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대전·러시아혁명 이후 배경
사회주의 혁명 속 남녀의 사랑 그려, 공산혁명 당시 지식인의 고통 묘사
설원을 달리는 기차·눈 쌓인 저택 등 영화사 남을 그림같은 명장면으로 유명
1914년 6월,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가 암살당한 사라예보 사건으로 시작된 1차 대전(1914~1918)은 영국·프랑스·러시아 등의 연합국과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의 동맹국이 싸운 전쟁이다. 나중에 미국·오스만제국 등이 합류하면서 세계 전쟁이 됐다. 발칸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게르만계와 슬라브계가 충돌한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1917년 ‘2월 혁명’과 레닌이 주도한 ‘10월 혁명’이 성공해 소비에트 연방정부(소련)를 수립하고는 독일과 단독 강화 조약을 맺고 세계전쟁에서 빠졌다
의사이자 시인인 지바고와 연인 라라
영화 ‘닥터 지바고’는 1차 대전과 러시아 혁명 이후 내전을 배경으로 의사이면서 시인인 지바고와 그의 연인 라라 간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서사시다. 상영시간이 3시간20분에 가까운 이 영화는 전쟁과 사회주의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남과 이별을 이어가는 남녀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당시 혁명 속에서 고통받는 지식인의 아픔을 잘 표현하고 있다.
1923년 붉은 군대가 소련을 수립한 이후 지바고의 이복 형(알렉 기네스)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지바고와 라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출생을 확인하는 대화를 통해 1차 대전과 공산혁명 속에서 지바고와 라라가 겪는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쫓아가는 형식이다.
의대생 유리 지바고(오마 샤리프)는 그로메코 가(家)의 딸 토냐(제랄린 채플린)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반면 혁명가 청년 파샤를 애인으로 둔 라라(줄리 크리스티)는 러시아 고위 법관인 코마로브스키와 원치 않는 관계를 이어가다 심한 고열로 지바고의 치료를 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지바고는 운명적인 사랑의 느낌을 받게 된다.
파샤와 코마로브스키 두 남자 사이에서 힘들어하던 라라는 고급 사교장에서 코마로브스키에게 총상을 입힌다. 그 연회에 참석한 지바고도 다시 라라를 보게 된다.
1차 대전이 일어나 지바고는 군의관으로 참전하고 라라는 남편을 찾으려고 종군간호사가 된다. 재회하는 지바고와 라라.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1차 대전이 끝난 뒤 헤어진다. 레닌의 혁명정부가 수립되자 지바고 가족은 아내 토냐의 고향인 유리아틴으로 숨어든다. 거기서 우연히 라라를 다시 만난다.
아내와 라라 사이에서 고민하던 지바고는 집에 돌아오던 도중, 빨치산에 잡혀 강제 입산한다. 그 후 어렵게 탈출에 성공한 지바고는 가족은 찾지 못하고 다시 라라와 만나게 된다. 지바고의 생사를 알 길 없는 가족은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이제 단 둘뿐인 지바고와 라라는 유리아틴에서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지바고는 남편 파샤의 죽음으로 생명에 위협을 받는 라라를 코마로브스키와 함께 떠나보내기로 한다.
20세기 초 러시아 국민들의 비참한 모습
영화는 20세기 초 전쟁과 혁명으로 불안한 러시아 정세를 보여준다. 제정 러시아와 노동자 및 학생 간의 유혈 충돌, 구질서를 붕괴시킨 공산혁명에 이어 내전까지 겪으면서 이념과 계층 간의 갈등과 땔감 부족 등 경제적 고통을 겪는 국민의 비참한 모습을 담고 있다.
영화는 특히 공산혁명 당시 지식인의 고통을 잘 묘사하고 있는데, 좌우의 이념 대립 속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지바고는 군의관으로서는 혁명군으로부터 대우받다가도 발표한 시 때문에 나약한 지식인으로 찍혀 비판받는 처지가 된다.
영화엔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많다. 설원인 우랄산맥을 넘는 기차, 끝없이 넓은 들판에 핀 해바라기, 눈 쌓인 환상적인 시골 저택, 그 안에서 시린 손을 불어 가며 시를 쓰는 지바고의 모습, 한 점이 되도록 설원을 달려가는 마차, 눈 덮인 벌판에서 벌이는 기마병의 전투 등 러시아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그림처럼 재현했다.
콰이강의 다리 등 거장 데이비드 린 감독
영화 주제곡인 모리스 자르의 ‘라라의 테마’는 역사의 격변기에 희생돼 가는 여주인공 라라의 아픔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영화를 더 유명하게 만든 이 음악은 러시아 민속 악기 발라라이카(Balalaika: 영화에서 라라의 딸임을 증명하는 장치)를 사용해 감성적이고 애잔한 현악 선율을 들려준다.
정치적 압력으로 1958년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해야 했던 소련의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 원작을 ‘아라비아의 로렌스’ ‘콰이강의 다리’ 등 대작들을 주로 만든 거장 데이비드 린이 감독했다. 이집트 출신 배우 오마 샤리프는 이 영화로 세계적인 배우가 됐다.
레닌이 이끄는 붉은 군대와 군주제·자본주의 등이 연합해 형성된 백군이 싸운 러시아 내전은 1923년 붉은 군대가 소련을 수립하면서 사실상 끝났다. 하지만 레닌이 일찍 죽자 스탈린이 1924년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올라 다수 반대파를 숙청하고 독재 체제를 확립했다. 이후 67년간 공산독재를 이어오다 1991년 12월 25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을 사임하면서, 소련 연방정부는 해체됐다.