘지난 15일 오후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 전북 군산 인근 바다를 지나던 배가 왼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었다’고 밝혔다. 구조자는 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밖으로 나가 확인했지만 파도는 잔잔했다’며 ‘배가 크게 흔들릴 정도의 기상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장민 기자, “세월호 구조자 “전날 밤 1차례 좌로 15도 기울었다””, ≪우먼컨슈머≫, 2014. 4. 16.) (http://www.womanc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134)
21) 박기용 기자, 앞의 기사.
22) 권경안ㆍ김형원 기자, “침몰까지 140分… 눈뜨고 아이들 잃는 나라”, ≪조선일보≫, 2014. 4. 17.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17/2014041700213.html)
23) 4월 18일 오후 1시에 완전 침몰된다.
24) 특별취재팀, “<여객선침몰> 해경 ‘나홀로’ 구조활동…민간어선 접근 통제”, ≪연합뉴스≫, 2014. 4. 17.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4/04/17/0505000000AKR20140417149100054.HTML)
25) ‘언딘’을 이끌고 있는 김윤상 대표이사는, 최상환 해양경찰청 경비안전국장, 김용환 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과 함께 해양구조협회 부총재직을 맡고 있다.
26) “16일 오전 진도 앞바다에서 승객 475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한 가운데 전날 밤 암초에 부딪친 뒤 운항을 계속하다 침몰 사고가 난 것 같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날 구조된 한 구조자는 전남 진도군 진도읍 실내체육관에서 ‘지난 15일 오후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 전북 군산 인근 바다를 지나던 배가 왼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었다’고 밝혔다.” (김장민 기자, 앞의 기사.)
27) “최초 신고가 접수된 오전 8시 55분보다 크게 앞선 시점에 세월호가 사고 해역 부근에 멈춰 서 있었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사고 해역 인근인 관매도에 살고 구조에도 나선 한 어민은 언론 인터뷰에서 “바다로 미역을 따러 나가는 시간이 아침 6시 30분이니 내가 바다에서 그 배를 본 것이 아마 7시에서 7시 30분쯤이었을 것이다. 하얀 배가 가만히 있기에 왜 그러나 싶고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그 외에 별다른 특이점이 안 보여 그냥 마을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앞의 기사.)
28) 최원우 기자, “[진도여객선침몰/구조 총력전] 악천후 속 수색… 船內 진입 이틀째 진전 없어”, ≪조선일보≫, 2014. 4. 1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18/2014041800224.html)
이 사진을 보자. 배의 앞에 양쪽으로 거의 대칭으로 긁힌 흔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월호는 2달 전 도색을 했고 그동안 충돌 사고는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29) “세월호는 오전 8시 25분쯤 맹골수도로 19노트 속력으로 진입했으나 오전 8시 49분 37초께부터 AIS 장치의 신호가 끊어지고 배가 기울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조합 제주지부 운항관리실이 마지막 위치를 확인한 시각이 바로 세월호가 맹골수도 진입한 시점과 이상 징후가 나타난 시점 한가운데 있다. 앞서 이 시각[8시 30분 전후: 인용자]에는 선내에서 ‘예정 시각보다 1시간 30분 지연된 낮 12시께 [제주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고…” (신지원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 시각 즈음 교신한 해운조합 제주운항관리실… “내용은?””, ≪경기일보≫, 2014. 4. 45.)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759711)
30) “출발부터 오보였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난 16일 오전, 언론은 ‘경기 안산단원고등학교 사고대책본부는 세월호에 타고 있던 2학년 학생과 교사 전원이 구조됐다고 오전 11시 5분 해경으로 통보받았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러나 오보였다. 오후 2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는 ‘탑승객 477명 중 368명을 구조했다’고 밝혔고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그러나 이것도 오보였다.” (정철운 기자, “세월호 참사, 언론은 ‘오보 참사’”, ≪미디어 오늘≫, 2014. 4. 23.)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174)
31)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국민 호소문”, 2014. 4. 18.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cool&id=47865&page=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